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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평전 '나이를 잃은 영원한 소년'의 이야기



책/학술

    피천득 평전 '나이를 잃은 영원한 소년'의 이야기

     

    향년 98세의 나이로 그가 좋아하던 5월에 세상을 떠난 피천득은 일생 흐트러짐 없이 겸손, 가난, 염결을 삼위일체처럼 청초하게 지켜왔다. 특히 '인연'의 짧은 마지막 문장-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은 얼마나 신선한 겸손의 극치인가? 네델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를 좋아한 금아는 진실로 "신에 대한 지성적인 사랑"을 보여준 가장 종교적으로 승화된 '속세'의 사람이었다.(본문 241쪽)

    '피천득 평전'이 그가 타계한지 10년 만에 출간되었다. 이 평전은 그의 삶과 문학을 따르고 싶어하는 제자 정정호 교수가 집필했다. 금아 피천득은 한국문학사에서 서정문학의 획을 그은 수필가이자 시인이다. 그는 유독 어린이를 노래한 시와 단편소설을 번역하는 데 힘썼다. 피천득 문학의 원형을 가히 '어린이 되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관점으로 진실하게 묘사하려고 했던 그에게, 어린이는 삶의 지표며 문학의 시작이었다. 이 책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이를 잃은 영원한 소년"으로 순수한 동심을 문학과 삶에서 고스란히 드러낸 피천득 문학의 큰 주제를 「프롤로그」에서 다뤘다.

    제Ⅰ부 생애는 금아의 삶과 문학 세계를 움직인 국내외 상황과 사람, 배경 이야기로 시작했다. 피천득은 나라를 빼앗긴 해에 태어나 열 살에 어머니를 잃었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그의 문학에서 중요한 뿌리가 되어 '엄마'와 '딸' 이야기로 이어진다. 또 경성제일고보 시절 스승이자 보호자였던 이광수와 상하이 유학 시절에 영향을 받은 안창호와의 관계, 그가 사랑한 시인 도연명과 황진이와 셰익스피어, 평생 친구 윤오영과 주요섭과 장익봉과의 관계를 다루며 금아의 문학 배경을 하나씩 만나보았다. 그리고 영문학 교수 시절과 1974년에 퇴임해서 타계하기 전까지 33년간 독서·음악·미술·만남에 몰두했던 노년기 삶의 예술적 승화와 기억의 축복까지 다루었다.

    제Ⅱ부 문학에서는 1930년 등단기의 초기 작품들을 살펴보고, 수필가이자 시인이며 번역가였던 피천득을 이야기했다. 더 나아가 1990년대 후반에 불기 시작해 큰 흐름을 만들었던 피천득 류의 서정적 수필문학, 즉 '피천득 현상'을 짚어보았다.

    제Ⅲ부 사상에서는 서정시와 수필이라는 순수미학에 철학과 정치, 종교와 사상이 개입할 수 있는가 하는 '피천득 문제'를 건드리며, 문학·철학·정치·종교 네 범주로 나눠 피천득 문학에 나타난 사상을 감성적으로 접근해보았다.

    「에필로그」에서는 '어린이 되기'로 시작한 이 책을 '나무 되기'로 끝맺었다. 피천득 문학에서 중요한 이미지인 '나무'는 땅(지상)과 하늘(해와 별)을 이어주는 상상력의 사다리다. '나무 되기'란 희망이 사라진 듯 보이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무의 감수성으로 웃으며 우주와 조응하게 하고, 작은 바람에도 몸을 흔들면서 즐겁게 춤추게 하는 축복의 무지개다. 말없는 나무의 사랑을 실천하며 삶과 문학을 일치시키려 했던 피천득의 철학을 엿볼 수 있고, 도덕적 감성으로 '사랑'을 실천하려 했던 '피천득 주의'로까지 나아간다.

    책 속으로

    이제부터 피천득 문학에 나타나 저항의식을 몇 편의 시와 수필을 골라 살펴보자.

    마른 잔디에 불을 질러라!
    시든 풀잎을 살라 버려라!

    죽은 풀에 불이 붙으면
    히노란 언덕이 발갛게 탄다.
    봄 와서 옛터에 속닢이 나면
    불탄 벌판이 파랗게 된다.

    마른 잔디에 불을 질러라!
    시든 풀잎을 살라 버려라!
    ('불을 질러라' 전문, '동광' 1932년 5월호, 12)

    정정호 지음 | 시와진실 | 408쪽 | 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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