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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만 26년, 베테랑 여경이 후배들에게 말한다



제주

    형사만 26년, 베테랑 여경이 후배들에게 말한다

    [경찰의 날 인터뷰] '최초'를 만드는 여경 박미옥, 경찰을 고민하다

    박미옥 제주동부경찰서 수사과장 (사진=문준영 기자)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그런 경찰 72주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반성할 점들은 없는지 고민하는 ‘경찰의 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경찰에 몸담은 지 30년. 베테랑 여경 박미옥(49) 경정의 눈빛은 여전히 매서웠다.

    과거 신창원, 유영철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박 경정은 경찰 내부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청송 교도소 부녀자 납치 사건을 비롯해 만삭 아내 의사 살인사건 등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강력 범죄를 해결하며 수사력을 인정받았다. 각종 경찰 드라마와 영화의 모티브가 됐던 여형사. 형사만 26년, 맡는 보직마다 '최초'를 만들어낸 '전설'을 경찰의 날(21일)을 앞두고 인터뷰했다.

    올해 1월부터 제주 동부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왔다. 제주 생활은 어떤가?
    - 현재 제주에는 관광객을 비롯해 이주민들이 한창 밀려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그 속에서의 경찰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수사과장으로서는 토지개발이나 투자 관련, 정부 보조금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다. 투자 사기로 인한 도민 피해가 없도록 예방하고, 혈세가 세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박 경정은 지난 5월 제주에서 일어난 문화기획사 대표의 4백억 대 투자사기를 적발, 검찰에 송치했다. 개인 횡령과 전지훈련을 빙자한 외유 관광 등 수억 원의 혈세를 과다 부풀려 집행한 제주 생활체육회 비리도 수면으로 드러냈다. 투자 사기를 수사하며 제주의 혈연·지연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체육회 비리를 적발, 공무원 예산 집행 과정에서의 관행을 드러내 전·현직 공무원 14명을 입건하기도 했다.

    제주 생활체육회 비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는 박미옥 수사과장 (사진=문준영 기자)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원인, 피의자와 피해자 등 사건 관계자들의 상호작용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사건을 가장 진중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강도 사건이 발생했다고 치자. 우리는 강도가 왜 범행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분노에 의한 것인지 상처에 의한 것인지,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봐야 한다. 그러면 질문이 달라지고, 질문이 다르면 새로운 답을 들을 수 있다"

    굵직한 사건을 맡아오며 박 경정이 깨달은 노하우는 사건의 맥락과 이면이다. 그녀는 이 모든 실천을 위해서는 철학적 지향점과 끝없는 공부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형사가 되겠다고 꿈을 꾸고 경찰에 입문했다고 해서 꿈이 이뤄진 건가? 아니다. 어떤 형사상이 되고 싶은지 고민해야 한다. 그 안에 국민에 대한 헌신이 있고, 피해자와 범인에 대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살기 위해 법이 만들어졌고, 법이 잘 운영되기 위해 절차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경찰이 국민들 상대로 절차만 설명한다? 잘못된 거다. 억울한 범죄를 수사하는데 그 억울함이 왜 생겼는지, 왜 이 범죄가 발생했는지 봐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수사기법과 화법 등 자기만의 도구를 발전시켜야 한다. 자기 기술이 있어야 한다"

    박미옥 경정 (사진=문준영 기자)

     

    박 경정은 경찰 초반까지 '잘 잡는 것'이 형사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며 법 속에도 사람들의 인식과 편견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건 관련자들의 마음과 사회가 보이기 시작했고, '경험만으로 안 된다'고 판단했다. 박 경정은 30대 중반, 치열한 경찰 생활을 하며 어렵게 공부를 시작했다.

    스무 살에 경찰에 입문해 대학물을 몰랐던 그녀는 서울 사이버대학에 진학, 이후 경북대학교 수사과학대학원까지 졸업했다. 그렇게 자신만의 전문성과 도구를 만들어 나갔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빴다. 주로 강력 사건을 맡다 보니 하나 해결하는 게 얼마나 버거웠는지 모른다. 한 건 해결하면 다시 한 건, 또다시 한 건. 그렇게 해결하다 보니 지금의 나이가 됐다. 아직 결혼을 안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미혼을 '산업재해'라고 말하고 다닌다.(웃음)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살다 보니 도리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맹수처럼 현장을 누비던 그녀는 이제 여경의 대표가 됐다. 지난달에는 전국 베테랑 수사관들과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 간담회에 참석, 현장 경찰관들의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사건을 넘어 이제는 경찰의 미래를 고민하는 그녀의 대답은 단호했다.

    "수사권 조정은 수사권을 누가 가지느냐의 문제로 접근하면 안 된다. 사법 절차의 구조개혁은 개혁이 아니라 '균형과 견제에 맞는 개선'이다. 각 기관이 어떤 역할을 하는 게 사회 정의에 맞는가 고민할 시점이다. 그리고 이미 국민들은 알고 있다. 당장 시작해야 한다"

    박미옥 경정 (사진=문준영 기자)

     

    '여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박 경정은 제도권에서의 노력과 사회적 인식, 여경들의 실천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조직의 10%에 불과한 여경은 실제 업무에서 부수적인 역할을 맡거나 리더십을 학습하기 어려운 보직에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해낸 박 경정을 주변에서는 '유리 천장을 깬 대한민국 최초 강력계장'이라고 지칭한다. 그녀는 '조직은 나를 버린 적이 없다'며 '지금이 여경에게 주어진 기회'라고 말한다.

    "요즘 소수 여성이 근무하는 부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지나온 세월은 대한민국이 변해가는 과도기였다. 여경이 1% 2% 3% 출발하고 지금 10%까지 왔다. 그 사이에 할당제로 여경의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 옛날에는 승진 TO도 없었다. 부서의 한계도 많았다. 소수의 여경이 있는 조직이다 보니 분명히 익숙하지 않고 낯선 점이 있을 것이다. 보편화, 평준화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제도권에서의 도움이 필요하고, 사회적 인식에 대한 자각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우리들의 자유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실천력이 수반돼야 한다. 분명한 건 조직은 나를 버린 적이 없다는 거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나아가는 거다. 경찰 조직 안에서의 당신의 역할과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 이것이 많은 변화를 가지고 올 거다. 분명히 이곳은 여성에게 주어진 기회가 많은 곳이다. 자부심을 갖고 적극 나선다면 여경에 대한 제도권의 인식이 더 빨리 변화할 것이다"

    성격답게 시원시원한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물었다. 그녀는 '후배들에게 수사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앞으로의 바람이라고 답했다.

    "내 지향점은 계급이 아니다. 내 경험을 통해 후배들에게 대안을 주고 조언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경찰이고 싶다. 나중에 퇴직할 때 '그 사람 일 참 제대로 했어'라는 말을 듣고 싶을 뿐이다."

    박미옥 경정 (사진=문준영 기자)

     

    매일을 부드러움과 강함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박미옥 경정. 그녀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노트북을 부여잡고 PPT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음 주에 있을 직원 강의 자료 만들어야 해서요"

    제주에 오면 사람도 보고 하늘도 보고 싶다던 그녀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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