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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 '양극화' 저주…"지원받을수록 가난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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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판 '양극화' 저주…"지원받을수록 가난해져요"

    • 2017-08-04 06:00

    [영화판 또한 일터다 ③] 촬영장 출근하는 스태프 A·B씨의 극과 극 하루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일한 대가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노동자라 일컫습니다. 우리네 절대 다수가 노동자인 셈이죠. 영화 한 편을 만들고자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영화계 수많은 종사자들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한국 영화산업은 국민 1인당 한 해에만 4편 이상의 영화를 볼 만큼 성장했습니다. 그 영화를 만들어내는 스태프들의 삶은 어떨까요. CBS노컷뉴스가 영화 노동자들의 일터를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영화판에서 10년, 우리도 사람답게 일해야잖아요"
    ② '돈줄'에 휘청휘청…'희생'으로 굴러가는 영화판
    ③ 영화판 '양극화' 저주…"지원받을수록 가난해져요"
    <끝>

    #1. 연출부 스태프 A 씨는 오늘도 아침 일찍 촬영 현장으로 나선다. 낮 촬영 시작 시간은 오전 9시이지만 세팅을 위해서 7시까지는 도착해야 한다. 연출부라고 해서 A 씨가 하는 일이 '연출'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연출, 촬영, 조명, 미술 등 스태프들을 모두 모아봐도 20명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각 파트마다 공백이 생기면 언제든 투입된다. 표준근로계약서나 4대 보험은 언제나 제작비가 부족해 허덕이는 저예산 영화에서는 꿈 같은 이야기다. 그래도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예산이 1억원 밖에 되지 않는 영화인데도 최저임금 126만 원을 세 달 동안 받게 됐다. 휴식 시간이나 식사 시간도 거의 없다시피 일하고 있지만 이렇게 경력을 쌓다 보면 언젠가 선배들처럼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할 날이 오리라고 꿈꿔 본다.

    # 연출부 스태프 B 씨는 오늘도 아침 일찍 촬영 현장으로 나선다. 대형 상업 영화는 각 파트마다 자리가 몇 개 없어 경쟁이 치열한데 이번에는 정말 운이 좋았다. 선배들 말을 들어보니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중구난방이었던 영화계 현장도 표준근로계약서가 자리잡히면서 좋아졌단다. 그 말처럼 8시간 촬영하면 1시간은 쉬고, 삼시세끼도 정확히 챙겨 준다. 자신 같은 말단도 표준근로계약서를 쓰고 4대 보험까지 들었으니 말 다한 거 아닌가. 혜택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근로시간이 12시간을 넘기면 기본 시급에 시간당 1.5배, 18시간을 넘기면 시간당 2배의 초과수당을 받는다. 현장에서 일 생기면 초과근무야 당연한건데 돈까지 더 얹어주니 이게 생각보다 쏠쏠하다. 저번
    달에는 최저시급에 일한 시간만큼 월급으로 계산해 220만 원을 받았다. 역시 대기업이 만드는 영화는 스태프 대우부터 다르다 싶다.

    표준근로계약서 정착의 계기가 된 영화 '국제시장'과 전 스태프들에게 표준근로계약서와 4대 보험을 보장한 영화 '군함도'.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근로계약까지 양극화된 영화계

    한국 영화 시장에 표준근로계약서가 정착한 지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 2014년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이 그 발단이었다. 표준근로계약서가 자리잡지 못했던 당시, '국제시장'이 모든 제작 스태프들에 계약서를 적용한 전무후무한 사례를 남겼던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이른바 '빅 4'로 불리는 대형 투자·배급사들에 표준근로계약서를 준수하는 분위기가 생겨났고, 이들 기업은 모든 스태프들을 대상으로 한 표준근로계약서를 적극 도입했다. 아예 의무화해 사용하고 있는 곳은 CJ E&M 뿐이지만 다른 대형 투자·배급사들 또한 표준근로계약서를 '기본적' 사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예산 10억 이상 영화이면 무조건 표준근로계약서를 쓴다. 4대 투자·배급사라면 모두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한 2년째 이걸 지키고 있는데 확실히 스태프들의 임금 격차가 줄어들고, 평준화된 것이 느껴진다. 과거에는 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인센티브 등으로 임금을 많이 받는 경우가 있었고, 계약서를 써도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기본급에 초과근무수당 시스템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투자·배급사라고 해서 스태프들 임금이 포함된 예산만 제작사에 던져 놓고 방관할 수는 없다. 표준근로계약서가 현장에서 얼마나 잘 지켜졌는지 영화진흥위원회에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꾸준히 현장 관리·감독을 한다는 설명이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3월부터 게시한 한국 영화 근로계약 이행현황을 살펴보자. 올해까지 총 149개의 작품이 제작됐고 이 중 50개의 작품이 표준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촬영 준비·촬영 진행·후반 작업·개봉 준비·현재 개봉·지난 개봉 등 제작 단계별로 따지면 43% 정도 제작사들이 스태프들과 계약을 체결한 셈이다.

    근로계약을 체결한 제작사들은 대체로 4대 보험도 함께 들었다. 전체평균 45% 가량의 제작사들이 스태프들에게 4대 보험을 보장했다.

    그러나 이런 표준근로계약서를 저예산 독립·예술 영화 시장에서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표준근로계약서 체결 자체가 법적으로 강제된 것도 아닐 뿐더러 그럴 만한 예산 여유 자체가 없다.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스태프들 '임금'은 '열정 페이'로 대체되기 일쑤다.

    한 독립 다큐 영화 감독은 "영화계에는 아직까지 임금과 경력을 등가 교환하는 시스템이 굳건하다. 처음부터 임금이 보장되는 대규모 예산의 상업 영화 스태프로 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에 작은 영화들에서 경력을 쌓아 상업 영화 제작에 진입한다. 현장에서 체감한 바로는 10편의 1편 정도는 스태프들이 임금을 받지 못한다. 거의 촬영에 제작비를 많이 소진하기 때문에 후반 작업 업체들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설사 표준근로계약서를 쓴다고 해도, 결국 제작사는 스태프들에게 양해를 구하게 된다.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상징성'만 있을 뿐, 현장은 계약서와 관계없이 흘러간다. 서로 서로 어려운 사정을 공감하는 스태프들은 대체로 이런 설득에 공감하는
    편이라고.

    10년 가까이 독립·예술 영화를 제작·배급한 업체의 한 대표는 "임금은 대중 없다. 한
    달마다 정산 받을 수도 있고, 두 달 금액으로 정산 받을 수도 있다. 일반 스태프들은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100만 원 남짓인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총 제작비가 1~3억 원 정도 되는 영화들도 표준근로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있다. 촬영 회차를 줄이고, 프로덕션을 줄여도 계약서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러면 스태프들에게 차후 인센티브를 주거나 실수익을 나누겠다는 약속을 한다. 우리 나름대로는 노동 대가를 보장하려는 조치다"라고 설명했다.

    한 독립다큐영화의 촬영 현장. (사진=영화 '업사이드 다운' 스틸컷)

     

    ◇ 상업적 올가미에 갇힌 독립·예술 영화의 운명

    제작비에 따라 표준근로계약서마저 양극화되고 있는 현실이지만 사실 영화계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 이미 대기업 투자 위주의 상업 영화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고 여기에 진입하지 못한 독립·예술 영화들은 상업적 가치가 낮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스태프들이 노동한만큼 임금을 보장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제작비가 모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상업적 가치는 현저히 떨어질지라도 저예산 독립·예술 영화들은 분명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그간 한국이 배출해 낸,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주의 감독들은 독립·예술 영화의 풍성한 토양을 발판삼아 성장해왔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제2의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이런 토양의 상실이라고 꼽는다.

    한 영화학과 교수는 "독립·예술 영화를 상업적 잣대로 보기 시작하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영화들은 예술적 성장의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멀티플렉스 업체들과 대형 투자·배급사들 중심으로 영화 시장이 재편되면서 시장 논리만으로 문화를 보는 경향이 짙어졌다. 그러면 이런 영화들이 설 자리는 없어지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커다란 규모의 천만 영화 1~2편이 전체 영화 시장을 먹여 살린다. 예술은 다양성에 기초가 되어야 하는데 환경 자체가 왜곡되다 보니 개성 없는 영화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감독의 작품 세계를 존중하는게 아니라 기획에 맞는 감독을 끼워맞춘다. 당연히 다양성은 사라진다. 이제 산업에 치우친 구조를 바로잡고 문화를 존중해야 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저예산 독립·예술 영화를 향한 상업적 잣대를 거두고 최소한 정부 지원에 선정된 영화만이라도 스태프들 임금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로부터 제작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도 사실상 '종잣돈'을 가지고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원 선정된 영화들도 종종 '크라우드 펀딩'으로 힘겹게 제작비를 모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독립·예술 영화 제작·배급사 대표는 "현재 영진위 지원 기준 자체가 스태프들의 최저 임금을 보장하는 체계로 되어 있지 않다. 인건비까지 포함해 제작비를 4억 원 이상 올리면 50% 이상은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여기에 실질적인 예산 집행은 20~30%이고 적게는 10%까지 떨어진다. '종잣돈'을 줄테니 나머지는 투자 받아 만들라는 이야긴데 누가 이런 저예산 영화에 투자를 하나"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저예산 영화들을 위한 공적 시스템 구축 또한 최우선 과제다. 인건비를 최우선적으로 절감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다른 부분에서 제작비를 줄일 수 있는데 아직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장비나 시설 대여 비용 등도 공적인 시스템 안에서 채우면 제작비 마련이 70~80% 정도까지는 해결될텐데 그렇지 않다. 지원 받을 수록 더 가난해진다는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다. 이런 제도가 정체될수록 독립·예술 영화가 더 이상 투자 받을 수 없고,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구조가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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