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문화예술계 뒤흔든 '블랙리스트' 왜 위험할까



문화 일반

    문화예술계 뒤흔든 '블랙리스트' 왜 위험할까

    [문화연예 연말정산 ②] "발상 자체 구시대적…유신독재 술책·공작정치 산물"

    붉은 원숭이의 해인 2016년은 굵직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아 말 그대로 '다이내믹'한 시기였습니다. CBS노컷뉴스가 올 한 해 문화·연예계에서 나타난 인상적인 흐름을 되짚어 보는 '연말정산'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국정농단 사태가 불러온 방송연예가의 봄
    ② 문화예술계 뒤흔든 '블랙리스트' 왜 위험할까
    <계속>

    지난 15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블랙리스트 예술가 관계자들이 박근혜 대통령 조형물을 들고 "국기문란사범을 받아 달라"는 취지에서 구치소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블랙리스트는 전형적인 공안정치의 산물입니다. 그 발상 자체가 굉장히 구시대적이라는 점에서 유신독재 정권의 술책, 공작정치와 다름없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는 19일 CBS노컷뉴스에 "블랙리스트는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보장돼야 할 문화예술계에 대해 지원해 줄 사람과 지원 안해 줄 사람, 아군과 적군으로 구별하겠다는 것"이라며 "그 행위 자체가 유신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빨갱이를 색출하겠다'는 전형적인 공안정치의 연장선이라는 데 심각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은 지난 10월 12일이다. 당시 한국일보는 문화예술계 한 인사의 증언을 인용해 "지난해 5월 흔히 말하는 블랙리스트가 청와대에서 내려왔다"고 보도했다.

    해당 인사는 "실제 이 문건을 직접 보기도 했거니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사진으로 찍어두었다"며 "표지 뒤에는 9473명의 구체적 명단이 리스트로 붙어 있었고, 이 때문에 이 문건은 A4용지로 100장이 넘어가는 두꺼운 분량이었다"고 폭로했다.

    이 명단에 따르면, 블랙리스트 인사들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뉘어 있다. 지난해 5월 1일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문화인 594명, 2014년 6월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문학인 754명,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한 예술인 6517명,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1608명까지 모두 9473명에 달했다.

    앞서 10월 1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도종환(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 자료를 분석한 결과 청와대와 문체부가 예술위원회 심사는 물론 심사위원 선정에 개입했고,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고 주장한 점도 이를 뒷받침했다.

    이 소식을 접한 문화예술계는 발칵 뒤집혔다. 이미 이명박 정부 들어서부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부 측의 각종 행태에 분노해 왔던 만큼, 이를 조직적으로 관리해 온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임계점을 넘기도록 만든 것이다.

    ◇ "블랙리스트는 이미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만들어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예술대학생들이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차은택·김종 등 문화예술계 비리 인사 처벌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이후 문화예술계에서는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폭로가 잇따랐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은 지난 14일 열린 한 좌담회에서 "이미 블랙리스트는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만들어졌고, 청와대로부터 지침이 내려왔었다"며 "1순위가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 총장이었고, 2순위가 부산영화제와 부천영화제였다"고 전했다.

    이어 "그런 맥락 속에서 당시 집행위원장이었던 김동호 이사장이 위원장을 그만두게 된것"이라며 "나 또한 '좌파'라고 하면서 노골적 몰아내기를 겪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이 그걸 주도했었다"고 덧붙였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이미 수 년 전부터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공공연하게 회자돼 왔다. 영화계의 경우 2014년 "올 초부터 미운털 박힌 영화사, 창작자 등의 이름이 오른 블랙리스트가 돈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듣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적인 자리에서 투자사나 배급사를 만났을 때 '상업적 성과만 낸다면 민감한 영화여도 좋다'는 분위기였는데, 올 들어 갑작스레 '그거 뜰 수 있겠어요?'라는 입장으로 돌변했다"는 주요 인사들의 증언이 돌았다.

    박근혜 정부의 검열 등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친 영향력을 세상에 밝힌 것은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긴 메모, 이른바 '김영한 비망록'이었다.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사항 등을 꼼꼼하게 기록한 김영한 비망록의 2014년 8월 6일에는 '광주비엔날레특별전. 광주시장(윤장현)'이라고, 이튿날인 7일에는 '우병우팀, 허수아비 그림(광주)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발', 8일에는 '광주비엔날레-개막식에 걸지 않기로'라는 메모가 있다.

    이 메모는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묘사한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을 가리키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의 상황은 메모대로 흘러갔다. '세월오월'은 2014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광주 정신展'에 걸릴 예정이었으나, '대통령을 희화화한다'는 이유로 광주시로부터 수정 압박을 받았다. 수정 뒤에도 전시 유보 사태가 벌어지자, 홍 화백은 결국 '세월오월'을 전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발'이 적힌 다음날인 8월 8일 보수단체들은 이 작품을 고발했고, 같은 날 '세월오월 전시 유보 결정'이 나왔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 조치에 의혹을 제기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연출 이상호)도 김영한 비망록에 등장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해인 2014년 9월 5일 메모에는 '다이빙벨-교문위-국감장에서 성토 당부(신성범 간사) 부산영화제 MBC 이종인 대표 이상호 출품'이라고 돼 있다. 이튿날인 6일에는 '다이빙벨-다큐 제작 방영-여타 죄책(죄를 물음)'이라고 쓰여 있다.

    ◇ "'블랙리스트' 같은 구시대의 산물에 대한 저항이 광장의 촛불"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8차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구속 처벌 촉구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문화예술계의 폭로와 언론 보도, 김영한 비망록 등으로 인해 문화예술계에 대한 청와대의 끊임없는 간섭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문화예술단체들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고 보고 지난 12일 이들을 특검에 고발했다.

    한예종 이동연 교수는 "예술가들도 의사 표현의 자유를 지닌 만큼 인종·성 차별적인 것 등만 아니라면 누구나 작품, 의견을 통해 정부를 비판할 수 있고 이념을 표현할 수 있다"며 "한편으로는 이러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표현의 자유 침해) 조치들로 인해 예술가들에게 자기검열이 생겨났는데, 이로부터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예술가들은 대체로 이러한 일이 벌어지면 감정적으로 분노하지만, 제도적으로 풀어가는 데 있어서는 자기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블랙리스트의 가장 큰 문제는 청와대, 그러니까 통치자가 직접 지시했다는 점에서 문화부가 청와대의 종속기관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데 있어요. 차기 정부에서는 문화 정책·지원 기구들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전면 혁신이 절실합니다."

    이 교수는 "(현 정권에서는)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정치계, 경제계에도 그 나름의 블랙리스트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라며 "이러한 구시대의 산물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광장을 밝히고 있는) 촛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화예술인들이 광화문광장에 캠핑촌을 만들어 노숙을 하고 있는 것도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이라며 "블랙리스트 문제는 근본적인 인권·헌법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광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최전선에 서 있다"고 역설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장의 정치를 두고 시민혁명, 명예혁명에 준한다고들 합니다. 프랑스 명예혁명만 봐도 '자유' '평등' '박애'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요구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무너졌다는 점에서, 광장의 촛불민심은 이를 바로잡자는 거잖아요. 여기에는 블랙리스트라는, 정권의 통제술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 있다고 봅니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