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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5달 만에 돌아온 'PD수첩'이 보여준 TV판 '공범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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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5달 만에 돌아온 'PD수첩'이 보여준 TV판 '공범자들'

    148일 만에 MBC 'PD수첩'이 돌아왔다. 그간 방송제작현장을 떠나있던 PD들부터 정재홍 작가, 손정은 아나운서까지 '왕년의 기수'들이 모인 'PD수첩'의 복귀 후 첫 방송은 'MBC 몰락, 7년의 기록'이었다.

     

    "지난 겨울 촛불의 열기로 뜨거웠던 이 광장에서 MBC는 시민 여러분께 숱하게 많은 질책을 들었습니다. MBC도 언론이냐, MBC는 더 이상 보지 않는다, 기레기, 권력의 나팔수 그리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까지 들었습니다. MBC에 대해 얼마나 시민 여러분이 화가 나셨을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오랫동안 시청자 여러분의 사랑을 받아왔던 MBC가 어떻게 불과 7년 만에 이렇게까지 외면당하고 몰락할 수 있었을까요.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자는 미래가 없다고 합니다. 오늘 'PD수첩'에서는 MBC가 겪은 7년 동안의 몰락 과정을 돌아보고 반성과 성찰을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PD수첩' PD들은 총파업에 들어가기 앞서 지난 7월 21일부터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일상적인 아이템 검열 등 제작자율성 침해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제작거부 전 마지막 방송이 나간 7월 18일로부터 148일이 흐르고 나서야 MBC 'PD수첩'이 돌아왔다. 그간 방송 제작 현장을 떠나있던 PD들부터 정재홍 작가, 손정은 아나운서까지 '왕년의 기수'들이 모인 'PD수첩'의 복귀 후 첫 방송은 'MBC 몰락, 7년의 기록'이었다.

    방송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 일당의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 광장에 촛불이 등장했던 작년 겨울, MBC 취재진이 시민들로부터 비난을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 "파업해, XX들아!", "어렵게 공부해서 그렇게 사냐, 엠X신 기자들아"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왔다.

    MBC라는 마이크 태그를 떼고, 시민들이 가득한 광장을 직접 누빌 수 없어 다른 건물에 올라가 화면을 담아야 했던 모습과, 더 이상 '예전'의 MBC가 아니어서 관심이 떠났으며 보지 않는다는 시민들의 신랄한 평가가 이어졌다. "왜 안 보는지는 알잖아요. 다들 MBC를 왜 안 보는지는 알잖아요."

    이날 'PD수첩'은 왜 한때 사랑받았던 MBC가 이렇게까지 형편없는 취급을 받게 되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MBC 경영진, 특히 보도와 시사 부문 수뇌부가 중심이 된 '내부'에서의 통제와 검열이 한 축이었다. '방송장악 문건'을 작성, 실행하고 성과를 측정했던 국정원의 '공작'이 다른 한 축이었다.

    (사진='PD수첩' 방송 캡처)

     

    우선, 그간 MBC 보도 편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사례,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등 영상 사용 및 편집에 관한 지침, MBC 보도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오히려 방해했다는 유가족의 증언이 소개됐다.

    보도영상지침에 따라, MBC뉴스에서 태극기 집회의 존재감과 의미는 커져갔다. 방송에 쓸 수 없을 만큼 화질이 나빠도 집회 참가자들이 많이 모였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이유로 외부의 태극기 집회 영상이 쓰였다. 그러나 촛불집회는 부감샷(위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이나 풀샷 대신 시민 3명이 걸어가는 장면을 오래 비춘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축소했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무리하다 싶은 지시 뒤에는 국정원이 있었다는 내용이 후반부를 채웠다.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을 단독 입수했다는 'PD수첩'은 이 문건을 "실제론 MBC를 장악하기 위해 작성된 정교한 시나리오"라고 표현했다.

    2010년 3월 2일 작성돼 3월 4일 폐기를 요구한 이 문건에는 △손석희·김미화·성경섭·김성수 등 문제 진행자들 반드시 교체 △신임사장 취임 후 근본적 체질개선 추진 △당장 폐지가 부담스러운 'PD수첩'은 사전심의 확대시행 △좌편향 프로 제작진은 프리랜서 작가·외부 출연자까지 전면 교체 △좌편향 간부진과 기자·PD들이 격리시킬 수 있는 외곽조직 신설 등의 실행 방안이 담겨 있었다.

    또한 'PD수첩'을 좌파 세력 해방구, 'MBC스페셜'을 친북 좌파 성향, '시사매거진 2580'을 편파방송 주도, '후플러스'를 좌파들의 선전 도구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사진='PD수첩' 방송 캡처)

     

    전직 국정원 직원은 "생산 즉시 달랑 이틀 후에 파기할 정도의 극비를 요하는 건 사실 대외비로 생산해서도 안 된다"며 "(이런 설정을 보면) 김재철 사장에게 전달하기 위한 문건이지 않나"라고 바라봤다.

    국정원 방송장악 문건 사실을 발표한 국정원 개혁위원회의 장유식 공보간사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시한 것"이라며 "조직적 차원에서 종합대책을 세운 형태"라고 설명했다.

    외부 진행자와 프리랜서 작가들까지 해고할 만큼 꼼꼼하고 집요하게 이뤄졌던 '장악'에 대해, 지시자로 지목되는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대개 침묵을 지켰다. '국정원 공작에 협조했다는 의혹'을 하나의 '주장'으로 치부하고 부인한 경우도 있었다.

    조직 구성원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탄압하고, 동시에 권력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경영진의 모습은 지난 8월 개봉한 최승호 감독(현 MBC 사장, 해직PD 출신)의 영화 '공범자들'에서 앞서 등장한 바 있다.

    각 부문 본부장과 지역사·관계사 사장으로 승진한 이들이 손쉽게 '나는 모른다'거나 '그런 적 없다'고 일관하며 "잘들 살고" 있는 모습은 이날 방송에도 담겼다. 돌아온 'PD수첩' 첫 방송 예고기사에서 'TV판 공범자들'이란 수식이 나온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사진='PD수첩' 방송 캡처)

     

    그래서 'MBC 몰락, 7년의 기록'은 성취도, 한계도 영화 '공범자들'과 겹친다. MBC가 더 '이상한 방송'으로 가게 된 계기, 각종 통계와 분석을 근거로 둔 지난 7년간 MBC의 보도 행태, 그로 인한 시청자들의 피해가 고루 다뤄지지만, 가장 강력한 서사는 이른바 '가해자'나 '공범자'로 지목되는 이들의 태연하거나 뻔뻔한 태도에서 나왔다.

    김장겸 전 사장, 안광한 전 사장, 김재철 전 사장, 백종문 전 부사장, 최기화 전 기획본부장, 윤길용 전 시사교양국장, 전영배 전 보도본부장, 김철진 전 편성제작본부장, 김현종 전 시사제작국장 등이 저지른 행태와 국정원 문건이 일치함에도 이들이 문제제기를 일축하거나 무시하는 장면을 담는 데 집중한다. 신동호 전 아나운서국장과 배현진 전 '뉴스데스크' 앵커도 등장했다.

    MBC의 악의적 보도에 누구보다 괴로워했던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故 김유민 학생 아버지)에게, 왜곡보도를 지시·실행한 경영진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김 씨는 "언론이 정말로 힘없는 국민들의 편에 서서 있는 그대로만 보도해준다면 세상이 이렇게 안 됐다"고 고백했다.

    MBC-KBS 총파업 출정식 당시 무대에 올라 지지 의사를 밝힌 또 다른 세월호 유가족 유경근 씨(故 유예은 학생 아버지) 역시 잘못된 언론 보도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 동시에 바로 자신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때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온 언론인들이 '언론독립성'을 쟁취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한다고 강조하며, 간부들이 아니라 일선 언론인들도 더 무거운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PD수첩' 방송 캡처)

     

    "공정한 언론, 언론 독립성 쟁취하려고 파업하는데 왜 지지할 수 없다는 시민들이 있을까요? 왜냐하면 망가져버린 언론의 피해자는 여러분들이 아니라 바로 국민들, 예은이 아빠인 나이기 때문입니다. 진도 체육관과 팽목항에서 나를 두 번 죽인 건, 여러분들의 사장과 보도본부장이 아니라 그 현장에 있던 바로 여러분들이었습니다. 아이들 영정 들고 KBS 앞을 찾아가 울부짖을 때 누구 하나 뒤로 몰래 와서 대신 미안하다고 이야기한 사람 단 한 명이라도 있었습니까. (…) 공부하십시오! 분석하고 비판하십시오. (…) 보이는 것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숨겨져 있는 거짓, 위선, 모략, 책략까지 들여다보고 보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보도라고 하는 그 중립성 뒤에 숨기 마시지 바랍니다."

    내부 구성원들이 수년간 꾸준히 반성의 목소리를 내 왔기 때문인지 이날 'PD수첩'에서는 그 목소리가 다소 약하게 느껴졌다. 잘못된 보도로 사회에 해를 끼치는 데 침묵하거나 동조함으로써 시민들에게 '공범'이란 말을 들었던 언론의 부끄러운 초상보다는, '갖은 압박과 부당한 처사에 어려움을 겪은' 피해자'로서의 모습이 더 선명히 보였다.

    몸담고 있는 언론사가 저지른 치부를 드러내고 철저한 반성을 통해 그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다짐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MBC의 이 같은 행보가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평을 듣는 이유일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MBC에서 벌어진 모든 문제들을 '구체제'와 그에 적극적으로 따르고 옹호한 이들만의 것으로 돌릴 수는 없다. 탄탄한 공영방송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뿐 아니라, 과거의 흠결을 돌아보는 과제는 MBC 구성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일이다.

    이날 'PD수첩'은 방송 말미 "권력에 장악되면서 허물어져 버린 MBC의 7년 몰락사는 저희에게도 소중한 교훈을 남겼다. MBC의 존재는 권력자에게 인정받을 때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공정방송을 할 때 비로소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클로징 멘트에서 밝힌 것처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성하겠다. 국민을 위한 방송, 시민의 안전과 권리를 위한 방송,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방송"으로 거듭날 새로운 MBC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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