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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로몬]'박근혜의 몸과 정신을 지배한 자' 최태민은 누구?



법조

    [쓸로몬]'박근혜의 몸과 정신을 지배한 자' 최태민은 누구?

    "내 몸에 흰 피가 흐른다"…"나는 조물주가 보낸 칙사"

    쓸로몬은 쓸모있는 것만을 '즐겨찾기' 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신조어' 입니다. 풍부한 맥락과 깊이있는 뉴스를 공유할게요. '쓸모 없는 뉴스'는 가라! [편집자 주]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이 박근혜 영애, 구국선교단 총재 최태민과 담화를 나누는 모습(출처=유튜브 영상 캡처)

     



    "이미 사망한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의 몸과 정신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2007년 7월 20일 본국에 보고했던 외교문서 내용입니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함께 당내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던 상황.

    이명박 캠프는 당시 박 후보와 고 최태민 씨 간의 긴밀한 관계 및 최씨 자녀들의 전횡을 폭로하면서 박 후보의 공개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을 가장 먼저 예측했던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보수 집권세력이었네요.

    MB마저 규탄했던 '박근혜-최태민' 연결고리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이들의 '잘못된 만남'을 오늘 집중적으로 파헤쳐보겠습니다.

    ◆ '사이비 교주' 최태민, 그는 누구인가?

    최태민 씨(자료사진)

     

    1912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최태민은 자유당 정권 시절 경찰업무를 하다 1954년 승려가 된 이후 불교에 몸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나 사기 혐의로 쫓기는 신분이 되자 성당에서 영세를 받더니만, 1973년에는 본격적으로 사이비 종교 활동을 시작합니다.

    당시 대전일보에 실린 광고를 한 번 살펴볼까요? 제목은 '영세계에서 알리는 말씀'

    여기서 최태민은 자신을 '조물주가 보낸 칙사'라고 표현합니다. 그러고는 '불교계에서의 깨침과 기독교계에서의 성령 강림, 천도교에서의 인내천이 모두를 조화로써 실천시킨다'며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주' 최태민이 창설한 '영세교'입니다. 최태민은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해주겠다며 사이비 종교 행각을 활발히 벌였습니다.

    훗날 목사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가 신학대학을 다녔다거나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태민은 6명의 부인과 3남 6녀를 뒀습니다. 영적 후계자로 낙점 받은 것으로 알려진 '비선 실세' 최순실 씨는 그의 다섯 번째 딸입니다.

    ◆ 영애와 교주의 '잘못된 만남'

    "어젯밤 꿈에 국모님을 뵈었습니다. 국모님 말씀이 내 딸을 보살펴달라고 부탁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너(박근혜)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최태민)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1975년 최태민은 어머니를 여읜 박근혜 영애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수차례 보내면서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고 육영수 여사의 서거 이후 상심이 컸던 박근혜 영애는 같은 해 3월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 여러 가지 조언을 듣습니다. 잘못된 만남의 시작이었지만, 23살의 영애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겠죠.

    영애를 등에 업은 최태민은 같은 해 4월 '대한구국선교단'을 설립합니다. 자신은 총재를 맡고 박근혜 영애를 명예총재로 추대했는데, 이때부터 박근혜 영애는 행사장의 '마스코트'가 되어 왕성한 활동을 펼칩니다.

    이후 유사 단체도 여럿 생겼습니다. 구국여성봉사단이 출범했고, 여러 단체를 통합한 새마음봉사단이 만들어졌습니다. 박근혜 영애는 이들 단체의 총재로 추대됐고, 최태민은 1977년 발족한 새마음갖기운동본부의 본부장을 맡았습니다.

    1991년 5월 최태민 기사를 다룬 중앙일보 지면 캡처

     



    그러는 사이 청와대에는 쉴 새 없이 진정서가 날아들었습니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바로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는군요.

    "우리 기업들이 해마다 정치자금과 방위성금을 많이 내고 있지만 불만은 없다. 하지만 그런 곳(새마음봉사단)에까지 돈을 갖다바쳐야 하나. 해도 해도 너무하네"

    누구 떠오르는 사람 없으신가요? 그분 맞습니다. 최순실 씨.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자금을 기업에게서 뜯어내는 방식이 꼭 닮지 않았나요.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네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죠. 최태민은 재벌 총수들이 봉사단에 기탁한 수십억원을 유용하는 등 횡령과 사기는 물론 여성과의 스캔들에도 꾸준히 휩싸였습니다.

    결국 최태민의 전횡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박 전 대통령이 최태민을 직접 불러 '친국'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검찰 조사로까지 이어졌지만 영애에 대한 최태민의 영향력은 그대로였습니다. 오죽하면 김재규 부장이 "그자는 백해무익한 놈이다.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 없어져야 할 놈"이라고까지 표현했을까요.

    ◆ 박정희 서거 이후에도 육영재단 전횡

    1979년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최태민을 수사했습니다. 당시 합동수사본부 수사 결과 최태민의 횡령 건수는 모두 14건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군부는 대통령 일가와 관련된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사건을 덮었고 최태민을 강원도 인제로 '유배' 보냈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이 한때 구속수감됐던 최태민을 위해 석방 운동을 벌였다는 얘기도 나돌았습니다.

    1994년 2월 월간 '세계여성'에 실린 최태민과 박근혜 당시 육영재단 이사장의 사진

     



    80년대 들어 최태민은 딸 최순실 씨와 함께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박 대통령의 배후에서 전횡을 일삼았습니다.

    1994년 월간 '세계여성'에는 최태민의 기이했던 언행이 등장합니다. 어린이회관에 전 직원들을 불러 모아 "내 몸에는 흰 피(白血)가 흐른다", "산에서 8년 동안 도를 닦았다"고 말했다는 증언이 나옵니다.

    또 어린이 예절교육장소인 근화원 내 근화교회에서 열린 창립예배 당시 최태민이 박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다고 하네요. 최태민은 여기서 강론을 펼치기도 했는데 "나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78세였습니다.

    재단 운영권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질 않았고,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바람에 결국 1990년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씨가 육영재단의 새로운 이사장으로 추대됐습니다.

    최태민은 1994년 5월 사망했지만, 최순실 씨를 포함한 그의 자녀들은 이미 재단의 각종 이권 사업 등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뒤였습니다. 사실상 이 모두가 국민의 세금이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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