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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기자가 본 공자의 부활



책/학술

    미국인 기자가 본 공자의 부활

    신간 '공자가 만든 세상'

     

    신간 '공자가 만든 세상: 동아시아의 저력과 한계의 근원, 그가 돌아왔다'는 철저히 미국인의 입장에서 집필되었다. 미국의 유일한 라이벌인 중국과, 더 넓게는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세계 인구의 사분의 일 이상을 차지하는 동아시아 16억 인구를 관찰하여 제대로 이해하고자 쓰인 책이다. 저자 마이클 슈먼은 '타임'과 '월스트리트저널'의 특파원으로서 20년 가까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책의 1부에서는 기원전 500년에 공자가 노나라의 관리로서 공을 세웠던 순간부터 1966년 중국의 홍위병에 의해 묘가 파헤쳐지고 관이 쪼개진 날까지 무려 2,500년간의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변변치 못한 집안에서 태어나 늘 높은 관직에 진출하기를 염원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한 채 생을 마감한 공자는 죽은 후에야 현자로, 그리고 죽은 지 500년만인 후한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무관의 제왕'으로까지 불리게 된다. 그러나 1800년대에 일본과 서양 세력에 의해 청이 몰락한 후 1949년에 세워진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은 공자를 '봉건주의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공산주의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공자상의 머리를 잘라 수많은 고서와 함께 장작불 속에 내던지기에 이른다.

    20세기 후반부터 공자의 유산이 현대사회에서 갖는 의미와 역할에 대해 다시금 논란이 일게 되었다. 2부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세 가지, 즉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비정상적인 교육열, 그리고 근래 한국에서 더욱 논쟁적인 여성혐오에 대해 그의 공과 책임을 따져 묻는다.

    3부는 여러 현대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교문화가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정치적 차원에서도 예상과 달리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또 다른 길을 열어 주었다고 주장한다. 공자가 살아있다면 민주주의를 지지했을지 독재주의를 지지했을지에 대한 지은이 나름의 분석이 흥미롭다. 또한 공자를 끌어내리려 했던 50년 전 중국 공산당과 반대로 현재의 공산당이 공자의 사당 앞에서 줄줄이 큰절을 올리는 속내에 대한 분석도 곁들여진다.

    지은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화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진짜 공자를 찾아 나서는 데 집중한다. 저널리스트로서의 깊고 건전한 호기심으로 동아시아 곳곳을 취재하고, 동양사 전공자로서의 강한 연구자적 기질을 발휘하여 수많은 고전 문헌과 역사서를 참고하고 인용한다. 2,500년에 이르는 유구한 세월 속에 수없이 등장하는 공자의 흔적에, 때론 역사적 지식과 연계하여 때론 보편적 인간성에 근거하여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편견 없이 다가선다.

    오랜 연구 끝에 지은이가 공자에 대해 갖게 된 생각은 매우 호의적이다. 공자는 그의 명성을 오용해 온 치졸한 권력자들과 달리, 인류애를 바탕으로 사심 없이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고자 노력했던 사람이다. 따라서 지은이는 현대에도 공자가 있는 세상이 없는 세상보다 낫다고 단언한다. 다만 성경과 코란을 비롯한 모든 교리와 믿음에는 현대사회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상과 관습이 존재하기 마련인바, 유교 역시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책 속으로

    맹자는 이미 “왕은 꼭 필요한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라면서 그는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을 신성한 군주라고 칭한 반면, 잔혹하고 원칙이 없는 사람들을 모든 사람이 반대해야 하는 개인주의자라고 불렀다. 따라서 중국은 2,000년 훨씬 전에 민주주의 사상을 이미 고려하였으나 당시에 현실로 옮기지 못하였을 뿐이다.”라고 저술했다. 한국의 친민주주의 전사이며 대통령이었던 김대중도 이 대목에 동의했다. “존 로크보다 거의 2,000년 전, 중국의 철학자인 맹자는 유사한 사상을 설파했다. 왕은 ‘하늘의 아들’이고 하늘은 좋은 정부, 즉 국민에게 좋은 것을 베푸는 정부를 만들 권한을 그에게 부여했다. 만일 왕이 옳게 통치하지 않을 경우, 국민은 궐기하여 하늘의 이름으로 정부를 쓰러트릴 권리가 있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4년에 저술한 책에 썼다. p.304

    누가 옳은 걸까? 국민 스스로 통치할 수 없다는 믿음과 공동체의 이해가 개인의 이해를 우선한다는 사상 등, 리콴유가 주장하는 “아시아적 가치”에 공자를 반영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좋은 정부를 위해서는 그런 정부를 운영할 수 있는 탁월한 사람이 필수라는 그의 주장은 송나라 시대 왕안석의 주장과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 그러나 스스로 유학인이라고 불렀던 과거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리콴유는 자기의 이해에 일치한 공자만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공자는 버렸다. 도덕적 힘은 물리적 힘보다 강하므로 통치를 위해 엄격한 법과 형벌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공자의 믿음이었다. 유학의 관점에서 보면, 리콴유는 권력을 위해 사형이나 다른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또한 ‘항의’는 훌륭한 정부를 위한 중요한 사항이므로 유교적 통치자는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했다. 처형과 체벌, 그리고 반대파의 목소리를 탄압하고, 언론의 목을 죄는 리콴유 정권을 본다면 공자는 못마땅해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을 것이다. 이 싱가포르의 수장이 진실한 유학의 군자라면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p.318

    아주 오래전에 시작한 모든 교리와 믿음에는 현대사회에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상과 관습이 존재한다. 아마 성경을 아직도 엄격하게 따른다면 우리는 지금도 종을 부리고 있을 것이다. 또 힌두교 아내들은 남편의 화장터에서 불타는 장작에 몸을 던져야 할 것이다. 기본 가르침과 반대되는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모든 신앙은 때로 이용됐다. 십자군은 예수의 이름으로 살육했으며, 오사마 빈 라덴은 알라의 이름으로 테러를 감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 코란, 베다(고대 브라만교 경전)를 버리지 않았다. 바티칸의 역사는 대부분 부패와 탐욕의 역사였으며, 페도파일(paedophile, 소아성애자) 신부들은 벌받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도, 복음도 버리지 않고 있다. 유교도 다르지 않다. 공자가 현자-왕을 믿은 것도 복종하는 아들의 의무를 믿은 것도 사실이다. 또 그의 가르침은 여러 세기 동안 독재정권을 합리화하는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공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가치 없는 존재라고 할 수는 없다.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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