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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대선주자의 국민을 향한 거짓말



정치 일반

    반기문 전 대선주자의 국민을 향한 거짓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1일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느닷없이 불출마를 밝혀 크게 놀랐지만 '정치는 꾼이 하는 거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처럼 행동하는걸 보면서 '어지럼증'을 느낀다.

    반 전 총장이 '꾼들의 세계'라는 정치현실을 삼척동자도 다 아는데 본인만 순수해서 잘 몰랐다고 얘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반 전 총장도 외교정치 구력으로 따지면 40여년이다. 외교 또한 정치의 세계다.

    외교 세계에서 반 전총장의 정치력을 '9단'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국에서 장·차관급 10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공직자인 유엔 사무총장 10년을 포함하면 구력이 무려 20년이다.

    반 전 장관은 너무나 '외교적 정치'를 잘해서 '기름장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무슨 질문을 받든 그가 잘 빠져나간다해서 붙은 것이다. 기자들은 유엔사무총장으로 그가 영전할때 세계지도 위에 '유만(油鰻)'이라는 한문글자를 새겨 기념품으로 건네줬다.

    '유만'은 '기름 유(油)'자와 '장어 만(鰻)'자를 일컫는다. 화려한 말솜씨 때문이 아니고, 아무리 어렵고 외교정치상 민감한 질문에도 기분 상하지 않게 유려하고 매끈하게 잘 빠져나가는 화술을 칭찬해 붙여진 별칭이다.

    최근 반 전 총장의 대표적 기름장어 화술을 찾으라 한다면 작년 11월 22일 CNN과의 인터뷰 발언을 단연코 꼽겠다.

    CNN앵커가 대통령 퇴진 촉구 시위가 일어나는 한국 상황을 언급하며 대선 출마 의향을 묻자 반 총장은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이 우려(grave concern)한다"고 전제한 뒤 "(한국에서) 일어난 일에 사람들이 좌절감을 느끼고 몹시 화가 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반 전 총장 발언에서 '우려'가 빠지면 맥이 빠진다.

    그런 그가 불출마를 밝힌 다음날, 언론에 "나는 원래 태생이 상당히 순수하고 단순하고 아주 직선적이다"라고 강조했다. 순수하고 단순했다는 말은 이해되지만 '직선적'이라는 말에서는 동의할 수 없다. 기자가 아는 외교관은 절대로 직선적이어서도 안되고 직선적 일 수도 없는 직업인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사퇴책임을 '남탓'으로만 돌릴 일인가

    반 전 총장에게 특별히 실망스러운 것은 대선주자 낙마를 모두 정치인과 정치환경 탓으로 돌리고 본인 책임을 뼈아프게 인정하지 않는 전형적인 '남탓 태도' 때문이다.

    그는 작년 12월 21일 뉴욕 한국 특파원 기자회견과 올 1월 12일 인천공항 귀국현장에서 두번씩이나 "내 한몸 불사르겠다"고 말했고 또 "끝까지 간다"고도 역설했다. 물론 정치인이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아니므로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다.

    문제는 중도 포기방식이다. 반 전 총장은 이미 몇년전부터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목된 거물급 인사다. 많은 정치인들이 오랜동안 그의 영입에 공을 들였고 그 뜻을 모은 사람들의 '군불과 화력'으로 반 전총장은 '몸을 불사르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그의 사퇴가 단지 부인과 상의해서만 이뤄질 일이었는지 납득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거물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공직에서 그만두는 것이라면 가족과의 상의만으로도 족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결사체 속에서 나온 무대라면 퇴진할 때는 적어도 동지들과 상의하는 것이 도리다.

    그 사람들은 정치적 동업자다. 일방적으로 그만두면 동업자들은 어찌 되는가. 그런 리더십으로 대통령에 도전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가짜 언론'이라는 지적도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분으로 과도한 표현이다.

    '에비앙 생수 논란'과 '열차표 2만원 한번에 집어넣기'는 언론이 그를 흠집내기 위해 보도한 것은 아니다.

    언론이 주요 공직자나 대선 후보를 일일이 뒤쫓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취재 목적이지만 그의 자세와 행동패턴도 보기 위한 것이다. 미국산만 쓰라고 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진짜 본인이 미국산만 사용하는지는 미국 언론의 관심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에비앙 생수통을 잡는 반 전총장 행동을 그런 관점에서 언론이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거물급 대선주자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다.

    반 전총장이 대선주자로 시장을 방문하고 현충원을 방문하고 팽목항을 방문하고 음성 꽃동네를 돌아볼 때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언론이 밀착하는 이유는 그의 동선과 행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포착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달 12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공항철도 탑승을 위해 발권을 하는 가운데 만원 지폐 두장을 겹쳐 넣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폐 두장을 한꺼번에 집어넣는 승차권 발매기는 서울 뿐아니라 파리도, 런던도 뉴욕도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표를 끊는 모든 기계는 반드시 지폐 한장씩 차례로 넣게 돼있다. 그것은 상식이다. 다만 현금 인출기만 지폐 몇장을 한꺼번 또는 다발로 넣을 수 있다. 그것도 돈을 저축할 때만 그렇다.

    언론이 지폐 두장을 한꺼번에 넣었다고 보도하는 건 해외토픽을 만들거나 조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서민의 삶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보자는 목적이다. 이 부분도 중요한 검증 대상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훌륭한 자산인 반 전 총장의 자기중심적 사고는 실망스럽다. 국민에게 불 사르겠다고 했으면 불 사르지 못한 이유를 소상히 설명하고 먼저 자신의 부족부터 반성했어야 한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순전히 정치권의 문제로만 책임을 던졌다. 국민을 계도 대상으로 보지 않고는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들이다.

    외교 장관시절까지 반 전 총장은 공직자들에게 처신의 귀감이었다. 그는 아랫사람에게 겸손했고 부족을 자신의 잘못으로 껴안았으며 책임도 다하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유엔사무총장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반 전총장에게 예전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애민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불사르겠다'고 결심을 했더라면 이런 식으로 남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꽃가마 다 만들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나도 속았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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