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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뉴스] 영화 '암살'·'밀정' 왜 '의열단'에 주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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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y뉴스] 영화 '암살'·'밀정' 왜 '의열단'에 주목할까?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지난해 개봉한 천만영화 '암살'이 있었는데 암살과 비슷한 장르의 영화가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바로 영화 '밀정'이다.

    영화 암살과 밀정의 공통점은 비슷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중에서도 특히 무장투쟁을 이끌어온 '의열단'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영화 '암살'과 '밀정' 왜 '의열단'에 주목할까?"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영화 '밀정'이 지난해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 '암살'과 비슷한가?

    = 일제치하 독립운동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시대상이나 영화의 소재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영화를 보면서 암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가장 닮은 점은 항일무장투쟁 조직으로 일제를 두려움에 떨게했던 '의열단'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고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암살에서는 김원봉(배우 조승우)으로 밀정에서는 정채산(배우 이병헌))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는 영화의 결이 다르다. 소재는 항일무장투쟁이지만 암살은 좀 화려해보이는 반면 밀정은 어두우면서 좀 더 사실에 접근하려고 한다.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암살은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두었다기보다 일제강점기 때 있었던 여러 일들을 아주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그런 영화이고 극적인 요소를 많이 집어넣은 그런 영화"라면서 "그러다 보니 어떤 재미의 측면에서 감정을 따라가기 쉽다라는 점에서 관객들이 굉장히 따라가기 쉬운 영화"라고 말했다. 반면 "밀정은 훨씬 건조하고 그러면서 역사적인 사실에 더 강하게 근거를 두고 있는 영화라고 볼 수가 있다"고 설명했다.

     

    ▶ 암살이나 밀정에서 왜 '의열단'에 주목하는 것일까?

    = 영화계에서 의열단에 주목하는 건 첫 번째, 기본적으로 흥행요소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는 "의열단은 비장미가 있고 숨겨진 역사인데다 직접적이고 순교적인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자체가 드라마틱 하기 때문에 영화감독들이 매력적인 소재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밀정의 김지운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밀정>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실제로 있었던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토대로 당시 의열단에 일어났던 아주 중요한 몇 가지 사실들을 엮어 극화한 영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해에서 경성으로 일제의 심장부인 총독부 등의 주요시설을 타격할 폭탄을 들여오려는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과 의열단의 조직과 계획을 방해하고 파괴하려고 들어온 조선인 일본 경찰 간의 암투와 회유와 교란 작전을 스파이 영화의 장르적 쾌감 속에 그리고자 했다"면서 의열단의 활동자체가 흥행 요소가 되기 때문이라는 걸 내비쳤다.

    역사학계에서도 그런 시각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은 "의열단 활동자체가 영화소재로 삼기 좋은 암살, 파괴 이런 것이고, 김원봉 단장도 대중에 잘알려지지 않았지만 영화감독들에게는 매력적 인물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일제강점기의 어두웠던 역사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광복 70주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라를 팔아먹은 일제부역자들의 자손들은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인 부친이나 조부 등이 일제로부터 받은 '은사금'으로 지금도 호의호식하고 있지만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특히 일제의 가장 참혹한 범죄 중 하나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가해자인 일본이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고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도 박근혜 정부가 '불가역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서면서 국민적 분노가 들끓고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소녀상지키기 운동이 폭설과 혹한 그리고 올 여름 그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다. 이런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인 것이다.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건국절 논란도 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의 독립운동사를 지워버리려고 하는 어떤 사람들 또는 해방 전후사에 대한 어떤 기억들을 전부 말소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이 당시를 다룬 영화를 우리가 많이 보는 것,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영화 암살을 만든 케이퍼 필름 안수현 대표는 "2006년 영화 <타짜>를 찍은 뒤부터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제작을 구상했다"면서 "실제로 1930년대를 찾아가보니 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독립운동과 친일의 문제 그리고 방관자의 모습을 다룰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영화 제작사나 감독들은 그런 의도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 학계나 평론가들의 분석이다.

    상명대 주진오 교수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 교과서는 바로 이러한 서술(영화 암살과 밀정이 보여주는)과 인식을 부정하려는 것"이라면서 "암살과 밀정을 통한 의열단에 대한 (영화계의)관심은 그에 대한 거부라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도 "정부나 권력이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지 않으니 영화에서라도 그런걸 가르치려 하는 것"이라면서 "영화가 역사바로잡기의 일환으로 관객들에게 감정적으로 스며들면서 은연중에 그런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영화 암살부터해서 의열단원들의 이야기가 단골 소재가 되면서 잊혀졌던 독립운동가들이 재조명 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사실은 교육이 해야할 일을 영화가 떠맡는 것이지만 이런 움직임 자체가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국민적 열망의 반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의열단이 실제로 일제강점기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요인을 암살하고 그랬나?

    의열단원들이 남긴 사진. 이들 모두 살아서 해방을 보지 못했다.

     

    = 그렇다. 경찰서와 조선총독부, 수탈창구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대한 포탄투척이 이어졌다.

    1920년 9월 14일, '부산경찰서 폭탄투척의거' 의열단원 박재혁에 의하여 부산경찰서가 폭파되고 서장 등 3명이 즉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의거는 의열단에 의하여 계획된 암살폭파사건의 하나로 부산 출신의 박재혁에게 명하여 그 대상을 부산경찰서로 정한 것이다.

    부산경찰서 폭탄투척의거가 일어난 지 불과 3개월 만에 이번에는 경상남도 밀양경찰서가 폭탄세례를 입은 사건이 일어났다. 1920년 12월 27일이다. 밀양경찰서 서장실에서 전경찰서원이 모여 서장 와다나베의 훈시를 듣고 있을 때, 밀양 출신의 의열단원 최수봉이 경찰서 창밖에서 이 기회를 노려 폭탄 2개를 연달아 투척하였다.

    1921년 9월 12일 오전 10시경 서울 남산 밑에 있는 왜성대 총독부청사 2층에 있는 회계과와 비서과에 각각 1개씩의 폭탄이 투척되었다. '조선총독부 투탄의거'다. 비서과의 것은 불발이었으나, 회계과의 것은 큰 폭음과 함께 폭발하여 건물의 일부가 파괴되었다.

    1922년 3월 28일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가 기선편으로 상해에 도착한다는 정보를 접하자, 의열단은 그의 암살저격계획을 세웠다. 제1선을 맡은 오성륜은 배에서 내려 걸어오는 다나카를 저격하였으나, 때마침 앞으로 나선 영국인 여성이 맞아 즉사하였고, 제2선을 맡은 김익상이 곧이어 자동차에 오르는 것을 저격하였으나 그의 모자를 관통시키는 데 그쳤다. 제3선의 이종암은 앞으로 나아가 폭탄을 던졌으나 자동차 뒤에 떨어진 폭탄이 불발되고 말았다.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의거를 일으킨 사람이 의열단원 김상옥이었는데 그가 순국할 때까지 당시의 일본경찰당국도 몰랐다.

    1924년 1월 5일 동경 니주바시 사쿠라다몬에 폭탄을 투척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의거는 의열단원 김지섭에 의하여 감행된 것으로 일본왕이 사는 궁성을 파괴하고자 한 것이다.

    1926년 12월 28일 하오 2시경 동양척식회사 및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한 사건이 일어났다. 의열단원 나석주에 의하여 이루어진 의거로, 의열단이 그동안 계획한 여러 차례의 암살 및 파괴공작이 실패한 뒤 모처럼 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 의열단은 처음부터 파괴나 암살을 목적으로 설립된 것인가?

    의열단이 태동한 곳이다. 김원봉 등은 1919년 11월 중국 길림성 파호문 밖 반씨 집이었던 이곳에서 의열단을 창설했다. (사진=사진작가 고 권태균 제공)

     

    = 그렇다. 1919년 3⋅1 운동 이후 다수의 민족주의자 및 독립운동가들은 실력 양성론 혹은 외교론에 의존한 운동 방식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1919년 11월 만주 길림성에서 김원봉 등 한국독립운동가 13명의 주도 하에 의열단이 조직된다. 의열단은 암살·파괴·폭동 등을 중요한 운동 전략으로 채택하였다.

    의열단의 이념적 배경이나 구체적인 행동계획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작성한 '조선혁명선언' 이를 <의열단 선언="">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 에 자세히 나온다.

    의열단은 창단 직후 '공약10조'와 '5파괴', '7가살(可殺)'이라는 행동목표를 기본규약으로 삼아 독립운동의 지침으로 채택하였다.

    공약10조의 1이 "천하의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인데 여기서 의열단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조선혁명선언 중 이런 대목이 있다.

    "조선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일본을 쫓아 내어야 할 것이며, 강도 일본을 쫓아 내려면 오직 혁명으로써 할 뿐이니,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쫓아낼 방법이 없는 바이다", 또 "이제야말로 파괴와 건설이 유일의 사명일뿐이다. 현재의 조선 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에 의하여 신조선을 건설하는 데 장애되는 '강도 일본'의 세력을 파괴할 방법을 연구할지니 그 방법은 조선 민족이 한 덩어리가 되어 일본에 돌격하는 일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1,민중은 우리들의 혁명운동의 대본영이다. 2. 폭력은 우리들의 혁명에 유일한 무기이다. 3. 우리들은 민중으로 더불어 손을 잡고 천만 년이 지날지라도 이 '강도 일본'의 세력을 파괴하기 위하여 폭력에 의한 암살, 파괴, 폭동들을 그치지 아니할 터. 4. 우리들의 생활에 적합지 못한 제도를 벗어나서 인류가 인류를 압박하는 등의 일이 없는 이성적 조선을 세울 일로 규정하고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문(의열단 선언문).

     

    ▶ 앞으로도 의열단이나 일제치하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들이 많이 나올까?

    =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과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린다.

    영화평론가인 이동진씨는 "갱스터 영화는 트렌드였지만 영화 암살이나 밀정은 의열단을 소재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트렌드로 자리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의열단을 소재로 해서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역사학계는 근현대사를 제대로 다루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은 "근대사나 독립운동,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의 실제를 보여주는 영화가 많이 만들어진다는 자체가 고무적이고 반가운 일"이라면서 "다만 제대로 된 영화, 역사를 바라보는 고민이랄까 한국의 근현대사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그런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준식 연구위원은 "그런 관점에서 '암살'은 새로운 경지를 연 영화로 문제의식이 훌륭하다"면서 "다만 오락영화로 재미를 추구하다보니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오해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황옥 경부의 경우도 영화의 내용과 실제적 사실사이에 괴리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황옥 경부가 일제 경찰의 밀정이었는지 아니면 의열단원으로 독립운동을 수행했는지 그에 대한 판단이 모호한 게 사실인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지 걱정이라는 것이다.

    ▶ 영화 암살이나 밀정이 애국심을 강요하는 이른바 '국뽕영화'인가?

    (사진=영화 '밀정' 스틸컷)

     

    = 그렇지 않다. 영화 암살이 무거운 주제임에도 밝고 화려하면서 상업성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비쳐졌다면 밀정은 암살에 비해 전반적으로 무겁다. 관객들에게 애국심을 강요한느 국뽕영화라면 이렇게 관심을 끌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지운 감독은 언론인터뷰에서 "<밀정>이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어느정도는 '메시지 있는' 영화라는 거다. 그런데 이게 강요처럼 느껴지는 순간 '국뽕'영화가 된다. 그건 싫었다"면서 "강요하는 느낌을 절제하면서도 가장 대중적인 화법을 통해 관객들이 이 이야기에 설득 당하게끔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계몽적이지 않게, 메시지가 지나치거나 반대로 모자라지 않도록, 여러가지 요소들을 끊임없이 조율하고 안배했다"고 말했다.

    영화를 본 역사학자나 영화평론가들도 "영화 밀정이 담담하게 당시의 시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노력했다"고 평가한다.{RELNEWS: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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