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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이병헌, "연기 못배운 나…열등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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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 이병헌, "연기 못배운 나…열등감 있었다"

    [노컷 인터뷰] 이병헌이 밝힌 #남한산성 #연기인생 #고생담

    영화 '남한산성'에서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생활로 벌어졌던 논란을 별개로 본다면 이병헌은 흠잡을 곳 없는 배우다. 그가 스크린에서 펼치는 연기는 어떤 배우들보다 밀착력있게 관객들을 해당 캐릭터의 시점으로 끌고 간다. 이병헌의 눈빛과 목소리 그리고 사소한 움직임들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실 우리 생각보다 이병헌은 긴 연기 경력의 소유자다.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26년 동안 배우로 생활해왔다. 처음부터 그가 스타의 반열에 오르거나 흥행 보증 수표인 배우였던 것은 아니다.

    이병헌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자신의 연기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그 세계는 또래 배우들과 달리 미국 할리우드까지 통할 정도로 넓은 포용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섭도록 빠르게 캐릭터를 흡수하는 그 능력은 까다로웠을법한 정통 사극 '남한산성'에서도 그대로 발휘됐다.

    주화파를 주장하는 최명길은 '남한산성' 안에서 홀로 고립돼 끊임없이 살길을 도모하는 인물이다. 이병헌은 '주화파'라는 역사적 인물로 남은 최명길에 침착하면서도 부드럽고 한편으로는 냉정한 일면을 덧입혀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다.

    다음은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이병헌과의 일문이답.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전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왕 역할을 연기했었는데 이번엔 신하 역할을 맡아서 해보니 어떤 기분이었나.

    - 무릎이 굉장히 아프겠다고 생각했다. 눈을 쳐다보지 못한 상태로 상대방과 소통을 하는게 정말 묘한 경험이었다. 김상헌과 나란히 앉아 있으니 그를 쳐다보며 연기할 수도 없었다. 그런 부분들이 특이한 지점이었다.

    ▶ 패배의 역사를 그린 영화인데,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하지는 않았나.

    -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승리의 역사를 그려서 관객들에게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를 준 영화들은 많지 않나. 제작사나 처음에 영화를 기획했던 사람들이 용감했다고
    생각한다. 이게 또 우리 영화의 차별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감독님 또한 흥행 영화
    공식이나 호흡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만의 호흡으로 영화를 만들어갔다. 그 점이 굉장히 좋았고, 분명한 것은 좋은 영화가 나와서 굉장히 안도감이 든다.

    ▶ 인간적인 면모가 많이 보이는 김상헌과 달리 최명길은 마치 고요히 흘러가는 물처럼 정적인 인물이다. 이병헌 본인이 해석한 최명길은 어떤 캐릭터였나.

    - 소신과 논리는 단단하지만 표현할 때 굉장히 부드럽고 때로는 은유적이면서 멋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생각을 했다. 김상헌과는 왕 앞에서 치열하게 피를 토할 만큼 소리지르면서 싸우지만 사실 서로 존중심이 느껴질 정도로 예의를 갖춰서 대한다. 인조에게 이 궁에서 유일한 충신이 김상헌이니 버리지 말라고 할 때는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과 김상헌을 놓고 떨어져서 바라볼 줄 아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

    영화 '남한산성'에서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 자체는 별로 없었는데 인조에게 화친에 대해 마지막으로 간청할 때, 그리고 인조가 삼궤구고두례를 할 때다. 이 장면에서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게 된 이유가 있나.

    - 사실 시나리오에는 훨씬 은유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었다. 촬영하기 전에 감독님과
    상의를 해서 그 대사만큼은 직선적으로 쉽게 터뜨려보면 어떨까 이야기를 했더니 수정을 해서 줬다. 그 순간마저 둘러서 이야기를 하니까 답답하더라. 한번쯤 왕에게 칼을 맞더라도 제대로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 최명길과 김상헌이 조정에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메시지적인 부분에서도 그렇고 사실상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을 수 있겠다. 리허설도 없이 김윤석과 호흡을 주고 받았는데 소감이 궁금하다.

    - 에너지가 많이 드는 장면 촬영은 리허설을 안하는 경우가 있다. 감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다. 김윤석은 정말 감정 위주의, 열을 뜨겁게 토해내는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대사를 대충 인지한 상태에서 내뱉는 스타일이긴 한데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사실 너무 자기 것을 견고하게 만들어서 오면 수정이 필요할 때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 무너뜨리고 다시 세워야 되니까. 전체적인 분위기와 내 캐릭터가
    말해야 될 것을 알면 유연하게 갖춰지는 거다.

    ▶ 인조 역을 맡은 배우 박해일의 고충도 상당했을 것 같다. 너무도 팽팽한 의견 사이에서 갈팡질팡 선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는데.

    - 김상헌과 최명길의 치열한 싸움처럼 보이지만 박해일도 중간 중간 끼어들어야 한다. 본인 대사 때문에 NG가 나면 후배 배우로서 미안하고, 면목이 없다고 생각한 거 같더라. 정말 긴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기가 틀릴 까봐 그렇게 대사를 쳐주는게 더 힘들다고 했을 때 그 마음이 확 와닿았다. 정말 예민해지겠다 싶었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촬영하면서 가장 아쉬웠거나 고생스러웠던 경험이 있으면 공유해달라.

    - 조금씩이라도 다 아쉬운 것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보여줄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닌 거 같다. 옛날 같았으면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패기라도 있을텐데 이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가보다. (웃음) 사실 문신들은 고생을 보여줄
    게 별로 없어서 입김을 보여준다든지 했었다. 예를 들어 연기가 별론데 입김이 많이 나오고 연기가 괜찮은데 입김이 별로 안 나온 장면이 있으면 전자를 선택하는 식이었다. 아마 당시의 혹독한 추위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 실제로 지금 한반도 정세와 영화가 굉장히 비슷한 측면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영화를 찍고 난 후 달라진 측면이 있나.

    - 일단 정치는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인의 목숨을 두고 어떤 결정을 하는 위치에 선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결정 장애인데 저런 책임감을 어깨에 지고 무언가를 주장하고 누군가를 설득시키는 건 대단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냥 한반도는 늘상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강대국의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권력을 잡느냐로 신경을 많이 쓰기도 하고….

    ▶ 서날쇠 역을 한 고수와는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다고 들었다. 후배들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기도 하나.

    - 집안끼리도 서로 친해서 같이 여행도 다니고 그런 친구다. 엉뚱한 면도 많은데 좋은 후배다. 작품에서는 처음 만났다. 나는 후배들에게 딱히 조언할 만한 게 떠오르지가 않더라. 답이 없기도 한데 정말 선생님처럼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줘야 되나 싶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할리우드에서 작업을 할 정도로 남다른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도 있을 정도다. 연기를 따로 배운 적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타고난 지점이 조금은 있다고 생각하나.

    - 촬영을 하다 보면 일상적인 대사를 할 때 조금만 크게 해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을
    때도 있다. 연극을 했던 배우들은 확실히 발성이 좋고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연극을 하면서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저게 어떤 배움에서 나오는 건가 생각할 때도 있다. 예전에는 배우가 내 일이 맞나 생각할 때가 많았다. 사실 기술은 배울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도 연기 자체를 배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삶을 잠깐 사는 건데 가르치거나 배우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때부터 기초적인 걸 배웠던 사람들에게 약간의 열등감 비슷한 게 있었던 것도 같다.

    ▶ 그런 아쉬움을 좀 해소한 방법은 있나.

    - 데뷔 초에는 어느 어느 대학 다니고 있다, 대학로에서 연극한다고 하면 쟤네들은 뭘 배울까 되게 궁금했었다. 감탄하면서도 약간 기죽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대학원이라도 분위기를 보고 싶어서 갔는데 어디 회장님, 사장님, 국장님 이런 분들 밖에
    없더라. 실기를 가르치지 않고 서양과 동양 연극 조상님들에 대해 배우는 거라 호기심을 충족시킨 건 없었다. 되게 재미가 없었다. 차라리 학부를 다시 가거나 그랬어야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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