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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삿포로 레터]韓 스노보드 연금술사, 7년의 헌신과 눈물



스포츠일반

    [임종률의 삿포로 레터]韓 스노보드 연금술사, 7년의 헌신과 눈물

    • 2017-02-20 06:00
    '미리 태극기 모자 챙겼어요' 이상헌 스키 스노보드 감독이 19일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남자 대회전에서 이상호가 금메달을 따내자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삿포로=노컷뉴스)

     

    "감독님, 결국 해냈어요!" "그래, 진짜 해낼 줄 알았다!"

    한국 스노보드의 새 역사를 쓴 이상호(22 · 한국체대)가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이상헌 감독(42)이었습니다. 아시안게임 사상 첫 스노보드 종목 금메달 질주를 펼치고 영광스러운 인터뷰가 진행된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을 빠져나가자마자 이상호가 주위를 둘러봤고, 가장 먼저 맞은 사람이 이 감독이었습니다.

    사제는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씩 주고 받은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껴안았습니다. 선수는 그동안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지원해준 스승에 존경과 감사를 금메달로 전했고, 감독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우뚝 커버린 제자의 등을 토닥였습니다.

    그리고 둘은 자랑스럽게 태극기를 펼쳐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일본 동계스포츠의 성지인 삿포로 테이네 스키장에 당당하게 펼쳐진 태극기. 한국 체육 역사에 남을 둘의 위대한 합작품이었습니다.

    이상호는 19일 2017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스키 남자 스노보드 대회전에서 1, 2차 합계 1분35초76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1분36초44를 찍은 대표팀 선배 최보군(26 · 상무)과 선의의 경쟁도 이겨냈습니다. 금, 은메달을 사이좋게 나눴습니다.

    '내일도 OK? 이상호(왼쪽)가 19일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스키 남자 스노보드 대회전 금메달을 따낸 뒤 이상헌 감독과 함께 태극기를 펼치는 모습.(삿포로=노컷뉴스)

     

    '내가 더 고맙다' 이상헌 감독(오른쪽)이 19일 이상호를 껴안으며 격려하는 모습.(삿포로=노컷뉴스)

     

    누구보다 이들이 자랑스러웠을 이 감독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7년의 고된 세월을 차고 넘치게 보답받았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스노보드 불모지를 홀로 갈고 닦아온 이 감독의 헌신, 그리고 눈물이 만들어낸 값진 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까닭입니다.

    이 감독은 한국 스노보드 1세대입니다. 1998년 일본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노보드에 입문한 이 감독은 훈련과 대회 출전 비용을 스스로 충당하며 열정을 키워왔습니다. 선수와 코치까지 겸하다 2005년 은퇴한 이 감독은 이후 지도자로 전념해왔지만 열악한 환경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고군분투하며 대표팀을 맡은 지 7년. 초창기에는 제대로 된 지원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대한스키협회 관계자는 "당시는 이 감독은 정식 코치 계약을 하지 못해 훈련 기간에만 지원을 해주는 정도였다"면서 "때문에 이 감독이 자비를 들여가며 선수들을 지도해왔을 정도"라고 귀띔했습니다. 이어 "남녀 대표팀 6~8명을 혼자서 건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해외 전지훈련이면 이 감독은 경기 준비와 동영상 촬영, 장비 점검까지 도맡았고, 심지어 요리사와 운전사 역할까지 해야 했습니다. 선수들이 행여 피곤할까 봐 1000km 가까운 거리를 자지도 않고 혼자 운전한 일화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 감독은 "선수들 입맛에 맞는 한식을 해서 먹이고 했던 기억들이 나지만 오늘 값진 결과로 다 잊을 수 있게 됐다"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검게 그을린 하관' 이상호 감독은 1년 중 10개월 정도를 선수들과 보내며 각종 경기와 훈련을 소화한다. 고글로 자외선을 차단하는 눈 위와 아래 다른 피부색은 그동안의 힘든 일정을 나타낸다.(자료사진=대한스키협회)

     

    이런 노력은 불모지 한국 스노보드에 씨앗을 틔웠고, 차츰 결실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호가 2014년 국제스키연맹(FIS) 세계주니어선수권 평행 대회전 은메달에 이어 이듬해 금메달과 회전 동메달을 거머쥔 겁니다.

    그러더니 지난해 말 성인 무대인 FIS 월드컵에서는 역대 아시아 최고 성적인 4위까지 올랐습니다. 이 감독은 "상호가 주니어선수권 금메달 땄을 때 눈물을 흘렸다"면서 "첫 월드컵 포디움에 올랐을 때 찡하게 눈물이 고이더라"고 회상했습니다.

    그랬기에 이상호도 이 감독을 깊이 껴안으며 고마움을 드러낸 겁니다. 사실 스키협회는 2014년 11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수장을 맡으면서 지원이 풍족해졌습니다. 스노보드도 프랑스와 크로아티아 출신 코치와 물리치료사 등 코칭스태프가 대폭 보강됐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호는 이 감독을 여전히 가장 큰 조력자로 꼽습니다. 이상호는 "감독님은 우리 선수들의 성격까지 세세하게 알고 있다"면서 "오래 호흡을 맞춰온 것이 완벽해졌다"고 강조했습니다.

    19일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스노보드 대회전에 나선 이상호의 경기 모습.(삿포로=대한체육회)

     

    사실 이날 이 감독은 눈물을 흘리거나 눈시울이 붉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불과 지난주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FIS 월드컵에서 예선 탈락했던 이상호였지만 어느 정도 금메달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감독은 "월드컵 때 일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의 실수가 나왔다"면서 "세계 랭킹 1, 2위도 실수할 수 있는 게 스노보드라지만 아시안게임에서 부담이 컸을 텐데 어린 나인데도 흔들림 없이 잘 해줘서 기특하고 대견하고 고맙고 그렇다"고 뿌듯한 표정으로 제자를 바라봤습니다.

    이상호는 20일 열릴 대회 일반 회전에 대해서도 "원래 회전을 더 잘 탄다"며 2관왕에 대한 자신감까지 드러냈습니다. 이 감독은 "오늘 부담을 덜었기 때문에 내일 더 잘 탈 가능성이 높다"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내친 김에 하나 더 금메달을 땄으면 하는 은근한 기대감이었습니다.

    또 이상호는 평창 목표를 묻는 한 외신 기자의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금메달"이라고 말했습니다. 거침없는 성장세로 아시안게임에 이어 내년 평창올림픽 메달을 노리는 이상호. 내년에도 이 스승과 제자가 뜨겁고 흐뭇한 포옹을 나눌 수 있을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p.s-스노보드 대회전 경기와 인터뷰, 플라워 세리머니까지 마치고 서둘러 대회 개막식이 열리는 삿포로돔으로 향하는 셔틀 버스 안이었습니다. 스키협회 관계자는 "지금이야 지원이 나아졌지만 그 전까지 이 감독이 고생을 참 많이 했다"면서 "그런데 그런 내색을 하는 것을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귀띔했습니다. 정말 스노보드 하나를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는 겁니다. 이 7년의 헌신과 노력, 눈물이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스노보드의 사상 첫 금메달을 만든 연금술사의 비결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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