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새로 개발한 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형' 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힌 29일 오후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서 한 시민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시진=황진환 기자)
북한이 29일 새벽 또다시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압박에 굴하지 않고 핵무력 완성을 위해 계속 전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북한이 지난 9월 도발 이후 두 달 넘도록 잠잠했던 점을 두고 일각에서는 대화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내비쳤지만, 이날 도발 재개로 한반도 정세는 당분간 시계 제로의 거친 눈보라에 휩싸일 전망이다.
북한이 지난 9월 15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일본 상공을 넘어 북태평양으로 날려보내는 등 줄기차게 도발을 벌이다 별안간 조용해지자 '물밑 대화' 가능성에 점차 무게가 실리던 차였다.
북한의 도발이 중단된 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그(김정은)의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북한 역시 이 기간동안 이전보다 훨씬 약한 강도의 비판 성명만 냈을 뿐이었다. 이러한 기류를 두고 북미 간 대화에 대한 기대는 점차 커졌다.
하지만 이날 도발로 대화 기류를 타던 북미 관계에도 급전환이 불가피해졌다.
북한은 미사일 도발 이후 '중대 발표'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이 성공을 거뒀다고 천명하며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초대형 중량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로켓"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미국에 대한 위협'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자 미국과 대화 국면에 들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천명한 것이다.
북한이 이번 미사일 도발을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후 불과 8일만에 감행했다는 점 역시 주목할만 하다. 북한이 계속해서 높아지는 미국의 제재와 압박에 대한 반발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사진=유엔 제공/ UN Photo)
이번 도발을 계기로 미국은 안보리에서 대북 유류 공급에 추가 제약을 가하는 등 고강도 추가 제재결의를 도출하려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또 미국 조야에서 제기돼온 군사적 대응 논의 역시 다시 제기되며 한반도 불안을 심화시킬 수 있다. 결국 대화의 모멘텀은 당분간 만들어지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미 대화 가능성이 요원해진 상황에서 한반도 정세는 또다시 냉랭한 분위기로 접어들 수 밖에 없다. 북한으로서도 매년 12월 초부터 이듬해 3월까지 실시하는 동계훈련을 앞두고 있어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보인 것"이라며 "이번 연말까지 어떻게든 핵을 완성하고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하겠다는 북한의 기존 입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중관계 악화 역시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만큼 대화 모색의 기회는 더욱 좁아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쑹타오(宋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방북 일정을 마치고 20일 저녁 베이징(北京)에 도착해 서우두(首都) 국제 공항 귀빈실을 나서고 있다. (사진=김중호 베이징 특파원/자료사진)
또 지난 1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한을 방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도발을 다시 감행한 것이어서 미국 뿐 아니라 중국의 뒤통수를 친 격이 됐기 때문이다.
또다른 외교소식통은 "중국 역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 제재·압박 국면에 당분간 동참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사 방문 직후 도발을 했다는 것은 중국의 대북 영향력 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당분간 중국이 나서 북중 대화를 시도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당초 북한의 '도발 중단' 국면을 길게 유지하며 내년 평창올림픽에서 다시 대화를 시도해 보겠다는 구상이었다.
이 역시 북한의 도발로 벽에 부딪힌 가운데 당분간 우리 정부 역시 미국 주도의 강력 제재·압박에 속도를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이 이번에는 종전과 달리 '핵무기 완성'을 내걸고 나섰고, 실제로 미사일 사거리 면에서는 이제껏 발사한 북한 미사일 중 최고 수준이었다는 점 역시 이번 도발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에 엄중함을 더하고 있다.
이후 미국 주도의 안보리 추가 제재 등 강력 대응과 '기술적 자신감'을 얻은 북한의 추가 도발이 맞물리며 긴장감은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또 북한이 연이은 미사일 실험을 통해 사거리를 늘려왔고 마침내 미국 본토까지 공격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렸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북한이 추가 실험을 통해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을 향상시키며 위협을 구체화하면 미국 역시 특단의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북한의 전략적 목표는 핵보유국 선언을 통한 미국과의 대등한 협상"이라면서 "미국도 이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제재를 통해 북한을 더욱 압박하고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북한의 향후 행보 등에 따라 대화의 가능성이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경제적 제재가 장기화되길 바라지 않는 북한이 연말 서둘러 핵 완성을 선언한 뒤 평창올림픽 참가 등을 계기로 유화적 제스춰를 보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평창동계올림픽 이전까지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 완료 선언을 할 가능성이 높고, 이후 평창을 이용해 대화 분위기로의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평창올림픽에서의 분위기를 남북 혹은 북미 대화로 연계하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