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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좌담] CBS뉴스부활 30주년을 말하다.



종교

    [특집좌담] CBS뉴스부활 30주년을 말하다.

    ■ 방송 : 특집좌담 CBS뉴스부활 30주년을 말하다 (CBS TV 10월 20일(금) 밤 9시50분)
    ■ 진행 : 변상욱 대기자
    ■ 대담 : 고희범 (전 CBS 기자, 전 한겨레신문 사장)
    김상근 목사(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

    대한민국 최초의 민영방송인 CBS가 뉴스부활 30주년을 맞아 ‘특집좌담, CBS뉴스부활 30주년을 말하다’를 방송한다. CBS 변상욱 대기자의 진행으로 고희범 전 CBS 기자(전 한겨레신문 사장)와 김상근 목사(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 오른쪽)가 출연했다.

     


    변) 안녕하세요. 변상욱기자입니다. 1954년 CBS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방송. 복음 증거를 위한 선교방송은 물론이고 신앙 양심에 따라 이 땅의 민주화와 인간화를 위한 언론의 역할을 60년 넘게 이어오고 있습니다. 물론 앞서 보신대로 예언자적 사명을 다하는 과정에서 수난과 질곡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권력의 언론통폐합조치에 의한 뉴스와 광고기능의 박탈입니다. 그리고 그 어두운 역사의 터널을 빠져나온 지 이제 꼭 30년이 되었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자리해주신 두 분 소개하겠습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역임했고, CBS기능 정상화를 위해 한국 교회의 힘을 모아주셨던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를 지내신 김상근 목사 자리해주셨습니다.

    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변) CBS사회부 기자 출신이신 전 한겨레신문 고희범 대표께서 나와주셨습니다.

    고)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변) 먼저 이런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왜 CBS는 신군부가 살릴 언론사, 죽일 언론사 고르는 가운데 하필이면 죽일 언론사에 들어갔어야만 했는가” 고희범 대표님 대답해주시죠.

    고) 그 이유는 CBS가 신군부 보기에는 상당히 거슬렸을 것이고 기독교계에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 전도방송만 해라 이런 식의 명분을 만들었건 것이죠.

    변) 그 때 상황을 보면 신군부가 말씀하신대로 계엄령 하에서 언론을 탄압하는데 계엄령이 오래 끌고 갈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계엄령을 풀었을 때 언론이 어떻게 나올건가를 대비하자니 지금 고희범 대표께서 말씀 하신대로 ‘먹히지 않을 것들은 미리 정리를 해야 겠다’ 생각한 거 같고. 그런데 또 이런 의문도 듭니다. 그러려면 아예 없애버리면 되지 또 살려놓고 “방송은 하되 뉴스는 절대 하지 마라. 그 다음에 일 년에 44억 되는 광고예산 회수 할테니 광고 없이 살아봐라.” 왜 이런 조치 취했을까요?

    김) 사실 CBS를 죽이기에는 부담이 컸습니다. 왜냐면 교회라는 배경이 있고 세계교회 배경이 있어 쉽게 죽일 수 없었죠. 또 교회 내 우군들이 있었다. 우군들은 함께 가야 하니까. CBS를 아주 죽였을 때 그 우군들이 등을 돌릴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죽이지 않고 그저 그 우군들이 좋아하는 전파방식을 허용해주고 하는 그런 수준에서 CBS를 정리했던 거 아닐까요.

    변) 우군이라고 하는 교회들은 아마도 신군부가 들어섰을 때 신군부랑 적당히 유착하면서 신군부편을 들거나 새로운 정권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던 그 교회에 움직임이죠?

    김) 그렇죠. 박정희 독재 때도 교회 일각에서는 우호적인 그런 협력을 한 그런 흐름이 있었죠. 그러나 신군부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비교적 노골적으로 보수교회 지도자들이 협력하진 않았죠. 그렇지만 잠재해 있었고 약간의 움직임들이 있었고 이 세력을 아마 꽤 높이 평가했다 생각해요.

    변) 결국 그렇게 해서 CBS는 하루아침에 뉴스, 광고 기능을 박탈당합니다. 그때 CBS 뉴스 기자들은 어찌 됐나요? KBS로 강제이송 당하신거죠?

    고) 네 전부 기자들은 KBS로 갔고. 저도 KBS 기자 되었었습니다.

    변) 그럼 얼마나 KBS 근무했나요?

    고) 2~3달정도요.

    변) CBS에서 왔다고 변방으로 내몰진 않았나?

    고) 그런 건 없었습니다. 다만 견딜 수 없었던 건 정치부, 사회부 발령 났으면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것인데 외신부로 발령이 나서 스트레스 덜 받겠다 생각했는데. 뉴스 조작하는 걸 보고선 기가찼습니다. 전두환이 환태평양 지도자 회의장을 갔는데 그걸 전 세계 지도자들이 환영하는 것처럼 뉴스 조작을 해서 방송하는 걸 목격을 했죠. 그래서 도저히 안되겠다 KBS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변) 김목사님 잘 아시겠지만 고희범 기자가 KBS 돌아와서 일손이 부족하니 졸병으로 뽑은 게 저입니다. 그런데 제가 입사했을 때가 CBS가 뭔가를 준비할 때였죠. 그게 뭐냐면 내년이면 CBS가 창사30주년을 맞는데 뭔가 이 모습 그대로 30주년 맞이할 수 없다. 그래서 기능을 정상화하는 움직임들이 꿈틀거리고 있었을 거고 그것에 의해 저도 공채로 뽑힌 것일 텐데 그때 이미 새로운 뉴스프로그램이나 새로운 보도프로그램들 움직임 구상되어 있었나요?

    고) 구체적 구상은 아니고 일단 ‘교계 뉴스’ 이름이란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당시 기독교가 우리 한국사회 민주화에 선봉이었거나 민주화 운동의 우상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거기서 어떤 사건이든 코멘트가 성명서를 통해 나가고 또 시위가 벌어지면 그것에 대한 코멘트가 나가고 이러면서 그런 것들이 기독교 교계뉴스로 기독교방송 전파를 탔기 때문에 정권에서는 몹시 불편했다죠. 그래서 방송 공적자금이라는 게 있었는데 CBS가 광고를 못하니까 1년에 5억 지원해주는 게 있었죠. 그걸 안주고 몇 달 동안 안주고 있어서 실무자들이 알아보니까 결국 뉴스를 담당하는 기자들의 문제였죠. 그래서 두 달 동안 제가 대기발령 조치 됐습니다. ‘교계뉴스와 화제’ 라는 이름으로 ‘뉴스레이다’를 교계뉴스 이름으로 바꿔서 해보려고 시도했죠. 81년도 가을개편쯤. 처음에 조심스럽게 예민하지 않은 주제를 다루면 될 것을 처음부터 사학법 관련, 농지제도 이런 걸 교계뉴스와 화제에서 리포터로 방송해 이틀하고 문 닫았습니다. 하하.

    변) ‘월요특집’ 얘기를 안할 수 없는데, 뭔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방송사가 일반적으로
    민중에게 뭘 가르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민중의 소리를 듣고 직접 전달하는 그런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봐라 라고 하는 게 저희에게 떨어졌던 주문이었죠?

    고) 당시에 세계적으로 New world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order 그런 운동이 있었다. 신세계 정보 질서. 이거는 communication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그런 운동이었는데 세계 4대 통신사가 전 세계 정보 80%를 장악해서 제1세계 입맛으로 제3세계 뉴스들을 내보내고 평가하고 폄하하고 이런 문제들을 바꿔보자고 하는 그런 운동이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건데 그런 운동에 한부분이 청취자 참여. 민중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그런 것이 이제 대단히 중요한 것 중에 하나였죠. 그래서 김관석 사장님의 그런 이상과 또 당시에 네덜란드 방송 지원센터에 이론적인 뒷받침 이런 것들이 바탕이 되어서 청취자 참여 프로그램 월요특집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변) 처음에 저도 이 팀에 참여하게 됐는데 젊은 나이에도 황당했죠 . 왜냐면 방송국에서 뭘 한다는 건 엽서로 사연을 보낸다던지 전화로 신청곡을 얘기한다던가 그런 건데 그게 아니고 정치, 문화, 사회에 대해 시민들이 자기의 의견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정부와 정권을 향해서 주장하는 그런 포문이 열린다는 것에 대해서 지금 이 시점에 그게 가능해? 라고 의문을 가졌었는데 진행은 됐고 사고는 터지죠. 상당히 여러 건의 사건이 터졌었는데 제 기억으론 84년 12월 ‘누구를 위한 방송인가’ 주제로 방송을 했는데 거기에서 “‘땡’ 하면 전두환으로 시작해서 이순자로 끝나는 그따위 뉴스는 뭐 하러 하냐. 그다음에 전두환 정권은 패악한 정권이므로 곧 패망할 것이다”라는 게 방송으로 나갔죠.

    김) 청취자가 흥분해서

    변) 제가 그걸 연결했는데 살살해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런데 고희범이 증거를 없애려고 녹음된 걸 가위로 잘랐다. 근데 정부에서 어느새 녹취를 해서 이미 문서로 연락이 오더군요. 그대로 증거물 내 놓으라고 그래서 다시 찾아서 테이프로 붙여서 증거물로 제출했죠. 그 다음에 터진 게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 그 때 사실은 ‘고문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특집 방송 2시간 준비했는데 갑자기 ‘음악프로로 대체하라’ 명령이 내려와서 평직원들이 거부하고 간부들과 몸싸움 벌이다가 결국 방송이 됐죠. 그날 기억나시죠?

    고)그 방송사상 그런 유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해적방송이라고 할까요. 스튜디오를 바리케이드로 치고 막아서 점거하고 국장부장 못 들어오게 하고 방송하니까. 그때 묘하게 김사장님이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래서 편성국장은 사장님만 찾고 있었는데 사장님 외출중이고 하니 어떻게 하지 못했는데 저희들 추정으로는 아마 정보기관에서 사전에 그걸 염탐하고 못하게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사장님이 슬쩍 자리를 피해서 외출을 하셨고 그리고 연락도 안 받으셨고 그러다가 1시간이 훨씬 지나서 들어오셔서 이제 그만하라고. 그래서 20분하고 중단됐는데 그 월요특집은 84년 봄 개편 때 시작하면서 아주 부드러운 주제로 시작해. 사랑을 찾는 아이들 이런 제목으로 가출 청소년 문제 다뤘죠. 그래서 한 20분 동안 리포트를 하고 청취자들의 전화를 자연스레 받는 건데 처음 하는 거라 ‘청취자들이 전화를 하겠느냐’ 싶어서 저희가 ‘그럼 미리 섭외를 하자’ 그러다가 그러지 말자 전문가 두 분 스튜디오 앉아계시니까 그분들 얘기하고 그러면 시간 갈거다. 전화가 안 온다 해도 그랬는데 대반전이 일어났죠.. 전화가 폭주했습니다. 정말로 감동적이었던 건 어떤 아줌마가 아버지가 하도 엄해서 밤9시 귀가시간이었는데 친구들이랑 놀다가 9시를 넘겼대요. 그래서 하도 무서워서 집에 안 들어간 것이 그날로 가출이 되었고 식모살이하고 그러다가 지금은 두 아이를 낳고 잘살고 있는 그런 얘길 한다든가 대단했다. 그렇게 하다가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청취자들이 전화를 통해서 자기 의견을 얘기할 때 이름도 얘기 안하고 신원을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얘길 하게 했으니까 자유스럽게 얘길했죠. 대단히 위험했지만 당시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대단하다 싶고. 저는 그 프로그램 하면서 많이 반성하고 배웠는데 제가 기자생활 처음 시작하면서는 기자의 사명이 국민들을 개도하기 위한 숭고한 직업이라 생각하고 기자 생활 했는데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청취자들이 제시하는 의견, 대안 이런 것들을 들으며 우리 청취자들은 정확한 정보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스스로 판단, 결정, 행동할 수 있는 분들이다 실감. 그래서 회개 반성했죠.

    변) 국민들 입장에서는 갈급한 목마름 있었다. 사실 CBS 전파가 잘 안 들리거든요. 기계가 낡아서. 근데 그걸 숨어서 듣기도 하고 기다렸다 듣고하더군요. 한번은 86년도 유럽 출장 가는데 공항 검색대에서 제 이름을 보시더니 이름이 특이하죠. 조그마한 소리로 “혹시 월요일 날 두시 나오는 그분?” 이렇게 묻더라고요. 그래서 맞다고 하니 그럼 통과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공무원 중에선 보일러, 옥상에서 숨어서 들었다는 분들도 제가 만나봤습니다. 결국 이런 몸부림들을 한국교회가 지켜보면서 한국교회가 ‘CBS를 살려야겠다’. 그게 바로 CBS기능정상화 운동 시작입니다. 그 시작 부분은 김 목사님께서 말씀해주시죠.

    김) 그 월요특집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이제 눈에 선해요 그때 장면이. 가끔 보면 스튜디오에 유리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있는데 거기에 김 사장님이 어슬렁 왔다갔다 하면서 걱정도 되고, 기대도 하고, 격려도 시키고 이러기 위해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 또 그 방송이 진행될 때 그 안에서 송출되고 있는 거기에 긴장하고 집중하고 지켜보는 모습들. 그런 것들 때문에 월요특집이 가능했던 거죠. 또 CBS 방송만큼은 우리가 전화해서 목소리를 실어주는 그런 신뢰가 국민들 사이에 있었다. 이렇게 기대를 모아 왔었는데 도무지 보도기능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반면에 KBS가 계속 사고 쳤는데, 국민들이 더는 못 봐주겠다. 더군다나 시청료, 돈까지 내주면서 불량식품 못 봐주겠다. 교인들 사이에서는 KBS 시청료 낼 바에는 CBS 헌금을 하지 이게 뭐하는 짓이냐 이런 일들이 부풀어 올라 와 있었죠. 근데 KBS에 이제 낭패였죠. CBS에 기대이구요. 그런 사이에서 제가 뚜렷하게 기억하는데 NCC인권선교협의회가 있었죠. 거기서 KBSTV 시청료 거부운동도 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또 CBS기능정상화운동도 하자 토론이 나왔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NCC는 물론이고 YWCA , 각 교단 이런 곳에서 고개를 들고 ‘CBS 방송 보도 기능 살려내야 하겠다’ 그것이 꼭 밀물과 썰물이 들고 나는 것처럼 쫙 올라왔었죠. 어떤 누가 깃발을 들어서가 아니고 어찌 보면 하나님이 때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공식화되기도 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공식적인 거 전혀 없었지만 자발적으로 기능정상화를 위해서 활동을 하고.. 또 우리 CBS 실무진들이 기획을 잘했었죠. 제가 참여하면서도 느꼈습니다. 기획을 면밀하게 해서 이런저런 것들이 다 복합해서 기능정상화 운동에까지 가게 됐습니다.

    변) 이런저런 일이 있고 민주화가 되니까 저희는 바로 뉴스를 진행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또 법상으로 안 되고 행정적으로 절차가 있고 이러면서 늦춰졌죠. 결국은 언론기본법이라고 해서 CBS뉴스를 강제로 막고 있던 법이 폐지되기 전에 ‘안 되겠다. 언제까지 기다리냐’ 해서 첫 뉴스를 냈던 것이 1987년10월19일입니다. 정상으로 정식뉴스 내보내겠다했죠.

    고) 그거는 87년 6월 항쟁 끝나고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어 있는 상태에 그해 8월11일에 광주 방송직원들이 음악방송을 내보내면서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다음날 곧장 서울, 그리고 전국 확산되어 철야기도회라는 이름으로 농성 시작했고 나흘째 되는 날 서울에서 직원들이 ‘9월15일을 기점으로 뉴스방송 내보낸다.’ 그렇게 결의를 했고 그것을 CBS이사회가 받아서 그래서 9월15일 뉴스방송 결의 되었죠. 그래서 ‘이제 농성 풀자. 9월15일 하기로 했다.’ 했는데 그 사이 사장 바뀌어 후임사장이 와서 협상 끝에 10월19일 방송하기로 했죠

    변) 10월19일 첫 뉴스 6:30분 아침뉴스. 그리고 종합뉴스가 나가고 그러면서 CBS 보도기능 정상화 되었습니다. 저희 손으로. 그리고 법은 한 달 뒤에 폐지가 되었죠. 이게 긴 6년8개월 탄압의 시절을 짧게 압축해서 설명 드렸는데 도와주셨던 한국교회 성도들 감사합니다. 그 이후의 얘기도 해봐야하죠. 뉴스부활 이후 CBS보도를 평가하신다면?

    고) CBS의 뉴스기능이 박탈당했을 때 절실함, 그런 것이 약한 거 아닌가. ‘방송은 뉴스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라고 하기에는 CBS가 겪어온 그 질곡의 세월이 대단히 험난했죠. 그 시절을 가슴에 품고 보도를 한다면 조금 더 절실하게 보도하지 않겠나. 가령 지난번 탄핵국면에서 CBS가 얼마나 특종을 했는지 얼마나 집요하게 그 문제에 포커스를 맞춰 한 팀이 정말로 결정적인 걸 끄집어내서 국면을 전환시키는데 기여를 했어야 하는데 그런게 있었는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절실함과 집요함. 탐사 보도같은 그런 것들이 사회를 바꾸는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분발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오늘의 미디어 현실 녹록치 않죠. 1인 방송 체제라서, 또 기자들보다 훨씬 더 전문적인 사람들이 자기네 목소리를 SNS통해 전파할 수 있고 이러는 상황에서 기자들이 크게 역할을 할 수 없는 어려움 있죠. 그럴 때 일수록 기자들이 전문성 가지고 집요함, 절실함으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변) 남아있던 사람으로 변명 하자면, 막상 민주화가 딱 되어서 보도기능이 정상화 되고 7년여 뒤쳐진 걸 쫓아가려니 너무도 많은 격차가 벌어져 있는 겁니다. 타방송사하고... 쫓아가자니 사람을 뽑아야하고 시설 확장해야하고 지방 또 새로 충원해야하고. 그러다보니 CBS 안에서 동질감을 가지고 신앙 양심에 의해서 똘똘 뭉쳐 있던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서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을 새로 뽑고 특채로 받아들이고 하니까 고 대표께서 설명하신 어떤 집요함이나 절박함이 유지가 덜 된거죠. 그런 건 있는 것 같고..그래도 아무튼 어려움 가운데서 다들 열심히 뛰어왔다는 말씀 드리고요. 어떻습니까? 밖에서 보실 때 CBS 지적과 칭찬 한말씀?

    김) 지금 고사장님께서 집요함, 전문성 말씀 했는데 저는 CBS뉴스에 맛, 색깔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별히 CBS니까 똑같은 사건, 보도를 해도 거기에 해석을 어떻게 붙일건가. 어떤 시각으로 보도할거냐. 하는데서 특별한 독특성 있어야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기자들께서 좀 더 CBS가 뉴스보도를 한다고 할 때 타방송하고 타보도하고 어떤 차이점을 둘 건가 고민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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