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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편의 연애담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



책/학술

    47편의 연애담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

    이유 소설집<커트>,문혜진 시집 <혜성의 냄새> 등 문학 신간 3권

     

    중국의 젊은 작가 장자자의 단편집은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는평범한 인물들의 소소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에는 잊을 수 없는 아련한 추억, 사랑하면서 감수해야 하는 아픔, 생리사별의 처연한 고통, 숙명적인 만남과 그럼에도 자꾸 어긋나는 인연, 격정과 소란이 잦아들면 찾아오는 고요한 따뜻함이 녹아 있다.

    명랑하고 상큼한 유머, 환하게 웃다 코끝이 찡해지는 소소한 일화,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하는 저릿한 감성의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는 어느새 그녀와 그와 당신과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어간다. ‘첫사랑, 고백, 집착, 따뜻함, 다툼, 포기, 추억’ 그리고 ‘탄생’이라는 여덟 개 장 속에 나뉜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분명 아련한 추억 속을 더듬어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할 것이다.

    각 단편들의 소재에는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가족애와 우정, 인생과 청춘에 대한 깨달음 등이 어우러져 있다. 내 안에만 있을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던 것들이 작가의 따스한 눈길과 재해석, 정성 어린 어루만짐을 통해 다시 내게로 돌아올 때 그것은 깊은 의미를 띠게 된다. 평범하고 소소하다 여기며 스쳐 지나갔던 풍경을 깊은 밤 새롭게 통과해 지나치며 그 속에서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해내는 대륙의 이야기꾼 장자자. 그 특유의 감수성과 유려한 글 솜씨가 독자들을 웃음 짓고 눈물 맺히게 한다.

    책 속으로

    사람의 기억이란 도시와 같아. 시간은 모든 건물을 좀먹고 높은 빌딩과 도로를 사막으로 만들어버리지. 만약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금세 모래에 파묻히고 말 거야. 그러니 얼굴이 온통 눈물로 범벅되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뒤돌아보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해. 22쪽

    한낮 네 곁에 있던 네 그림자는 이제 밤이 되어 나의 잠을 감싸네. 세상일은 책과 같다는 네 말 정말 좋아. 쉼표를 찍고 네 곁에 머물고 싶지만, 네 책을 읽어줄 사람은 따로 있는 거 같아. 나는 그저 배를 건네주는 뱃사공이지. 236~237쪽

    세상에 대해 절망하기는 쉽지만 세상을 사랑하기란 어렵지. 이렇게 험난한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내 주위를 막아서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깔대로 쭉 한 방향으로 가야만 해. 354쪽

    장자자 지음 | 정세경 옮김 | 김민경 그림 | 은행나무 | 488쪽 | 15,000원

     

    이유 작가의 첫번째 소설집 <커트>가 출간됐다. 2010년 <세계일보>로 등단한 이후 7년 만의 소설집이다.

    <커트>에서 작가는 꿈을 꾸고, 이루고, 실패하고, 다시 꿈을 꾸는 반복적인 상황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했다. “꿈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버리는 황당한” 세상 혹은 “이건 진짜 현실이지만, 꿈이라고 열심히 생각하면 정말 꿈이” 되는 더 황당한 세상이 이유의 소설을 통해 실현된다. 특히 꿈이 이뤄졌다는 기쁨과 그 이후에 오는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하면서, 꿈과 현실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의 고뇌를 고스란히 담았다. 꿈이 이루어진 다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꿈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감당할 수 있을까.

    날카롭게 벼려진 가윗날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유연하게 휘면서 다가왔다. [……] 잘린 머리통 하나가 바닥을 굴렀다. 다름 아닌 내 머리통이었다.
    “엄마 아파?”
    아이가 태연스레 물었다.
    “목이 잘렸는데 안 아프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온갖 잡냄새로 시달리던 머리통이 몸에서 분리되자 막혔던 숨이 트였다._「커트」

    첫 소설집의 표제작 「커트」는 악몽의 세계를 끊어내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이다. 작품 속 미용사 ‘나’는 “온갖 잡냄새로 시달리던 머리통”을 그야말로 한 방에 ‘커트’, 잘라내버린다. 악무한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썩은 내 나는 머리를 시원하게 잘라버림으로써, 숨통을 틔우고 다시 살아가게 한다. 이런 상징적인 행동은 「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에서도 등장한다. 추운 도시 야츠에서 꿈을 모두 잃은 그는 동상으로 자신의 발가락 세 개를 잘라야 했다. 야츠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나쁜 기억을 떨쳐내듯, 신체의 썩은 일부를 덜어낸 것이다. 악몽이 반복될지라도, 썩어가는 부위를 조금씩 잘라내면서, 그 자리, 그곳에서 다시 한 번 발자국을 남기고 삶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이유가 작품 속 화자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악몽은 그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도 쉬지 않고 “한 악몽에서 다른 악몽으로 이행하”(양윤의)며 기록을 남기는 것, 우리가 여기 살아 있음을 계속 증명하는 것만이, 우리 모두가 무한히 반복되는 악몽의 세계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52쪽 | 12,000원

     

    문혜진 시인이 신작 <혜성의 냄새="">를 출간했다. 우주와 인간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혜성처럼 몸속으로 우주로 바다로 시원으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자유자재로 연장하며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을 시적 공간으로 축조해 낸다

    “마더의 속살, 칼로, 칼로 열어도 꽉 다문 뻘 힘의 바다조개, 피투성이 그 마더의 칼로 수탉의 목을 치고 메기 머리통을 찍어 우리들을 먹였지 마더의 칼과 피, 마더의 몸에서 내가 처음 내쳐질 때, 계속 머무르고 싶었던 따스하고 둥근 마더의 바다, 우리는 그때부터 칼로, 칼로, 서로를 버티고 벼리며, 피투성이 길 위에 맨발로 서 있네!” -「마더의 칼로」

    교통사고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남편의 문란한 사생활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작품으로 승화한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를 모티프로 한 시다. 어머니와 자식(딸)의 관계, 여성으로서 어머니의 삶이 ‘칼’과 프리다 ‘칼로’ 사이를 오가며 서슬 퍼런 리듬을 만든다. 이외에도 바이올린의 현과 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거미줄 등 선(線)들의 상상력을 통해 폭력과 그로 인한 통증을 예민하게 재현한다.

    “아이가 친구 얼굴에 돌을 던진 날/ 나의 왼쪽 가슴에서 에베레스트가 자라기 시작했다/ 아홉 개 종양/ 아홉 개 행성/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산맥에 누워/ 나는 찢어진다/ 무한히 팽창되는/ 내 몸의 판게아”-「소행성 이카루스가 날아오던 밤」

    부모-자식 관계의 본질을 관통하는 시다. 아이의 존재를 종양의 독립성에, 그 독립성으로 인한 고독을 우주 속 행성의 존재에 비유하며 상상력은 현실 너머로 도약한다.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세포의 자율성에 따라 발육하는 종양처럼 나에게서 비롯되었지만 나와 다른 존재인 아이에 대한 감정은 대륙이 찢어지기 전의 초대륙 ‘판게아’에 비유된다. 거대한 분리로 인한 고통이 재현된다.

    “밤과 낮이 모두 검거나 흰, 그런 날들이었어 아군이 적군이 되고 적군이 아군이 되어, 서로의 뒤통수에 보이지 않는 살상무기들, 흰 매가 사막 폭풍을 뚫고 지나갔어” -「모래의 시4-사막의 독트린」

    4부에서는 4편으로 구성된 「모래의 시」 연작이 눈에 띈다. 그중 「모래의 시4-사막의 독트린」은 모래의 운동성이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시다. 작품 해설을 쓴 허희 평론가에 따르면 밤과 낮의 뒤엉킴, 적과 동지를 나눌 수 없는 상황이 참혹한 실제와 숭고한 실재가 한 프레임 안에 들어 있는 광경으로 제시되고 있는 이 시는 미결정 상태의 정확한 기술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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