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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김인숙·권여선이 기록한 '386세대의 후일담'



문화 일반

    공지영·김인숙·권여선이 기록한 '386세대의 후일담'

    [페미니즘으로 문학 읽기 ⑨] "살아남은 자"의 드라마와 1990년대 문학사의 젠더화

    가히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근 2년 간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전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졌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문화를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비평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들도 진행되고 있다. 성균관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가 주관하고 성균관대 문과대학 CORE사업단이 후원하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도 그 흐름 중 하나다. 한국문학과 민주주의에 대해 의미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만들어진 이 강의는 13일부터 24일까지 평일 열흘 동안 이어진다. 총 10강을 지상중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남성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방탕하고 문란한 '신여성'
    ② '독립적 존재' 대우 못 받은, 식민지 조선의 '배운 여자들'
    ③ 70년 전,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여성들
    ④ 소녀상, 누드, '눈길'과 '귀향'… 위안부가 표현되는 방식
    ⑤ '교란된' 젠더, 이성애 거부하는 남성과 '남장' 여성의 등장
    ⑥ '작가' 김승옥은 왜 작품에서 거듭 자기 죄를 고백했을까
    ⑦ 평단이 혹평한 여성소설 '생의 한가운데', 대중은 열광했다
    ⑧ "국가가 인준한 1등 시민"인 '군인'과 그 나머지
    ⑨ 공지영·김인숙·권여선이 기록한 '386세대의 후일담'
    <계속>

    이제 586세대가 되어버린 과거 386세대는 1980년대 대학 내 운동권 학생들, 넓게 보면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세대를 말한다. 학생운동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강한 정치적 자의식을 갖고, 역사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지녔으며, 집단주의적 문화에 의한 공동체적 연대감을 느끼는 이들로 정리할 수 있다.

    특히 1980년 5월 일어난 광주 항쟁은 386세대들에게 잊을 수 없는, 아니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었다. '살아남은 자의 드라마와 1990년대 문학사의 젠더화-386세대 여성 후일담소설'을 발제한 김은하 연구자(경희대)는 당시 대학가를 '장례식의 사회'라고 불렀다. 죽음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상주의 마음으로 장례식을 지속하며 '압도적인 죄의식'을 공유했다는 설명이다.

    386세대는 '진정한 나'를 추구하는 태도를 본격화한 세대이기도 했다. 비판의식, 민중에 대한 부채의식, 소외집단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면서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대를 시도한 집단이자, 외부의 강압적 규제나 체벌 없이도 스스로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도덕 양심'이 있다고 믿었다.

    ◇ '여성 386세대'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영상 캡처)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이루려고 했던 열망은 1980년대를 살아가는 많은 시민들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성취는 '서울 명문대에 다니는 엘리트 남성 대학생'의 몫으로만 평가되기 일쑤였다. 여성, 노동자, 농민도 분명 '주체'였으나, 언어와 매체를 가지고 글을 쓸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소수가 '80년대의 기억' 자체를 자기 세대만의 기억으로 전유한 셈이다.

    앞서 밝혔듯, 80년대 시대의 격변 현장 속에는 당연히 '여성'도 있었다. 김 연구자는 '여성 386세대'를 △여성 혹은 여류라는 '제도적 성'의 규범을 벗어나 근대적 개인이 되기 위해 광장에서 성숙의 통과제의를 시도한 교양 세대 △중산층 가족의 딸들로 고등교육의 혜택을 받았지만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에서 성차별 이데올로기에 억눌린 세대 △학내 학생운동 문화의 평등주의에 대한 기대로 여성보다 '인간'이 되고자 한 세대라고 정리했다.

    김 연구자는 "여성은 개인이 아니었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사회적 성이 명령한 '옳은 삶'을 내면화해 어떤 '말씀'대로 행동해야 하는 제도적 인간이었다. ('여성 386세대'는) 소위 '착한 여자'라는 성규범을 벗어나 '나도 개인이 되겠다'고 주장하며 굉장한 '집단'으로 등장했던 세대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여성들이 '개인'으로 인정받고자 했던 이유는 자명했다. 긴박하기 그지없는 투쟁의 현장에 함께 있었음에도 남성과 여성에게 부여되는 역할은 판이했다.

    김 연구자는 "당시 대중집회는 매우 폭력적이었다. 돌, 화염병 던지고 (경찰에 밀려) 다치고 끌려가기도 하고. 그런데 여학생들은 시위대 뒷편에서 휴지를 들고 서 있었다. 일종의 간호대처럼. 기분이 묘했다. (남자들은 시위대 앞쪽에서) 화염병 던지는데 우리는 겨우 휴지 들고 다니면서 눈물 콧물 나는 사람들을 챙기는 비루한 역할을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어, "나중에 어떤 무용과 여학생이 화염병을 던진 사건이 있었다. 그 애는 '우리도 별로 밀리지 않는다. 용기만 내면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남학생들은 '너희는 걸음도 늦고 빨리 도망갈 수 없어서 (화염병을 던지면) 시위대 앞쪽에 있는 남학생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 "나만 비겁하게 살아남았구나"를 뿌리로 한 '후일담 소설'

    2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청년허브에서 김은하 연구자가 '살아남은 자의 드라마와 1990년대 문학사의 젠더화-386세대 여성 후일담 소설'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수정 기자)

     

    강렬한 민주화 운동의 기억을 가지고 있던 386세대들은 '후일담 소설'을 탄생시켰다. 김 연구자는 '후일담 소설'을 "90년대 이후를 배경으로 80년대 세대의 치욕적 현존을 주제로 한 소설"이라고 정의했다. 한마디로 "내가 살아있는 게 너무 부끄럽구나" 하는 의식을 담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80년대 혁명의 열정을 고수하지도, 90년대의 탈이념적 일상을 승인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전적 회고를 통해 과거와 현재, 이상과 현실, 80년대와 90년대를 대조"하며 "자기의 비루한 내면"을 쓴 소설이 후일담 소설이라는 설명이다.

    '후일담' 소설을 쓴 남성작가로는 김영현, 방현석, 김영하, 김소진, 박일문 등이 있었고, 여성작가로는 공지영, 김인숙, 권여선, 최영미, 김형경, 오수연, 이남희 등이 있었다.

    후일담 문학은 '수치심과 죄책감'이라는 감정동력 아래 쓰여졌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남성 후일담'과 '여성 후일담'의 내용과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주로 남성들이 기록한 남성 후일담은 일종의 노스탤지어 문학처럼 '향수 충동'과 연동하면서 과거(80년대)를 순결한 영웅의 시간으로 담아냈다면, 여성들이 기록한 여성 후일담은 '비루한 시간'에 가까웠다.

    김 연구자는 "여성 후일담 소설은 '남성과 여성,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정신과 육체, 계몽과 욕망, 주체와 타자, 성과 속' 등 위계적 이분법이 공고한 386세대의 남성중심문화 속에서 여성이 겪은 좌절과 혼란을 그려냈다"고 밝혔다.

    ◇ 숭고한 여성 주체 내세워 '인정 투쟁'에 앞장선 공지영

    (사진=공지영 작가 트위터)

     

    여성 후일담 소설을 쓴 대표적인 작가로는 공지영이 있다. 1963년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의 후일담 소설 특징은 '숭고한 여성 주체'를 내세워 '인정 투쟁의 전략'을 썼다는 것이다.

    국내 대표적인 문학 권위지 '창작과 비평'에서 '동트는 새벽'(1988)으로 등단한 그는 '80년대가 남자들만의 기억으로 대표되도 괜찮아? 거기에 여자도 있었다'는 것을 강조한 작가였다.

    김 연구자는 "'동트는 새벽'은 후일담은 아니지만 매우 상징적인 소설이다. 평범한 부르주아 집안의 딸이 가출하고 조직활동하고 위장취업한 후 구로 항쟁에 참여해서 경찰서 끌려가서 매맞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 여성들과 만나 연대하고 '광주정신'을 배운다는, 굉장히 전형적인 '민족민주 진보주의 문학' 안에서 쓰인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공지영의 후일담 소설로는 그의 대표작이자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고등어'(1994)를 꼽을 수 있다. 대필작가 명우에게 과거 같은 조직원이자 불륜의 애인이었던 은림이 병든 채 귀환해 죽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김 연구자는 "은림은 아주 감정적으로 반응해서 운동권 내에서 비판받는 '열등생'이었으나, 가장 마지막까지 운동판을 지킨 사람이었다. 그는 말 그대로 '성모처럼' 죽어가는데, 이런 성스러움, 숭고함, 희생을 극대화하면서 존재 증명에 나선다"며 "그 '피학성'(자신이 학대당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병적인 특성)이 재밌더라. 처절한 자기 죽음을 보여주는 식의 글쓰기"라고 바라봤다.

    ◇ 김인숙의 '여성성 되찾기'

    1963년생으로 연세대 신방과를 졸업한 김인숙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상실의 계절'(1983)이 당선돼 데뷔했다. 그는 여대생의 파격적인 성을 다룬 소설을 쓰다 1986년을 전후로 '정치참여적 글쓰기'로 전환한 인물이다.

    김 연구자는 "'여성성 되찾기'란 육체와 욕망을 과도하게 억업하고 부정한 80년대 진보 문화의 엄숙성과 남성적 권위주의에 대한 공격의 욕망"이라며 "인성, 일상, 성과 사랑, 소비 등 여성적인 것에 대한 혐오 문화를 비판하는 목소리였다"고 전했다.

    김 연구자는 "90년대 들어서는 개인과 사회, 나와 타자, 글과 말, 욕망과 당위, 욕망과 규범 속에서 자기 혹은 문학을 잃어버린 불행한 여성 작가의 초상이 나타나 있다"며 "단편 '바다에서'를 보면 통속적 글쓰기를 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나타나 있는데, 정말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인지 낙인의 폭력으로 부끄러움을 '뒤집어 쓴 것'인지를 살펴야 한다. 후자에 가깝다고 본다"고 말했다.

    ◇ 교양 과정에 '실패한' 여성 그린 권여선

    권여선 작가의 데뷔작 '푸르른 틈새'

     

    1965년생으로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한 권여선은 후일담 소설 안에서 '교양 과정에 실패한' 사람을 다룬다. 1996년 여성 후일담 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푸르른 틈새'로 데뷔했다.

    '푸르른 틈새'에는 "대학 풋내기 시절, 내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한시바삐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어른이란 모름지기 정치와 성에 대해 확고부동한 입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따라서 내 수련과정에 필요한 것은 '정치 용어 사전'과 '성 용어 사전'이었다"고 말하는 여성 주인공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는 가투(거리 시위) 나갈 때마다 너무 무서워서 막걸리를 마셔야만 했고, 그럼에도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조직에서 추방당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386세대 시간의 언저리를 떠돌고 있다는 것을 큰 줄기로 한 소설이다.

    김 연구자는 "권여선은 아주 심오한 소설을 써 해석이 어려운 편"이라며 "미학적 포장을 많이 안 한다. 날것이고 거칠다. 남한테 말하기 어려운 '찌질한' 감정이라도 그 가정의 끝까지 가 보려는 게 있다. 여성작가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2012년 발표한 '레가토'는 70년대 후반 반독재 투쟁에 가담했던 학생운동권들의 30년 후 이야기를 담았는데, 김 연구자는 권여선의 후일담 소설이 '발전'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자는 "운동의 경력을 훈장삼아 권력을 갖게 된 사람들을 다루는데, 그 조직(학생운동권 조직)에서 사라진 여자가 30년이 지나 되돌아오는 이야기다. 당시 운동권 수장이자 상징적인 인물에게 강간을 당해 임신해서 고향에 내려간 것이었다"며 "왜 너희들한테 나는 동지가 아니라 '여자'고, 열등한 운동권이고 인정받지 못했을까를 묻는 소설"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과거 후일담 소설에서) 좀 더 나아간 부분이 있다면 '이념적 동질성'이 아니라 '인간의 취약성'에 대한 공감에 기초한 정치 공동체 전망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가부장법을 초과하는, 엄마들의 치유적 공동체가 나온다"고 말했다.

    김 연구자는 90년대 여성 후일담 소설이 "여성작가가 자신의 목소리, 즉 문학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계기가 됐다"면서도 "남성 평자들에게 '길들임'을 당하는 부분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남성 평자들은 여성 후일담 소설을 드러내놓고) 시시하다고 할 수 없으니 '미시사를 다룬다'고 표현했다. 사소한 걸 다룬다는 거다. 여성 문학은 '탈정치화된 작품'이라는 프레임 안에 있었고, '확 내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없어지고 소설이 너무 고와졌다는 평가도 나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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