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진중권의 고양이 인문학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책/학술

    진중권의 고양이 인문학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인문학자 진중권의 반려묘는 ‘루비’, 진중권이 존경하는 철학자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에서 따왔다. 루비는 부르기 편하라고 줄인 것이고, 점잖은 신사숙녀들이 모인 공식 자리에서는 ‘루트비히 (진) 비트겐슈타인’이다. 연남동 골방에 은둔하는 현대의 수도승 진중권은 작업할 때 3일씩 세수도 안 하고 목욕도 안 하고 때로 이도 안 닦는다는데, 이 고독한 학문의 길에 루비는 유일한 친구이자 영혼의 동반자가 되어준다.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는 루비가 구술하고 진중권이 받아 적어 펴낸 책이다. 그 목적은? 낡은 인간중심주의 집사 문화를 버리고 새롭게 ‘고양이중심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해서! 고양이의 창세기부터 현대, 그리고 동서양을 아우르며 고양이에 관한 역사, 문학, 철학에서의 재미난 이야깃거리들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이를 통해 전국의 집사들은 냥이와 사는 지금의 삶이 매순간 각별한 철학적 사건임을 깨닫게 될 것이요, 아직 간택당하지 못한 이들은 고양이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리라.

    초보 집사들은 자기들이 우리를 데려왔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우리랑 좀 지내다보면 슬슬 너희가 우리를 ‘선택’한 게 아니라 외려 우리에게 ‘간택’당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할 거야. 다시 말해 우리를 데려온 것이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고양이계의 어떤 영적 힘에 의해 미리 결정된 사건, 그리하여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되도록 운명 지워진 사건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거지. 바로 그때 집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집사가 되기 시작하는 거야. ― 루비가 말했습니다, 〈고양이중심주의 선언〉 중에서

    저자 인터뷰

    편집자 모든 집사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인데, 그 교감의 의미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군요. 아 이건 뭐지? 하는 느낌이요.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는 선생님이 ‘루비’ 만나고 지내면서 느낀 것, 궁금한 점을 역사, 철학, 문학 세 파트로 나누어서, 집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책이군요.

    진중권 그렇죠,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키우면서 쟤는 왜 저럴까 하는 의문들 있잖아요. 냥이는 언제부터 인간들과 함께 살았을까, 고양이의 창세기는 있을까? 그리고 옛날에 제가 읽은 책들에 나온 고양이들이 계속 떠오르면서 그땐 왜 그랬을까, 장화 신은 고양이도 그렇고. 그런데 그땐 고양이보다는 이야기에 빠져 있었죠. 그러다가 집사가 되고 고양이를 중심에 놓고 다시 읽으니 모든 게 달리 읽히는 거예요. 모든 책들이.

    편집자역사, 철학, 문학이니 ‘고양이의 인문학’이라 불러도 손색없겠어요.

    진중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고양이의 인문학’을 염두에 두었죠. (개를 키우는 것과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코드가 각각 다른 것 같아요.) 고양이는 굉장히 철학적 동물이기 때문에, 인문학적 성찰을 자극하죠. 문학을 보면 말하는 개와 말하는 고양이가 나옵니다. 엄청 흥미로운 게 있어요. 개가 말하는 경우에는 대부분의 다른 동물들도 말을 한다는 것. 그런데 고양이가 인간의 말을 할 때에는 다른 동물은 말을 못해요. 이런 설정이 많다는 겁니다. 이게 고양이를 철학과 가깝게 하는 것이 아닐까. 개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나 영화는 인간에게 충실한 반려견 이런 개념인데, 고양이 같은 경우는 인간과 대등한 인격으로서 나오는 경우도 많아요. 어쩌면 인간보다 오히려 더 뛰어나던지. 아마도 이런 것들이 개와는 다른 고양이들의 언캐니한 특성에서 나오는 듯하고, 바로 그런 것 때문에 ‘질문을 던지게 하는 동물이다’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키우면서 받지 못하는 이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아이와 부모의 가족관계가 되면 동물을 애처럼 돌봐줘야 할 어떤 것이 되어버리잖아요. 그럴 경우 고양이가 주는 굉장히 중요한 선물을 놓치게 된다는 거죠. 고양이는 우리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게 하는 동물이고. 많은 사람이 고양이를 키우고 사진을 올리며 지내는데 그것에 그치지 않고, “고양이를 가지고 한 편의 훌륭한 인문학을 완성할 수 있다”라는 힘을 보여주는 거죠. 미시사적으로요. 실제로 경험을 해보고, 어디에 필이 꽂히는지에 대한 감각을 통해서죠.

    편집자《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에서 낡은 인간중심주의를 버리고 고양이중심주의를 확립하자고 하셨는데요.

    진중권 인간중심주의, 제일 짜증 나는 게 그거예요.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 중에서도 품종묘를 선호하고, 높은 값에 사고팔고, 코숏 같은 것은 분양도 안 되고. 이런 게 정말 인간중심주의예요. 인간들끼리 차별하는 것도 모자라서 그걸 왜 고양이에게 갖고 오느냔 말이죠. 분노해요. 품종묘를 더 좋아한다? 이런 경향은 집사 자격이 없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 엄마 아빠가 아기들을 편애하지는 않잖아요.
    품종별로 가격 매기는 것을 왜 하냔 말이죠. 아, 이게 인간중심주의다. 그런 뉴스를 보면 상처받고, 화가 나요. 2,500만 원짜리 고양이. 이건 고양이가 희귀하다고 자랑하는 거잖아요.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봐요. 고양이 하나하나마다 다 희귀하고 독특하거든요. 그걸 무시하고 외적인 것, 경제학적 희귀성 등 제품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잖아요. 솔직히 품종묘라는 것도 인간의 인위적 배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고양이의 외모지상주의 그것도 인간의 기준으로 보는 거고. 못생긴 애들은 입양 안 되고……. 자기 고양이는 자기가 제일 예뻐해야 한다, 나아가 모든 고양이는 다 예쁘다. 이렇게 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바라는 게 하나 있는데, 제 책을 읽고 길냥이들 보게 되면 친절하고 따뜻하게 말 걸어주면 좋겠어요. 말 걸어주는 방법은 T. S. 엘리엇이 얘기했잖아요. 고양이들에게 약간의 뇌물이 필요하다고요.(웃음)

    진 집사, 마지막 당부의 말씀!
    동물의 권리. 지금은 동물이 소유물로 규정되어 있잖아요. 이런 것에 대해 법철학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해요. 차별하면 안 되잖아요. 사실은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것 자체가 우리끼리 한 합의라고요. 고양이를 배제하고. 물론 제가 동물들에게 동일한 권리를 주자, 선거권을 주자라고 급진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윤리적으로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동물에게 잔혹하게 하는 사람은 인간에게도 잔혹하다라는 것은 인간중심주의적 논리란 말이에요. 히틀러가 개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레닌도 고양이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그런 문제가 아니라 동물에게 잔혹하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겁니다. 그게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그런 방식의 철학적 논의들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