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워싱턴에서] 트럼프의 뒤통수, 언제까지?

  • 2017-05-03 15:2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백악관 영상 캡처)

 

지난 3월 24일 미국 워싱턴 디씨를 방문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트럼프 신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간 조율의 빈도와 강도를 보면 전례가 없다"며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한 한미 공조를 확신했다.

심지어 그는 "한미간에는 긴밀한 조율 과정이 있을 것이다. 한국을 놀라게 하는 일은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 외교팀의 뒤통수를 세게 치고 들어왔다. 그는 미국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27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사드 비용을 내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한국 측에 통보했다"고 폭탄 발언을 내놨다.

그런가하면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30일과 지난 1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영리한 친구(smart cookie)'라고 칭찬한데 이어, 적절한 상황(right circumstances)이 되면 북한의 김정은을 그것도 "영광스럽게" 만날 수 있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역으로 지난달 12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한반도에) 무적함대(칼빈슨 항모)를 보냈다"며 "김정은은 큰 실수를 하고 있다"며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칼빈슨 항모전단이 한반도로 기수를 돌렸다고 밝힌지 열흘이 지나도록 배는 인도양에 머물고 있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소식이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피로 맺어진 동맹' 또는 '철판 위에 있는 견고한(ironclad) 동맹'이라고 일컬어지는 한미 동맹도 트럼프의 이른바 '협상의 기술' 앞에서는 한낱 한 장의 협상 카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같은 트럼프의 오락가락 발언 과정에서 '한미 간의 긴밀한 조율과정'은 없었다, "한국을 놀라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던 윤병세 장관의 말과 정반대로 한국은 트럼프 때문에 거의 매일 놀라고 있다.

아무리 대통령이 없는 정치적 공백기라고는 하지만 동맹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이고 혼란한 발언에 한미 동맹에 대한 믿음은 여지없이 추락하고 있다. '코리아 패싱'이라는 용어는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고위 외교당국자는 "(코리아 패싱이라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마다 스스로 자괴감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 '미국 가치' 어디갔나...미국에도 비판 봇물

한국 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의 경솔한 발언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미국에서는 해외에 주둔 중인 미군 병사가 전사하면 그는 영웅으로 추대된다. 그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이유는 미군 병사의 죽음이 다름 아닌 미국이 신봉하는 자유 민주주의와 인권, 즉 미국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희생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이 지켜온 가치 또한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 주민을 압제하는 김정은을 '스마트 쿠키', 즉 영리한 친구라고 칭찬하면서 그와 만남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초법적이고 무자비한 처형을 허용한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도 백악관에 초대한 사실이 알려져 빈축을 샀다.

또 자국 내 인권 문제 해결에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하고, 취임 초기에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에게도 호감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익을 위해서는 미국이 피를 흘려가며 지켜왔던 자유와 인권의 가치마저 뒤로 미룰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미국 내에서도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공화당 소속의 존 매케인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은 미국 현지시간으로 2일. 김정은을 영리한 친구(smart cookie)라고 칭찬한 것은 "전세계에 우려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같은 당 소속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미국 대통령으로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그 사람에게 궁극적인 정당성을 주는 것"이라며 "김정은을 정당화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CNN의 선임 에디터인 크리스 칠리자는 자신의 기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아주 다른 세계관을 가진 지도자들과 마주앉아 미국에 유리한 협상을 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김정은이나 두테르테와 만난다면 이는 회담 결과와 상관없이 세상에 아주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워싱턴포스트도 "미국의 6번째 교역 파트너이자 민주국가인 한국을 꾸짖고 모욕하면서, 미국을 파괴하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북한의 지도자를 찬양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게 되면 영광'이라는 말을 과연 쓸 필요가 있었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명분으로 혼란스런 메시지를 발산하면서 지켜보는 이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지만,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행태가 아직 변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0

0


제 21대 대통령 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