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전남경찰청 '5・18 보고서'…"신군부 사실 조작 확인"

페이스북공유하기 트위터공유하기 밴드공유하기



지역 광주

    전남경찰청 '5・18 보고서'…"신군부 사실 조작 확인"

    ■ 방송 : 광주 표준FM 103.1MHz (17:05~18:00)
    ■ 제작 : 조성우PD, 구성 : 박지하 작가
    ■ 진행 : 이남재 시사평론가
    ■ 방송일자 : 10월 12일 목요일


    [다음은 전남대 5・18연구소 김희송 교수 인터뷰 전문]

    ◇이남재> 5・18 당시 치안을 맡았던 전남지방경찰청이 그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경찰관들의 증언과 비공개 기록을 담은 보고서를 냈습니다. 국가기관인 경찰에서 5・18 보고서를 직접 작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보고서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전남대 5・18연구소 김희송 교수와 나눠봅니다.
    교수님 나와계시죠?


    ◆김희송> 네 안녕하세요, 김희송입니다.

    ◇이남재> 네 되게 의미 있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경찰이 5・18보고서를 직접 작성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그만큼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전남경찰청에서 직접 보고서를 작성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김희송> 지금 5・18운동이 1980년 발생했는데 37년 만에 경찰이 처음 공식보고서를 제출한 건데요, 계기는 전두환 회고록이었던 것 같습니다. 발간서에서도 밝혔듯이, 전두환 회고록이 4월에 발행 하면서 전두환 씨가 했던 게 광주 항쟁 초기에 경찰에게 무력화 되고 계엄군이 시 진압 제압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건 전남 경찰의 무능력 때문이었다, 하고 5・18의 경찰 책임론을 직접 회고록에 언급 했었거든요. 그런 것에 대한 대응이자, 37년 만에 기록으로써 확인하고 경찰의 역할, 당시 또 치안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80년 당시 광주 상황은 어땠는지 최초로 기록을 발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 경찰에선 입장 표명을 하고 싶었던 것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진실 규명 등에 있어서 의지, 노력이 부족해서 지금까지 끌어왔던 것 같고 80년 당시에 관계자 분들의 기억이나 생존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이번 차에 기록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남재>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 5개월 동안 TF팀도 구성하고 경찰청의 협조도 얻었다고 합니다? 조사과정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김희송> 저희도 TF 꾸리고 TF에서 오셔서 많은 말씀을 나눴는데요, 경찰 자체적으로 TF를 꾸렸고 이 분들이 4월에 꾸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5개월 동안 경찰 내부의 자료를 찾았고 기록으로, 경찰 내부의 자료, 국가기록원까지 가서 협조를 받으셨고요, 80년 당시 근무했던 경찰분들의 증언까지 들어서 최종적인 보고서를 작성하신 것 같습니다.

    ◇이남재> 그리고 그 당시 치안부가 작성했다죠, '전남 사태의 기록' 이 보고서를 30년 동안 비공개 된 자료를 이번에 최초로 입수해서 검토하고 분석하고 이번 보고서에 활용 했다는 게 큰 의미라고 하던데 여기엔 어떤 의미가 들어있나요?

    ◆김희송> 경찰이 이제 자기 기록들이 실제 신군부에서 관리를 했는지 아니면 이후 과정들이 그런 기록들이 있었는지 존재 자체를 확인 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기록 자체를 모르고 있었거든요. 어쨌든 이번에 TF팀이 그 자료를 새롭게 발굴했던 것 같고 그 자료들에는 이제까지 신군부가 주장해 왔던 가령, 시민들이 먼저 무장했고 자위권적 차원에서 군은 어쩔 수 없이 사격을 했다는 그 논리가 지서와 파출소에서 총기가 탈취됐던 시간, 이런 기록들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 하신 것 같습니다.

    ◇이남재> 그 당시 시민군이 먼저 무장을 했기 때문에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군이 무장하고 집단 발포를 했다, 이게 신군부의 주장이었잖아요? 이 부분에 대해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희송> 네 그렇죠, 군 기록에서도 오류라는 게 확인 됐습니다만, 신군부에선 5월 20일 저녁에 세무서에서 칼빈총을 탈취했던, 시민들이 탈취하면서 본격적인 무장을 했다 라고, 그래서 5월 21일 12시 50분에 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 여기도 시민들이 먼저 쐈기 때문에 자기들이 자위권 발원 차원에서 사격을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해 왔었는데요, 군 기록에는 이제 실제로 그 시간에 탈취가 되는 것처럼 기록이 일부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 경찰이 확인 했던 기록과 다시 조사를 했던 과정에서는 칼빈 소총 경우 실탄 없이 시민들이 가져갔고 알려진 것은 군에서 조작한 것과 다르게 광주 인근 파출소나 지서에서의 총기 탈취 시간들이 다르다 라는... 그래서 12시 50분 이후에 그런 일들이 발생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신군부가 먼저 발포를 했고 거기에 맞서서 시민들이 불가피 하게 무장을 했다 라는 게 경찰의 기록인데 이번 보고서에서 확인이 된 거죠.

    ◇이남재> 시민군이 발포 이후에 나주 인근 파출소에서 무기를 무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깐 계엄군이 먼저 사격한 이후에 시민들이 무장을 했다. 이게 밝혀진 거잖아요?

    ◆김희송> 네, 그리고 신군부가 주장했듯이 5월 21일 1시 전 후라고 했으니깐 1시 전후에 시민들이 무장을 했어야 하고 실탄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당시 상황으로는 실탄 자체가 시민들에게 없었다는 거죠.

    ◇이남재> 그리고 그 당시에 경찰관들의 증언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습니다. 5월 21일 날 마지막 도청에서 철수 하던 날, 2000여명이 넘는 경찰관들이 시민들의 도움으로 모두 무사히 복귀했다는 증언이 있었는데요. 이건 어떤 내용입니까?

    ◆김희송> 5월 21일 광주에 주둔하고 있었던 경찰들이 불가피하게 시 현장을 벗어날 때 시민들이 경찰들에게 이의를 가할 수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이의를 제기 하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고 또 하나는 이제 5월 18일을 전후해서 광주에서 과격한 시위가 있었느냐, 그래서 공수 부대가 투입 될 정도로 광주의 시위가 격화됐었냐 라는 걸 둘러싸고 논쟁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경찰이 확인한 자료에 의해서는 5월 17일 전 후에 있어서 경찰은 별다른 시위가 없었기 때문에 일부 기동대는 야유회와 휴가를 갈 정도로 5월 18일 이전의 광주 상황이 너무나 평화로웠다는 증언들이 확인 됐기 때문에 전두환 씨를 비롯해 신군부가 주장했던 광주의 시위가 너무나도 과격하게 진행 돼서 불가피하게 공수단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심지어는 학생과 경찰 사이에는 일정한 룰이 있었다, 서로 평화시위를 하고 경찰이 오히려 학생 시위대를 보호해 주려하는 상호 신뢰관계도 존재한다는 증언이 나오고요, 또 흥미로웠던 부분들은 당시 광주교도소 습격설, 광주시민들이 끊임없이 교도소 인근에서 충돌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신군부나 전두환 씨 또는 최근 일베 등에 의해 5・18 성격을 왜곡하는 사건으로 막 주장해 왔었는데 이번 경찰 보고서에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보면 담양지역 경찰서나 지서들에 피해가 아주 경미했다, 이건 뭐냐 하면 그쪽 방면으로 가는 길을 교도소 앞에서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피해가 없었고 또 하나는 당시 교도소장이 철저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기 때문에 교도소 습격 자체는 어불성설이다, 이런 이야기까지 보고서에 담겨 있기 때문에 기존의 신군부 주장과는 전혀 다른 공식 보고서가 제출 된 거죠.

    ◇이남재> 그리고 또 중요한 게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정을 했습니다?

    ◆김희송> 상식 밖이라는 거죠, 당시 경찰들이 다 철수했지만 5・18과정 10일 동안에 경찰 정보요원들은 광주 시내에 상주하고 있었고 거기에 대한 정보망은 살아 있었기 때문에 그 정보망에 따르면 300~600명이라는 외부 북한군 특수 이런 분들이 왔다는 자체를 확인될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고 그런 내용 자체 보고가 없었다는 거죠.

    ◇이남재> 네 교수님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들어야겠습니다.

    ◆김희송> 네 감사합니다.

    ◇이남재> 지금까지 전남대 5・18연구소 김희송 교수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인기기사

    영상 핫 클릭

      카드뉴스


        많이본 뉴스

        포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