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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보다 강한 붓, '조선의 얼'을 지키다



책/학술

    칼보다 강한 붓, '조선의 얼'을 지키다

    신간 '위당 정인보 평전: 조선의 얼' | 김삼웅 지음

     

    "나를 춥고 굶주리게 할 수는 있어도 나의 얼을 빼앗아가지는 못한다"

    평생 민족의 혼과 얼을 탐구하고 지켜낸 '위당 정인보 평전'이 출간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내선일체를 모토로 민족말살정책에 몰두했다.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이 조선의 민족정신을 뒤흔들고자 무던히도 시도했던 것을 보면 하나의 민족이 가지는 정신과 얼은 나라와 국민을 지탱하게 하는 근간이다. 정인보는 이런 얼의 중요성을 진즉에 깨달은 사람이었다. 총독부가 조선을 영구 지배할 목적으로 조선의 역사를 뿌리부터 왜곡하는 '조선반도사'를 편찬할 때 이에 맞서 정인보는 '오천년간 조선의 얼'을 집필했다. 이는 조선사를 얼이라는 주제로 해석하려는 시도였다.

    일부는 그가 국내에서 직접 항일운동 전선에 나서지 않았다며 용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인보는 '칼보다 강한 붓'으로써 평생 민족의 혼과 얼을 탐구하고 지켜냈다. 또한 처음으로 '국학’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여 이 땅에 '국학'의 뿌리를 내리고 품격이 높은 국한문 혼용의 산문을 쓰고 고아한 한국어로 시조를 지었으며 민족의 정신과 뿌리를 다루는 국사, 국문학 등에 힘을 쏟았다. 이에 따라 새 나라의 건설에는 민족의 얼이 깃든 대학이 있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동지들과 국학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정부 수립 이후에는 4대 국경일의 노랫말을 지어 그의 애국정신, 역사인식, 문장력을 듬뿍 담아내었다.

    이처럼 그의 생은 칼로 싸우는 투사의 삶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조선의 뿌리를 지키는 일에 몰두하는 나날이었다. 그러니 그가 항일운동 전선에 직접 나서지 않았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한때 열정적인 투사였다가 쉽게 변절하는 사람들도 쉬이 보이는 시대에, 국내에서 꿋꿋하게 민족진영의 빈자리를 지키며 일제에 대항한 정인보의 의지는 어느 시대건 귀감이 될 만한 모습이었다.

    정인보가 늘 글만 쓰는 유약한 선비는 아니었다. 새 나라의 건국에 앞장선 지도자의 면모도 있었다. 감투나 권력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신생 정부수립 초기에 관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에서였을 것이다. 국학대학을 설립해 초대 학장에 취임하고, 이승만 정부의 초대 감찰위원장 시절 이승만 측근의 비리를 파헤치다가 1년여 만에 사표를 던지고 뛰쳐나온 사실이나, 명예나 궁핍함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간 결기를 보아도 그가 뒤에 숨어 글만 쓴 나약한 선비는 아니었다.

    특히 이 책에서는 그동안 정인보의 행적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임시정부봉대 혁명위원회에서 정인보가 부위원장을 맡아 이끌었다는 사실이다. 임정봉대의 목적은 미군정을 축출하고 임시정부를 세운다는 것이었으나 결국 이 거사는 불발로 끝났다. 아마 성사되었다면 한국 현대사를 물굽이가 바뀌고 정인보의 인생행로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선천적으로 정치나 권력에 맞지 않았던 정인보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한국 현대사에서 큰 획을 그었을지 모를 정치 사건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이는 새로 수립되는 정부가 올바른 방향을 잡아 민족의 위기를 타파하고자 했던 그의 사명감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다.

    6·25 전쟁 중에 납북되면서 그의 유족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할 처지가 되었다. 이승만 정부가 납북자 가족들을 심하게 억압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가족은 어렵게 장만하여 살고 있던 집을 자유당의 실력자 임철호에게 빼앗기는 수난을 당했다. 이승만 정부의 농림부장관 임철호가 권력을 빙자하여 절취한 것이다. 정인보는 납북되어 개성으로 가던 중 낙오되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하나 자세한 것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가 많은 업적을 남김과 더불어 인품이나 학문의 깊이에 있어서 뭇사람의 존경을 받았음에도 그에 관한 연구와 대접은 너무 초라하고 미약한 편이다.

    김삼웅 지음 | 채륜 | 423쪽 | 19,000원 {RELNEWS: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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