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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로 풀었더니 단군신화는 천지창조 신화였다!"



책/학술

    "우리 말로 풀었더니 단군신화는 천지창조 신화였다!"

    농부 철학자 윤구병 새 책 '내 생애 첫 우리 말'

    - '범'은 '밤', '곰'은 '하늘' 우리 신화의 열쇠 말 잃어버려
    - 땅·하늘의 만남을 곰·호랑이 부족의 만남으로 잘못 해석
    - 언어 식민지화는 문화 식민지화 초래
    - 우리 말을 되찾아 우리 얼과 넋을 되살려야
    - 20년 전 귀농, 서로 도우며 사는 공동체 터전 만들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6년 9월 8일 (목) 오후 7시 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윤구병 (변산공동체학교 대표)

     


    ◇ 정관용> 어릴 적 할머니 무릎을 베고 들었던 옛날이야기 여러분 기억나시죠? 이런 옛날이야기를 순우리말로 풀어본다면 어떨까. 궁금증도 많이 있어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엄마 정말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걸까? 또 단군신화에는 왜 하필 호랑이와 곰이 나오고 곰은 하필이면 왜 쑥과 마늘을 먹어야 했을까? 이런 궁금증을 우리말로 쉽게 풀어주는 책이 한 권 나왔는데요. 농부철학자로 유명하신 윤구병 선생께서 이번에 '내 생애 첫 우리말'이라는 책을 들고 오셨습니다. 오늘 스튜디오에 모셨어요.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 윤구병>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여기 '내 생애 첫 우리말' 그러니까 할머니 무릎에서 듣던 우리말이 내 생애 첫 우리말이다. 그런 뜻입니까, 책 제목이?

    ◆ 윤구병> 네, 그런 뜻도 되고요. 제 개인으로서 첫 우리말이라고 보지만 사람이 태어나서 옹알이 단계를 거치고 돌 전후해서 또렷한 소리를 내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때 가장 먼저 내는 소리가 '마'거든요. 이건 입술소리이고 입만 벌리면 그냥 '마'가 되니까.

    ◇ 정관용> 그냥 입만 벌리면 '마'.

    ◆ 윤구병> 네, '마'가 되죠.

    ◇ 정관용> 엄마가 아니고 '마'.

    ◆ 윤구병> 그렇죠. 세계적이죠.

    ◇ 정관용> 인간은 다 그렇다, 이거죠?

    ◆ 윤구병> 그렇죠. 그렇게 해서 ‘마’ 하고 부르니까 젖먹이고 기저귀 갈아주던 사람이 깜짝 놀라고 반가워서 눈이 휘둥그레 해지면서 '얘가 엄마라고 했어, 날 알아봤어' 그러잖아요. 그렇게 하니까 그런 반응을 보이니까 '마'로 불러줘야 되겠구나.

    ◇ 정관용> 자꾸 하면 좋아하니까.

    ◆ 윤구병> 좋아하니까. 그리고 그 옆에 어정거리는 어떤 남자가 있는데 '바'라고, 그다음에 쉬운 말이 '바'잖아요. '바'라고 불러주니까 '얘가 나도 알아봤어' 하면서 '그래. 내가 바야, 바' 이렇게 해서.

    ◇ 정관용> '마'를 좀 세게 하면 '바'가 되니까.

    ◆ 윤구병> 그렇죠. 그렇게 해서 차츰차츰 가장 입에서 내기 쉬운 소리에다가 가장 중요한 뜻들을 담아서 말이 형성되는 거란 말이죠.

    ◇ 정관용> 그렇군요.

    ◆ 윤구병> 그러니까 우리가 보면 입술소리 가운데서 우리 의식주 문제 가지고 하면 말하자면 보리, 밀 그다음에 벼 전부 가장 내기 쉬운 소리란 말이죠.

    ◇ 정관용> 쉽게 표현되는 말.

    ◆ 윤구병> 그다음에 아이가 방에서 놀다가 마루로 나오고 마당. 전부 다 입술소리란 말이죠, 쉽게.

    ◇ 정관용> 그러네요.

    ◆ 윤구병> 그렇죠. 그다음에 우리가 물, 불. 아이가 무 하면 쉬운 소리인데 아 얘가 물을 알아봤어. 무 하면 물도 알아보네? 이런 식으로 해서 물, 불, 바람 그리고 우리 사람 몸에서 머리, 목, 배, 발. 전부 가장 쉽게 낼 수 있는 소리로 가장 중요한, 소중한 것들의 뜻을 담아냈단 말이죠.

    ◇ 정관용> 그러네요.

    ◆ 윤구병> 그러니까 이런 우리말들이 어떻게 해서 그 돌맞이하는 어린 아이들에서부터 차츰차츰 이렇게 해서 쉬운 소리 속에 깊은 뜻을 담아내느냐.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실제로 우리 뜻과 느낌, 생각 이런 것들을 제대로 흐름을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 쓴 책입니다.

    ◇ 정관용> 그런데 제가 좀 아까 시작하면서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 호랑이한테 잡아먹혔다. 이것도 그러면 아주 쉬운 우리말로 잘 된 겁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 윤구병>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곰이잖아요. 곰을 웅녀라고 그러잖아요. 그리고 범을 호랑이라고 불렀잖아요.

    ◇ 정관용> 그렇죠.

    ◆ 윤구병> 이건 중국에서 온 말이거든요.

    ◇ 정관용> 호랑이는 한자죠.

    ◆ 윤구병> 웅녀도 한자어입니다.

    ◇ 정관용> 한자어죠.

    ◆ 윤구병> 한자어인데 이렇게 해서 곰이나 호랑이로 이해하면 우리의 신화를 제대로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말하자면 중국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 우리 해와 달이 생겨난 원초적인 신화란 말이죠. 그러니까 이건 호랑이가 나타나서 말하자면 어머니를 잡아먹고 두 오누이가 사는 집에까지 찾아갔다고 그러면 말이 안 돼 버려요. 우리말로는 범이거든요.

    ◇ 정관용> 호랑이가 아니라 범이.

    ◆ 윤구병> 네. 그리고 범이라는 말은 중세국어에 밤이라고도 표기된 게 있습니다.

    ◇ 정관용> 밤.

    ◆ 윤구병> 네.

    ◇ 정관용> 지금 우리가 말하는 한밤중 밤하고 같은 뜻이에요?

    ◆ 윤구병> 그렇죠. 그러니까 실제로는 밤이 찾아들면 실제로 우리 감각기관 가운데서 가장 또렷하게 이것, 저것을 살펴볼 수 있는 눈이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 하잖아요.

    ◇ 정관용> 상실하죠.

    ◆ 윤구병> 그러면 실제로는 밤길에 어디를 다닌다는 것은 사실은 온갖 위험을 감수해야 되니까.

    ◇ 정관용> 무섭죠.

    ◆ 윤구병> 그렇죠. 그러니까 그것이 밤인데, 범이고 밤인데 그걸 호랑이로 바꿔버리면 아주 잔인한 이야기가 돼 버린단 말이죠. 밤길을 걸으면 손발이 없어지고 안 보이고 그리고 길도 안 보이고 그리고 눈도 제대로 안 보이고 이렇게 봐야….

    ◇ 정관용> 그러니까 원래 우리의 옛날이야기 속에서는 밤이 찾아오는 그것의 상징으로 범인데. 이걸 호랑이라고 하는 실체화된 한 동물로, 맹수로 바뀌어버린 거다?

    ◆ 윤구병> 그렇죠. 그러면 실제로는 열쇠말이 완전히 바뀌어버리니까 우리 신화를 해석할 열쇠를 잃어버리는 것이죠. 곰도 마찬가지거든요. 우리는 옛말에 세 나라 시대, 삼국시대에서는 지금 일본말이나 비슷하게 자음과 모음이 한 소리마디를 이루었다고 그래요. 그렇게 되면 곰이라는 것은 옛날에는 우리 지명에 많이 나왔습니다. 개마고원 할 때 개마 그다음에 금와왕 할 때 금와. 그다음에 우리 토성이라고 하는 김 씨, 김. 김수로, 김알지 할 때. 그리고 구미, 지금 지역 이름.

    ◇ 정관용> 대구 밑에 구미.

    ◆ 윤구병> 구미. 그다음에 거미.

    ◇ 정관용> 거미? 기어 다니는 거미?

    ◆ 윤구병> 네, 하늘에다가 줄 치는 거미. 이런 게 개마, 금와, 구미 이런 것들이 전부 한 말에서 나왔거든요.

    ◇ 정관용> 뭐예요, 그게?

    ◆ 윤구병> 그게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파란 하늘을 하늘의 본디 빛깔로 안 봤어요. 밤하늘의 빛깔을 본디 빛깔로 봤습니다. 그래서 천자문에 보면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를 황'이잖아요.

    ◇ 정관용> 검을 현이네요.

    ◆ 윤구병> 그렇죠.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는 거죠.

    ◇ 정관용> 그러네요.

    ◆ 윤구병> 그러니까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한 말을 그와 비슷한 말로 바꿔서 알아듣기 쉽게 풀이한 것이 사전적인 정의니까.

    ◇ 정관용> 하늘은 검이에요?

    ◆ 윤구병> 그렇죠.

    ◇ 정관용> 검다 할 때 검.

    ◆ 윤구병> 그렇죠. 그래서 단군신화 보면 해가 밤하고 결혼한 것이 아니라 다 같이 까맣잖아요. 하늘이나 밤하늘이나 밤이나. 그런데 밤은 햇볕이 쬐이면 달아나버리잖아요. 그런데 곰, 하늘은 버틴단 말이죠. 그래서 비록 파래지긴 하지만 하늘은 짝을 이룬단 말이죠, 해하고. 그렇게 되면 실제로 우리 신화는 하늘이 여신이고 태양이, 해가 남신이다. 아주 고대, 모계사회가 이루어졌을 때의 신화의 전통을 그대로 따온 게 된단 말이죠.

    ◇ 정관용> 단군신화에 나오는 우리가 웅녀라고 알고 있는 그 곰은 곧?

    ◆ 윤구병> 하늘이라는 것이죠.

    ◇ 정관용> 검에서 나온 것이고. 그 곰은 하늘이다.

    ◆ 윤구병> 그렇죠. 그렇게 열쇠말을 우리가 제대로 찾아내게 되면 옛날에 최남선식 불함문화론에서 우리가 무슨 곰 부족하고 무슨 호랑이 부족하고 결합해서 우리 씨족사회를 이루었다, 부족사회를 이루었다. 그거 틀린 말이거든요.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실제로 최남선식 그리고 김용규 선생의 전통을 이어받았는데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천지창조 신화가 없는 유일한 민족이 돼요. 그런데 하다못해 탐라국이라고 했던 제주도라든지 그보다 더 적은 데서도 천지창조 신화는 있거든요.

    ◇ 정관용> 그런데 우리 단군신화가 사실은 천지창조.

    ◆ 윤구병> 그렇죠. 천지창조 신화인데.

    ◇ 정관용> 하늘과 땅이 만나는 걸 그린 거다.

    ◆ 윤구병> 네. 그런데 그걸 마치 부족 간의 결합처럼 해서 천지창조의 신화가 없는 민족으로 만들어버렸단 말이죠.

    ◇ 정관용> 그러네요. 우리는 그걸 호랑이와 곰의 만남 이렇게 격하시키는데 원래 본뜻 우리말로 따지면 하늘과 땅의 만남이다.

    ◆ 윤구병> 그렇죠.

    ◇ 정관용>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그것도 하늘과 땅 천지창조 그런 거죠?

    ◆ 윤구병> 네,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모계사회의 오래된 전통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이어져왔다는 건 뭐냐 하면 두 오누이를 구원하는 어떤 구원자가 밤을 이기는 것은 빛밖에 없는데 그런데 해와 달이 대표적인 것이잖아요.

    ◇ 정관용> 그게 빛이죠.

    ◆ 윤구병> 그렇죠. 그러니까 '누가 해가 되고 누가 달이 될래?' 했을 때 오라버니가 내 누이동생이 밤을 더 무서워하니까 해가 되도록 하고 나는 달이 되겠다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말하자면.

    ◇ 정관용> 천지창조.

    ◆ 윤구병> 그렇죠. 서양신화에서는 태양은 전부 남신으로 나타나요. 부계사회가 이루어진 이후로 새로 해석된 신화이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같은 걸 보면 누이가 해가 되고 오라버니가 달이 된단 말이죠. 그러니까 훨씬 더 실제로는 서양신화보다도 더 오래된 모계사회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신화라고 볼 수 있죠.

    ◇ 정관용> 그러네요. 알겠습니다. 이런 우리말로 옛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야 우리의 정신, 생각, 이걸 제대로 볼 수 있다.

    ◆ 윤구병>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에 비해서 마치 범이 아니라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다라는 식으로 어떻게 보면 변종된 이런 우리말은 문제다?

    ◆ 윤구병> 그렇죠. 왜냐하면 그건 본디 이 땅에서 저희가 싹 트고 꽃핀 말이 아니고 더 힘센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실제로는 들여온 말이기 때문에.

    ◇ 정관용> 중국에서 들여온.

    ◆ 윤구병> 그러니까 자기네들이 밑에 있는 사람들을 깔아뭉개고 자기네들끼리 잘 살기 위해서 보통 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든 말을 여기저기서 끌어 모아서 그걸로 말하자면 지배권을 행사하고 그러기 때문에 이런 말들을 가지고는 우리 삶을 제대로 풀어낼 수도 없고 그렇다는 생각에서.

    윤구병 변산공동체학교 대표. (사진:시사자키 제작진)

     



    ◇ 정관용> 그래서 이런 표현을 하셨죠. 우리말의 문어화, 표준화, 국제화. 이 세 가지는 다 말의 퇴화다?

    ◆ 윤구병> 그렇죠. 저는 그렇게 봅니다. 각 나라가, 그러니까 서양에서도 보면 아테네 제국주의,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통해서 지금 발칸반도 있는 데를 전부 식민화하잖아요.

    ◇ 정관용> 지중해 전반을 다 장악했죠.

    ◆ 윤구병> 그렇죠. 그러면서 거기에 토박이말들, 조그마한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사람들이 실제로 썼던 말들을 죄다 없애버리거든요. 로마제국주의도 마찬가지죠. 그렇게 해서 말하자면 마을공동체가 말을 안고 키워내고 그걸 꽃피게 하고 서로 다양한 서로와 느낌을 주고받던 길들을 다 없애버리고 획일화해버렸단 말이죠. 우리도 지금 그 획일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옛날로부터 치면 우리보다 훨씬 힘센 나라인 중국에서 건너온 말에 침식당하고.

    ◆ 윤구병> 그렇죠.

    ◇ 정관용> 일본으로부터 건너온 말에 침식당하고. 이제는 미국에서 건너온 말에 침식당하고.

    ◆ 윤구병> 그러니까 언어식민지가 된다는 건 곧 문화식민지가 된다는 말인데 그 과정을 지금 지속적으로 거치면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점점 사라져버리는 거죠.

    ◇ 정관용> 내 생애 첫 우리말, 이 책을 통해 그러면 딱 한마디로 뭘 말하고 싶으셨던 겁니까?

    ◆ 윤구병> 그러니까 우리말을 되찾아서.

    ◇ 정관용> 되찾아서.

    ◆ 윤구병> 우리의 얼과 우리의 넋을 제대로 되살리자는 이야기거든요. 그게 아주 낡은 이야기 같지만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우리가 서울에서 흑석동 있지 않습니까? 현석동 있지 않습니까? 이게 말하자면 한강이 흘러가다가 바위, 벼랑이 튀어나와서 감아서 물이 도는 감은 돌이었거든요.

    ◇ 정관용> 감은 돌. 그걸 흑석이라고.

    ◆ 윤구병> 그런데 이제 '먹물'들이 생각하기에는 검은? 감은? 그러면 검을 흑 자 써야지. 그리고 돌 석 자. 돌 석 자로 해서 그래서 흑석동이라고 했는데 마포, 옛날에 삼개죠. 지나다가 또 감은 돌이 나타나거든요. 이미 써 버렸으니 어떡해? 이번에는 검을 현 자, 현석동이라고 해서 현석동이라고 붙이자. 이런 식으로 해서 우리말들 다 죽여 버렸죠.

    ◇ 정관용> 사실은 물이 감아 돈 건데 그걸 오해해서 검다고.

    ◆ 윤구병> 그러니까 까만 돌이 무슨 우리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까? 감은 돌이라고 하면 물이 흘러서 감아 도는 것이 머리에 떠오르고. 그다음에 풍납동도 마찬가지죠. 옛날에 거기에 몽촌토성 있는 데 거기가 '바람드리'였거든요.

    ◇ 정관용> 바람드리.

    ◆ 윤구병> 웃바람드리, 아랫바람드리. 그렇게 하면 실제로는 바람이 들어오는 곳이라는 것이 딱 느껴지잖아요.

    ◇ 정관용> 네, 그걸 '풍납' 이렇게.

    ◆ 윤구병> 네. 바람 풍 자, 들 납 자 해서 풍납동이라고 붙여놓고. 이런 식으로 해서 우리의 상상력이라든지 우리의 창조적인 잠재력을 다 죽여 버리는 그 짓에 앞장서면서 자기네들이 그래도 제일 잘났다고 하는 것들이죠.

    ◇ 정관용> 그들이 또 지배계층이고.

    ◆ 윤구병> 그렇죠. 먹물들이죠. 전통사회에서는 선비나 사대부 계급이고 지금은 대학교수니 문인이니 우리 같은 사람들, 나도 교수를 해 봤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그걸 앞장섰던 거죠.

    ◇ 정관용> 제국주의로부터 온 그 말을 먼저 배운 힘센 지배층들, 먹물들이 사실은 우리의 고유 얼과 넋을 해치고 있다.

    ◆ 윤구병> 그렇죠.

    ◇ 정관용> 그걸 되찾자?

    ◆ 윤구병> 그렇죠.

    ◇ 정관용> 그 말씀이군요. 큰 배움을 얻은 것 같은데.

    ◆ 윤구병> 아닙니다.

    ◇ 정관용> (웃음) 20년 전까지 충북대 철학과 교수셨잖아요.

    ◆ 윤구병>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종신 정년 보장돼 있는데 딱 박차고 변산으로 공동체 만들러 가신 게 20년.

    ◆ 윤구병> 농사지으러 갔죠. 공동체 만들러 간 게 아니라 농사지으러.

    ◇ 정관용> 철학 교수직을 버리고 왜 농사지으러 가셨어요?

    ◆ 윤구병> 행복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학생들이 마음에 답답한 것이 있으면 배우려는 사람들이 그 질문을 하잖아요.

    ◇ 정관용> 그렇죠. 교수한테 질문하죠.

    ◆ 윤구병> 그렇죠.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학생들이 못해요. 왜 못하느냐면 벌써 중학교 때 가면 똑똑한 애들이 한둘이 교실에 있어요. 그래서 뭔가 자기 나름으로는 절실해서 어떤 아이가 질문을 하게 되면 그건 자기 사적인 것으로 들린단 말이죠. 그러니까 뭐라고 그러느냐면 '선생님, 우리 진도 나가요' 이런단 말이죠.

    ◇ 정관용> (웃음)

    ◆ 윤구병> 그러면 자기는 진도를 방해하는 사람이 되잖아요.

    ◇ 정관용> 그래서 입을 다무는 거죠.

    ◆ 윤구병> 입을 다물어버리잖아요. 그게 중학교, 고등학교 아이가 대학교까지 이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학생들은 절실한 질문이 가슴에 가득한데도 입 열어서 묻지 못하고 그러니까 선생은 질문이 없으니까 실제로는 자기 나름으로 이것이 질문이겠거니 해서 스스로 질문서 작성하고 답변을 하고. 그러니까 대답 없는 질문하고 질문 없는 대답이 평행선을 그으면서 15년 동안 지속됐으니까 제가 행복할 리가 없죠.

    ◇ 정관용> 농사지으러 가셔서는 행복 찾으셨어요?

    ◆ 윤구병> 그렇습니다. 한 스무 해 시골에서 살고 있는데 한 번도 제가 대학교수를 그만 둔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도 악몽을 꾸면 대학교예요. 강의실.

    ◇ 정관용> 그리고 농사지으러 가셨습니다만 거기는 또 사람들 모아서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학교도 만드시고.

    ◆ 윤구병> 그건 우리말에 '만든다' 하는 말이 많은 경우에 이렇게 저렇게 달리 써야 할 말들이 만든다는 말로 되는데. 공동체는 여러 사람이 모여 살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어떤 사람이 만드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 그러니까 함께 모여서 살 사람들이 나도 농사짓고 살겠소, 나도 농사짓고 살겠소 해서 모여서 공동체가 이루어진 거죠.

    ◇ 정관용> 된 거죠. 지금 몇 분이 사세요?

    ◆ 윤구병> 그건 왔다 갔다 사람들이 하고 그래서 딱 획일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는데요. 함께 한솥밥 먹고 사는 사람들은 이제 한 20명 이상 되고요.

    ◇ 정관용> 20명.

    ◆ 윤구병> 그다음에 저희는 이제 마을공동체에서 사는 초등학생들도 같이 맞아들여서 가르치고.

    ◇ 정관용> 공동체학교도.

    ◆ 윤구병>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제주도에서도 오고 무슨 울산에서도 오고 여러 곳에서 오는 학생들. 그 아이들은 이미 제도권 교육에서 말하자면 적응하지 못하고 오고 그런데 부모님들은 형편이 어려워서 말하자면 대안학교에 보낼 형편은 안 되고. 그런 아이들이 저희가 무상교육을 한다고 그러니까 기숙사비도 학비도 받지 않고 무상교육을 한다고 그러니까 오는 애들. 어떤 해는 한 40명도 되고 대체로 우리는 30명.

    ◇ 정관용> 30명 정도.

    ◆ 윤구병> 중학교 1, 2, 3학년 각 5명씩. 고등학교 1, 2, 3학년 5명씩 해서 우리 형편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가르칠 수는 없으니까.

    ◇ 정관용> 그럼 학교를 만드신 것도 꽤 되셨잖아요.

    ◆ 윤구병> 그렇죠. 한 20년 가까이 됐네요.

    ◇ 정관용> 20년. 그러면 거기 거쳐 간 아이들 다 성인이 됐잖아요.

    ◆ 윤구병> 성인이 된 학생들이 있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어떻게들, 잘 살고들 있어요?

    ◆ 윤구병> 그렇죠. 그리고 그중에 일부는 다시 돌아와서, 마을에 와서 거기서 만나서 애도 낳고 그런 아이가 있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희망입니다, 사실은. 말하자면 두 세계를 다 거쳐보잖아요. 도시 사회하고 시골하고. 그러면서 자기가 아, 여기서 내가 뿌리내리고 사는 것이 훨씬 더 내가 행복하게 사는 길이겠구나 하고 돌아온 애들이니까. 굉장히 소중하죠.

    ◇ 정관용> 그런 농촌공동체가 대한민국 사회에게 해 줄 수 있는 말. 하고 싶은 말은 뭘까요?

    ◆ 윤구병> 평화죠.

    ◇ 정관용> 평화.

    ◆ 윤구병> 그러니까 지금은 온 세상에서 전쟁광들이 날뛰고 있잖아요.

    ◇ 정관용> 맞아요.

    ◆ 윤구병> 그렇게 해서 부녀자고 젖먹이 어린 아이들 상관없이 마구 죽이잖아요. 그런데 이제 유일하게 평화롭게 이웃끼리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는 곳. 경쟁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곳. 그리고 스스로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를 손으로 손발 몸 놀려서 마련할 수 있는, 그러니까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고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마을공동체이고 농촌이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게 되면 이웃사람들하고 아웅다웅하거나 전쟁을 벌일 필요가 없죠.

    ◇ 정관용> 그렇죠.

    ◆ 윤구병> 그래서 우리도 빨리 이 도시에서 아웅다웅하고 경쟁하지 말고 실제로 자연으로 돌아가서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농촌, 어촌, 산촌 살리고 스스로도 그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 정관용> 전쟁광이라는 표현이 국가와 국가의 전쟁, 이것만을 말하는 건 아니신 거죠?

    ◆ 윤구병> 아니죠.

    ◇ 정관용> 과도한 경쟁, 남을 짓밟고 성공해야 한다는 것.

    ◆ 윤구병> 그런데 이제 그건 분명하죠. 아메리카 합중국에 전쟁광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건 사실입니다. 물론 아메리카 합중국에서도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지만 그 소수 전쟁광들 때문에 실제로는 온 세계 국가가 다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번 사드문제도 그런 거고. 그래서 저는 요즘에 단순해야 한다. 우리가 박근혜한테 뭐라 그러고 아베한테 뭐라고 할 필요가 없다. 합중국에 자리 잡고 있는 전쟁광들한테만 전쟁하려는 생각을 없애버리게 되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많다. 이런 생각을 해서 아, 나는 아메리카 합중국 전쟁광들에게 내 모든 힘을 다해서 맞서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는 그런. (웃음)

    ◇ 정관용> 그리고 알게 모르게 그런 데 종속돼서 살고 있는, 도시의 이 무한경쟁시대에 사는 사람들한테 농촌공동체로 와서 평화로운 삶을 그 속에서 진짜 행복을 되살려봅시다.

    ◆ 윤구병> 그런데 그게 제가 절실하게 느끼는 게 그래요. 이제 변산공동체에서 적어도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을 나 보면 그 사람이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는 못 봤습니다. 제가. 어쨌든 공동체 삶이 좀 팍팍하니까 '나 독립해서 살고 싶다' 해서 주변에 흩어져서 사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 정관용> 도시로는 안 가요?

    ◆ 윤구병> 안 가요. 그러니까 도시에 살 때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모르는데 일단은 시골에서 살다 보니까 이 도시에서 다시 돌아가서 산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일단은 1년만 같이 살아봅시다. 그러면 마음도 평화로워지고 그렇습니다’ 하고.

    ◇ 정관용> 가보고 싶네요.

    ◆ 윤구병> 네, 오십시오.

    ◇ 정관용> 1년 동안 가보고 싶어요.

    ◆ 윤구병> 그러지 않아도요, 3박 4일만 일단 와보세요. (웃음)

    ◇ 정관용> 우리의 농촌, 우리의 뿌리죠. 또 그 속에서 서로 도우며 하는 공동체. 아마 이번에 내신 '내 생애 첫 우리말'의 정신도 다 거기서 나온 게 아닌가.

    ◆ 윤구병> 제가 어렸을 때부터 촌놈이었기 때문에 거기 자연에서 배운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우리 청취자 분들 마음에 뭔가 큰 울림이 하나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선생님,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윤구병> 네, 고맙습니다.

    ◇ 정관용> 농부철학자 윤구병 선생의 ‘내 생애 첫 우리말’ 함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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