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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적들을 산산조각” 발언은 없었다…실수가 낳은 오보 사태



미국/중남미

    트럼프 “적들을 산산조각” 발언은 없었다…실수가 낳은 오보 사태

    • 2017-09-18 14:48

    [워싱턴에서]‘tremble’을 ‘crumble’로 잘못 들은 AFP 현장발 기사에...국내 언론 오보 양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미 공군 창설 70주년을 맞아 미국 워싱턴DC 인군의 앤드루스 합동기지를 찾아 기념연설에 앞서, 공군 관계자들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뒤에 있는 전투기는 미 공군의 F-35 라이트닝 II (사진=미 공군 제공/USAF Photo)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산산조각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했다는 내용이 지난 주말에 이어 19일 당일까지 대부분 언론에 주요 기사로 도배됐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미 공군 창설 70주년 기념 연설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거론한 뒤 “미국의 첨단무기가 미국의 적들을 산산조각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했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이날 백악관 정례브리핑에서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은 있다”고 반박한 직후였다. 맥매스터 보좌관의 강경발언과 겹치면서 일부 매체에서는 '화염과 분노' 발언을 쏟아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말 전쟁을 또 시작했다는 해석기사까지 내놨다.

    이상한 점은 당일 앤드루스 기지로 떠나기 직전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적 해법이 다 소진됐다고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니다(NO)”라고 대답했다는 점이다.

    조금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백악관에서 보내 온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문은 물론 연설 동영상, 그리고 당일 동선과 발언을 시시각각 전해주는 백악관 기자단의 풀 자료를 찾아 다시 한 번 쭉 읽어봤다.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B-2 전략폭격기를 배경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미 공군 장병들에게 축하 연설을 했고, “북한이 또 다시 이웃 국가들과 전세계에 철저한 경멸을 보여줬다”고 비난하는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적들을 산산조각 낼 것”이라고 발언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트럼프 연설문에서 가장 비슷한 부분은 “우리의 적들이 F-35 전투기의 엔진소리를 들을 때, 그것이 머리 위로 날아갈 때, 그들의 영혼은 두려움에 떨 것이고 그들은 심판의 날이 다가왔음을 알게 될 것이다 (Now when our enemies hear the F-35 engines, when they're roaring overhead, their souls will tremble and they will know the day of reckoning has arrived)”라는 부분이었다.

    앞뒤 맥락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창설 70주년을 맞아 전세계의 제공권을 장악해 온 미 공군의 능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문맥상 북한을 지목해서 발언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다.

    어쨌든 거기도 ‘산산조각’ 발언은 없었다. 트럼프의 ‘산산조각’ 발언을 전했던 국내 TV뉴스들도 정작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연설의 다른 부분을 싱크(녹취)로 따서 썼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 문제의 발언을 찾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외신 기사를 검색해보니 딱 한군데서 국내 언론들이 ‘산산조각’으로 해석했던 ‘crumble’이라는 단어를 쓴 곳이 있었다. 당일 AFP통신 기자가 트럼프 연설 현장에서 송고한 기사였다.

    당일 AFP통신 기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금요일, 미국의 첨단 무기가 미국의 적들의 영혼을 산산조각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경고로 북한을 질타했다. (Donald Trump on Friday lashed out at North Korea warned that advanced US weaponry could make the souls of America‘s enemies ”crumble“)”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국내 매체들이 일제히 인용한 문장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기사에서 쓰인 ‘make the souls of America’s enemies crumble(미국의 적들의 영혼을 바스러지게 만들다)’이라는 표현은 트럼프 대통령이 ‘their souls will tremble(적들의 영혼은 떨 것)’이라는 말을 잘못 듣고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공군 기지에서 20분 가량 했던 연설에서 ‘영혼(souls)’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곳은 딱 이 문장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트렘블(tremble)을 크럼블(crumble)로 잘못 알아듣고 송고한 기사는 여러 매체를 타고 퍼지면서 일파만파를 낳았다. 심지어 19일 오전 주요 조간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산산조각’ 발언을 했다고 일제히 전하고 있다.

    북한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살얼음판을 걷는 지금 시국에 잘못 전달된 신호 하나가 자칫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백악관이 보내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문만 찬찬히 읽어봤어도 피할 수 있었던 어이없는 오보였다.

    사실 외신에서는 B-2 전폭기를 배경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경고를 보냈다는 내용은 있지만, AFP를 제외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산산조각 내겠다고 위협했다고 쓴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언론들이 미국의 군사옵션이라는 자극적 내용에 너무 경도돼 이런 실수를 낳은 것은 아닌지 씁쓸함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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