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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왜 우리만"…한국주부의 특별한 자괴감



생활경제

    "얼마나 더, 왜 우리만"…한국주부의 특별한 자괴감

    최순실‧기습인상·AI…허리띠 졸라매도 악순환 연속, 분노와 한숨만

    23일 서울 이마트 은평점에서 손님들이 장을 보고 있다. 정재훈기자

     

    “소불고기, 닭갈비 오후 3시부터 반값에 드립니다”, “1+1, 이번기회 놓치지 마세요”

    지난 23일 서울 이마트 은평점은 손님을 끌려는 판매원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터라 금요일 오후부터 손님들도 꽤 많이 찾아 장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가라앉아 활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불경기는 계속되는데 물가는 오르면서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져 가기 때문이다.

    ◇ 치솟는 물가, 장보기가 겁난다

    23일 서울 이마트 은평점에서 주부들이 계란을 고르고 있다. 정재훈기자

     

    지난해 연말부터 오르기 시작된 식음료품 가격은 올 연말 ‘최순실 게이트’ 틈을 타 무더기로 인상되고 있다. 맥주, 라면, 과자, 콜라, 빵 등의 기습 가격인상으로 장바구니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여기에 고병원성 AI의 습격으로 계란파동이 덮쳤다. 계란값 급등과 구매 제한으로 비교적 싼 계란을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이마트 은평점 김재민 파트너는 “30알짜리 계란 제품은 아침에 소량만 입고돼 금방 나간다. 오후에 나오면 살 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 월급은 그대론데, 굶을 수는 없고…

    이마트 은평점의 라면 코너. 최근 가격을 올린 농심의 라면 제품이 보인다. 정재훈기자

     

    주부들은 말그대로 먹고 살기가 힘들 정도다.

    성미미(59.서대문구 홍제동) 씨는 “벌이는 늘지 않은데 물가는 오르고, 다른 곳에 쓸 돈은 없지만 먹고 살아야하니까 어쩔 수 없이 산다”고 말했다.

    성 씨는 “상황에 맞춰 살아야죠. 뭐 할 수 있는 것도 없고”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최민아(49.은평구 불광동) 씨도 장 보기가 부담스럽다. 최씨는 “총액으로 보면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게 실감이 난다”면서 “물건 하나를 살 때도 많이 망설인다”고 토로했다.

    휴가여서 아내 대신 장을 보러나온 문병호(48.남.서대문구 홍은동) 씨는 “요즘 아내가 힘들다며 한숨을 쉬는데 일만 하느라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면서 “직접 장을 보러 나와보니 가격이 제 생각보다 비싼 것 같다. 월급은 한정돼있는데 걱정된다”고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 한 푼이라도 아껴야

    이마트 은평점 정육코너. 정재훈기자

     

    이마트 은평점 수산물 코너의 이윤주(53) 판매직원은 “손님들이 많이 사지 않는다”며 “쇼핑 카트를 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물건으로 가득 찬 쇼핑 카트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씨는 “가격도 오르고 경제적으로 불안하니까 많이 안사는 것 같다”면서 “세일하는 것만 골라 사고 나부터도 그렇다”고 말했다.

    5살 난 아들과 함께 장을 보던 변경일(39.여.은평구 응암동) 씨는 “오랜만에 마트에 나왔다”면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온라인쇼핑을 주로 한다. 내 카드가 할인되는 날까지 기다리고, 각종 쿠폰을 적용하는 등 가장 싼값에 사려고 모든 수단을 다 쓴다”고 멋쩍게 웃었다.

    ◇ 기습인상은 반칙, 정부는 기업 편

    맥주 제품들. 오비맥주는 지난달, 하이트진로는 이달 가격을 올렸다. 정재훈기자

     

    삶의 고단함은 자연스럽게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주부들에게 기업들의 기습 인상은 금수저의 횡포에 다름 아니었다.

    성미미 씨는 “국정농단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업체들이 갑자기 가격을 올린 것은 반칙”이라고 비판했다.

    변경일 씨는 “너무 오래 반복되지만 어쩔 수 없어서 이제는 무뎌지는 것 같아 더 짜증이 난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금수저들이라고 금으로 된 라면을 먹는 건 아니지 않느냐”면서 “먹는 것은 똑같고 굶을 수는 없는데 이런 식으로 이익을 올리려고 가격을 올리면 서민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민아 씨도 “서민들은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면서 “가진이들이 더 많은 걸 가지려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 보면 그냥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고현희(52.여.서대문구 북가좌동) 씨는 결국 정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 씨는 “정부가 소비자를 위해 뭘 한다는 느낌을 못받았고 결국 소비자보다는 기업 편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 자괴감과 각성 사이

    주부들은 “내년이 더 걱정되지만 너무 힘이 없고 걱정을 한들 방법이 없지 않나”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민의 힘으로 정부를 바꿔야한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주부들은 “이상한 쪽으로 돈이 새는 걸 현실로 보고 있는데도 우리 탓으로 돌리고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한다”면서 “이제 약이 오르고 화가 난다. 촛불집회를 더 열심히 나가야 할 것 같다”고 다짐했다.

    거대한 폭풍 같았던 병신년의 세밑. 대한민국 주부들은 자괴감과 각성 사이에서 다가오는 정유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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