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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전'과 원로 사학자 '쓴소리' 그리고 '역사의 죄인'



문화 일반

    '썰전'과 원로 사학자 '쓴소리' 그리고 '역사의 죄인'

    역사학자 한영우 "국민단합 해치는 세력,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

    (사진=JTBC '썰전' 방송화면 갈무리)

     

    지난 26일 방송된 JTBC '썰전'에 출연한 소설가 김훈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저서 '남한산성' 이야기를 하면서, 병자호란을 다룬 이 작품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해석에 대해 아래와 같이 비판했다.

    "국민의 단합이라는 것은 지당한 말이지만, 이렇게 불평등이 심화되고 제도화되고 구조화되고 세습화 된 세상에서 단합을 요구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단합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를 완화시켜 나가는 것이 단합의 길이다."

    그는 "야당에서 지도자의 잘못을 지적했는데, (그러한) 야당이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집권 여당이었잖나. 지도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지도층의 잘못이라고 말해야 옳은 것"이라며 "그것이 상대방에게 데미지를 입힐 만큼 (중요한) 자기의 정치적 이익이라고 생각한다면 앞날이 없는 것이다. 졸렬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김훈은 "(정치가)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정치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매일매일의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방송 말미 "'썰전'도 그런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 대립되는 논쟁만 하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며 "그 결과, 저 사람의 의견을 듣고 내가 변하지 않으면 그것은 논쟁이 아니다. 전쟁, 그야말로 전쟁"이라고 당부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김훈이 '단합을 위한 화합'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역사학자 한영우(79) 서울대 명예교수는 앞서 지난 25일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정조가 꿈꿨던 인권·복지 국가로서 조선의 모습을 강조했다.

    그간 정도전, 율곡 이이 등 조선시대 인물 연구에 천착하며 관련 평전을 출간해 온 한영우 교수는, 최근 '정조평전-성군의 길'(지식산업사)을 펴낸 데 대해 "'민국'(民國)을 꿈꿨던 정조(1752-1800, 재위 1777-1800)를 불러내고 싶었다"고 전했다.

    ◇ "정조가 꿈꿨던 '민국', 지금으로 치면 인권·복지 국가"

    영화 '사도'에서 배우 소지섭이 연기한 정조(사진=쇼박스 제공)

     

    한 교수에 따르면, '민국'은 '민본'(民本)보다 한 단계 발전한 정조의 정치적 이상향이었다. 민본이 '백성을 위한 정치'에 방점을 찍었다면, 민국의 핵심은 '백성에 의한 정치'에 있다. 결국 정조는 백성의 정치 참여가 확대된 나라를 구상했다는 것이다.

    "정조가 꿈꿨던 '백성에 의한 나라', 민국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첫째가 생산력을 높이고 유통경제를 발달시킴으로써 경제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그가 당대 서양의 물질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부국강병의 길이 있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교수는 "또 하나는 빈민구제였다. 정조는 여기에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당대 홀아비·과부·고아·독거노인 등 결손가정을 적극적으로 돕는 한편,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들까지 철저히 돌보면서 이들이 짓는 죄에 대한 형벌에도 아주 신중했다. 지금으로 치면 인권·복지에 총력을 기울인 셈"이라고 진단했다.

    "마지막이 백성들의 출세 길을 여는 것이었다. 정조 때 양반 아닌 사람의 과거 급제 비율이 53%였다. 앞서 광해군 때 19%, 영조 때 37%에 비해 크게 높아진 수치다. 조선 중기인 선조·광해군 때 문벌이 좋아야 출세할 수 있던 사회로 고착화 됐는데, 이를 극복하려는 과정이 숙종, 영조 대에 이뤄져 정조에서 꽃피운 것이다."

    그는 "당시 문벌을 앞세운 권력층이 좋은 관직은 모조리 차지하고 당쟁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해 가던 것에 정조는 비판적이었다"며 "그래서 문벌을 억압하고 남인, 소론 등 그동안 조선 사회에서 소외됐던 사람들을 끌어들여 문벌을 억제하는 정책을 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조 사후 조선은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19세기 순조·헌종·철종 대에 세도정치(왕실의 근친이나 신하가 강력한 권세를 잡고 온갖 정사를 마음대로 하는 정치)가 극에 달하면서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돼 국내외 급격한 변화에 둔감했던 탓"이라는 것이 한 교수의 지적이다.

    ◇ "국민단합은 최고의 국력…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 (사진=노컷뉴스/자료사진)

     

    "19세기 중엽은 아주 중요한 세계사적 변혁기였다. 청나라 역시 비슷한 시기 건륭황제가 세상을 뜨면서 서구에 대해 가졌던 힘이 역전되기 시작한다. 서양은 정조, 견륭황제 때 산업혁명이 막바지에 달하면서 제국주의의 길을 걷고 있었다. 결국 당시는 세계의 주도권이 바뀌는 결정적인 국면이었다."

    한 교수는 "앞서 15세기에도 조선이 서양의 신항로 개척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물로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것"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당대 서양인들이 동방항로를 발견해 아시아로 왔는데, 그들은 조선이 아니라 일본으로 갔다. 이는 일본이 조선보다 몇 백년 빠르게 서구 문명에 눈을 뜨고 상공업 국가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고, 결국 임진왜란으로 폭발한다. 그리고 조선은 19세기 중엽 찾아온 또 한 번의 세계사적 변혁기에 부패한 세도정치로 인해 실패를 맛본 것이다."

    그는 "현재 세계사는 장기적으로 보면 또 한 번의 교체기를 맞이하고 있다"며 "중국이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고, 트럼프의 등장과 유럽·일본의 극우화가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만나면서 민족주의 강화 등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단기적으로 미국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중국을 염두에 둔 장기 전략을 현명하게 짜야 할 시점이다. 19세기 세도정치기에 조선 사회는 완전히 분열돼 버렸다. 부익부 빈익빈, 조선 역사상 그렇게 양극화된 때가 없었다. 민란도 끊이지 않았다. 지금 정치권이 편가르고 싸울 때가 아니다. 손잡아야 할 때다."

    한 교수는 "아무리 외세에 의한 충격이 크더라도 국민들이 서로 단합돼 있으면 핵무기가 없어도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 있다"며 "지금 국민의 단합을 해치는 세력은 반드시 역사의 죄인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대 국력은 무기가 아니다. 국방도 아니다. 민심의 통일이다. 공자는 정치의 세 가지 목표로 '경제 안정' '국방' '민심'을 꼽았는데,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민심이라고 했다. 민심이 단합되면 먹고 사는 게 부족해도, 국방이 약해도 안 망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민심의 단합이라는 국력을 상실하면 경제와 국방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은 '국민의 단합이 최고의 국력'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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