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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청춘 바친 태릉선수촌, 꼭 없애야 하나요?"



스포츠일반

    "꽃다운 청춘 바친 태릉선수촌, 꼭 없애야 하나요?"

    韓 체육 진천선수촌 시대 개막, 태릉선수촌 철거 위기

    '대한민국이 힘들 때마다 메달로 위로했는데...' 27일 충북 진천선수촌이 공식 개촌하면서 서울 태릉선수촌은 51년 역사를 마감하고 뒤안길로 가게 됐다. 그러나 대한체육회는 역사적 의미가 깊은 태릉선수촌의 존치를 위해 문화재 재등록을 추진 중이다. 사진은 태릉선수촌 정문 모습.(사진=노컷뉴스)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꼽히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새로운 100년을 시작한다. 정들었던 태릉선수촌을 떠나 진천선수촌에서 스포츠 강국 코리아의 위상을 떨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에 자리한 선수촌은 27일 오후 3시 공식 개촌식으로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100년 역사를 열어젖힌다. 이날 개촌식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이시종 충북도지사,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등 2000명이 참석해 진천선수촌 시대를 축하한다.

    지난 2009년 첫 삽을 뜬 지 8년 만의 완공이다. 2004년 건립이 확정된 진천선수촌은 총 공사비 5130억 원이 투입된 세계 최대 규모 종합훈련장이다. 35개 종목 1150명 선수들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기존 태릉선수촌의 31만969㎡에서 159만4870㎡로 3~5배 규모로 커졌다.

    시설, 시스템, 수용 인원 규모 면에서 태릉의 3배 수준이다. 최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메디컬 센터, 경기력 향상을 위한 스포츠과학센터 등도 갖춰졌다. 야구장과 클레이 사격장, 럭비장, 벨로드롬, 실내 조정 및 카누 훈련장, 스쿼시장 등이 새로 건립돼 그동안 외부 훈련을 했던 종목도 입촌이 가능해졌다.

    27일 공식 개촌하는 충북 진천선수촌 전경.(자료사진=대한체육회)

     

    그동안 국가대표의 요람이자 금메달의 산실이던 태릉선수촌은 51년 역사를 마감한다. 10월 중순부터 배드민턴, 볼링, 태권도, 체조 등 16개 종목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11월까지 각 종목 선수들과 지도자, 장비들이 진천으로 향한다. 다만 내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둔 빙상 등 일부 동계 종목 선수들이 훈련을 이어간다.

    지난 1966년 문을 연 태릉선수촌은 스포츠 강국 코리아의 발판이었다. 1976년 몬트리올에서 레슬링 양정모가 첫 금메달을 따낸 이후 역대 올림픽 금메달 116개를 낳은 원동력이었다. 아시안게임과 각 종목 세계선수권대회를 포함하면 무수한 메달을 쏟아냈다.

    특히 새벽부터 진행되는 전 선수들의 불암산 등반, 지옥의 코스는 태릉선수촌의 단내나는 훈련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새해 첫날 신문, 방송 등 언론의 단골 취재 대상이 바로 태릉선수촌 훈련이었다. 지옥 훈련을 이기지 못하고 이른바 야반도주를 감행했던 선수들의 무용담도 태릉의 혹독함에 대한 방증이다.

    태릉에서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던 스타들도 진한 아쉬움을 드러낸다. 2008 베이징올림픽 윙크 세리머니의 주인공 배드민턴 이용대(요넥스)는 25일 태릉선수촌을 찾아 "고등학교 때 처음 입촌하고 20대 청춘을 다 보낸 곳이라 누구보다 애착이 간다"면서 "그런데 없어진다고 하니 서운하다"고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자신을 키워준 요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용대는 "웨이트 등 체력 훈련이 너무 하기 싫기도 했다"면서도 "하지만 그 훈련을 했던 트랙이나 웨이트장이 앞으로도 많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어 "진천도 이제 많은 선수들이 훈련해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면서도 이용대는 "밖에서도 현재 체력 훈련을 하지만 공기도 좋고 환경도 좋고, 밥도 맛있었던 태릉만큼은 효과가 나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곱씹었다.

    '일어나기 죽기보다 싫었지만...' 태릉선수촌은 매일 새벽 전 선수들의 구보와 불암산 등반 등 혹독한 훈련으로 악명이 높다. 사진은 지난해 첫날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앞둔 국가대표 선수들이 새벽 달리기를 하는 모습.(자료사진=박종민 기자)

     

    왕년의 탁구 스타이자 현 여자 대표팀 사령탑인 안재형 감독도 마찬가지다. 안 감독은 "1980년대 후반부터 태릉에 들어왔으니 30년 세월"이라면서 "그동안 대표팀을 나가 있기도 했지만 반평생을 넘게 맺어온 인연인데 참 아쉽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탁구 대표팀은 이달까지만 태릉에서 훈련한 뒤 11월부터는 진천에서 담금질에 나선다.

    안 감독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남자 단체전 금메달과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 복식 동메달을 따냈다. 특히 중국 대표팀의 자오즈민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최근에는 골퍼 안병훈의 아버지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안 감독은 "무엇보다 전 선수들이 뛰는 악명높은 불암산 조깅이 기억에 남는다"고 태릉을 추억했다.

    때문에 체육회를 비롯해 한국 스포츠계는 태릉선수촌의 존치를 위해 다시 힘을 모으고 있다. 한국 스포츠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자는 것이다. 체육회는 일단 태릉선수촌에 대해 문화재 재등록을 추진 중이다.

    태릉선수촌은 유네스코가 2009년 조선왕릉을 세계유산으로 지정, 훼손 능역 보존을 권고하면서 철거가 결정됐다. 문화재청이 문정왕후가 안치된 태릉과 명종·인순왕후를 합장한 강릉 사이의 태릉선수촌에 대해 철거 계획을 세운 것.

    이에 체육회는 2015년 7월 태릉선수촌 건물 8개 동의 문화재 등록을 신청했다. 운동장·승리관·월계관·챔피언하우스·행정동·개선관·올림픽의 집·영광의 집과 운동장 1기 등이다. 지난해 3월 문화재청이 등록 심사 보류 결정을 내렸으나 체육회는 자료를 보완해 문화재 재등록에 나섰다.

    1967년 5월 7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194명을 수용하는 합숙소 개소식이 열린 모습.(자료사진=대한체육회)

     

    이기흥 체육회장은 25일 태릉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진천선수촌 시대가 열리고 유네스코와 약속도 있기 때문에 태릉선수촌의 철거가 불가피한 점은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한국 체육의 역사가 담긴 현장을 없앤다는 것은 너무 아깝다"고 호소했다. 이어 "선수촌 담장은 뜯어내더라도 챔피언하우스 등 상징적인 건물들은 박물관, 체험 학습장 등으로 이용해 유지하는 방안을 찾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릉선수촌 존치에 상당한 자신감도 드러냈다. 이 회장은 "유네스코의 방침을 어긴다는 게 아니라 열린 공간으로 선수촌을 활용하자는 것"이라면서 "국회 등에 이런 점을 설명했는데 크게 반대하는 의견은 듣지 못했는데 잘 정리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체육회는 다각적으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태릉선수촌과 관련해 역대 메달리스트들의 사연을 모으는 스토리텔링 작업과 함께 대국민 여론 조사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진천선수촌 개촌식에서도 김광선(복싱), 윤진희(역도), 김미정(유도), 허재(농구), 최윤희(수영) 등 전 국가대표들이 태릉과 관련한 추억을 소개할 예정이다.

    일단 태릉선수촌 관리의 내년 예산까지는 확보된 상황. 숱한 영광과 환희의 순간을 국민들에게 안겼던 태릉선수촌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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