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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청산'이 낳고 기른 '헬조선'



문화 일반

    '미완의 청산'이 낳고 기른 '헬조선'

    [친일, 불편한 진실 ③] 일제 통치전략은 어떻게 '한국화' '현대화' 됐나

    광복 72주년을 맞이한 한국 사회에서 '친일'은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입니다. 지금까지도 과거사 청산의 뚜렷한 열매를 얻지 못한 데 따른 비극이겠죠. 친일의 온전한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탓에 우리네 과거사 인식 역시 비좁은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모든 해법은 문제를 직시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CBS노컷뉴스가 친일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친일파' 지옥도…헛된 꿈을 꾼 마름들
    ② 피튀기는 조선인들 뒤에 숨은 '일제 민낯'
    ③ '미완의 청산'이 낳고 기른 '헬조선'
    <끝>

    영화 '암살' 스틸컷(사진=쇼박스 제공)

     

    '헬조선'으로 불리우는 지금 한국 사회의 모순 덩어리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근대'의 문을 폭압적인 일제 식민통치로 열게 된 데다, 해방 이후 청산의 고비마다 좌절을 맛봐야만 했던 과거사에서 그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일제 식민통치가 분단을 경유하면서, 남과 북은 각자 정통성을 주창하기에 급급했다. 남한의 경우 한국전쟁 이후 '반공'이라는 이름 아래 식민통치 메커니즘을 더욱 강화시켰다. 1960년대 이후에는 반공과 더불어, 가난 극복을 위한 '독재'에 대한 지지가 강요됐다. 이러한 틀 안에서 일제 식민통치는 '한국화'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채 더욱 왜곡돼 왔다"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적폐를 논할 때 일제 식민통치 그 자체의 영향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단순하다"며 위와 같이 설명했다.

    그는 "보편적인 복지 등을 통해 평등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매도하고, 극우단체를 부추겨 여성·장애인·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도록 만드는 권력층의 비뚤어진 행태 역시 (차별에 근거를 둔) 전형적인 내부 식민통치"라고 꼬집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토론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을 들어 왔다. 토론이 몹시 비효율적인 것처럼 인식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민주주의는 오랜 기간 대통령·국회의원 등만을 뽑는 것으로 왜곡돼 왔다. 1987년 민주화가 되고 1990년대부터 지방자치를 행해 왔지만, 현실은 아래로부터의 토론을 통해 결정된 의사를 위로 올리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다."

    김 교수는 "이러한 전형을 우리는 일제시대에 배웠다"며 "형식적인 민주주의로 포장해 투표권과 배만 채워 주면 된다는 어느 고위 공직자의 '국민 개돼지론'은 일제시대 분열지배정책에 뿌리를 둔 인식"이라고 진단했다.

    노동자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는 사회 구조에서 식민통치의 잔재를 뛔뚫어 본 시선도 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사회 구조는 전형적인 계급분리정책"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 스스로 이를 묵인하든 동조하든 체념하든, 형식상 평등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하지 않나. 이러한 차별을 신자유주의가 굉장히 강화된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식민지의 경우 이러한 갈등을 전면에 드러내놓는 사회이고, 민주화 될수록 이러한 분위기는 약화되는 쪽으로, 교묘하게 감추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유선영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역시 "인권 개념 없이 소위 '갑을' 관계가 불합리하게 유지되는 방식은 오롯이 식민통치의 영향이라고까지는 못해도 한국 사회가 여전히 덜 근대화됐다는 증거"라며 "근대화는 타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기의 사적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전근대적"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일제시대부터 커 온 권력층이 근대화 되지 못했기에 그 권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근대적인 사람은 자기 감정과 권력을 절제할 줄 안다. 권력자들의 이러한 비뚤어진 모습이 역사적인 식민지배의 영향이라면 영향이다. 그 기간(일제시대)에 우리가 제대로 근대화를 했다면 어땠을까. 결국 우리는 반세기를 잃어 버린 셈이다."

    ◇ '저들만의 문제'로 축소된 친일 잔재 청산…"우리 모두의 책임"

    지난 14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서울 청계광장에서 정의기억재단이 주최한 관련 전시회에서 남과 북 위안부 피해 신고자 수에 해당하는 500개의 작은 소녀상이 전시돼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일제시대에 만연했던 기회주의적인 인식이 현대 한국 사회 안에서 일그러진 욕망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 유선영 교수의 설명이다. 그의 표현을 오롯이 빌리면 "남의 굴욕을 받지 않기 위해 성공해야 한다는 자기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식민지 후유증"이다.

    "좋게 말하면 일종의 지위상승 욕망일 텐데, 남보다 앞서고 위에 서고 성공하겠다는 열망이 너무 공격적으로 강화돼 온 것이다. 지위상승을 위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사교육, 명품 소비, 외모 등이 모두 남에게 자기를 과시하는 수단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외형적 과시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 바람에 사람과 사람이 서로 존중하는 관계, 사회에서 타자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방식과 같은 가치관의 정립을 가로막고 있다."

    결국 "식민 통치로 각인된, 불안한 생존 환경에서 남보다 위에 서야 한다는 강박, 기반이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으니 자기 혹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로서 권력도 돈도 지위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심용환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한국 사회의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에 주목했다. "그는 일본 역시 광범위한 재벌체제이지만, 우리나라처럼 심각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는 덜 일어난다"고 운을 뗐다.

    "물론 전반적으로 동아시아의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문제가 깨끗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까지 심화됐을까'를 보면 결국 친일 유산이 계승되면서 만들어진 기회주의 문화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비슷한 경제성장 단계에서도 기회주의를 맹신하는 자본가·엘리트가 권력을 잡게 된 상황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심 소장은 "상황이 이러하니 기회주의적인 권력층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내 안의 기회주의적인 정서가 사라졌나'라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회주의적인 권력층을) 욕하지만 우리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일단 너부터 성공해라' '너와 가족이 먼저 잘 먹고 살 살아야 한다'고 권한다. 이러한 사람이 또한 대우 받는다. 결국 친일이 만들어낸 '기회주의'라는 문화 유산을 기득권층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계승하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친일을 논할 때 어떠한 특정 세력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은 면피하려는 경향이 발생하고 있다. 그들을 쓸어버리면 청산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이다. 친일을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저들의 문제'로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는 "일제시대 친일파는 (생물학적으로) 죽어서 사라졌다 치더라도 친일 문화, 그러니까 일제시대에 강요된 성공 양식이라는 유산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본다"며 "물론 누군가를 친일파로 규정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고증하고 분석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공동체가 친일 문화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점에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역시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친일 잔재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이미 해방 70년을 넘겼다"며 "오히려 한국 사회가 그동안 밟아 온 과정 안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파생된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친일 잔재가 가장 큰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은 정말 우리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러한('친일 문제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결국 우리 책임'이라는) 인식부터 가져야만 보다 발전적인 생각들이 나올 것이다. 우리 스스로 어떠한 문제를 만들어 왔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과거 역사 속에서 잘못했기에 그 영향이 분명히 오늘날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을 지적하는 것 역시 타당하다고 본다. 다만, 우리 스스로 과거 친일 문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는 것부터 반성해야 한다."

    ◇ 탈식민화로 가는 '존엄성' 회복의 길…무엇을 할 것인가

    지난 12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제막식'에 참석한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가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친일 잔재 청산이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의 몫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심용환 소장은 "오늘날 우리의 구조화된 문화와 시스템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의식이 필요하다"며 말을 이었다.

    "각자 '나부터 잘 살고 보자'는 인식 아래 스팩을 쌓는 데 들이는 노력들이, 우리 사회를 보다 선하게 변화시키려는 공동체 에너지로 전환되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수평적인 시민의식, 소위 '마름' 의식과 상반되는 공동체 의식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관련 연구가 탄력을 받아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귀옥 한성대 교수는 "일제 조선총독부 관리가 도대체 어떤 성격이기에 일반 국민들을 가혹하게 억압했는지, 해방 이후 미군정과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일제 식민통치 방식이 어떠한 문화로 남았는지 등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전했다.

    "일본군 '위안부'만 해도 일제가 끝나면서 없어진 것이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와 박정희 군사독재시대에도 미군을 대상으로 한 '위안부'가 운영됐다. 결국 '위안부' 운영 방식은 권력층이 국민들을 손쉽게 통치하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일제가 만든 치안유지법 또한 여전히 '국가보안법'으로서 작동하고 있다. 한 번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박힌 전근대적인 인식들을 청산하지 못하면, 그것이 권력층의 통치방식으로서 질긴 생명력을 갖고 사회문화적으로 전수될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제시대 사찰과 같은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면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이제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 통치를 위해 썼던 전략들이 지금 한국 사회 안에서 어떻게 '현대화' 돼 작동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실천에서 자신과 사회에 대한 '성찰'은 반드시 따라붙어야 하는 핵심요소다. 유선영 성공회대 교수는 "프란츠 파농(1925~1961, 식민주의에 맞선 사상가)은 '자기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탈식민화'라고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지금 우리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으로 세계에서 인정받으려는, 타자의 시선을 통해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다. '한국 좋다' '김치 좋다' '한국을 빛낸 누구 안다'는 외국인들에 지나치게 열광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휴머니티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존엄성을 스스로 깨닫고 인정할 때 비로소 탈식민화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찰에 바탕을 둔 학습이 수반돼야 한다."

    유 교수는 "일제시대부터 이어져 온 (기회주의적인) 권력층에 대한 불신이 지난 겨울 촛불혁명 때 박근혜·이명박과 겹쳐지면서, 비로소 한국에도 반엘리트주의로 대표되는 권력층의 지배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불신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것이 유럽에서 볼 수 있는 극우정당,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대중영합적인 단체·인물이 득세할 수 있는 분위기로 흐를까 우려된다"는 말을 통해 성찰을 통한 인간 존엄성의 회복과 탈식민화를 재차 강조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제시대를 일본과 조선의 단순 대립 구도로 봐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가해자로서 일차적인 책임은 일본에, 이차적인 책임은 일제에 협력했던 세력들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통치전략으로서 분열지배정책의 최고 수혜자는 언제나 소수의 지배계층이었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권력층은 언제나 차별을 낳는 시스템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우리는 이것이 실제로는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회적 연대가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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