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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전체관람가' 취지는 왜 변질될 수밖에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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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전체관람가' 취지는 왜 변질될 수밖에 없었나

    영화계 고질적인 '열정페이' 병폐 무비판 수용·답습…"유감스럽다"

    (사진=JTBC 제공)

     

    유명 영화감독들이 연출한 단편영화와 그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가 이른바 '열정페이' 논란에 휘말렸다.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이 그간 영화계 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열악한 무보수·저임금 노동 관행을 비판 없이 수용함으로써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아람 작가는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어제 jtbc '전체관람가' 보고 충격받았다"며 글을 이어갔다.

    "제작비 3천만원으로 유명감독들이 매회 단편영화를 연출하는 프로그램. 제작자는 아니지만 어제 본 박광현 감독의 '거미맨' 제작 견적은 최소 3억원 근처는 될 것 같았다. 영화 내내 클럽 몹씬에 특수효과, 와이어 액션까지… 예산 3천만원에 맞추기 위해 온갖 무보수 노동이 투입된다."

    손 작가는 "배우부터 의상, 심지어 밥차까지. 내가 아는 사람도 꽤 나왔다. 열악한 제작현장 노동을 담아내는 수준을 넘어섰다. 방송이 착취를 재생산하고 있다. 프로그램 성격상 예산 한계를 둘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한다"며 제작진에게 펀드 조성을 제안했다.

    "내 제안은 jtbc가 매 방송 회차당 1억원의 절감 예산을 모아 방송이 끝날 때쯤 수십억 원 규모의 '전체관람가' 펀드를 조성하라는 것. 그리고 이 펀드를 한국 단편 영화 스태프들의 인건비로 운영하면 윈-윈이다. 한 회차당 1억원의 기금을 내면 방송국에 무슨 수익이 남냐고 묻는다면, 방송국이 안 낸다고 해도 그 비용은 발생한다. 스태프들이 지갑 대신 몸으로 지불하고 있을 뿐."

    그는 "정상 노임 지불로는 수지가 맞지 않으니 프로그램을 접겠다고 jtbc가 판단한다면 완벽하게 이해한 것이다. 한국 영화들이 으레 그렇게 제작되고 있다는 걸"이라며 "올초 촬영된 영화 '아버지의 전쟁' 같은 경우는 스태프 임금 잔금을 안 내려고 제작비 70퍼센트가 이미 투입된 영화를 제작사와 투자사가 던져 버렸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한 방송계 관계자는 15일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영화감독들이 제작비 3000만 원을 넘길 때 제작진에서 이를 제어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이라며 "제작진 입장에서는 '영화계 발전에 보탬을 주려는 나름의 취지가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단편영화에 대한 권리도 (출연하는) 감독들에게 모두 일임했고, 단편영화 유통 등을 통해 생기는 수익금은 영화발전 명목의 기금으로 쓰기로 한 것으로 안다"며 "본의 아니게 감독들 사이에서 작품 수준에 대한 경쟁이 붙어 제작비를 넘기고 친분 있는 스태프를 모으고 촬영 회차를 늘리는 식으로 취지가 흐려지는 상황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제작진, 더 나은 제작방식 고민 않는 것은 지나치게 방관적인 태도"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데는, 무엇보다 기존 영화계 관행이 해당 프로그램 안에서도 비판 없이 수용되고 구조화 된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영화산업노조 안병호 위원장은 "영화 현장의 경우 단편·독립·저예산 영화 등의 범주 안에서 무보수 노동 등이 당연하게 요구돼 온 측면이 있다"며 "더군다나 전파를 통해 그러한 행태가 공공연하게 나간다는 점은 유감스럽다"고 전했다.

    이어 "단편영화의 경우 학창 시절에 서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아름아름 만들어 왔다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 프로그램의 경우 유명 감독들을 섭외하고 주요 스태프들을 따로 섭외하고 이와 관계된 스태프들도 함께 고용하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영화계 관행을 마치 좋은 것처럼 안일하게 생각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진단했다.

    안 위원장은 "비단 '전체관람가'의 상황뿐 아니라 그동안 영화계에서 감독들이 해 오던 관행을 그냥 놔뒀던 경향이 있다"며 "방송사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보다 건전한 틀 안에서 감독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제작진이 사전에 영화계 노동 환경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고민했다면 이러한 일이 초래될 것을 미리 알았을 것이고, 사전에 예방 조치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감독들에게 (제작비만 제공하는 등의) 틀 안에서 만들어가라는 것은 지나치게 방관적인 태도"라고 비판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이 프로그램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이른바 열정페이 강요"라며 "감독들 본인은 강요가 아니라고 여기더라도 스태프들 입장에서는 감독이 요구하면 그렇게 해야 하는 부정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봤다.

    "노동문제 관점에서 재능기부, 열정페이가 관행으로 자리잡으면 해당 노동 기간에 자기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만 그 경력을 쌓을 수 있다. 생존을 위해 밥벌이를 해야 하는 사람은 그 경력을 쌓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결국 불평등을 심화시키기 때문에 옳지 않다. 열정페이가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이다."

    하 교수는 "최저임금을 보장할 수 없는 사업체는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이 최저임금법의 중요한 취지"라며 "무보수·저임금 노동 기간 스태프들의 생계는 당장 누가 보장해 주나. 결국 부유층 자제만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방송을 보고 문제점을 느낀 사람들이 그것을 규탄함으로써 제작진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무엇보다 합당한 제작비를 들여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 제작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면 냉정하게 문을 닫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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