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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단편선'…디스토피아적 현대성



책/학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단편선'…디스토피아적 현대성

    시간의 목소리 외 24편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단편선'은 시간의 목소리 등 25편를 담고 있다.

    밸러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10년 전 중화민국 상하이 조계에서 태어났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민간인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었다가 종전 후 영국으로 송환된다. 대학에서 의학과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공군에 입대하여 조종사 훈련을 받았다. 그는 인생의 전반을 비/초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의 극한상황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는데, 치외법권에서 보낸 유복한 유년기, 전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투했던 수용소에서의 사춘기, 활자로만 접했던 모국에의 첫 방문에서 받은 문화 충격과 ‘잿빛의 춥고 흐린’ 전후 영국에서의 청년기, 비행 훈련, 고속도로로 둘러싸이고 히스로 공항의 끊임없는 확장으로 타격을 받은 런던 교외에서의 생활, 아내의 비극적인 요절 등은 그의 존재 깊숙이 시간과 공간의 교란된 감각, 강박과 불안이라는 상흔을 남겼다. 개인과 사회의 무수한 파국을 마주하며 밸러드는 '소설은 이미 거기에 존재하므로 작가의 임무란 리얼리티를 창조해 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다른 어떤 작가도 하지 못한 방식으로 삶의 극단을 묘사했고 모순으로 가득한 20세기 후반의 인간 존재 방식을 표현하려 했다. 그의 트라우마는 이미지의 반복으로 나타났는데 저공비행 항공기, 박살 난 자동차, 물 빠진 수영장, 버려진 호텔, 황량한 해변, 악취가 진동하는 강과 석호, 감정을 잃은 반쯤 미친 주인공 등 동일한 모티브가 다른 외피를 입고 변주된다.

    그는 현대 문명의 병리학적인 잔혹상―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소비사회, 미디어 과잉으로 인한 생활의 통제, 음모론이 판치는 정부 간 이데올로기 담론, 과학기술의 비인간화 등을 동일한 폭력의 다른 형태로 간주하고, 이러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이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같은 강렬한 이미지에 매료되어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을 냉정하며 분석적인 시선으로 묘사했다. 주인공이 경험하는 세계는 마치 ‘오브제’처럼 독특한 비유를 사용한 문체로 그려지고 주인공은 그 세계를 흘러가며 주체적인 판단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유일하게 진정한 외계 행성은 지구’라고 이야기해 왔던 그는 외부 환경과 인간의 내면에 펼쳐지는 의식/무의식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어 SF의 우주 개념을 ‘내우주inner space’로 전환시킴으로써 문학성을 꾀했다. 이와 같은 밸러드만의 문학적 특수성은 형용사 ‘밸러드풍Ballardian’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고, 사전에 등재되었다. '콜린스 영어사전'에 따르면 ‘밸러드풍’은 ‘J. G. 밸러드의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에서 묘사된 환경―특별히 디스토피아적인 현대성, 암울한 인공 경관, 기술적이고 사회적 혹은 환경적 발전의 심리적인 효과―과 유사하거나 연상시키는’이다. '영국인명사전' 항목에는 밸러드의 작품에 대해 ‘에로스, 타나토스, 대중매체와 신기술’로 가득 차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밸러드의 초기 단편은 각각이 짧은 세 시기로 구분 지을 수 있는데, 우선 자연의 성질이 끔찍한 변화를 겪고 묘하게 과학기술과 유사한 형상을 가지는, SF 시기라고 부를 만한 연대가 존재한다. 두 번째 연대에 들어서면 밸러드는 시간과 공간에 손을 대며, 존재의 깊숙한 본질까지 파고든다. 세 번째 연대에 이르면 그의 상상력은 더욱 종말론적 색채를 띠는데, 자연재해의 예언이 작품 속에 가득해진다. ‘밸러드풍’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예언적 디스토피아의 화풍이 완성된 것은 1960년대 중반 들어서이며, 이 단편들은 초현실적이고 대단히 함축적이다. 이들의 중심 주제는 어디까지나 디스토피아 그 자체이며, 주인공 또는 화자는 체제의 희생양이 되어 해악을 시연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종막의 해안」(1964)에 이르러 비로소 작품은 기존의 틀을 벗어던지는데, 그의 디스토피아는 더 이상 미래라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인물의 내면과 외면을 오가고, 독백과 대화의 경계를 규정할 수 없는 서술 방식이 그 뒤를 받쳐 준다. 예언적 현재가 미래를 대체하고, 문체와 형식이 개념을 따라잡으며, 이후 작품들에서 펼쳐질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밸러드의 후기 단편에서 디스토피아는 부차적인 주제가 된다. 이제 전산화된 경제, 테러, 독재정치, 시시한 외설물 등 현대적인 분위기의 무대에서 우주적인 변화가 발생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그는 다양한 장르와 서술 방식을 넘나들면서 현실의 모순을 직접 묘사하고 재단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속에 보이는 일부 작품들에서 디스토피아는 개인 안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세계는 담담하게 파국을 향해 나아갈 뿐, 그 원인은 피상적으로만 제공되거나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고통은 현실과 갈등을 빚는 주인공의 내면에만 존재하며,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조차 빈 수영장의 표의문자처럼 피상적인 존재로만 묘사되기에 이른다. 밸러드풍 디스토피아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두 단편 「우주 시대의 기억」(1982)과 「근미래의 전설」(1982)에서, 디스토피아를 구성하는 요소는 전 지구적 규모의 신경증이나 다름없다. 밸러드의 단편에서 가장 긴 연대를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작품들, 모텔과 우주여행과 암살 시도로 가득한, 무너져 가는 세계의 휘황찬란한 풍경이었다.

    당시의 독자들에게 밸러드가 발표하는 모든 작품은 새로웠다. 그는 「잠재의식 인간」(광고)과 「감시탑」(감시하는 국가) 등에서처럼 단편소설에서 다가올 미래를 예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자신은 ‘SF에서 선호하는 만들어진 미래가 아니라, 다가오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진짜 미래에 관심을 가졌을 뿐’이라고, 미래 발전을 예측한 게 아니라 그 주변의 세계에 대하여 썼다고 주장하면서 판단을 거부했지만, 현대의 삶은 놀랍고도 골치 아픈 방식으로 그의 상상과 계속해서 가까워지고 있다.

    책 속으로

    “박사님은 혼자가 아닙니다.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건 시간의 목소리고, 모두가 박사님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을 보다 넓은 견지에서 생각하세요. 박사님의 신체를 구성하는 모든 입자가, 모든 모래 알갱이들이, 모든 은하가 동일한 표식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방금 말씀하셨듯이 이제는 진정한 시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휴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계속 시계를 보고 있을 필요는 없어요.”
    _ 126쪽, 「시간의 목소리」에서

    자극에 반응하는 능력이야말로, 설령 그 반응이 비논리적일지라도 진정한 자유의 기준이라 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프랭클린의 자유는 삶의 중심에 존재하는 온갖 의무의 제약을 받는 피상적인 것이었다. 세 군데에 걸려 있는 주택 융자금,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수많은 칵테일파티, 온갖 가전제품과 옷과 휴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토요일 거의 대부분을 보내는 개인 진료 근무까지. 그가 홀로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직장으로 출퇴근하며 운전대를 잡고 있는 동안뿐이었다.
    _ 327쪽, 「잠재의식 인간」에서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724쪽 |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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