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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님, 당신 손님 술상은 당신이 차리세요"



법조

    "상사님, 당신 손님 술상은 당신이 차리세요"

    직장 상사의 갑질에 맞선 '용자들'

    김무성 의원의 노룩패스 장면(출처=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합니다."

    국회의원 보좌직원이 임용 시 국회사무처에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선서'입니다. 의원 보좌직원의 임무는 국민에 대한 봉사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는거죠.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의 '노룩 패스' 사태가 씁쓸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이라고 수행원을 하대할 수 있는 권리까지 준 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보좌직원은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쥔 의원이 부당한 업무를 지시했을 때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사용자나 직장 상사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근로자에게 불합리한 노동을 강요하는 소위 '갑질'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적폐입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관행이 여의도에만 있는걸까요?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11월 직장인 1037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전체 응답자의 66.9%가 '업무 중 부당한 갑질을 당했다'고 밝혔는데요, 이 가운데 62.7%가 부당한 업무 지시를 갑질 행동으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응답자의 절반은 부당 처우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 '더 큰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 '그게 관행이라서' 등의 이유였죠.

    하지만, 부당한 처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른바 '용자(勇者·용기 있는 사람)'들이죠. 이들이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던 갑의 횡포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대항했을까요?

    (기사와 관계없는 자료사진)

     


    ◇ 상사야, 네 손님 술상은 네가 차려줄래?
    "한OO 총경은 공용차량이나 관사를 지인에게 빌려주거나 해안경비단 식당 업체 선정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 어느 날 국민권익위원회에 이런 내용의 진정이 접수됐습니다. 진정을 낸 '용자'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한 총경은 결국 강등 처분을 받았죠. 그는 불복 소송에서마저 패소했습니다. 어떤 갑질을 했기에 징계까지 받게 된 걸까요? 여러 사유 중에서 부당한 업무 지시 부분만 살펴보겠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판결에 따르면 한 총경은 지인들이 근무지에 놀러오면 의경이 운전하는 공용차량으로 마중을 나가거나, 유흥주점에 동행하는 등 14차례나 사적인 용도로 공용차량을 사용했습니다. 또 수시로 지인들에게 관사를 내줬는데, 의경들을 동원해 지인들의 술상까지 차리도록 했습니다. 해안경비단장 근무 당시에는 관사 전담 대원을 지정해 청소와 빨래 등 가사일까지 시켰습니다.

    이에 앞서 지방의 한 경찰서장으로 근무할 때에는 토끼 3마리와 닭 20마리를 자비로 구입한 뒤 경찰서 내에서 사육하도록 했습니다. 해당 경찰서 직원들은 한 총경의 지시에 따라 35차례 토끼풀을 베어내고 20차례 닭을 도축하는 등 자신의 업무분장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는데 시간을 허비해야 했죠. 특정 직원에게는 7차례나 개인차량을 수리해오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법원은 "한 총경이 업무와 관계없는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공무원으로서 지켜야 할 품위를 손상했다"며 징계는 적법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기사와 관계없는 자료사진)

     


    ◇ 휴가는 건들지 말아줄래?
    시내버스 운전사인 이모 씨는 가족 휴가를 가려다 사측과 마찰을 빚어 정직을 당했습니다. 나흘간 가족 휴가를 가기 위해 미리 휴무를 신청했는데, 사측에선 '추후통보' 하겠다고 했다가 17일이나 지나서야 "휴무기간에 출근할 것"을 통보했죠. 이 씨는 지시에 따를 수 없다는 내용의 자술서를 회사에 제출한 뒤 휴무기간에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사측은 이 씨가 운행하는 버스 노선을 다른 운전사가 임시로 운행하도록 한 뒤 "이 씨 때문에 해당 운전사의 노선 운행이 중단됐다"며 이 씨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이 씨는 정직 15일의 처분을 받았다가 재심을 거쳐 정직 10일로 감경을 받았지만, 억울함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 씨는 노동위원회를 거쳐 법원의 문까지 두드렸죠. 법원은 이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 씨가 신청한 휴가 기간에 운전기사 부족이 생긴 원인은 회사에 있고, 이 씨에게 연차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법원은 또 "사측의 불허나 시기변경권 행사가 부적법한 이상 이 씨가 연차휴가권을 행사한 기간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단결근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씨가 승소한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기사와 관계없는 자료사진)

     


    ◇ 다른 업무 슬쩍 얹지 말아줄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응급구조사 A씨는 사측의 운전 업무 지시를 두 차례 거부했다가 경고 처분을 받았습니다. "벌초 시기여서 외상환자가 많아 본연의 업무인 응급환자를 처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수적인 업무인 응급차량 운행을 거부했다고 해서 징계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었죠. 반면, 사측은 "응급검사 및 혈액운송을 위한 응급차량 운행은 응급구조사의 본연의 업무에 해당한다"고 맞섰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 결과는 어땠을까요? 부당징계가 맞다고 봤습니다. 응급차량 운행 업무는 응급구조사의 본연의 업무가 아닐뿐더러 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 것이죠. 따라서 업무 지시 거부를 이유로 내려진 경고 처분은 재량권 남용인 만큼 부당하다는 것이 중앙노동위의 판정이었습니다.

    이처럼 직장에서 '용자'가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언제 끝날지 모르는 법적 투쟁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감히 용자가 되라고 권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직장 상사의 갑질에 못 이겨 늘 사표를 품에 안고 다니는 분이 있다면, 혼자서
    끙끙 앓을 필요는 없습니다. 부당한 처우를 당했을 경우 노동청이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갑질'을 하는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공론화'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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