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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군자 '향원' 우병우는 왜 청문회까지 왔나



법조

    사이비 군자 '향원' 우병우는 왜 청문회까지 왔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사실상 '우병우 청문회'로 불리는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5차 청문회가 22일 열린다. 현재로선 여야간 합의된 마지막 청문회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검찰 조사에서 팔짱을 끼고 수사 검사들을 훈계하는 모습으로 '황제 조사'논란을 야기시켰다. 또 청문회를 이리저리 피해다니면서 '법률 미꾸라지(법꾸라지)'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위세를 부렸지만 그는 '국민 밉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대환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8월말 우병우가 "영남사림 정신을 파괴했다"며 '봉화(영주) 출신 향원'이라고 조롱했다.

    '향원'은 <맹자> 진심편에 나온다. 맹자는 '향원'을 "겉만은 군자인 척하고 행동은 그에 반하는 사이비인 자"라고 규정했다. 조 수석도 "향원은 한마디로 '사이비'라며 똑똑한 척하고 겉으로는 인기는 좋은데 사실은 문제 인물"이라고 혹독하게 꾸짖었다.

    역사는 준엄하다.그는 민정수석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났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직무유기범'으로까지 몰렸다. 국민들은 현상금을 걸고 공개수배하며 그에게 수모를 안겼다.

    검찰 내에서 "우병우 추락은 어찌보면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많다. 인과응보가 정말 존재한다면 말이다.

    물러서는 법이 없고 겸손을 모르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우병우의 숨은 뒷얘기를 통해 청문회까지 오게 된 그의 인생역정(?)을 훑어본다.

    ◇ 검찰총장 뒷장막에서 검찰 인사를 주무르다

    김진태 전 검찰총장. 자료사진

     

    우병우는 2014년말 '정윤회 문건수사'를 박근혜 대통령 구미에 맞게 완벽하게 처리하고 민정비서관에서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 당시 40대 후반 민정수석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김진태 검찰총장(2013,12-2015.11)이 우 수석에게 승진 축하전화를 걸었다. 김 총장은 서로가 존중을 해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검찰총장인 자신도 (나이가 어리지만) 당신을 청와대 수석으로 존중할테니, 우 수석 당신도 자신을 검찰총장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둘 사이에 전화통화를 하지 말자는 제안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 총장이 우 수석을 경원시(?)한 틈을 타 우 수석은 오히려 검찰 인사를 좌지우지했다. 김 총장은 나이가 어린 민정수석과 교통하는 것이 껄끄러웠는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우 전 수석의 검찰 장악을 강화시키는 '독'이 되고 말았다. 돌아보면 김 전 총장은 그 사실을 알고도 방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 전 총장이 임기를 마무리할 때까지 두 사람간 전화통화나 대화는 드물었다. 몇차례 교통이 있었지만, 마지막 대화는 김 총장이 검찰총장직을 그만둘 때쯤 이뤄졌다.

    이때는 우 수석이 먼저 전화를 했다. 그는 "저 덕분에 상당히 잘있었죠?"라며 인삿말을 건넸다. 김 전 총장은 민정수석이지만 새까만 후배의 말버릇이 고약하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우 수석은 "제가 참고 참고 그러면서 전화를 안드렸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비꼬는 기색이 역력했다. 서로 교통을 자제하자는 취임 초 발언을 '앙갚음'한 것이었다.

    그가 실제로 검찰총장을 얼마나 우습게 여겼는지는 2015년 4월 <신동아>와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검찰총장 권력이 검찰총장 지 거냐”면서 “총장 임기가 2년이지만 실제 권한은 첫번째 인사인 1년뿐”이라고 위세를 떨었다.

    실제 당시 검찰내부에서는 김 전총장은 '대검'이라는 '섬'에 머물고, 검찰인사와 수사는 우병우가 모두 쥐락펴락한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총장이 껍데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훗날 김 전총장도 "내가 두번째 인사(총장 2년째 마지막 인사)할 때는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싹 빠져버리고 우병우가 다 해버렸다"고 실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 "상처받고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를…"

    우병우 전 민정수석. 자료사진

     

    2012년 7월 검찰 인사에서 우병우는 김강욱, 지익상, 조은석, 김수창, 김주선 등 동기(연수원 19기)들과 함께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 받는다. 동기 가운데 김진모, 공상훈, 이창재가 검사장으로 먼저 승진하고 다음해 승진 후보군으로 모두 법무연수원에 모아 놓은 것이다.

    그해 11월 눈이 내렸다. 테니스 코트에 눈이 쌓였다. 강찬우 전 검사장(당시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은 동호 회원들을 불러내 코트내 눈을 치우자고 제안했다. 우병우는 회원 가운데 한명이었다.

    빗자루를 마지못해 집어든 우병우는 눈은 공익들이 치우면 되지 왜 우리같은 고위인사들이 치워야 하냐고 볼멘 소리를 했다.

    이에 강 전 검사장은 "공익이 두명 뿐이어서 정문 앞 치우기도 힘들뿐 아니라, 테니스를 치는 '수익자'가 당연을 눈을 치워야지 공익한테 맡기면 되겠냐"고 말했다.

    그러자 우병우는 "상처 받고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한테 눈치우는 일까지 시킨다"며 다시 불만을 토로했다. 우가 노무현 대통령 사건때문에 승진에서 탈락하자 자신을 '상처받고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로 빗댄 것이다. 그렇지않아도 심사가 뒤틀려 있는데 눈까지 치우라 한다는 볼멘 소리였다.

    우병우에게 '물러서고 책임진다'는 자세는 그의 뇌리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로 임채진 당시 총장과 이인규 중수부장, 문성우 대검차장이 물러났지만 그는 '내가 무슨 책임이 있냐'는 식으로 버텼다.

    그런 면에서 우병우는 박근혜 대통령과 일치되는 성격을 가졌는지 모른다. 상대방과 공감능력이 제로인것이다. 모두 남탓일뿐 그에게 책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 이후 주변에서는 "지방에 한직으로 좀 물러나 있으라"고 그에게 권유했지만 그는 거부하고 김준규씨가 총장으로 취임하지마자 대검 범정기획관으로 승진하며 최측근이 됐다..

    그의 인과응보는 '책임'을 모르는데서 비롯됐다고들 한다. 넥슨땅 거래로 거취가 문제 됐을때도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고집스럽게 버텼다. 공감능력이 비슷한 박 대통령은 그의 보호자였다.

    그가 초기에 물러섰다면 최순실 국정농단은 드러나지 않거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물러설줄 모르고 공감능력이 없고 남탓하는 그의 '성격'이 아니었다면 역사는 또 달라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인과응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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