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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포이며 독립운동했던 그들…5번 버리실 겁니까"



사회 일반

    "우리 동포이며 독립운동했던 그들…5번 버리실 겁니까"

    "지금 고려인 특별법 개정 못하면…같은 동포를 다섯번 버리는 것"

    - 국내 5만명 고려인, 가장 밑바닥 생활 중
    - 중앙아시아선 동포, 국내에선 외국인? 법 개정해야
    - 9월 17일 오후 3시 안산서 '고려인대회' 열려
    - 연해주, 1937년 당시 어마어마한 독립기지
    - 스탈린, 서부전선 커질까 근거지 없애버린 것
    - 지도자들 사전처형 후 돼지우리 같은 기차에 태워 끌고 가
    - '하얀길'… 노인들, 아기들 사망하면 기차 밖으로 던져
    - 스탈린 사망 때까지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던 이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7년 9월 8일 (금)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종천 사무국장(고려인강제이주 80년 국민위원회)

    ◇ 정관용> 오늘이 9월 8일인데요. 바로 내일 9월 9일이 연해주에 살고 있던 고려인들이 스탈린 정권에 의해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지 꼭 80년이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지금 국내에도 4만 5000여 명 고려인이 살고 있는데 여전히 외국인 대우를 받으면서 한국인이 되는 꿈을 꾼다고 하는데요. 이 고려인 이야기 지금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다음 주에 고려인대회가 열린답니다. 이걸 준비하고 계신 고려인강제이주 80년 국민위원회의 김종천 사무국장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국장님, 어서 오십시오.

    ◆ 김종천> 안녕하세요.

    ◇ 정관용> 고려인 한때는 카레이스키 이렇게 불렀죠. 카레이스키가 고려인의 러시아 말입니까?

    ◆ 김종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그렇게 돼 버렸죠.

    ◇ 정관용> 그러니까 카레이스키라는 단어가 고려인.

    ◆ 김종천> 네, 고려인이라는 말입니다.

    ◇ 정관용> 러시아어로 고려인이라는 말인 거죠. 그러니까 이분들은 어떤 분들을 우리가 이렇게 고려인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 김종천> 역사적으로 보면 독립운동사에 가장 슬펐던 사람들, 그리고 동포 역사에서 대한민국 역사에서 지워졌던 사람들. 그런데 그게 1937년 이후에 40년 후에 러시아의 어떤 작가에 의해서 고려인들의 실체가 알려진. 40년 동안 인류사에 잠겨 있었던 거죠.

    ◇ 정관용> 언제부터 그러니까 이분들은 연해주 지역으로 떠났던 겁니까?

    ◆ 김종천> 처음에 1886년쯤에 이 국내 폭정에 못 이겨서 배고픔에 못 이겨서 떠났던 사람들, 그 후에.

    ◇ 정관용> 1886년이면 한일합병 되기 이전이네요. 조선 말기.

    ◆ 김종천> 나라가 망해 갈 때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가장 밑바닥 사람들이잖아요. 탐관오리들이 득세를 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그러니까 나라가 보통 망하게 되죠. 그 폭정에 못 살았던, 굶어죽기 일보 직전 사람들이 이제 살길을 찾아서 떠났던 사람들.

    ◇ 정관용> 주로 함경도 그쪽 지역에 있던 분들.

    ◆ 김종천> 그렇죠.

    ◇ 정관용> 그래서요?

    ◆ 김종천> 그렇게 해서 그들이 거기를 가서 정착을 했던 거죠. 허허벌판의 황무지죠. 황무지를 다 일궈서 농토로 만들고. 그러면서 그들은 저기에다 조선인 학교를 세우거든요. 그런데 거기에서 조선인 학교를 세우니까 자연스럽게 우리말과 글을 배우게 되고 그러면서 민족정신을 그들 스스로 그것을 성장을 시켰던 거고 그 후에 이제 일제가 본격적인 침탈을 하기 직전부터 이제 독립운동가들이 연해주로 이동하기 시작하죠.

    ◇ 정관용> 그쪽에 또 일종의 근거가 있으니까.

    ◆ 김종천> 네.

    ◇ 정관용> 그러니까 조선 말기부터 이주는 시작됐고 일제시대에도 이주는 이어졌을 것이고. 거기 독립운동가들도 그쪽으로 또 함께 합류를 하고. 한때 그래서 거기 최대 몇 만 정도까지 있었던 겁니까?

    ◆ 김종천> 37년 강제이주 당할 때 몇 가지 이제 설이 있는데 보통 합의되는 것은 20만이고 또 어떤 학자들은 25만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래서 이제 37년에 20만에서 25만 정도로 보면 되죠.

    ◇ 정관용> 20만에서 25만 명이 한인학교 세우고 한국말 서로 쓰면서 아주 거대한 하나의 정착촌을 이루고 살았다?

    ◆ 김종천> 그렇죠.

    ◇ 정관용> 스탈린은 왜 그런데 이들을 쫓아낸 겁니까, 중앙아시아로?

    ◆ 김종천> 거기에 20만 명. 20에서 25만 명이 그냥 땅만 파먹고 살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홍범도, 최재영.

    ◇ 정관용> 독립운동의 장군들. 안중근 의사.

    ◆ 김종천> 네. 그분들이 다 거기에서 기반으로. 우리가 흔히 살고 있는 청산리전투가 대승을 거뒀잖아요. 그 무기가 어디서 왔을까요. 그 군인들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러니까 고려인들이 체코제의 장총을. 그리고 박격포를 수류탄을 이런 것을 대량 구입해서 독립군들에게.

    ◇ 정관용> 제공하고.

    ◆ 김종천> 그리고 젊은 친구들은 나가서 싸우고.

    ◇ 정관용> 직접 독립군에 가담하고.

    ◆ 김종천>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독립기지가 돼버린 거죠. 그 전체가 기지가 돼 버리면서 끊임없이 1907년부터 1908년까지 2년 사이에. 그 2년 사이에 고려인 역사학자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그 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2년 동안 1622회 국내 진공전투가 있었다라고.

    ◇ 정관용> 그래요.

    ◆ 김종천>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독립기지가 돼 버린.

    ◇ 정관용> 무장기지, 그것도.

    ◆ 김종천> 네. 스탈인은 당시에 이제 37년이면 2차 세계전쟁의 전운이 감도는 때였거든요. 그래서 동부전선이 있고 서부전선이 있는데 소련 스탈린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최강이 서쪽에 있는 거고 또 하나의 최강이 동쪽에 있는 거고.

    ◇ 정관용> 일본.

    ◆ 김종천> 그래서 양쪽이 일본은 끊임없이 그때 만주국을 만들고 계속 호시탐탐 세력 확장을. 그래서 이제 스탈린은 2개의 전쟁을 피하고 1개의 전쟁에 집중을 하죠. 그래서 서부전선에 있던 군수공장을 내륙 깊이 옮겨놓고 전쟁 준비를 하고 그리고 이쪽에서는 불가침조약. 화해, 우리는 싸우지 말자. 그런데 이 조선민족하고 일본민족하고 계속 다투고 있으니까.

    ◇ 정관용> 싸우고 있으니까.

    ◆ 김종천> 그러니까 스탈인 입장에서는, 약소민족인 우리를 이주시켜버린 거죠.

    김종천 사무국장 (사진=시사자키)

     

    ◇ 정관용> 그러니까 연해주에 있는 조선민족과 일본과의 싸움에 잘못 휘말리면 서부전선이 커질 수도 있으니까 아예 여기는 전쟁 가능성을 없애고 소련은 독일하고만 싸우겠다, 이런 의미에서 그냥 근거지 자체를 없애버렸다?

    ◆ 김종천> 그렇죠. 강제이주의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었거든요. 결과적으로 보면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그냥 갖다 버리고 선조들이 맨손으로 토굴을 파서 살아남았거든요. 강제이주의 준비가 돼 있으면 뭐라도 지어놨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 정관용> 집도 없는 그냥 황무지에.

    ◆ 김종천> 예. 이제 그들이 준비한 건 제가 봤을 때는 딱 하나.

    ◇ 정관용> 뭐예요.

    ◆ 김종천> 이 20만 명,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딱 3개월 만에 청소를 하거든요. 그런데 그 땅덩어리가 어느 정도로 넓은가 하면 남북을 합친 3분의 2 정도예요. 그런데 거기에서 20만 명, 25만 명 가까이를 석 달 만에 다 청소해 버린 겁니다. 그것도 강제이주 열차에 하나에 태워서. 지금도 그건 하라고 하면 불가능할 텐데. 당시에 교통수단으로써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데. 어찌되었든 3개월간 거기에 살았던 조선 민족들은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 정관용> 연해주에는 이제 남아 있지 않았다?

    ◆ 김종천> 네.

    ◇ 정관용> 전원 철수 당한 건데 그렇게 이주당하는 사이에도 엄청난 희생이 있었다면서요?

    ◆ 김종천> 이제 잔인함.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유대인, 독일 민족이 유대인을 그랬던 거에 대해서 우리가 인류의 야만성을 얘기하는데. 그러면 스탈린이 이 25만 명의 조선민족을 강제이주시켰을 때 그들이 했던 것은 우리한테 딱 3일치의 식량만.

    ◇ 정관용> 3일치?

    ◆ 김종천> 3일치. 그 3일치 식량을 가지고 한 달의 기차로 끌고간 거거든요. 그런데 그 전에 스탈린이 했던 또 하나의 잔혹한 짓이 있는데 이제 소극적으로 봤을 때는 2500명 그리고 또 어떤 학자에 의하면 3500명 정도라고 하는데. 이제 우리로 치면 독립군들, 지도자들을 사전 처형을 하고 순식간에 사전 처형. 그러니까 지도자를 싹 죽여 버리니까 저항 못하고 그렇게 기차에 때려실은 건데 기차를 아주 촘촘히 나누죠.

    촘촘히 나눠서 거기에 우리가 유대인이 탔던 그것보다도 더 험한, 돼지우리 같은 데에 태워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제 한 달 동안 끌려가는데 저는 예전에는 이것을 그냥 누가 쓴 책에서 봤어요. 최근에 그들의 후손을 통해서 그들의 할머니가 증언했던 얘기들을 좀 들어보면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그 나중에 그 길을 다니는 열차를 탔는데 하얀길이라는 표현을 하시더라고요.

    (좌) 정관용 교수 , (우) 김종천 사무국장 (사진=시사자키)

     

    ◇ 정관용> 하얀길?

    ◆ 김종천> 그러니까 열차에 그렇게 빽빽이 타고 갔으면 3개월을 타고 갔으면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 정관용> 많이 돌아가셨겠죠.

    ◆ 김종천> 특히 노인들 그리고 어린 아기들이 죽었죠. 그래서 죽고 그냥 놔두면 썩고 부패하잖아요.

    ◇ 정관용> 그러니까 열차 밖으로 던졌어요?

    ◆ 김종천> 그리고 열차가 멈추면 황급하게 땅을 파고. 그러니까 아이가 죽으면 주로 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연고자가 없거나 노인들은 버리게 되고.

    ◇ 정관용> 그렇게 황무지에 가서 또 끈질긴 생명력으로 황무지를 개간해서 정착하고 살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소련이 해제되면서 또 한 번 쫓겨났다면서요?

    ◆ 김종천>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정말 이제 거기 현지에 도착해서도 2차 사형, 3차 사형을 당해요, 고려인들은. 간첩이라는 누명을 쓴 거거든요. 그렇게 2차, 3차 처형을 당하고 그 후에 정말 기적같이 살아남죠. 그런데 91년도에 이제 소련 연방이 쪼개지면서 이번에는 또 이상한 일이. 나를 그렇게 강제이주시켰던 게 소련인데 소련이 해체가 되면 해방이 돼야 하는데 아주 이상한 일들이 벌어져요.

    ◇ 정관용> 어떤 일이요?

    ◆ 김종천> 그러니까 민족전쟁이 시작됐던 겁니다, 그 땅에서. 그러니까 타지키스탄 등등 해서 국경분쟁, 민족전쟁. 타지키스탄. 대표적으로 타지키스탄 같은 경우에는 우즈베키스탄 민족하고 아프간 민족하고 붙게 되거든요. 그 타지키스탄이라는 땅덩어리에는 고려인들이 1만 명 정도 살았습니다.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모르겠는데 굉장히 많은 고려인들이 총에 맞아죽고 6000명이 탈출을 한 겁니다. 그래서 6000명. 우리가 고려인들 중에서 가장 아픈 고려인들이, 고려인들한테 물어보면 다 타지키스탄 분들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아요.

    ◇ 정관용>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민족분쟁, 영토분쟁 등이 생기면서 또 한인들은 터전을 잃고?

    ◆ 김종천> 그렇죠. 국가가 없었죠. 독일 민족은 76만 명을 데리고 갑니다. 일본은 20만 명을 데리고 가요. 그리고 아프리카도 10만 명을 자국으로 데리고 가요. 그런데 고려인들만 아무도.

    ◇ 정관용> 챙겨주지 않았죠. 사실은 해방된 직후에 우리가 챙겨서 모시고 왔어야 맞는 건데. 그런데 그때 못했고. 그래서 지금은 그 지역에, 중앙아시아 지역 여러 나라에 여러 나라 국적을 가지고 또 심지어는 국적조차 제대로 못 갖고 몇 만 정도가 살고 계신 겁니까?

    ◆ 김종천> 우리가 고려인 전체 숫자를 50만 명으로 봅니다.

    ◇ 정관용> 후손에 후손이 확대됐으니까.

    ◆ 김종천> 20만 명이 끌려갔고 이제 17만 명이 살아남았고 그중에 지금 현재 스스로 고려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50만 명이고 중앙아시아에 30만에서 35만 명. 그리고 아까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타지키스탄을 도망쳤던 사람들이 대부분 무국적자가 되거든요. 현재 91년 소련연방이 12월에 해체되고 그 후에 단 한 번도 국적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현재까지 28년째 3000명이 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워낙 오래전 그렇게 아픔을 당해서 지금은 이제 3세, 4세 이렇게 되다 보니까 이제는 한국말도 잘 모르죠, 대부분.

    ◆ 김종천> 거의 잃어버렸죠.

    ◇ 정관용> 잃어버렸죠.

    ◆ 김종천> 빼앗겨버리고. 첫 번째는 빼앗긴 거고 두 번째는 지키다, 지키다 잃어버린 거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나라의 고려인의 존재라고 하는 것이 차츰 알려지면서 고려인들 가운데 한국으로 돌아오신 분들이 꽤 되죠. 지금 한국에 몇 분 정도 계십니까?

    ◆ 김종천> 5만 명이 넘고 있습니다.

    ◇ 정관용> 5만 명. 그분들의 국적은 지금 어떻게 돼 있어요?

    ◆ 김종천> 그분들의 국적은 91년. 가장 91년 해체 당시에 부여받은 국적 그리고.

    ◇ 정관용> 우즈베키스탄이나 이런 식으로?

    ◆ 김종천> 두 번째로는 그 후에 이주를 하게 돼요. 그래서 그 91년 이후에 두 번, 세 번 국적이 바뀌신 분들이죠.

    ◇ 정관용> 그런 분도 계시고 그 국적을 가지고 한국에 지금 와 있는 거고?

    ◆ 김종천> 맞습니다.

    ◇ 정관용> 이분들은 한국 국적 내지는 한국 영주권을 갖게 해 달라, 이런 요구를 하고 있는 거죠?

    ◆ 김종천> 맞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우리 정부는 그걸 못해 주고 있나요?

    ◆ 김종천> 안 하고 있죠.

    ◇ 정관용> 왜요?

    ◆ 김종천> 형평성이라는 말을 합니다.

    ◇ 정관용> 어떤 형평성?

    ◆ 김종천> 이들에게 영주권을 부여하면 재외동포가 700만인데 그러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냐,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하기는 그렇게 되네요. 그러니까 해방 이전에 중국 쪽으로 가신 분들. 지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선족분들 이런 분들도 다 그럼 한국 국적을 줘야 되는 것 아니냐, 이런 논리가 되는 거네요?

    ◆ 김종천> 당국에서는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이제 역사적 특수성에 대해서 1937년 그렇게 되고 그들은 돌아올 기회를 단 한 번도 갖지 못한 거죠. 거기에 스탈린이 죽을 때까지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면서 이주조차, 다른 데로 이동조차를 못했었거든요.

    ◇ 정관용> 정부 통제 하에 살았고.

    ◆ 김종천> 스탈린 죽을 때까지. 그리고 스탈린이 죽은 뒤에 그것이 좀 완화되기 시작했던.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했던 사람들이에요.

    ◇ 정관용> 그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이 말씀이군요.

    ◆ 김종천> 그렇죠.

    ◇ 정관용> 지금 국내에 와 계신 분들은 그럼 주로 어떤 생활들을 하십니까?

    ◆ 김종천> 이제…

    ◇ 정관용> 직업을 구하기도 쉽지 않을 거고.

    ◆ 김종천> 가장 밑바닥 생활을, 대한민국에서 여러 가지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가장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 정관용> 80년 만에 이분들의 어떤 대회를 준비하고 계시죠. 다음 주 무슨 요일이죠?

    ◆ 김종천> 9월 17일 일요일 오후 3시부터 ‘고려인대회’를 합니다.

    ◇ 정관용> 어디서 합니까?

    ◆ 김종천> 안산화랑유원지에서 합니다.

    ◇ 정관용> 안산 지역에 많은 분들이 계시죠.

    ◆ 김종천> 1만 2000명이 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거기 이제 한국에 와 계신 고려인들이 대거 모이는 겁니까?

    ◆ 김종천> 전국에 5만 명인데 저희들은 고려인들이 5000명 정도 모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올 거다. 처음이죠, 이런 행사를 여는 건?

    ◆ 김종천> 고려인들 스스로 모이기 시작했던 것은 제가 알기로는 처음입니다.

    ◇ 정관용> 바로 이분들한테 어떤 영주권이나 이런 것들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 만들어야 한다, 이런 움직임이 국회에서도 있죠?

    ◆ 김종천> 지금 특별법. 2013년도에 만들어졌던 고려인특별법이라는 게 있는데요. 그것을 개정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2013년에 만들어진 법은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는 분들을 지원하는 법이더라고요.

    ◆ 김종천> 맞습니다.

    ◇ 정관용> 한국에 와 있는 분들은 대상이 아니더라고요?

    ◆ 김종천> 그래서 거기에서는 대개 이제 코미디죠. 제가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거기 고려인을 만나면 동포, 동포가 되는 겁니다. 손잡고 한국에 들어오고 한국의 영공에 들어오는 순간 동포가 아니고 그는 외국인입니다.

    ◇ 정관용> 그렇죠.

    ◆ 김종천> 법이.

    ◇ 정관용>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분은 우리가 동포로서 지원도 해 주는데 한국에 오면 당신은 외국인이고 영주권 줄 수 없다고?

    ◆ 김종천> 아무런 국가적 혜택도, 당신은 외국인이니까 줄 수 없다는 거거든요.

    ◇ 정관용> 어떻게 현 정부는 고려인 문제에 대해서 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특별법 개정이 가능할까요?

    ◆ 김종천> 지금 고려인 특별법을 개정하지 못하면… (눈물) 5번 버린 겁니다, 5번.

    ◇ 정관용> 5번.

    ◆ 김종천> 1937년 한 번 버렸죠. 해방 때 한 번 버렸죠. 91년도 소련연방이 무너졌을 때 또 한 번 버렸죠. 그리고 그 2~3세대가 살겠다고 들어왔는데 너는 외국인이라고 버렸죠. 그리고 지금 그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면 이들은 강제추방 당해요. 5번 버리고 있는 겁니다, 지금 이번에 고려인특별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역사는 같은 동포들, 독립운동 했던 후손을 5번 버리는 겁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목이 메어서 잠시 말씀을 못 이을 정도입니다. 참 가슴 아픈 우리 역사의 그 아픈 상처를 고스란히 다 안고 계신 고려인 이야기 오늘 한번 들어봤습니다. ‘고려인 강제이주 80년 국민위원회’의 김종천 사무국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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