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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는 어떻게 대통령이 됐나?



정치 일반

    박근혜 후보는 어떻게 대통령이 됐나?

    [2017 대선의 이슈①] 역대 대선의 이슈들

    - "2012년 박근혜는 출중한 능력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 경제민주화, 정치혁신 등의 이슈 선점하고 차별화에 성공
    - 대구 경북과 충청도 두 곳을 다 고향으로 인식시킨 후보
    - 2012년 “문재인도 잘 했지만 박근혜는 더 잘 했다”
    - 최순실 이후 ‘머리 빈 꼭두각시’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던 박근혜 후보
    - "대통령 되고 1년쯤 지나서부터 모든 걸 놔버린 건 아닌가?"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9:05~19:50)
    ■ 방송일 : 2017년 1월 30일 (월) 오후 19:05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박성민 대표(정치컨설팅그룹 민), 윤태곤 실장(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 정관용> 시사자키 설특집 ‘2017 선거의 이슈.’ 대통령 선거가 언제 치러질지가 아직 미지수이기는 합니다마는 어쨌든 금년에 치러지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올 대선, 어떤 이슈를 중심으로 굴러갈 것인지. 이걸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2000년대 이후에 지난 대선들의 이슈들부터 하나하나 정리해 보도록 하죠.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박성민 대표 오랜간만에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박성민>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매일 우리 방송 도와주는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의 윤태곤 실장, 어서 오십시오.

    ◆ 윤태곤> 안녕하세요.

    ◇ 정관용> 대선 언제 치러질까요?

    ◆ 윤태곤> 5월에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4월 말, 5월 초.

    ◇ 정관용> 박한철 소장이 3월 13일 이전에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

    ◆ 박성민> 그런 거니까. 4월 26일 한번 얘기했었죠. 그때가 제일 유력할 것 같습니다.

    ◆ 윤태곤> 목요일이고, 5월 초되면 연휴가 있고 하니까 그전에.

    ◆ 박성민> 그러니까 5월 10일까지 가려면 3월 13일날 이정미 재판관 퇴임하는 날 하면 되는데 그런 사례가 별로 없으니까 4월 26일날로 보는 게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꼭 4월 26일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마는 그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정말 얼마 안 남은 겁니다. 얼마 안 남은 상황인데 오늘 우리가 이제 역대 선거에서부터 이슈를 점검해 볼 텐데. 우선 선거에서 이슈라고 하는 것은 뭐예요? 정치인들이 던지는 거예요, 국민들이 바라는 거예요? 어떻게 봐야 되는 거예요?

    ◆ 윤태곤> 교차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를 들어서 저는 마주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따라갈 수도 있고 선도할 수도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오른쪽으로 쭉 가고 있고 또 이제 국민들을 위로하고 있다가 마주치는 지점에서 딱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고 만약에 국민들이 위로 가는데 따라잡으려고 하면 따라잡기는 쉽지 않고 계속 따라가는 식이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앞서가서 국민들이 따라가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대 정치로 들어오면서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문 것 같아요.

    ◆ 박성민> 미국 유명한 정치컨설턴트 중에 딕 모리스가 있는데 선거 이슈에 대해서 정리해 놓은 게 있습니다.

    첫 번째는 대중의 관심사여야 된다. 대중의 관심사가 아닌 것은 이슈가 될 수 없다. 두 번째는 그게 선거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세 번째 찬반이 분명히 나눠져야 한다. 네 번째는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다고 믿어야 된다. 그래야지만이 후보들이 그걸 이슈로 삼으니까요.

    18대 대통령 취임식 당시 박근혜 대통령 (사진=사진공동취재단/자료사진)

     

    예컨대 이런 거죠. 2012년 대통령 선거의 경우에는 이미 대중의 관심사가 된 걸 지울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2012년에는 경제민주화, 정치혁신, 국민 대통합 이런 것이 이슈였거든요.

    그런데 이제 복지도 이슈였고 그런데 박근혜 그때 후보 입장에서 보면 복지는 그 전부터 본인이 주장했기 때문에 본인도 그래도 상당히 경쟁력이 있어요. 그러나 경제민주화나 정치 혁신이나 국민대통합이나 이런 건 좀 약하거든요. 관심이 있는데 약해요.

    ◇ 정관용> 그런데 그걸 막 치고 나갔죠.

     


    ◆ 박성민> 그게 이슈가 되면 지는 거죠. 그런 경우에는 대중이 이미 관심을 갖고 있는 걸 관심 없게 만들 수는 없고 찬반에서 상대 후보하고 차별화를 없애는 방법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이런 쪽으로 이슈가 안 되게 치워버리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럴 경우에 제일 빠른 방법이 사람 데려오는 거예요.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김종인, 정치혁신의 안대희, 국민대통합의 한광옥, 거기에다가 또 청년들한테 좀 약하니까 이준석, 손수조 데려오고 이렇게 해서 이슈가 안 되게 관리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캠페인 전략상.

    ◇ 정관용> 그래요. 결국은 정치에 이런 말이 있잖아요. 정치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슬그머니 깃발을 드는 것이지. 혼자 깃발을 막 흔들면서 사람을 거기로 끌어모으는 것은 아니다.

    ◆ 박성민>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게 대중의 관심사냐 아니냐가 1번입니다. 대중의 관심사 중에서 내가 찾아내는 것인데 이슈를 만들 때 네 가지를 보통 고려하거든요.

    대통령 나온다고 그러면 첫 번째.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걸 찾는 겁니다. 지금 대한민국 가장 중요한 게 많이 있지 않겠습니까? 안보도 있을 수도 있고 경제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일단 첫 번째로 고려하는 겁니다. 문제는 이렇게 찾아내도 어느 후보나 이건 다 얘기할 수가 있어요.

    두 번째 그중에서 유권자가 분노하는 것. 유권자가 관심 있는 걸 또 찾아내는 겁니다. 이걸 찾았다고 해서 답이 끝나는 게 아니죠. 왜? 이것도 다른 후보들도 얘기할 수 있으니까.

    ◇ 정관용> 내가 잘할 수 있는 거.

    ◆ 박성민> 그렇죠. 그 세 번째가 바로 내가 잘할 수 있는 겁니다. 내가 얘기하면 남들이 믿어주는 거. 그런데 네 번째가 더 중요해요.

    ◇ 정관용> 뭐예요?

    ◆ 박성민> 나보다 더 강한 상대가 있으면 안 돼요. 2007년도에 문국현 후보가 나와서 자기는 기업도 해 보고 그랬으니까 경제 문제를 들고 나왔어요. 그런데 그때도 저희가 FGI(Focus Group Interview)를 해 보면.

    ◇ 정관용> 심층인터뷰?

    ◆ 박성민> 심층인터뷰죠. 그래서 만약에 당신에게 5000만 원이 있으면 누구에게 그 돈을 맡기겠느냐. 이랬더니 다 이명박을 지목한 거예요.

    ◇ 정관용> 문국현 후보가 아니라 이명박이다.

    ◆ 박성민> 이명박이 더 잘한다고 얘기하면 그건 자기 이슈가 될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프레임은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첫 번째 선거를 규정하는 거예요. 이번 대통령 선거는 어떤 대통령을 뽑는 선거다. 두 번째 그래서 그다음에 나를 규정하는 겁니다. 내가 왜 거기에 적임인지. 세 번째 상대가 왜 거기에 적임이 아닌지 상대를 규정하는 거예요.

    ◇ 정관용> 조금 더 거슬러가 봅시다. 차근차근. 2000년대 들어서 우리 대선. 2002년 그리고 2007년, 2012년. 하나하나 정리를 해 보자고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고 노무현, 이회창이 맞붙었어요. 중간에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단일화가 있었고. 2002년을 규정한 핵심 이슈들은 어떤 것들이었다고 기억이 됩니까?

    ◆ 박성민> 일단 저는 그때 이슈라고 아까 제가 딕 모리스 얘기했는데 그걸 만족시키는 건 행전수도 이전이죠.

    ◇ 정관용> 행정수도 이전. 찬반이 명확했고.

    박성민 대표 (사진=시사자키 제작팀)

     


    ◆ 박성민> 찬반이 명확했고 그때 인상깊은 장면이 있어요. 그때 효순, 미선 장갑차 사건 때문에 촛불집회가 막 있고 이랬을 때입니다. 물론 노무현 후보가 행정수도 이야길 좀 일찍 제기를 했었는데 그게 본격적으로 붙었던 건 선거 기간 중이거든요. TV토론회에서 그걸 탁 던졌어요. 그랬더니 이제 사실 리스크가 있는 이슈 아닙니까.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 충청도 인구는 적은데 과감히 던졌어요.

    그랬더니 이제 사실 이회창 후보 측에서 그걸 반박하기를 이건 수도권 공동화시키자는 거냐. 이렇게 나왔어요. 그때 제 기억에는 노무현 후보도 과감하게 치고 나가지는 못했어요. 저 같으면 공동화 시키더라도 화끈하게 갑시다. 이렇게 할 수도 있는 것인데 이게 이슈가 좀 됐어요.

    그게 제 기억으로는 화요일날 정도 토론회에서 그게 나왔는데 수요일날 목요일날 금요일날 여론조사를 보니까 누가 크게 득을 봤냐면 이회창 후보가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데 계속 좁혀오고 있었어요. 계속 좁혀오고 있어서 그게 이슈가 돼서 양 캠프에서 두 후보끼리 토요일날 1:1 토론을 하자고 제안이 돼 있었습니다.

    ◇ 정관용> 행정수도 문제만 가지고?

    ◆ 박성민> 그것만 가지고 둘이 딱 붙자. 그런데 둘 다 안 했어요. 그런데 이회창 후보 측에서 안 하자고 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결국 안 했거든요. 저는 그게 변곡점이었다고 봅니다.

    했었어야 돼요. 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이거 자체가 갖고 있는 것보다 그날 뉴스는 이 토론이 장악을 했을 거예요. 그런데 피하는 바람에 그 촛불집회가 그날 있었어요. 토요일날 그다음 주에 선거가 있는데 토요일날 그 집회가 온통 되고 그다음 날 그때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아마 정동영 후보의 지원 방송 연설이 있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굉장히 중요한 타이밍에 이회창 후보는 뉴스에서 좀 사라진 거죠.

    ◇ 정관용> 그렇군요.

    ◆ 박성민> 그런 것들도 그러니까 이슈 자체가 갖고 있는 속성도 중요하지만 이슈를 다루는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 정관용> 윤태곤 실장은 어떻게 봐요, 2002년 대선.

    ◆ 윤태곤> 2002년에는 우리가 기억하기에는 행정수도 이전이 큰데 저는 이제 그렇게 컸었나 싶어요.

    사실 그때로 돌아가서 본다면 서로서로 간의 약간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이 상대되는 게 있고 크게 봐서는 권위 대 탈권위, 세대교체에 이런 프레임이 아니었을까 싶었던 거죠.

    이회창 후보가 사실 되게 강력한 후보였었지 않습니까. 대권 재수생인데도 재수의 낡음보다는 더 강해진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 강함에 대해서 노무현 후보가 도전했던 건 젊음, 탈권위.

    그리고 한 가지 포인트가 노무현 후보가 쫙 빠졌었잖아요, 한때 한 12%, 14%까지 가 가지고 후단협(후보단일화협의회) 이런 것도 생겼는데 그때 정몽준 후보가 등장해 준 게 노무현 후보로서는 정말로 좋았던 겁니다.

    이회창으로 넘어가지 않고 젊음과 탈권위의 이미지를 정몽준이 묶어가지고 가지고 있다가 단일화가 되면서 고스란히 노무현에게 돌려줬다는 거죠. 만약에 그때 정몽준이 없었으면 상당 부분 이회창한테 넘어갔다면 그럼 뒤집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이게 전반적인 우리가 아까 얘기했던 효순, 미선 그 참사 같은 것도 맞물리면서 기억이 나는 게 사실 효순이, 미선이 참사에 대해서 이회창 후보가 직접적, 간접적 책임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이게 한나라당의 수구적인 프레임 이런 게 엮여서 그때 제 기억에 당에서 촛불집회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가지고 되게 격렬하게 논쟁이 붙었었어요.

    ◇ 정관용> 한나라당 내에서.

    ◆ 윤태곤> 그렇죠. 한나라당 내에서. 그러다가 이회창 후보가 가기는 갔습니다. 뒤에서 이렇게 좀 뻘쭘하게, 앞에 참석한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고 뒤에 서 있다가 괜히 야유를 듣고 그랬었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에 효순이, 미선이 참사는 그 참사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게 어떤 젊음, 시대의 교체, 미국 앞에 당당함 이런 걸로 맞물리는 게 큰 흐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 박성민> 그 선거 다시 회고해 보면 참 희한한 선거인데 이회창 후보는 야당 후보였는데 여당 후보처럼 보였고 노무현 후보는 여당 후보인데 야당 후보처럼 보였습니다.

    이회창 후보가 아까 제가 이슈 얘기할 때도 얘기했지만 챔피언처럼 싸우고 노무현은 도전자처럼 싸웠는데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는 여소야대 국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 기억에는 한나라당이 153석 가져가서 장관 해임결의안 막 내고 그럴 때였기 때문에 농담하는 사람들은 그래요. 이미 이회창은 그전에 대통령을 사실상 했기 때문에, 단임이기 때문에 못된 거다. 이렇게 농담하는 분들도 있는데 첫 번째 여소야대였다는 거. 두 번째는 노무현이 나이가 더 젊었어요.

    ◇ 정관용> 한참 젊죠.

    ◆ 박성민> 그다음에 세 번째는 노무현은 원래 아웃사이더입니다. 그리고 이회창은 주류 중의 주류고. 이 세 가지가 겹쳐서 이회창이 여당 후보처럼 보이고 노무현이 야당 후보처럼 보였는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슈 관련해서도 노무현은 여러 가지 분리했기 때문에.

    ◇ 정관용> 뭔가를 던지고.

    ◆ 박성민> 던졌죠. 왜냐하면 자기는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주류 중에 주류인 서울대 나온 3분, 예선전에서 이인제, 단일화 국면에서 정몽준. 본선에서 이회창을 연달아 꺾는. 그것은 이건 나는 다 걸어도 좋다. 잃을 게 없다, 이런 자세로 싸웠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가져왔죠.

    윤태곤 실장 (사진=시사자키 제작팀)

     


    ◆ 윤태곤> 그러면서 이제 DJ의 유산을 물려받았는데 부채는 물려받지 않았어요, 선거 기간에 보면. 호남에서 몰표가 왔었지 않습니까. 정통적 민주당 지지자들 표는 그대로 받고.

    그런데 DJ가 조금 지역주의적으로 보이는 듯한 모습이라든지 조금 노회한 모습, 늙음이라든지 그때 또 아들의 부패 문제하고 노무현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 실제로 별로 상관이 없기도 했고 그렇게 보였기 때문에 유산은 물려받고 부채하고는 상관이 없었으니까 정말로 재미있는 게임이었죠.

    ◆ 박성민> 그건 아주 좋은 포인트인데. 한국 대통령 선거가 5년 단임이기 때문에 같은 정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더라도 정권교체의 성격이 조금 한 30%는 있어요. 그러니까 노태우에서 김영삼 넘어갔을 때도.

    ◇ 정관용> 달라진 거죠.

    ◆ 박성민> 다르죠. 그리고 김대중에서도 노무현도 좀 다르죠. 왜냐하면 지역적으로도 다르고 3김과 맞서싸웠으니까. 2002년도에도 마찬가지예요. 이명박과 박근혜도 약간 그런 성격이 좀 있었기 때문에 그럴 때는 정권교체를 지지하지만 같은 당의 후보를 찍는 경우도 있죠. 그때 2002년도가 대표적으로. 그런 경우죠.

    ◆ 윤태곤> 그런데 2007년에 정동영 후보를 보면 정반대입니다. 부채는 물려받았는데 유산은 못 물려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노무현 정부가 인기가 없으면 그건 그대로 덮었었는데 친노진영 특유의 똘똘 뭉쳐서 열광적으로 하는 그 지지층들이 정동영 후보한테 등을 돌렸단 말이죠. 그러니까 정반대였었죠.

    ◇ 정관용> 2002년 선거 우리가 행정수도 이슈하고 권위 대 탈권위라고 이름 붙여진 두 가지 이슈를 봤는데 승리한 후보를 놓고 결과를 가지고 다시 해석해 보면 최대 이슈는 역시 권위 대 탈권위였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다음에 2007년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그리고 2007년 선거는 워낙 좀 일방적인 선거였기 때문에 뜨거운 쟁점이 별로 없었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까요.

    ◆ 윤태곤> 그렇죠. 어느 정도로 일방적이었냐면 표차가 520만 표인 것도 있고 저번에 이제 문재인 후보가 48.4%를 얻어가지고 내가 그때 이명박보다 득표율도 높고 전체 표도 많았다라고 하는데 착시효과가 있는 게 사람들이 벌써 많이 까먹었어요.

    당시 이회창 후보가 독자로 출마를 했어요, 보수후보로. 15.1%인가 거기에 던진 사람들이 부담없이 표를 준 겁니다. 정권교체도 될 것도 같고 그런데 더 보수에 힘을 실어주고 그러면 MB하고 이회창 후보가 합쳐보면 64%~5% 정도 되지 않습니까?

    ◇ 정관용> 맞습니다. 일방적인 선거였죠. 왜 그렇게 됐을까요. 결국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인기 추락.

    ◆ 박성민> 그건 2006년도 지방선거 때부터 예고가 되지 않습니까? 사실은 뭐 530만표 차가 났던 2007년 대통령 선거보다 2006년 지방선거가 그건 뭐 정말 역사상 우리나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로 그런 선거는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참패. 완전히 참패를 했던 선거이고.

    ◇ 정관용> 그렇습니다.

    ◆ 박성민> 그 참패 이후에 여당이 지금 여당이 붕괴하듯이 붕괴했지 않습니까? 선도 탈당파가 있고 또 탈당하고 쫙 여러 개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치고 했는데 이미 전의를 다 상실하고 그때도 지금처럼 노 대통령은 정권 좀 넘어가면 좀 어떠냐 이렇게까지 얘기하고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수습할 생각이 별로 없는, 이 분열된 상황을.

    그런 거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한나라당의 예선전이 더 뜨거웠죠. 빅3였다가 손학규가 탈당하고 나서는 박근혜와 이명박의 싸움이 어떻게 될 거냐라는 게 굉장히.

    ◇ 정관용> 치열했죠, 정말.

    ◆ 박성민> 치열했죠. 그런데 이런 게 있어요, 선거에서는. 경선에서 다시는 얼굴을 볼 것 같지 않게 치열하게 싸우고. 이렇게 싸우는데 본선에서 헤어지지 않으면 아주 득이 되는, 도움이 되는 겁니다. 그 치르던 경선이.

    이명박, 박근혜가 그랬고 2008년에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이 그랬어요. 그런데 그걸 가만히 보면 야당일 때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정권을 되찾아오라는 지지자의 압력을 벗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박근혜 후보가 도곡동 BBK 이런 문제를 계속 제기를 했는데 그래서 이회창 씨가 출마하게 된 건 뭐 때문이냐면 바로 그 다음 주인가에 김경준이 한국으로 돌아와요.

    ◇ 정관용> 그렇죠. 그래서 이명박이 낙마할지도 모른다.

    ◆ 박성민> 낙마한다. 그리고 박근혜가 반드시 나를 지지한다, 반드시. 이걸 믿고 나와서 그때 집에도 3번 찾아갔지만 결국 박근혜는 이회창 지지를 안 하죠.

    금년에 또 미국 선거를 보면 그래요. 트럼프하고 힐러리 클린턴이 싸우는데 트럼프가 얼마나 공화당 표를 절대 흡수하지 못할 거다. 그리고 또 크루즈인가요. 전당대회 가서 딴소리했잖아요. 그런데 결국 공화당은 집권을 해야 되기 때문에 좋든 싫든 결집을 한 거예요.

    그런데 힐러리 클린턴은 버니 샌더스 표를 못 가져온 거죠. 주는 경우는 뭐냐 하면 야당은 권력을 다시 찾아와야 하기 때문에 결집을 잘하는데 여당은 분열을 해요. 그게 지금도 그렇고 2007년에도 아주 갈갈이 찢어진 거죠.

    ◇ 정관용> 그렇게 분열한 여당이 정말 일방적 선거가 됐고 그나마 이슈라고 한다면 이명박 후보로 상징되는 성장신화, 성공신화, 경제 살리기 그런 정도의 이슈. 그 정도의 이슈는 이명박 후보에게 너무나 유리한 그러한 이슈.

    ◆ 윤태곤>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참여정부 중반에 모 금융사 광고로 기억이 나는데 되게 빅히트를 쳤던 광고가 있습니다. 지금 기억하실 텐데요. 부자되세요 하는 거.

    제 기억에는 그 이전에는 한국 사회에서 그런 걸 직접적으로 돈, 부자, 이건 약간 뒤로 이야기하는 거지 직접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부자되세요, 강남에 집값이 폭등을 하고 그게 노무현 정부 때. 그러니까 MB 자랑이 그때부터 깔린 거였죠.

    ◆ 박성민> 그러니까 그전에 참여정부가 여소야대가 되고 그러니까 탄핵의 여파로 2004년 총선에서 152석인가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제 뭔가 그때는 사실 지지층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예요. 부동산 가격도 폭등하고 이럴 때이기 때문에 민생 문제를 가지고 풀어줄 줄 알았는데 들고 나온 건 4대 개혁입법이라는 겁니다. 국가보안법을 포함한. 그런데 그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때 지지자들이 원했던 건 그 이슈가 아니에요.

    ◇ 정관용> 잘 안 맞았죠.

    ◆ 박성민> 그러니까 그게 잘 처리도 안 됐고 그러니까 그걸로 시간을 다 끌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지지층들도 다 등을 돌리게 되고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명박 후보가 들고 나왔던 조금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국민성공시대라는 슬로건이 그냥 먹힌 거죠.

    ◇ 정관용> 그리고 또 길게 구조적으로 보면 IMF 터지고 10년이거든요. 처음에 IMF 터지고 금방 우리가 극복했다 그랬는데 삶은 안 좋아지고 양극화는 심화되기 시작한 역사가 10년을 쭉 이어왔단 말이에요. 10년쯤 되니까 사람들의 삶이 피폐한 거죠. 거기에 뭔가 옛날처럼 고도성장을 일굴 것 같은 후보. 그냥 거기에 다 열광해버린.

    ◆ 박성민> 김대중 대통령이 IMF에서 빌린 자금을 다 갚고 나서 우리는 IMF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선언했잖아요. 그런데 그건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잘렸고 카드 돌려막기하고 있고 이런데 말이죠. 적절치 않았죠.

     


    ◆ 윤태곤> 거기에다가 성공의 역설이라는 것도 있는데 김대중 정부 때 수평적 정권교체를 한번 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노무현 정권 때 정권 재창출해서 이른바 민주 정부의 2기 연속으로 해서 상당 부분의 진보가 부족하나마 많이 이루어졌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배가 불렀다는 거죠. 이 부분은 상당히 채워졌다. 그러니까 그 성공의 역설이라는 게 이건 이만큼 됐으니까 다시 경제 그런 식으로 갔다는 거겠죠.

    ◇ 정관용> 그리고 이제 바로 지난 2012년 문재인, 박근혜 후보가 맞붙은. 아까도 잠깐씩 언급이 됐어요. 경제민주화 또 정치혁신, 국민통합, 복지, 이런 등등의 이슈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그나마 제일 큰 거였다면 뭐라고 봐야 될까요?

    ◆ 박성민> 이슈가 없는 선거였다고 저는 보거든요.

    ◇ 정관용> 아예 없었다, 너무 많아서?

    ◆ 박성민> 그런데 그게 경제민주화가 왜 나왔느냐 하면 대표적으로 세대 전쟁이 벌어진 대통령 선거거든요. 세대 전쟁은 2010년부터 나타났습니다.

    ◇ 정관용> 지방선거부터.

    ◆ 박성민> 그게 보니까 저는 세 가지 때문으로 보는데 첫째는 2009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이제 자살한 사건 그것이 굉장히 정서적으로 젊은 사람들이게 영향을 미쳤고 2010년 지방선거 때 그래서 투표 인증샷이라든가 연예인들이 막 나서서 독려하고 이랬지 않습니까?

    그 선거에서 2, 3, 40대가 압도적으로 야당을 찍었어요. 5, 60대는 천안함 때문에 한나라당을 찍었지만..

    두 번째 이슈는 2008년에 월가가 붕괴하고 나서 세계적으로 금융위기 때문에 ‘오큐파이’ 시위도 있고 그랬지 않습니까?

    그다음에 세 번째가 아까 천안함 사건과 무상급식 같은 이슈가 있었어요. 세대가 뚜렷하게 갈렸는데 20대, 30대, 40대가 야당을 선택하고 50대, 60대가 한나라당 선택했습니다.

    이것 딱 선거 지고 나서 한나라당이 특별기구를 만들었다. 큰일났다. 젊은이들이 우리 안 찍는다. 그랬는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보니까 똑같아요. 2, 30대 또 지고 50, 60대만 이기는 거예요. 이거 안 되겠다. 그래서 박근혜 비대위가 들어서 아까 말한 대로 이준석, 손수조 막 데리고 했는데 그 선거 역시 똑같은 결과가 나왔어요.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가보면 45세까지는 문재인 후보가 출구조사를 보면 60%가 다 넘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후보는 30% 정도 했죠. 반면에 55세 이상은 박근혜 후보를 70% 이상을 찍고 문재인 후보는 20%대죠. 45세에서 55세까지는 박근혜 대표가 8% 이겼었습니다.

    세대 전쟁이 아주 굉장히 크게 일어났는데 그것은 그때부터 2008년 월가 붕괴 이후에 경제가 굉장히 양극화되면서 그러니까 그것이 사실은 세대전쟁으로 나타난 그전까지는 지역이나 이념이 굉장히 강력했는데 세대전쟁을 일으킨 2012년 경제민주화 이슈가 굉장히 크지 않았나.

    ◆ 윤태곤> 그때 이제 돌이켜보면 야권에서는 투표율이 높으면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 이게 원래 노년층 원래 많이 나오고 젊은층이 더 나온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름은 직접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유명한 야당 지지자들 중에 셀레브리티들이 투표율이 75%가 넘으면 어떻게 이벤트를 하겠습니다. 명동에서 무슨 춤을 추겠습니다, 이런 것까지 했어요. 투표율이 아마 76. 8%인가 그랬을 겁니다.

    ◇ 정관용> 그래서 다들 야당이 이겼다 생각했는데.

    ◆ 윤태곤> 그런데 젊은층도 많이 나왔는데 노년층은 더 많이 나와버린 거예요. 평소에 80%가 나온다면 거의 90%가 나와버린 것이고 저는 그때 선거에 좀 관여를 했는데 돌이켜서 내부자, 관여자 입장에서 보면 안철수 후보는 이제 사퇴를 하고 1:1로 박근혜, 문재인였지 않습니까.

    안에 했던 사람들로서 나중에 복기를 해 보면 후보 캠프 간의 준비가 제일 많이 돼 있었던. 옳다 그르다의 차원이 아니라 준비가 제일 단단하게 돼 있었던 팀은 팀 박근혜였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 정관용> 그래서 또 정치 분석가들이 물론 결과를 놓고 해석하는 거지만 당시 야권이 뭘 잘못해서 진 게 아니다. 문재인 나름 잘했고 안철수와의 단일화도 그동안 역대 야권이 승리할 때는 꼭 그런 연합 이런 게 있었으니까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다 했다. 그런데 박근혜는 더 잘했다.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 윤태곤> 안철수가 잘 안 도와줘서 그랬다, 나중에 그런 얘기도 나왔는데 기억하실 거예요. 12월 16일인가 야권에서는 골든크로스가 일어났다는 광화문광장에서 그때 이제 잠잠하게 있다가 노란 목도리를 문재인 후보한테 둘러줄 때 그때는 뭐 다 이겼다. 이번에는 문재인 다음 대통령은 안철수. 그런 분위기였는데. 저쪽은 더 올라가고 있었죠.

    ◆ 박성민> 그때 조금 전에 말씀하신 대로 박근혜 캠페인이 아주 훌륭했죠. 어떤 점에서 훌륭했느냐면 박근혜 후보는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또 차별화에 완벽히 성공했습니다. 두 번째는 이런 후보가 다시는 안 나올 것 같은데 대구, 경북과 충청도 두 곳을 다 고향으로 인식시켰어요. 그러니까 두 군데에서 압도적으로 이겼죠.

    그리고 캠페인도 아주 잘했습니다. 공약 준비도 그렇고 아까도 말했지만 야당이 들고 나왔을 때 유리한 경제민주화, 정치혁신 이런 걸 이슈가 안 되게 만들어버렸어요. 그런 점은 아주 훌륭한 것이고.

    불려나왔던 문재인으로서는 정말 정치인 같지 않은 그런 것을 어필했기 때문에 표를 정말 많이 모은 겁니다. 역사상 가장 많이 얻은 1470만표를 받고 떨어진 후보 아닙니까. 그렇게 했으니까 상당히 했고 젊은층들도 투표장에 나올 만큼 나왔어요. 75.8% 투표율인데 나이 드신 분들도 나올 만큼 나와준 선거.

    그러니까 양측이 거의 1:1로 최선을 다해서 붙었고 그런 상태에서 3.53%였으면 사실은 큰 차이가 아닌 거. 그러니까 이게 이길 선거를 졌다 이렇게만 얘기할 게 아니라 그때 박근혜 캠프, 박근혜 후보의 캠페인은 아주 훌륭했어요.

    ◆ 윤태곤> 그러니까 일반의 통념하고 다른 거 중의 하나가 지난 2012년 선거에서 증명이 됐는데요. 단일화는 하는 쪽이 유리하다. 상식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긴 사람들을 보면 비슷한 성향의 군소후보를 한 명씩 달고 있었던 경우가 되게 많아요. 지난 2012년 선거는 1:1이었지만 2007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MB 뒤에는 이회창. 2002년에 노무현 뒤에는 권영길. 97년 김대중 뒤에도 권영길이었어요.

    그러면 92년에 김영삼 뒤에는 성향이 비슷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정주영 후보가 범보수후보를 달고 뛰었는데도 이겼거든요. 그게 이제 조금 복수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은 그 세력에 자신감이 있다는 뜻도 사실 되는 말이거든요.

    ◇ 정관용> 운동장 자체가 그쪽으로 기울어 있다.

    ◆ 윤태곤> 그렇죠. 그걸 상징하는 뜻도 있는 겁니다.

    ◇ 정관용> 지난 대선에 박근혜 캠페인이 그만큼 훌륭했다. 그만큼 실력이 뛰어났다 우리 이런 얘기를 하면서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진짜 박근혜 대통령은 머리도 완전 비어 있고 그냥 꼭두각시 같은가 봐. 이런 식의 말들을 항간에서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대단한 실력을 갖춘 정치인인 것은 우리가 인정해야 되거든요.

    ◆ 윤태곤> 지난 대선만 그런 게 아니라 박근혜라는 정치인은 자기가 직접 참여하거나 자기가 지휘를 한, 당대표가 됐든 비대위원장이 됐든 선거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경선에서만 이명박한테 졌지. 무슨 재보선, 지방선거, 총선에 그러니까 2002년 선거에는 열린우리당이 이겼지만 그건 정말로 질 걸 거기까지 올린 거니까 박근혜가 사실 이건 거거든요. 선거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 정관용> 저는 그런 표현을 씁니다. 절대 그렇게 실력 자체가 없는 무시할 만한 이런 정치인이 아니고 출중한 능력을 가진 정치인이고 대통령이 되는 순간까지 그 능력을 정말 집요하게 최대한 발휘했다. 그런데 일단 딱 대통령이 되고 한 1년쯤 지나서부터 그냥 모든 걸 탁 놔버린 거 아닌가. 저는 요새 그렇게 평가를 합니다.

    ◆ 박성민>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다만 2012년 선거하고 2002년 선거를 놓고 봤을 때 야권에 조금 아쉬움이 있다면 이런 겁니다. 2002년 선거 때는 하루 전날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거 선거 해 볼 것도 없이 이회창이 이긴다, 이렇게 생각들을 했습니다.

    제 기억이 뚜렷한데 2002년도 선거 막 진행되는 동안 방송국에서 출구조사를 하잖아요. 실시간으로 사실 보안이지만 가끔씩 새어나오는데 양측에서 나오는 정보가 너무 달라요. 한쪽에서 이회창이 여유 있게 이긴다는 정보예요, 한나라당 쪽에서.

    그런데 노무현 쪽에서는 뭐라고 그러냐면 우리가 좀 1%쯤 진다. 그러다가 좀 가다가 1% 좀 이기는 것 같다 그러면서 계속 독려운동을 해요. 여기는 이긴 것 같이 하고.

    ◇ 정관용> 투표 독려운동.

    ◆ 박성민> 딱 까보니까 결국은 노무현 측의 판단이 맞았고 실제로 정확한 정보에 따라 한 거예요. 그런데 2012년에 반대예요.

    ◆ 윤태곤> 거꾸로였죠.

    ◆ 박성민> 어떻게 되냐 하면 문재인 후보 측에서 그날 오전부터도 수많은 이게 돌아요, 여론조사 결과가. 출구조사가 도는데 대개 조사는 박근혜가 이겼다는 조사는 없어요. 대부분 다 문재인이 이겼다는 거고 심지어는 4시에는 이미 사실상 끝났기 때문에 이러는데 새누리당 쪽에서는 졌다고 생각을 하고.

    ◇ 정관용> 자꾸 독려운동.

    ◆ 박성민> 계속 독려를 하는 거예요. 이러고 있는데 그 시간에 이겼다는 게 중요해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계속 선거운동을 해야 될 텐데 그렇게 안 하는 거예요.

    그리고 실제로 출구조사가 다 마감되고 나서 보니까 1.2% 박근혜가 이기는 것으로 발표가 딱 됐어요. 실제는 3% 넘게 이제 차이가 난 것인데 그런 건 좀 이해가 안 가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되는데.

    ◆ 박성민> 지는 사람들은 보면 방심을 하고 이상한 정보에 그렇게 현혹되고 이기는 사람들은 끝까지 우리가 부족하다, 이렇게 하고.

    ◆ 윤태곤> 그거하고 비슷한 이야기인데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네 번 출마해서 당선되지 않습니까? 호남 사람들 한이 많이 맺혔죠. 97년 대선 때는 광주의 분위기가 오후에 투표하자. 오전에 우리가 투표해서 투표율이 높으면.

    ◇ 정관용> 그 정도로 전략적 마인드를.

    ◆ 윤태곤> 투표율이 높으면 경상도에서 더 많이 한다. 오후에 하자. 그런데 지난 대선 때 제가 대구 쪽에서 실제로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어요. 대구에서 이제 어르신들이 길에서 모르는 젊은이들을 보면 투표했냐. 투표해라. 조용히 해야 된다. 오후에 하자. 그런 게 방금 말씀하신 아까 여론조사 실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런 정보가 유통하고 맞물리는 지점인 거죠.

    ◇ 정관용> 유권자들도 다 정치 전문가예요.

    ◆ 박성민> 그러니까 8080작전 있잖아요. 대구, 경북에서 80% 투표율에 80% 득표하자. 거의 됐지 않습니까?

    우리 흔히 2000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과 다른 모델로 된 줄 아는데 영남후보론, 그렇지 않아요. 김대중과 노무현은 똑같은 모델입니다. 세 가지 특징인데 첫째 호남의 압도적 투표율과 압도적 지지율입니다.

    압도적 투표율이라는 것은 광주 전남이 투표율 1, 2등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90% 넘는 거고 두 번째는 충청도에서의 승리입니다. JP랑 손잡고. 세 번째는 수도권에서의 승리입니다. 이게 사실 무너졌죠.

    지난번에는 광주는 투표율이 높았습니다마는 전남, 전북은 투표율이 그냥 평균치로 떨어졌어요. 오히려 경북이 대구, 경북이 올라갔지. 두 번째는 그리고 이제 광주만 9자를 찍었고 전남, 전북은 89, 87 이렇게 된 거거든요. 그다음 충청도에서는 졌어요. 그리고 수도권에서는 사실상 인천, 경기 지고 서울만 이겼는데 합쳐보면 몇 만 표 차이가 안 나요. 그러니까 이길 수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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