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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원 의원님! '스펙'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법조

    장제원 의원님! '스펙'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1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심사경과 보고서 채택 논의를 위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주광덕 간사를 비롯한 의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두개의 장면 때문에 매우 속이 상했습니다. 하나는 현직 판사인 오현석 판사를 증인으로 불러놓고 '사상 검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한국 정치에서 '좌편향'이라는 유령 추적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두번째는 인사 청문회 첫날,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의 김명수 후보에 대한 질의 장면입니다. 장 의원의 질문 요지는 한마디로 '김명수 후보가 '스펙'이 너무 일천해 대법원장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장 의원 질의 내용입니다.(9월 12일 김명수 후보자 인사청문회 오전 질의)

    "양승태 대법원장과 이용훈, 윤관, 최종영 전 대법원장과 김 후보자의 프로필과 사회 기여, 재판 경력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대법원장 프로필이 점점 좋아져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전임보다 훨씬 못한 사람이 대법원장이 돼야 합니까? 이 얘기를 하는 겁니다.

    양승태 원장과 김명수 후보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프로필 단순 비교합니다. 김 후보는 특허 법원 부장판사했습니다. 그러나 양 원장은 특허 법원장 했습니다. 후보는 춘천지법 원장했습니다. 양 원장은 부산지법원장 했습니다. 후보는 강원도 선관위원장 했습니다. 양 원장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했습니다.

    참 해도해도 어쩌면 전임자(양 원장) 밑으로만 다닙니까. 웃지 마세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본인 프로필이 과연 대법원장 할 수 있는 프로필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이른바 '스펙이 너무 딸려서(달려서의 잘못된 표기) 대법원장 자격이 없다'는 장 의원의 인식이 놀랍고 절망스럽니다. 말 그대로 장 의원은 참 대단한 '스펙 지상주의자' 이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스펙 지상주의'로 보면 앞으로 대법원장 자격을 갖춘 분들이 거의 없을 겁니다. 양승태 원장의 '화려한 스펙'은 양 원장때나 가능한 일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스펙을 갖춘 인물 찾기가 불가능할 겁니다. 양 원장의 자질이나 업적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말입니다.

    양 원장은 사법연수원 2기 출신입니다. 김 후보 보다 연수원 기수로만 무려 13년 선배가 됩니다. 양 원장은 판·검사 수가 지금과 비교가 안될 때 주류 법조인이 된 분입니다. 그러나 이젠 제 아무리 뛰어난 법관도 법원장을 두어개씩 하고 싶어도 욕심대로 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양 원장 세대는 극소수 판사만 임관됐고 그 중에서도 이른바 '엘리트 코스'로 접어들면 법원장을 몇개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심사경과 보고서 채택 논의를 위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과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이 설전을 주고받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장 의원님! 지금 현실은 어떤지 아시나요?

    인사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시킨 오현석 판사는 판사 임관 11년째 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재판장을 못하고 '배석 판사'를 하고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법조인 수가 비교가 되지 않고 인사 적체도 심화됐습니다. 그러니 그런 단순 비교는 맞지가 않습니다.

    법관 수로만 봐도 불가능한 말씀을 하시는 게 기가 막히지만, 더 딱한 사실은 '화려한 스펙'이 '훌륭한 판사'라는 장 의원의 도식적 견해에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양승태 원장의 자질과 품격에 대해 여러 평가가 있겠지만, 백 번을 양보해 양 원장이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은 훌륭한 대법원장이라고 전제하죠.

    한데, '스펙'이 양 원장 만큼 '화려하지 않다' 해서 "반드시 대법원장 자격과 자질이 떨어진다"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장 의원님!

    법원의 상당수 판사가 존경하고 훌륭한 판사로 손꼽는 분 가운데 '고(故) 한기택 판사'가 있습니다. '목숨 걸고 재판한다'는 신조로 유명하신 분입니다.

    한 판사는 후배들에게 "'목숨 걸고 좋은 재판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으면 법관이 되어서도 좋은 재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주 말했다"고 합니다.

    제가 만난 판사들은 이분의 유업을 "재판의 대상은 '나의 이름을 알릴만한 큰 사건'이 아니라, '소액사건이나 고정사건'과 같이 규모는 작아도 한 사람의 전 인격을 걸고 이루어지는 민생형·생활형 분쟁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고정재판'이란 형사사건 중 경미한 사건을 말합니다. 주로 몇 십만원에서 몇 백만원 사이의 벌금의 당부를 다루는 재판들입니다. 피해 액수가 억 단위를 넘어 가거나 사회적 이슈가 된 이른바 '큰 사건'을 맡을 때보다 오히려 더 바짝 긴장하고 집중하는 것이 재판관의 도리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어느 판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언론과 사회에서 판사를 평가할때 '대표적 판결이 뭐냐'를 흔히들 얘기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판사에게 매우 위험한 독약이 될 수 있습니다. 큰 사건을 맡게 되면 자칫 그 사건의 명성을 의식해 그 재판만 매달리느라 다른 고정재판은 대충 처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의 액수가 크든 작든 또는 피고인이 사회 유력인사이든 아니든 모든 사건은 당사자에게 (사회에서는 무게를 달리 보겠지만) 차별이 존재해선 안되는 겁니다"

    모든 사람은 돈이 많든 적든, 사회적 지위가 있든 없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가치적으로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무게의 소중한 재판입니다.

    장 의원은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양승태 원장은 남성 중심적 호주제를 변화시켰습니다. 종교적 이유로 총기 거부자가 가혹행위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물었습니다. 이렇게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혁시킬수 있는 굵직 굵직한 판결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김 후보는 사법부 기여도, 프로필, 주요 판결 측면에서 대법원장으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마지막으로 김 후보 자질 시비를 떠나 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을 전 인격적으로 판단해주는 판사가 대표적으로 논할 만한 판결이 없고, '스펙'이 별 볼 일 없으면 '대법원장 자질'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건지요?

    '화려한 스펙' 뒤에 눈물 흘리는 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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