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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로, "추상화는 연실처럼 자기감정을 감았다 풀기"



공연/전시

    윤명로, "추상화는 연실처럼 자기감정을 감았다 풀기"

    윤명로, 얼레짓 86-801, 린넨 위에 아크릴릭 채묵, 182x227cm, 1986. 인사아트센터 제공.

     

    한국 추상회화의 거장 윤명로(1936-)의 60년 화업은 미답의 세계를 향한 추상 이미지를 새롭게 창조해내고 있다. 인사아트센터가 개최하는 <윤명로, 그때와="" 지금="">전에 작가의 작품 60여점이 선보인다. 1956년 첫 작품에서부터 2106년 신작까지 시기별로 5개층에 걸쳐 전시된다. 그의 작품 '겨울에서 봄으로'는 제작시기가 다른 세 작품(1992, 2012,2014)이 등장하는데, 각기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이 제목의 1990년 작품은 짧은 선들이 수없이 교차하는 이미지가 등장하는 반면, 같은 제목의 2014년 작품은 흰색과 갈색이 대각선으로 양분되는 이미지를 드러낸다. 24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겨울에서 봄을 맞는 마음이 세세한 마음씀에서 단순 간결한 마음가짐으로 바뀌어가는 것일까.

    윤명로, 바람 부는 날 MXV-410, 린넨 위에 아크릴릭_채묵, 112x194cm, 2015, 인사아트센터 제공.

     

    5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며 시기별로 나뉘어진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전시장마다 어떤 특징들이 느껴진다. 가장 최신작이 배치된 1층은 '고원에서'라는 작품 9점(2012- 2016)과 '바람부는 날'(2015) 2점이 선보인다. 이 방에 전시된 '바람부는 날' 연작은 마치 눈내리는 날 숲의 정경을 대하는 듯하다. 차갑고 신선한 겨울바람의 느낌과 함께. 이와 함께 바탕색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형상이 대조를 이루는 '고원에서' 시리즈는 장중한 심연 또는 침묵의 세계에서 영감이나 창조적 기운이 감도는 느낌을 준다.

    이들 1층의 최신작들은 싸리비 붓질 기법으로 완성되었다. 윤 작가는 마당의 눈을 싸리비로 쓸던 어느 날, 이 싸리비를 붓으로 쓰면 어떨까 생각이 스치자 당장 실행하게 된다. "예술가란 모방을 허락받지 못하고 태어난 고독한 존재들이다"고 했던가.이러한 시도와 역발상은 전혀 가지 않은 길을 추구하는 윤 작가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었다. 윤 작가의 새로운 작품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은 과거의 이력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1960년 한국 화단의 모노크롬(단색화) 그룹전에 대해서도 집단개성으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판단하고 이들과 거리를 두며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윤명로, 고원에서MXII-1029, 린넨 위에 아크릴릭, 218x291cm, 2012, 인사아트센터 제공.

     

    초기작을 담은 5층 전시장에는 1970년대 후반에 그린 '균열'시리즈가 선보인다. 왜 균열인가. 이 시리즈는 1970년 병역미필로 군대에 소집된 윤 작가의 체험을 반영하고 있다. 그때의 경험은 유신 말기 권력의 횡포와 겹치면서 권력에 의해 규범이 파괴되고 곳곳에 균열이 발생한 사회의 모습을 추상회화로 은유한 것이다.

    4층 전시장은 1980년대에 그린 '얼레짓' 시리즈가 선보인다. 얼레는 연실을 감은 실패를 말한다. 얼레짓은 연을 날리며 실을 풀었다가 당겼다 하는 동작을 말한다. 윤 작가는 "창공을 하나의 캔버스로 본다면 연을 날리며 다양한 변화를 본다. 그림도 자기감정을 감고 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얼레짓' 연작을 그리게 되었다"고 했다. 1980년대의 '얼레짓' 연작은 댓잎이 바람에 날리듯이 싱싱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1990년과 1992년에도 '얼레짓 이후'라는 작품이 등장하는데, 특히 1990년 작품은 대작으로 선이 굵고 강렬하다. 윤 작가가 얼레짓을 연상하며 작품을 그리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는 그때야 비로소 경제적 안정과 마음의 여유를 얻으며 어린시절 향수인 연날리기를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윤명로, 익명의 땅 91214, 린넨 위에 아크릴릭채묵, 181x227cm, 1991, 인사아트센터 제공.

     

    3층 전시장은 1990년대 초반에 그린 '익명의 땅'이 선보인다. 주변에 합강이 흐르는 창원에 큰 창고 형태의 작업실을 얻어 작업을 막 시작했을 때 작가는 심한 충격을 받는다. 그는 "큰 화폭이 손바닥만하게 느껴졌다. 이제껏 속아서 그림을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작가는 이때 가장 큰 작품을 그리게 된다. '익명의 땅' 연작은 대지와 자연의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기운이 느껴진다.

    2층 전시장은 '겸재 예찬'시리즈가 등장한다. 윤 작가는 왜 겸재를 좋아하는가. 그는 "겸재는 전통 동양화 기법을 해체한 굉장히 용기 있는 인물로서, 그의 기법은 추상화로 부를 정도로 혁신적이다"고 평가했다. 이어 "프랑스에서 '겸재예찬'을 전시했는데, 겸재는 프랑스의 세잔과 같은 사람이다. 세잔은 바위산을 분석적으로 그린 반면, 겸재는 정서적으로 그렸다. 겸재가 세인트 빅토와르 산을 그렸다면 세잔을 능가하는 작업을 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말한다. "나는 어떤 수고가 따르더라도 나의 내면의 세계를 부단히 추구해 나갈 것이다"고. 이번 전시는 한 작가의 추상회화 60년 화업을 통해 '정신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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