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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점심을 거르던 하루, 누구를 만났을까?



정치 일반

    박정희가 점심을 거르던 하루, 누구를 만났을까?


    - 역사가 논쟁이 아니라 역사전쟁이 된 이유
    - 역사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때문, 뉴라이트의 등장과 관련
    - 뉴라이트의 문제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생략해버리는 것
    - 정당성없는 지배자들이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 역사를 악용
    - 냉전체제도 역사전쟁의 원인
    - 이승만, 박정희 시절 한미관계 좋지 않았다. 갈등과 쟁점들이 있었다. 한미관계 복원 주장은 어불성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7년 3월 16일 (목)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박태균 교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 정관용> 광복절이냐 건국절이냐 논란으로 시작해서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거의 극에 달한 우리의 역사 논쟁. 사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반 논란의 배경에도 바로 이런 역사 인식, 역사 논란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런 역사 논란의 와중에 역사를 전공한 교수들이 여러 분 한데 모여서 쟁점 한국사라고 하는 두툼한 3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현대편을 대표 집필하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를 오늘 초대해서 한국의 역사 논쟁 과연 왜 이렇게 극심하게 벌어지는지 이야기 좀 나누겠습니다. 박태균 교수 어서 오십시오.

    ◆ 박태균> 안녕하세요.

    ◇ 정관용> 이 책, 기획 시작한 게 언제예요? 역사 논쟁 그것과 연결됩니까?

    ◆ 박태균> 그렇죠. 1년이 조금 더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기본적으로 국정교과서 얘기가 나올 때 국정교과서가 나오면 분명 논란이 많이 될 텐데 기본적으로 쟁점이 되는 부분들을 좀 알기 쉽게 그다음에 깊이 있게 이렇게 알리는 게 좋지 않겠느냐. 이걸 좀 고민을 했죠. 통사 방식으로 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쟁점으로 하는 게 좋을지. 아무래도 많은 독자분들이나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방식은 쟁점별 부분들이 큰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저는 지금에 있어서도 국사 교육, 한국사 교육도 잘못돼 있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 많은 걸 가르치려고 하니까.

    ◇ 정관용> 통사 위주로 하니까.

    ◆ 박태균> 네, 그렇게 가니까 학생들이.

    ◇ 정관용> 그냥 외우느라고 정신이 없지 생각할 겨를이.

    ◆ 박태균> 맞습니다. 역사에 대한 흥미도 잃어버리고. 실제 역사는 쟁점도 많고 논쟁도 많기 때문에 그런 것 속에서 역사를 하면 굉장히 재미있는 과목인데 암기과목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기획을 하는 과정에서 이걸 쟁점별로 한번 가보자. 그렇게 하더라도 결국은 전체 역사들이 엮어지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고 시작했습니다.

    ◇ 정관용> 방금 말씀하신 그 대목 참 중요한 대목이에요. 저도 중고등학교 때부터 역사교과서를 들여다 보면서 뭔가를 고민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사실 역사교과서란 학생을 고민하게 만들어야 되는 교과서 아닌가요?

    ◆ 박태균> 맞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 박태균> 저도 사실 제가 웃지 못할 기억 중의 하나가 대학교 가서 처음 미팅을 나갔는데 그때 상대편에 있었던 분이 제가 역사를 전공한다 그러니까 도대체 그런 걸 왜 전공하냐고.

    ◇ 정관용> 외우면 되는 걸?

    ◆ 박태균> 저를 너무나 재미없는 사람으로 보더라고요. 여하튼 그런 인식들이 굉장히 강하게 박혀 있기 때문에 그게 사실은 한국에서 역사 인식이 낮은 중요한 원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기왕 얘기나온 김에 방금 표현한 박태균 교수의 말의 배경에는 역사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이게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거죠?

    ◆ 박태균> 그렇죠.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데 그 다르게 보이는 거가 모두 용인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 정관용> 물론이죠.

    ◆ 박태균> 시대적인 상황과 과제에 맞추어서 다르게 볼 수 있는 부분들이 있고요. 또 다른 한편으로 역사는 굉장히 위험하게 이용이 될 수가 있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 박태균> 대부분의 독재자라든가 전체주의 체제가 역사를 통해서 자기 정권을 정당화하고 이걸 통해서 국민통합이라는 그런 기치 아래에 자기 권력을 강화해 나가기 때문에 사실 역사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시대적 과제에 맞추어서 해석하고 또 그 과정에서 건전한 논쟁이 이루어지는 건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 박태균 교수 (사진=시사자키 제작팀)

     


    ◇ 정관용> 세 권이 하나는 전근대편, 고대사부터 시작하고 하나는 근대편, 일제 시대까지 감당하고 그다음에 현대편 세 구성인데 쟁점은 모두 24가지를 뽑았어요.

    ◆ 박태균> 24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 정관용> 일반 청취자들이 제일 관심 많은 데는 현대편이 되겠습니다마는 전근대나 근대에서는 예컨대 어떤 쟁점들이 다루어지고 있습니까?

    ◆ 박태균> 저는 현대사에 관심이 많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고대사에 관심이 많아요.

    ◇ 정관용> 역사학계에서는?

    ◆ 박태균>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일반분들도 지금 제가 확인은 안 해 봤는데 세 권 중에 제일 많이 나가는 게 전근대편이 제일 많이 나갈 거예요.

    ◇ 정관용> 현대가 아니고요?

    ◆ 박태균> 현대가 아니고요.

    ◇ 정관용> 어떤 쟁점을 다루길래 그래요?

    ◆ 박태균> 맨 처음에 있는 게 제일 큰 거죠. 고대사를 어떻게 볼 것이냐?

    ◇ 정관용> 우리 고조선이 실체냐 아니냐.

    ◆ 박태균> 뿐만 아니라 영역이 어떻게 됐었는가. 그다음에 가장 최근에 논란이 됐던 게 낙랑의 위치가 어디냐. 그게 평양 쪽에 있었느냐, 한4군의 위치죠. 그게 우리 옛날 역사에 중국 쪽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있었느냐 이것과 관련되기 때문에 사실 그거 관련해서 국회에서도 얘기가 있었고 또 실제로 역사를 전공하지 않으신 분들이 몇 가지 사료를 가지고 와서 위치가 잘못됐고 이거를 예전처럼 낙랑을 평양에 있도록 하는 사람들은 이게 다 식민사관에 근거한 학자들이다, 이렇게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어요.

    ◇ 정관용> 그렇습니다.

    ◆ 박태균> 그런데 그런 것도 기본적으로 역사에 맞추어서 객관적으로 잘 서술을 해 나가고 또 그 과정 속에서 한국의 역사 인식이나 역사 서술이 세계사적인 보편성을 얻어나갈 때 사실은 그 역사가 진정한 역사가 될 수 있는 거고 또 그런 부분들 속에서 객관적 자료를 가지고 고대사뿐만 아니라 또 삼국시대 또 그 이후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서술하는 게 제1권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정관용> 두 번째 근대편에서는 어떤 게 쟁점입니까?

    ◆ 박태균> 근대편에서는 아무래도 저희 국정교과서에서도 제일 논란이 됐었던 대한민국 수립에 대한 것. 임시정부와 19년에 생겼던 임시정부와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것을 두 개를 연속성에서 봐야 될 것인지.

    ◇ 정관용> 처음에 제가 얘기했던 건국절 논란.

    ◆ 박태균> 그렇죠. 그걸 단절로 봐야 될 건지 그다음에 일본의 과거사 문제. 저희가 얘기하는 성노예 소위 위안부라고 불리는 문제가 근대편의 제일 마지막하고 현대편의 맨 앞부분에 연결이 돼서 얘기가 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이렇게 쟁점 위주로, 통사가 아니라 쟁점 위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라는 식으로 역사를 접근해야 된다. 아까 우리가 얘기했잖아요. 그리고 건강한 논쟁이 지속되는 건 바람직하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박태균 교수도 직접 썼던데 왜 우리는 논쟁이 아니라 전쟁으로 갑니까?

    ◆ 박태균> 그게 사실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연도를 정확히 얘기하면 2002년, 2003년 정도인 것 같고요. 조금 더 올라가면 1990년대 중반부터인 것 같은데 그때부터 큰 언론에서 이승만과 나라 살리기를 하고 그다음에 현대사를 다시 봐야 된다, 이렇게 얘기가 나오면서부터 사실 이 논쟁이어야 될 게 전쟁이 돼버렸어요.

     


    ◇ 정관용> 그러니까 왜 그런 거냐고요?

    ◆ 박태균> 이데올로기적인 게 되어 버린 겁니다. 정치화가 돼버린 거죠. 원래 저희가 2000년대 초반까지 했던 논쟁들이 예컨대 대중독재론이라든가 그러니까 독재라는 게 어떻게 가능했는가. 거기에는 사실 국민의 책임도 있는 게 아니냐 이런 식의 그게 주로 독일 역사학자들이 세계학계에서 했던 논쟁들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그래서 우리도 그걸 하자는 게 하나 있었고. 또 하나는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들이 자꾸 나오면서 이게 보니까 일본만 문제가 아니고 우리 교과서도 문제더라. 우리 교과서를 좀 돌아보자. 이렇게 해서 역사학계 내에서 우리가 뭔가 좀 새로운 논쟁들을, 21세기에 맞는 논쟁들을 해 보자고 하는 와중에 갑자기 뉴라이트라든가 이런 정치적으로 보면 아주 극보수적인 이런 분들이 나와서 이전에 정말 해야 됐던 논쟁들이 지금 다 안 된 거예요. 그런데 이분들이 나와서 논쟁을 하는 게 어떻게 보면 이 논쟁이 정말 해석의 논쟁이고 사실을 가지고 하는거기는 한데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뭐냐 하면 본인들한테 불리한 부분들은 생략을 해 버리거나.

    ◇ 정관용> 생략.

    ◆ 박태균> 불리하니까 이 부분은 왜 굳이 서술을 하느냐.

    ◇ 정관용> 빼버리자.

    ◆ 박태균> 예컨대 이런 거죠. UN이 한국 정부를 승인할 때 어떻게 승인했느냐. 그러면 거기에 두 가지 내용이 있어요. 대한민국 정부는 한반도에서 유일한 정부다. 그런데 그 정부는 선거가 이루어진 지역에서만 합법 정부다. 그런데 뒤에 부분은 빼버리는 거죠. 이런 식의 부분들이 돼 버리니까 이게 논쟁이 아니고 그냥 전쟁이 돼버린 거예요. 논쟁이 되려면 사실에 대한 정확한 물증을 가지고 이거에 근거해서 해석의 논쟁이 돼야 되거든요. 그런데 이게 아니고 사실을 생략을 하면서 주장을 하거나 또는 심지어는 사실을 왜곡하는 것도 있었고요. 어떤 경우에는 기존의 정부에서도 인정한 예컨대 4. 3사건 아주 대표적인 케이스죠.

    ◇ 정관용> 제주 4. 3.

    ◆ 박태균> 정부에서 4. 3위원회까지 만들어서 국무총리 산하에다가 만든 걸. 거기서 핵심은 억울하게 죽었던 양민들의 문제인데 이걸 이제 완전히 공산주의자들로 다 해서 이걸 어떻게 기념사업을 하냐, 이런 식의. 얘기가 이렇게 되니까 역사적인 사실들을 근거를 가지고 풀어나가게 되는 게 아니고 그냥 부딪침만 있는 거예요.

    ◇ 정관용> 그렇게 한걸음 더 들어가면 역사 논쟁을 이데올로기화하고 하는 이유는 뭐냐고요?

    ◆ 박태균> 그걸 가지고 본인들을 합리화하는 거죠. 역사라는 게 제일 많이 이용되는 게 특히 근대 국가 이후에는 지배자들이 자기를 합리화하는 거죠.

    ◇ 정관용> 지배자의 합리화. 기득권자의 합리화.

    ◆ 박태균> 옛날에는 지배자를 합리하는 방식이 신화를 가지고 했잖아요. 너희는 엄마 뱃속에서 나왔지만 우리는 알에서 나왔다. 우리 아버지는 두꺼비다. 나는 너희와 다른 사람들이다라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는데 현대에 와서 그 권위는 사실 선거와 민주주의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런데 근대 이후의 정권들을 보면 선거와 민주주의에서 당선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요.

    ◇ 정관용> 군사독재, 쿠데타 이런 거죠.

    ◆ 박태균> 아니면 선거로 인해서 했지만 헌법을 바꾸면서 독재 체제가 됐다거나. 그런데 이런 경우에 자기를 어떻게 합리화할 거냐. 이거는 역사를 고치는 겁니다. 역사를 고치고 역사를 획일화하면서 자기한테 불리하는 것들은 없애는 거죠.

    ◇ 정관용> 그러니까 지배자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역사를 시대에 맞게 올바로 해석하면 자기들의 기반이 흔들리는 거죠.

    ◆ 박태균> 그렇죠. 그건 기본적으로 그러니까 지금 저희가 2000년 딱 들어서면서 예컨대 영국의 BBC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든 게 피플스 센추리 해서 시민의 세기, 인민의 세기, 국민의 세기 이런 걸 만든 게 뭐냐 하면 20세기 이후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일반 대중들이 역사의 주인이 됐어요. 그래서 그 대중들이 했던 여러 가지 움직임들을 봐야 되는데 그건 사실은 기득권 세력의 입장에서 봐서는 결코 유리한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흐름들을 다시 좀 되돌리거나 바꾸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플러스 제가 하나 더 주목을 하는 건 사실 냉전입니다.

    ◇ 정관용> 냉전.

    ◆ 박태균> 이게 대부분의 우리나라뿐 아니라 개발도상국가들의 독재자라든가 전체주의라는 게 있을 수 있었던 제일 중요한 이유가 사실 냉전입니다.

    ◇ 정관용> 그렇죠. 적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쩔 수 없어, 이런 거잖아요.

    ◆ 박태균> 사실과 관계없이 일단은 적을 우리가 이기려고 그러면 이 이데올로기 하에서 우리가 단결을 해야 된다.

    ◇ 정관용> 맞습니다.

    ◆ 박태균> 그렇게 해 왔던 것이 사실은 많은 역사를 왜곡했고 많은 움직임들에 제동을 걸었었어요.

    ◇ 정관용> 제 식으로 정리하면 그런 냉전 체제 하에 한국은 군사독재가 지속되면서 역사는 억압되어 왔었는데. 탈냉전과 군사독재의 종식 이후에 역사학계에서 다양한 논쟁과 다양한 토론을 시작하니까 기득권층들은 이건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라는 식으로 해서 극구 저항하게 되고 그 저항이 결국 전쟁으로 치닫게 하는 거 아닙니까?

    ◆ 박태균> 그런 것 같습니다.

    ◇ 정관용> 논쟁 자체를 못 하게 하려고 하니까.

    ◆ 박태균> 거기에는 굉장히 사실은 이분들이 공부 좀 하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사실 탈냉전 이후에 나타났던 논쟁이 이분들이 보기에는 다 좌파들의 논쟁으로 보시는 거예요.

    ◇ 정관용> 그렇죠.

    ◆ 박태균> 그런데 그 안에도 사실은 보수와 진보가 또 있었어요, 그 논쟁 속에서도. 예컨대 대중독재 논쟁이라는 게 대표적인 논쟁인데 박정희 정부 시기의 독재를 어떻게 볼 것이냐. 이걸 보는 데 있어서 이게 보수적인 시각의 분이 있었고 진보적인 시각으로 보는 분이 있었어요. 그게 또 식민지 시기를 바라보는 눈하고도 관련이 돼요. 그런데 이분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역사학자들은 다 좌파예요. 그러니까 예컨대 이번에 국정 역사교과서 필자들도 보면 그렇고 이분들이 과거에 나왔던 교과서에 대해서 판정을 내리는 것도 그 전제가 역사하는 사람은 다 좌파이기 때문에 역사하는 사람만 써야 되느냐. 그러니까 다른 전공한 사람들이 역사책을 쓰는 거죠. 실제 누가 썼는지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상태예요. 참여한 사람은 있지만 이 사람이 어떤 부분을 썼고 누가 감수를 했고 이런 것도 없거든요. 이렇게 되면 첫 번째는 역사 인식에 발전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발전을 하려고 하면 세계학계하고 해야 하는 거고 국정교과서가 나왔을 때에 그 많은 해외 학자들이 그걸 반대하는 성명을 냈던 것처럼 사실 외국에서 볼 때 한국의 역사가 완전히 후진국이 되는 거예요.

    ◇ 정관용> 그렇죠.

    ◆ 박태균> 어떻게 그런 발상들이 나올 수 있는가.

    ◇ 정관용> 그 정도만 하면 청취자들 대부분이 알아들을 수 있을 거고 왜 논쟁이 아니라 전쟁이 되는가를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처럼 논쟁 자체를 피하려고 정치화, 이데올로기를 하려고 그런 세력들은 심지어 역사학자들을 사찰까지 한다면서요.

    ◆ 박태균> 글쎄요, 그런 얘기들을 들었는데 그게 사찰을 한 건지 아니면 소위 얘기하는 블랙리스트가 있는 건지 그건 소문들은 무성합니다. 그래서 사실 역사 전공하신 분들 중에 지난 몇 년 동안은 국가와 관련된 프로젝트 신청 전혀 안 하신 분들도 있고 또 이제 역사학자들이 내는 저널 중에 국가에서 학술잡지들을 지원하는 그런 게 있는데.

    ◇ 정관용> 전혀 지원이 안 되고.

    ◆ 박태균> 일부는 지원이 끊긴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무슨 뚜렷한 어떤 근거를 대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 정관용> 블랙리스트라고 의심이 되네요.

    ◆ 박태균> 의심은 되는데 물증이 없습니다. 그거는 지난번에도 특검 수사하면서 나왔지만 지금 문화계는 그 리스트가 나왔잖아요. 그런데 그 외에 모든 분야에 광범위하게 있을 거다라는 얘기는 나왔지만 사실 물증이 없기 때문에.

    ◇ 정관용> 물증은 없으나 특히 역사학계는 있을 것 같다.

    ◆ 박태균> 좀 심증은 갑니다.

    ◇ 정관용> 현대사 파트를 쟁점별로 쭉 다루셨는데 거기에 베트남 전쟁 쪽을 쓰셨잖아요. 베트남전은 보통 우리가 거룩한 이념으로 말하면 자유세계 수호를 위해라고 얘기하지만 속으로는 돈 벌기 위해, 이렇게 해석을 하는데, 아닌가요?

    베트남 전쟁에 참가할 장병들이 서울역을 향해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 박태균> 그거는 맞습니다. 맞고 또 그렇게 해석하려고 하고요. 그런데 제가 문제제기하는 거는 기본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갈 때 우리가 돈 벌러 간다고 할 수 없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됐든 간에 갔던 목적은 남베트남 정부를 베트콩이랑 북베트남으로부터 지키러 갔다.

    ◇ 정관용> 자유세계 수호.

    ◆ 박태균> 그런데 남베트남이 패망했단 말이에요. 그러면 왜 패망했는가를 떠나서 첫 번째는 목적에 실패했잖아요.

    ◇ 정관용> 실패했죠.

    ◆ 박태균> 그러면 사실은 정부가 국민들한테 사과해야 돼요. 이게 사실 안 가도 될 때 가서 5000명이 넘는 우리 한국 군인들이 죽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거기 양민들을 죽였다는 그런 오명까지 쓰게 했다, 이건 내가 정부가 진짜 미안하다. 갔던 군인들한테 사실 다 사과를 해야 되는 부분들이고요. 두 번째는 지금 우리가 보더라도 도대체 왜 남베트남 정부가 패망했는가? 남베트남 정부는 남베트남뿐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한테 지키고 싶지 않은 정부였어요.

    ◇ 정관용> 배척당했다?

    ◆ 박태균> 아니, 국민들이 지키고 싶지 않았던 정부였기 때문에 그러면 국가 안보라는 게 있을 수 없죠. 그런데 그 당시에 한국 정부가 얘기했고 또 최근에도 얘기하는 거는 결국에는 다 사회가 분열되면 이런 최후를 가져온다. 그러니까 분열되지 말고 우리 이렇게 하나가 돼서 가자 이런 얘기를 하는데 오히려 저는 정부가 해야 되는 얘기는 우리는 남베트남하고 다르게 여러분들이 지키고 싶은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우리가 그걸 통해서 우리 국가 안보를 든든히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옛날처럼 냉전 때야 냉전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라고 그러지만 지금 시대에는 제일 중요한 거는 국가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지키고 싶은 정부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게 바로 곧 국가 안보라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베트남전을 통해서 우리 정부가, 우리 국가 전체가 생각하고 받아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이거에 대한 쟁점이군요.

    ◆ 박태균> 그렇죠.

    ◇ 정관용> 현대사편에서 가장 문제적 인물이라고 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일 텐데. 제가 이 책 서문에도 조금 봤지만 전혀 안 알려졌던 새로운 모습들이 당장을 하네요?

    ◆ 박태균> 네, 그러니까 예컨대 한미 관계 속에서의 모습들이 많이 얘기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얘기가 됐던 건 1970년 8월에 미국의 부통령이 방문을 했을 때 그때 박정희 대통령과의 회담 얘기 이런 얘기가 지적이 됐고요. 사실 이런 케이스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 정관용> 회담이 어쨌길래요.

    ◆ 박태균> 그때 원래 예정했던 시간보다도 훨씬 넘어가면서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그러니까 그 당시에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가 아주 심각한 갈등, 쟁점들이 있었다라는 건 보여주는 건데요. 그때가 주한미군의 1개 사단이 철수할 때입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한국군을 파병할 때 원래 그 전에 존슨 행정부하고 했던 약속은 우리가 가 있는 동안은 철수하지 않는다. 감축도 안 하고, 주한미군도 감축도 안 하고 철수 안 한다. 만약에 하면 사전에 협의를 하겠다고 그랬는데 1969년에 닉슨 대통령이 들어오고 나서 박 전 대통령이 닉슨 대통령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을 했어요. 그때 닉슨 대통령이 사실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 일체 언급을 안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회담 끝나고 나서 두 달 지나고 나서 밑에 관리들한테 지시를 내려요, 주한미군의 규모에 대해서 조사를 해라. 이게 적절한 규모인지 줄일 수 있는지. 그러고 나서 한국 정부와 사전에 아무런 논의도 하지 않은 채 주한미군의 1개 사단 감축을 결정을 해서 한국 정부에 통보를 한 거예요.

    ◇ 정관용> 그냥 통보.

    ◆ 박태균> 그러니까 한국 정부는 지금도 우리 군대가 베트남에 가 있는데 원래 했던 약속을 어긴 게 아니냐. 굉장히 사실은 기분이 안 좋은 상태에서 이 회담을 한 거였죠.

    ◇ 정관용> 박정희 대통령이 막 따진 거예요?

    ◆ 박태균> 그랬겠죠. 회의록이 없으니까 저희가 추측을 하는 거죠. 그런데 그런 케이스들이 상당히 많았어요. 1953년에 반공포로 석방하고 나서 그때 로버트슨이라는 사람이 특사로 와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서. 사실 미국으로서는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게 미국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논의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고 또 1968년에 청와대 습격사건하고 푸에블로호 사건이 있고 나서 그때도 미국 쪽에서 특사를 보냅니다. 그 특사하고 또 박정희 대통령하고 회담이 굉장히 길게 이어지고요. 사실 그때 회담은 그때 특사로 오셨던 분이 나중에 미국에 가서 보고를 해요. 사실 그 회담록은 있습니다. 어쨌든 그런 어떤 숨겨졌던 이야기들. 저희가 이렇게 생각할 때는 이승만 대통령 때, 박정희 대통령 때는 한미 관계가 굉장히 좋았을 것이다.

    ◇ 정관용> 굉장히 좋았을 것이다 했는데 갈등이 많았다.

    ◆ 박태균> 너무나 많았죠. 사실 72년 같은 때에도 보면 그 당시에 주한 미국 대사였던 하비브라는 사람이 본국에 보내는 전문에 첫 문장이 뭐냐 하면 한미 관계는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었다,이게 첫 문장이에요. 그런데 사실 2003년에 노무현 정부 들어섰을 때 그때 이제 아까 말씀드렸던 역사 쪽으로 공격하셨던 분들의 얘기가 뭐냐 하면 한미 관계를 복원하자. 사실 제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도대체 뭘 복원하자는 거냐. 그러면 이승만, 박정희 정부 때 서로 싸웠던 관계를 복원하자는 건가. 물론 전두환 정부 때는 한미 관계가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사실 그 시기 전두환 정부하고 노태우 정부의 초기 시기 이 시기를 제외하고는 한미 관계라는 게 항상 쟁점이 있습니다, 갈등이 있고.

    ◇ 정관용> 요즘 미국에 대해서도 노라고 말할 때는 필요하면 해야 된다 이게 과연 맞는 말이냐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데 이게 정말 쓸 데 없는 얘기죠.

    ◆ 박태균> 말이 안 되는 거죠. 그건 사실 어느 나라에 대해서나 할 수 있는 얘기를 해야 되는 거죠. 또 저는 사실 그걸 어떻게 보면 미국 쪽에서도 바란다고 생각하는 게 언젠가 제가 미국 자료를 보는데 거기에 뭐라고 나오냐 하면 한국이 너무 불편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불편한 이유가 한국이 너무 따라온다는 거예요, 그냥. 그런데 뭘하면 서로가 협상을 하고 뭘 해서 가야 되는데 그냥 따라오니까 이것 자체도 너무 우리한테도 불편하다. 이게 아마 제가 지금 기억에는 60년대 초중반에 나온 문서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그 문서를 보면서 역시 국가와 국가의 관계라는 것은 일정한 정도의 긴장감이 흐르는 게 서로 간에 편한 그런 관계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 정관용> 이처럼 우리가 전혀 모르던 역사적 사실들도 담겨 있으면서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좀 어떻게 생각하는 게 옳을까라고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 쟁점들을 묶은 쟁점 한국사. 전체적으로 이제 다 책을 펴내고 나서 우리 독자들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한마디로.

    ◆ 박태균> 역사에 더 관심을 많이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사는 외우는 과목이 아닙니다.

    ◇ 정관용> 여기까지 말씀 들을까요. 오늘 고맙습니다.

    ◆ 박태균> 감사합니다.

    ◇ 정관용>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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