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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과 백남준이 만났을 때, 이상향이 꽃피네



공연/전시

    간송과 백남준이 만났을 때, 이상향이 꽃피네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좌)관수삼매(觀水三昧: 물을 보며 삼매에 들다), 최북, 견본담채, 31.6×11.0cm. (우)백남준, 'TV부처', 2002 (1974), CCTV카메라, 모니터, 부처상, 가변설치

     

    미디어 아트의 거장 백남준과 조선 중·후기 수묵화 대가들의 작품이 한 자리에 만났다. 17세기의 김명국, 18세기의 최북과 백남준은 2-3세기 차이가 나지만 이들과 공통점은 무엇인가? 동양 정신의 이상향을 추구하는 전통은 같지만 표현 매체만 수묵과 첨단매체로 달라진 것이다.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문화로 세상을 바꾸다'전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백남준아트센터 공동 주최로 열린다.

    최북의 '관수삼매'(맨 위 작품)에서 가부좌한 스님이 물가를 바라본다. 관수삼매는 물을 보며 삼매에 든다는 뜻이다. 물의 흐름은 자연의 본질을 드러낸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지점의 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내가 지금 봤던 물은 이미 흘러가고 없다. 다시 그 자리에 새로운 물이 채워진다. 시간도 이와 같다. 현재의 시간은 금세 과거의 시간이 되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현재를 향해 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한 지점의 물은 현재이자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백남준의 1974년(2002)년 작품 'TV부처'(맨 위 작품)는 부처가 TV에 비춘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다. 관객이 TV 속 부처를 보려고 하면 오히려 관객 본인이 나온다. 누군가 자신이 무엇인지 스스로를 응시하고 집중할 때 깨달음이 온다는 뜻을 담고 있을 것이다. 또한 성불한 부처도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만 그 깨달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늘 깨어 있는 마음! 최북과 백남준, 두 대가의 손에 의해 이미지로 표현되어 관객은 한층 더 쉽게 그 심오한 경지를 음미해볼 수 있는 것이다.

    (좌)백남준, <달에 사는="" 토끼="">, 1996, TV 모니터, 토기 조각상, 가변크기.(우)오동폐월(梧桐吠月: 오동나무 아래에서 개가 달 보고 짖다), 장승업(張承業), 견본담채, 145.1×41.4cm

     

    "달은 인류 최초의 텔레비전이다.' 백남준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이 말을 토대로 여러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달에 사는 토끼'이다. 나무로 만든 토끼는 TV에 비춘 달을 한없이 응시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달에 토끼가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도 여전히 달 속의 토끼를 상상하곤 한다. 과학적 사실과 시적 상상력, 이 둘의 우월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과학기술이 만든 TV라는 틀을 채우는 내용은 우리의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달을 많이 그렸다. 오원 장승업의 '오동폐월' 역시 그 중 하나이다. 보름달이 뜬 깊은 밤에 국화가 달빛을 받아 노란 빛을 더한다.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오동 잎에 다가올 겨울이 두려운 것일까? 이 국화꽃이야말로 이 해 핀 마지막 꽃이라는 것을 알아서일까? 보름달 뜬 밤에 개는 고개를 돌려 국화꽃을 바라본다. 오원이 자신의 심정을 지나가는 한 마리 개에게 의탁했는지도 모른다. 시적 정취가 아름답다. 이 두 대가들은 달이라는 소재를 통해 우리의 상상력과 시적 감수성이 과거의 일이나 현재의 일 같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

    (좌)촉잔도권(蜀棧圖卷), 심사정(沈師正), 지본담채, 58.0×818.0cm.(우) 백남준, <코끼리 마차="">, 1999-2001, 혼합매체, 가변크기

     

    심사정이 63세에 그린 '촉잔도권'은 국보급의 대형 두루마리 그림이다. 현재 중국 사천성과 광서성에 해당하는 촉(蜀)나라로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하여 시인 이백이 ‘촉으로 향하는 길은 하늘을 오르기보다 힘들다’고 말했을 정도다. 화면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따라가면서 바라보면 험준한 산길과 굽이굽이 물길을 만드는 깊은 계곡이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진다. 이 그림을 바라보면 인생의 역경이 절로 떠오른다. 그림이 끝나는 왼쪽 부분에서 평화로운 강 하구에서 돛을 단 배들이 순풍을 맞아 어딘가로 유유히 흘러간다. 초반의 역경을 딛고 끝까지 살아간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말년의 여유를 상기시킨다.

    백남준의 '코끼리 마차'는 인간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다. 과거에 정보를 교환하려면 편지를 주고 받거나 직접 먼 거리를 이동해 만나는 수밖에 없었다. 먼 옛날부터 이동수단으로 사용되었던 코끼리다. 코끼리는 상서롭기도 하다. 그 위에 노란 우산을 받치고 행차하는 부처님의 모습이 해학적이다. 부처님은 마차에 TV를 가득 싣고 있다. 정보는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이제 모든 사람이 TV를 통해 쉽게 정보를 공유한다. 매스 미디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는 이상향을 표현했다.

    이 두 작품을 통해서 심사정은 모든 순간에 정성을 다 하는 진지한 자세가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고 말하는 것 같으며, 백남준은 기술이 인간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이끌 것이라 믿는 것 같다.

    (좌)장승업, 기명절지 4쪽. (우)백남준, <비디오 샹들리에="" 1번="">, 1989, TV 모니터, 색전구, 흑백, 무성, 가변크기

     

    장승업의 '기명절지도'와 백남준의 '비디오 샹들리에 1번'은 기명절지도가 아시아 문화권에서 통상적으로 길상의 의미를 담듯이, 서구문명에서의 샹들리에는 부유함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부유함을 의미하는 샹들리에에 대중의 일상을 보여주는 TV를 배치함으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복(福)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보여준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간송미술문화재단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가상 현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VR 미디어를 활용한 작업, '보화각'이 소개된다. ‘보화각(葆華閣)’은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938년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설립한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의 옛 이름이다. 구범석 작가의 '보화각'은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보화각이라는 실재하지만 가볼 수 없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색다른 경험을 하도록 기획되었다. VR안경을 쓰면 보화각 2층 전시관의 갈색 진열장과 햇빛에 빛나는 먼지의 결까지 보일 정도로 생생하다. 청자가 눈 앞에 등장하더니 청자 속 학들이 날아오르는가 하면 분청사기의 꽃잎들이 흩날린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도 28점의 작품이 출품된다. 1950년대 독일 플럭서스 활동기의 자료들로부터 1960년대의 기념비적 퍼포먼스 영상인 '머리를 위한 선', 1970년대의 대표작인 'TV 첼로' 등이 나온다. 백남준의 영상 작품 중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47분 37초), '바이 바이 키플링'(1986, 30분 47초), '손에 손잡고"(1988, 41분 46초), '호랑이는 살아있다'(1999,45분 21초) 등은 꼭 시간을 내어 하나 하나 음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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