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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어여쁘소서"…이상 '이런 시'의 진실



문화 일반

    "내내 어여쁘소서"…이상 '이런 시'의 진실

    "이상의 시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지난 2013년 방영된 MBC '드라마 페스티벌 - 이상 그 이상'에서 시인 이상을 연기한 배우 조승우(사진=MBC 제공)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려는 듯, 누리꾼들이 널리 공유하며 공감해 마지않는 시 한 편이 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옛 사랑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이는 이 글은 시인 이상(본명 김해경·1910~1937)의 작품 '이런 시'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시가 이상의 작품인 것은 맞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것은 '이런 시'의 일부다. 그 전문은 아래와 같다.

    '역사(규모 큰 토목·건축 공사)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 내어놓고 보니/도무지 어디서인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일꾼)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큰)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괴이한 일)로다, 간데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 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 버리고 싶더라.'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김주현 교수는 "제가 보기에 (이상의 '이런 시'가 떠나보낸 사랑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라는 것은) 과다한 해석이고, 시의 전체 맥락으로 보면 커다란 돌 자체에 대한 인상으로 다가온다"면서도 "하지만 이상의 시 같은 경우 감상은 (읽는 사람의) 자유"라고 설명했다.

    ◇ "이상, 정해진 해석이 없는 작품 쓴 유일한 문학가"

    시인 이상을 모델로 한 화가 구본웅의 작품 '친구의 초상'(캔버스에 유채·62×50㎝·1935년·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상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같은 대학 박현수(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상의 시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지난 20여 년간 이상 시를 연구해 온 입장이지만, 석사과정을 처음 시작하는 후배들이 내놓는 이상 연구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고 '맞다' '틀리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 시의) 해석은 열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의 시는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것이다."

    박 교수는 "이상 관련 학술대회를 하다보면 길을 가다 들어와서 질문하는 사람들도 가끔씩 있는데, 그 질문에 대해서도 확실히 '아닙니다'라고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이러한 특징을 지닌 것은 이상 문학 밖에 없다"고 전했다.

    결국 "이상은 정해진 해석이 없는 작품을 쓴 유일한 문학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상의 삶의 궤적을 보면, 건축학(이상은 건축가이기도 했다)이라는 당대 서양 근대성의 가장 앞선 원리를 접했다. 그 영향으로 문학 자체도 자신의 정해진 의도에 따라 만든다기보다는, 그 의도를 뺀 상태의 작품을 추구했다. 이처럼 특별한 의도가 상정되지 않는, 정해진 답이 없는 데서 출발하는 작품이 모더니즘 문학, 전위 문학으로서 이상 시의 특징이다."

    그는 "이상은 이처럼 해석을 전제하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문학에 매력을 느끼고 그것을 실천했다"고 설명하면서, 한 일본 평론가의 이상 문학 분석을 소개했다.

    "그 평론가는 '이상이 일본 모더니즘도 도달하지 못한 수준에 어떻게 올라갔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일본은 기존 전통이 너무 강해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가 너무 어려운 환경인데, 한국의 경우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전통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화됐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들이 가능했다'는 식으로 분석하더라."

    박 교수는 "물론 한국에서도 이상 외에는 그러한 문학가가 없다는 것으로 봤을 때, 일본 사람 입장에서 쓴 이러한 분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다만 당대 질서 잡힌 국가 정체성이 없었던 데다, 이상이 지녔던 전위문학에 대한 관심과 정확한 이해, 그것을 창조적으로 풀어냈던 천재적 재능이 한데 어우러져 그의 문학적 특징을 만들어낸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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