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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작가 울린 '국정농단의 추억'



정치 일반

    시나리오 작가 울린 '국정농단의 추억'

    • 2017-01-01 05:00

    脫장르, 超스펙터클 '최순실 게이트'…결과라도 '해피엔딩' 돼야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지난해 가을부터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기막힌 사건들을 접하며 영화인인 나로서는, 미안한 얘기지만 흥분을 감출 수 없다. 항상 소재에 굶주리는 입장에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은 '소재 밭'이나 다름없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만난 지인은 "요즘 최순실 때문에 영업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케이블TV 유료영화 채널에서 영업을 뛰고 있는 친구다. 최순실 사태 이후 고객들이 영화 보는 재미를 잃어가고 있어 실제로 매출도 많이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이희찬 독립영화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

     

    농담 반, 진담 반이겠거니 듣고도 돌아서 생각하니 하나씩 드러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기막히게 영화적이었다.

    영화사상 이 만큼 스펙터클(spectacle)한, 한치 앞도 예측 할 수 없었던, 선악의 구분까지 명확했던 소재가 또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는 대한민국 대중영화가 요구하는 모든 덕목을 갖췄다… 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큰 오산이었다.

    새누리당을 탈당한 정두언 전 의원이 이번 사건이 사극(史劇)의 소재처럼 두고두고 회자될 것으로 예측했듯이 나도 진지하게 영화화를 고민해봤다. 하지만 곧바로 난관에 부딪혔다.

    첫째로 장르 설정의 모호함이다. 이번 사태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강원도에서 캔 고구마 줄기가 제주도까지 이어질 지경이다.

    영화판에선 속된 말로 '있어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건의 사이즈를 키우는 경우도 있을 정도니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하겠지만, 문제는 그 큰 사이즈의 요소 하나하나만으로도 장편영화 한 편은 찍고도 남을 만큼 가지각색이라 한 그릇에 담기엔 벅차다.

    우병우, 김기춘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권력 이면의 추악한 진실을 드러내는 전형적 '정치 스릴러'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의 기원이 될 법한 최태민 목사 스토리를 되짚다 보면 영화 곡성 못지않게 '오컬트' 장르로 흘렀다.

    촛불을 태워 올린 '세월호 7시간'은 또 어떤가. '엑스파일' 식의 '미스터리' 장르로 풀 수밖에 없는 거대한 음모론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차은택·고영태 등이 최순실과 엮인 일화는 인생역전을 꿈꾸다 패가망신하는 '비스티보이즈' 같은 화류계 뒷골목 영화가 될 것이다.

    남이 쓰던 화장실 변기를 꺼렸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블랙코미디에나 어울릴 법한 캐릭터다. 그런데 5촌 조카가 북한산에서 비참하게 살해당한 사건은 또 공포 스릴러다.

    너무도 다채롭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장르는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봉착하고 말았다.

    셀 수 없이 많이 등장하는 인물들도 장벽이다. 박근혜, 최순실, 최태민, 김기춘, 우병우, 정유라, 장시호, 조윤선, 차은택, 고영태, 문고리 3인방 등 주조연급만 합쳐도 어림잡아 30명이 훌쩍 넘을 것이다. 이 사람들 모두가 등장하는 시나리오를 떠올려보니 '죽었던 인물이 다시 등장하고, 멀쩡히 활동해야 하는 인물이 갑자기 사라지는' 최악의 작품이 될 것만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화가 불가능한 이유는 주인공의 부재 때문이다. 이 거대한 이야기의 중심에 박근혜 대통령이 서 있다. 그러나 주인공의 필수조건인 ‘주체적 행동’과 ‘캐릭터의 변화’를 감당하기엔… 그냥 '서'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최순실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경우 오히려 더 큰 문제에 봉착한다. 주인공의 필수 덕목인 '관객의 애정'을 끌어내기엔 그녀와 딸린 정유라는 너무도 비호감이다. 주인공이 미워지는 불쾌한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상상이 이렇게 흐르다보니 너무도 영화적이지만 영화적이지만은 않은 이 거대하고 선정적인 이야기를 현실에서 버텨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 겸 관객들에게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됐다.

    수많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이 사태가 영화와 타협할 수 있는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결말이다. 대중영화의 미덕은 매력적인 결말에 있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영화가 끝났음을 관객에게 정확히 인지시켜야 한다.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영화산업에서 해피엔딩은 언제나 '옳은' 방식이다. '선이 악을 물리친다'는 결론. 작품성 기준으로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대중에겐 가장 매력적인 결말이다.

    정유년(丁酉年) 새해 봄이 찾아오기 전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여부를 주목하는 이유다.

    ※ 본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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