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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자의 아픔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책/학술

    떠나는 자의 아픔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안나 가발디 소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떠나는 자의 아픔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흔히 남겨진 자, 버려진 자의 비참함에 익숙해 있다. 프랑스 작가 안나 가발다의 소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에서 떠나는 자의 아픔을 매우 인상적으로 드러낸 장면이 등장한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대화 장면인데, 이 시아버지는 결혼한 자신의 아들이 여자가 생겼다며 며느리를 배신하고 집을 나가자 며느리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눈다.


    "떠나는 자들이 무얼 더 바라는 거죠? 그들에게 월계관이라도 씌워줄까요? 아니면 따뜻한 격려의 말이라도 해줄까요?"
    시아버지는 내 날을 들은 체 만 체 하였다.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며, '나에게 잘못을 저지를 권리가 있을까?'하고 또박또박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은 용감한 사람들이야. 그 몇 마디 말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자기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안에 있는 잘못된 것과 추악한 것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해.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모든 것을 망가뜨릴 것을 각오하는 용기 말이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기심에서? 순전히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건 아닐 거야. 그럼 뭘까? 생존 본능?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 아니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용기. 우리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은 그런 용기를 내야 돼. 오로지 자기 혼자만 자신과 맞서야 할 때가 있는 거라고. '잘못을 저지를 권리', 말은 간단하지. 하지만 누가 우리에게 그걸 주겠어? 아무도 없어. 있다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야."

    소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온 마음을 다해 열심히 아파하는 세 남녀의 이야기다. 찰나의 사랑과 영원한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사유를 소박하지만 섬세한 문체로 그리고 있다.

    ·사랑을 잃은… 클로에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아니,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며 집을 나간 남편, 그런 나를 돕고 싶다며 시골집으로 데려가겠다는 시아버지. 하지만 정작 시골집에서는 자신의 아들이 불행하다 말하는 이 남자. 울분과 상심과 열등감에 젖어 시아버지에게 반감과 눈물을 보이자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는 언제나 남아 있는 사람들의 슬픔에 대해서만 말하지. 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의 괴로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니?"
    이기적이고 단호하고 나의 슬픔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듯한 이 한마디. 하지만 이 한마디가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첫 단추가 되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사랑을 놓친… 피에르

    그때 그녀를 놓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내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그녀에게 갔다면 나는 더 행복했을까? 나는 아무런 약속도, 거짓말도 하지 않으려 우리의 미래를 묻는 그녀의 질문에 늘 키스로 답했다. 그러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결국 나는 그녀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외국 어디 호텔 방에서 그녀가 써놓았던 메모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와 함께 하고 싶은 일을 적었던, 그저 좋은 남자를 만났다면 원하지 않아도 하게 될 그 일들을.
    '소풍 가기, 강가에서 낮잠 자기, 낚시로 잡은 물고기 구워 먹기, 새우와 크루아상과 쫀득쫀득한 쌀밥 먹기, 수영하기, 춤추기, 당신이 골라주는 구두와 속옷과 향수 사기, 신문 읽기, 가게 진열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기, 지하철 타기, 열차 시간 확인하기…….'

    ·사랑을 떠난… 마틸드
    우연히 그 남자를 만났다. 나를 계속해서 사랑하겠다는 남자. 하지만 자신이 가진 걸 버리려 하지 않던 남자. 그래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한 그 남자를. 수년 만에 다신 만난 그 남자는 내게 일상적인 질문을 했다. 그러다 왈칵 눈물을 흘리는 거야. 나는 그 남자에게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나 이제 갈게요. 나는 이미 울 거 다 울었어요."

    안나 가발다는 놀랍도록 깔끔하고 담백한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누가 옳고 그른지를 말하지 않는다. 단지 가정을 지켜냈기 때문에 생기 없고 무뚝뚝하며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남자(시아버지), 사랑을 찾아 떠나버린 남편 때문에 아파하는 여자(며느리), 능동적으로 사랑하다가 결국 사랑을 저버린 또 다른 여자의 모습(시아버지의 연인)을 대조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이들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사랑과 의무, 행복과 후회, 손 댈 수 없는 삶의 부조리를 전달한다. 그러면서 독자 스스로 진정한 사랑과 삶의 의미를 고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단 한 가지, 작가가 피에르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삶이 사랑보다 강하다.’라는 것. 결국 자기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안에 무엇이 있든 직시하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라는 것. 그것이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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