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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장애인이 만난 '시월드'…편견과 차별을 넘어



사회 일반

    여성장애인이 만난 '시월드'…편견과 차별을 넘어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가부장적 문화가 잔존하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에게 '시월드'('시댁'을 뜻하는 신조어)는 대표적인 명절 스트레스지만, 여성 장애인들이 만나는 시월드는 조금 더 고약하다.

    보이지 않는 편견과 차별까지 더해진 시월드에서 여성 장애인들은 올해도 속앓이하며 비장애인처럼 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 "어머님, 저 앉아서 일해도 돼요?"…차마 꺼내지 못한 말

    설날 당일인 지난 28일 강모(48) 씨는 아침부터 두 손을 모으고 '공손 모드'에 들어갔다. 여장부 스타일인 시어머니와의 하루는 12년째 쉽지 않다.

    어릴 때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의 근육이 마비되면서 장애 3등급 판정을 받은 강 씨는 6살 연하의 남편과 연애할 때부터 시어머니 눈칫밥을 먹어왔다.

    강 씨는 "결혼을 하고도 6~7년 동안은 명절 때 시댁에 가지도 못했다"면서 "시댁 입장에서는 내가 어떤 성격인지, 어떤 생각을 가졌는가 중요하지 않다. '장애인'이란 특성은 '나'를 대변하는 모든 것이었다"고 말했다.

    강 씨는 사소한 실수도 시어머니가 '쟤가 장애가 있어서 그렇다'고 여길까봐 악착같이 부엌일을 한다. 하지만 보조기 없이는 서기 힘든 그녀에게 시댁의 부엌은 조악한 공간이다.

    강 씨는 "서 있는 게 너무 힘들다 보니 '어머님, 저 앉아서 일해도 될까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가 도로 삼킨다"면서 "노력과 상관없이 안 되는 부분들까지도 흉으로 잡히는 게 싫어 군소리 않고 일한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강 씨는 시어머니를 이해한다. 그녀는 "시어머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장애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 같기도 하다"면서 "남들 며느리 자랑할 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을 어머님을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짠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강 씨의 부단한 인내와 노력에 끝에 찬바람만 쌩쌩 불던 '시월드'에도 최근 2~3년 전부터는 봄이 찾아 왔다.

    그녀는 "그래도 세 아들 키우면서 육아휴직 한 번 안 내고 열심히 살았더니 지금은 시어머니가 많이 인정해주는 편"이라며 "신혼 초기에 받았던 편견과 미움을 넘어 다정히 안부도 묻고 손도 잡아주는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 "내가 비장애인이었다면…" 맏며느리가 되고픈 장애 며느리

    전남 목포에 사는 황모(35) 씨는 이번 명절 연휴 동안에 경북 포항에 있는 시댁에 가지 않았다. 영상통화로 짧게 안부만 전했다.

    척추측만증에 하반신 마비로 1급 중증장애인인 그녀는 '차편이 없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가기 싫은 탓이 크다.

    황 씨는 "한 번 시댁에 가면 보통 3박4일을 지내는데, 그 기간에는 정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불편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어머님이 어떨 때는 '몸도 불편한데, 쉬어라'라고 했다가 어떨 때는 '너는 왜 일을 안 하냐'며 구박을 주니까 그 장단에 맞추는 것도 스트레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말 황 씨가 속상한 것은 맏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다. 시어머니는 부엌일부터 장보기나 청소까지 대부분의 집안일을 동서들과 상의한다.

    물론 황 씨를 배려한 일이라지만, 정작 황 씨는 부엌일을 하면서 오손도손 이야기하는 시어머니와 동서들의 관계가 부럽다.

    그녀는 "동서와 시어머니 대화에 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이방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끔 '내가 비장애인이었어도 이랬을까'라는 설움이 밀려오기도 한다"면서 "나는 맏며느리지만, 막내며느리만도 못한 처지"라고 씁쓸해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 장애 여성 4700명 '시댁 식구 때문에 힘들어'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일반 가정집에 거주하는 여성 장애인은 전국에 111만 9661명(추정 수).

    이 가운데 차별과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여성 장애인의 5.4%(4700여명)가 '차별의 주 가해자'로 '배우자 가족'을 지목했다.

    전문가들은 가부장적 문화의 잔재와 여성에 대한 고정적인 성 역할 등이 만들어낸 시월드에서 신체적·젠더적 약자인 여성 장애인은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장애라는 사회적 편견과 여성이라는 성적 차별을 이중으로 겪는 사람들이 여성 장애인"이라며 "사회의 가장 취약계층이다 보니 배우자 가족들에게도 무시당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 장애인들의 고부갈등 등은 단순히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라 장애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깔린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 여상장애인네트워크 백해련 대표는 "'여자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성 역할부터 탈피하는 것이 고부갈등을 완화하는 방법"이라면서도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의 경우에 이런 성 역할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결국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양보가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며 "장애라는 특성을 가족 모두가 이해하고 같이 극복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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