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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장석주, 사랑에 관한 탐사 보고서



책/학술

    시인 장석주, 사랑에 관한 탐사 보고서

    신간 '사랑에 대하여'

     

    시인 장석주가 사랑에 관한 탐사 보고서, '사랑에 대하여'를 펴냈다. 이 책의 부제는 '생의 아픔과 아름다움에 관한 주석들:우리의 사랑은 어디서 시작하여 어떻게 사라지는가'이다. 소제목은 '혼자, 누군가를 살아한다는 서, 로맨스, 속죄, 타자, 시간, 광기 과도함, 얼굴, 키스, 애무, 기다림, 갈망, 결혼, 덧없음,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독자의 현재 관심에 따라 눈길 가는 대로 펼쳐보면사랑의 각 속성에 대해 저자의 깊이 있는 통찰을 접할 수 있다. 아울러 사랑의 본질을 깊이 있게 연구한 다른 작가들의 사유도 함께 음미할 수 있다. 연인과 사랑에 빠져 있다면사랑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연인과 관계에서 고민과 갈등에 휩싸여 있다면 그 강을 더 수월하게 건너는 법을 깨우쳐 줄 것이다.

    기다림에 관한 장의 경우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 모리스 블랑쇼의 '기다림, 망각', 김현경의 '사람,장소, 환대', 일본 철학자 와시다 기요카즈의 '기다린다는 것', 질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구절들이 인용된다. 이들 인용구와 함께 저자 장석주의 사유가 목소리를 드러낸다.

    "기다림은 '망각'을 품는다. 연인과 헤어진 뒤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은 실연의 아픔을 지우면서 단념하고,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며, 한 점 희망을 품고, 기다린다. 오늘은 오지 않지만 내일은 꼭 올거야. 이 때 기다림은 불가능성의 세계 안에서 가능성을 꿈꾸는 일이다." (164쪽)

    결혼의 의미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리고 있는가. "결혼을 하면서 두 사람은 사랑에서 사회의 동반자 관계로 이동한다. 연애할 때와 결혼생활 중의 사랑방정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결혼은 습관과 경험을 공유하고, 자기와 다른 반쪽 사이의 상호작용을 이어가는 것이다. 결혼 관계에서 사랑은 법적 책임과 의무로 강제되는데, 강제되는 사랑은 관계를 메마르게 만들 수가 있다. 사랑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이상적인 결혼 관계란 각자 영혼의 성장을 이루면서 둘이 근원을 찾는 순례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상대의 에너지와 잠재력에 기대거나 이를 착취해서는 안 된다. 두 사람은 상상호 영향을 미치며 함께 가는 반려이고, 함께 그 본질을 찾아가는 동반자여야 한다. 한쪽이 너무 빨리 가서도 안 되고, 한쪽이 너무 늦게 가서도 안 된다. 서로 속도와 리듬을 맞추며 가야 멀리 갈 수 있다."(185-186쪽)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랑은 이야기를 낳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고,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대고 누군갈르 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도록 틈을 열고 공간을 내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210쪽)

    저자는 책을 이렇게 맺는다. "이 책은 사랑의 지침서도, 사랑의 의미를 탐구하는 책도 아니다. 사랑에 대한 지침과 의미에 대해 더 알고자 한다면 내 사유와 영감의 매개물이 되었던 더 유명한 책들을 찾아보기 바란다." 사랑과 연애의 본질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의 안내가 사랑의 광맥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책 속으로

    사랑 담론은 불후의 베스트셀러다. 작가들은 한 시대를 가로지르며 그 징후들을 포착하고 그것을 이야기화한다. 소설은 징후적이다. 소설들은 허구지만 징후들은 이야기 속에서 구체적 실감으로 살아난다. 작가들은 사랑의 달콤함과 쓰라림, 사랑의 시련과 실패가 빚는 비극에 대해 쓴다. 작가들은 왜 그토록 사랑에 집착할까? 사랑은 가장 원초적인 삶의 몸짓이다. 사랑은 삶의 핵심을 드러내는 존재-사건으로 다른 무엇보다도 육체의 욕망과 영혼의 가변성과 유동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사랑은 무수한 시와 소설들을 낳는다. _52쪽 「로맨스」 중에서

    절망과 불안, 위험과 모험을 제거해버린 안전한 사랑이 소비되고 있다. 소비되는 사랑, 속화된 사랑, 그게 오늘의 사랑이다. 누구도 더 이상은 괴로운 것도, 불안도 원치 않기에 그런 괴로움과 불안을 가져오는 사랑을 회피한다. 사랑의 불행이나 위기를 회피하는 게 당연시 된다. 안전한 사랑을 욕구하는 이들에게 사랑은 더 이상 ‘위반의 유토피아’가 아니다. 오늘의 사랑은 장애와 위기를 만나고 극복하면서 단단해질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사산한다. 왜냐하면 오늘의 사회에는 사랑을 흉내 내는 덜 익은 사랑, 서툰 사랑, 편협한 사랑, 이해타산에 춤추는 사랑들이 바글대며 들끓기 때문이다. 사랑에 목숨을 걸던 예전에 견줘 오늘의 사랑은 그 위엄이나 명예를 잃은 채 쪼그라들고 남루해졌다. 그것은 오늘의 사랑이 위험과 모험이 배제되고, 열정과 신비가 휘발된 채 편의점에서 쉽게 사는 소비재 같이 지나치게 가벼워진 탓이다. _68∼69쪽, 「속화」 중에서

    미지의 존재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자가 아니고, 그는 언제라도 사라질 존재다. 그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행동을 부추긴다. 사랑하는 대상은 내가 거머쥐지 못한 존재다. 사랑의 대상들은 내게서 달아나는 자들이다. 그를 붙잡지 않는다면 그는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불가능의 가능성에 제 몸을 던진다. 사랑은 약간의 얼빠짐, 무모함, 만용을 품는다. 많은 사랑이 앞뒤를 재지 않는 무모함에서 시작하는 것은 타자가 늘 달아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무모함에 의지해 제 몸을 던지지 않는 자는 사랑에 빠질 수가 없다. _78쪽, 「타자」 중에서

    기다림은 사랑을 더욱 애틋한 것으로 만들며, 사랑에 심연을 만든다. 사랑의 관계에서 더 많이 기다리는 자가 사랑에 대해 더 많은 열망을 품는다. 사랑의 관계에서 권력은 기다림의 양과 반비례한다. 항상 더 많이 기다리는 자가 덜 기다리는 자에 견줘 약자다. 대상에의 갈망이 크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약자의 자리에 서게 한다. 관계를 주도하는 자, 권력을 쥔 자는 기다리지 않는다. 갈망이 작은 자는 기다린다 해도 조금만 기다린다. _161쪽, 「기다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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