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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 아쿠아리움에서 가족의 비밀과 마주하다



책/학술

    미국 소설, 아쿠아리움에서 가족의 비밀과 마주하다

    신간 '아쿠아리움'

     

    미국 현대문학 작가 데이비드 밴의 신작 소설 '아쿠아리움'이 출간되었다.

    거대한 도시 시애틀에서 케이틀린과 엄마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자신들만의 아쿠아리움을 만들어 그 속에서 삶을 이어간다. 케이틀린은 다른 세계와 격리된 아쿠아리움을 어둡지만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느끼고, 수조 안에서 바다를 모르는 채 살아가는 물고기들을 통해 세상과 삶의 의미를 알아간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바다를 볼 수 있는 도시 시애틀. 열두 살 소녀 케이틀린은 매일 수업이 끝나면 아쿠아리움에서 엄마(셰리)가 데리러 오길 기다린다. 힘겹게 생계를 꾸려가는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는 케이틀린에겐 물고기를 구경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위안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쿠아리움에서 한 노인을 만나 물고기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는데, 그는 19년 전 병든 아내와 딸을 버리고 떠났던 케이틀린의 외할아버지였다. 외로운 생활에 지쳐 있던 케이틀린은 할아버지가 생겨 기뻐하지만, 셰리는 자신과 어머니를 내팽개쳤던 아버지에게 격렬한 분노를 터뜨린다. 아버지가 사라졌을 때 열네 살이었던 그녀는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병에 걸려 죽어가던 어머니를 돌보며 극한의 공포와 외로움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와 다시 가족을 이루자고 제안하며 케이틀린에게 애정을 표현하자 셰리는 오랫동안 억눌렀던 감정을 폭발시킨다. 또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할아버지와 화해하기를 바라는 케이틀린을 몰아붙인다. 케이틀린은 용서와 화해를 원하는 할아버지와 그를 증오하는 엄마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이들을 하나로 감싸 안기 위해 노력한다.

    단둘뿐인 삶에서 케이틀린과 엄마 앞에 나타난 할아버지는 영원히 회복되지 못할 상처이다. 그동안 숨겨져 있던 엄마의 상처가 할아버지의 등장과 함께 드러나고, 이 상처는 케이틀린에게도 지우지 못할 새로운 상처를 만들고 만다.

    나는 그때 이후로 줄곧 그런 생각을 해왔다. 결국 우리는 멀리 벗어나지 못하며, 어떤 발견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은 단지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문득 드러나는 것일 뿐이라고 말이다.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곧 용서로 가는 길일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났던 그날을 돌아볼 때면 나는 엄마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을 때를, 할아버지가 나타나기 이전을, 그런 무게에 억눌려 있을 때를 떠올려본다. 집에 도착해서 엄마가 침대 위로 쓰러질 때, 나를 끌어당겨 침대 위로 쓰러지던 그때, 씬벵이처럼 내가 엄마에게 꼭 달라붙어 있던 그때, 부드럽고도 강한 엄마의 산 아래 손과 발을 묻던 그때, 그리고 우리가 세상의 전부라고 느꼈던 바로 그때를 말이다._(345~346쪽)

    '아쿠아리움'은 망각을 통해서라도 이를 회복하려는 노력, 그러나 그 속죄와 용서의 과정에서 다시 서로에게 상처를 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간의 내면을 외부의 풍경으로 보여준다.”라고 했던 그는 어둡지만 안전해 보이는 아쿠아리움과 그 안의 물고기들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상실, 그리고 작은 희망의 씨앗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책 속으로

    물고기들은 바람도 느껴본 적이 없겠지. 녀석들은 추운 줄도 모를 테고, 눈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들은 분명 기다리고 있다. 모든 물고기들이 마찬가지다. 그 유리 안쪽에서 녀석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우리를 보았을까? 아니면 그저 유리에 비친 제 모습을? 거울로 만든 집처럼? _14p

    잘 모르겠어요. 나는 대답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알 수가 없었다. 어린애들 특유의 공포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겐 엄마뿐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세상에서 나한테는 엄마뿐이었다. 엄마가 전부였다. 엄마는 그러니까, 산호 수조 속, 복제된 듯한 그림자 형상 같은 것이었다. 문득 엄마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_29p

    나는 그를 끌어안았다.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싸안았다. 그렇게 매달릴 누군가가 필요했다. 풀잎처럼 바스락거리는 머리칼, 마치 해마의 갑옷처럼 딱딱한 어깨뼈에, 지독히 못생겼지만, 나는 그가 나만의 산호 가지라도 되는 듯 그렇게 그에게 매달렸다._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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