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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감독은 왜 한진 노동자를 위해 카메라를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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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감독은 왜 한진 노동자를 위해 카메라를 들었나

    [노컷 인터뷰] "우리가 마냥 개돼지 같다고? 지금 넘치기 일보직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30년 투쟁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의 메가폰을 잡은 김정근 감독. (사진=시네마달 제공)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이야기를 찍은 이유요? 저도 마음의 빚이 있어요."

    뿔테 안경을 쓴, 김정근 감독은 평범한 청년이었다. 잔뼈 굵은 노동자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온갖 달고 쓴 세상을 겪기에는 너무 앳되어 보이는.

    그러나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은 이런 김 감독의 손 끝에서 탄생했다. 비단 그가 어린 시절부터 다큐멘터리를 좋아했거나, 자본이 휩쓸고 간 공간과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노동 쪽 이야기에 민감하게 관심이 있긴 했어요. 2003년에 전 노조위원장이었던 김주익 열사가 돌아가셨을 때 영상을 좀 찍어서 올려달라고 했는데 당시에 그 작업을 안했었거든요. 그게 계속 마음의 빚으로 남았죠. 그러다가 2010년에 정리 해고 발표가 났어요. 이번에는 정말 기록을 남겨야 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원래 이들의 이야기는 지난 2012년에 끝났어야 했다. 사측으로부터 복직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희망버스를 통해 연대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간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단다.

    "그런데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이 안됐어요. 고민이 많았죠.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되나. 나라면 도망갈텐데 왜 그들은 이걸 붙들고 있는지 생각을 해봤어요. 그러다보니 30년 역사를 훑는 영화가 됐네요."

    김정근 감독에게 노동자란 그리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업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신발공장, 인쇄소 등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살아온 시간이 있는 탓이다. 영화를 찍으면서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미디어 관련 업체에서 일했다. 삶은 언제나 불안정했고, '그림자들의 섬' 촬영 또한 쉽지 않았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고 애를 쓸 필요는 딱히 없어요. 오히려 프리랜서인 제가 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아이러니가 개인적으로 존재하기는 했어요. 사실 조선소 작업 장면을 찍고 싶었는데 출입이 통제되더라고요. 그래서 위장해서 출입하고, 작은 조선소를 섭외해서 겨우 찍고 그랬어요. 희망버스 이후에 담도 엄청 높아졌어요."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 스틸컷. (사진=시네마달 제공)

     

    영화 속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반성의 목소리를 낸다. 노동조합 힘이 강했을 때, 왜 더 치열하게 발전하지 못했는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지. 김정근 감독은 '무조건 잘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훨씬 더 노력하고 반성해야 될 부분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한진중공업에서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 이유를 만들어 이야기하는 건 좋은 방식은 아닌 것 같아요. 비판의 칼날을 무디게 하는 거니까요. 변명을 부각할 필요는 없었고, 반성으로 충분했던 장면이었어요."

    지난한 30년 투쟁 속, 네 명의 동료들이 죽음을 맞았다. 그에게는 지난 2012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강서 열사의 죽음이 지워지지 않는 아픔로 남았다.

    "(최)강서 형은 저랑 술도 마시고, 천막에서도 같이 지낸 사람이에요. 누구도 그 사람이 죽음을 선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어요. 현장에서 그 죽음 이후를 찍고, 나중에 편집할 때 정말 괴로웠습니다. 김주익 열사와 곽재규 열사의 죽음은 너무 서글픈 책임이었죠.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지만 사실은 타살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회사는 점점 더 그런 것에 꿈쩍도 하지 않고요."

    청년 실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 이 시점에 정규직 노동자인 그들이 이야기하는 '노동자의 권리'란 배부른 자들의 투정에 불과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귀족 노조'라고 비판하기까지는 한번쯤 진지한 고민을 거쳐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워낙 많은 현실이고, 지금 우리 세대(20~30대) 노동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만 그 손가락을 어디로 향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밥을 더 달라고 해야 하는 대상은 따로 있는 거고, 우리끼리 싸울 이유는 없는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조합이라는 집단이 그렇게 생떼만 쓰는 곳은 아니에요. 유구한 역사가 있고, 그 역사 안에서 사측에 요구했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 스틸컷. (사진=시네마달 제공)

     

    김 감독은 가끔 농담으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호주나 캐나다로 떠나자'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만큼 국내는 소위 '블루 카라'로 불리는 생산직 노동자들을 향한 사회적 시선이나 대우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다. 인터뷰하는 그들에게 일부러 작업복을 입힌 이유도, 노동자들이 그 자체로 멋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경제 기반을 닦아온 생산직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미개한 것 같아요. 사측이나 정부도 꼭 그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처럼 굉장히 수준 이하의 저질적인 대우를 하죠. 그 사람들이 굉장히 수준이 높은 기술자들인데 파업이나 휴업 기간 동안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줄 당기는 일을 해요. 전 그게 너무 화가 납니다. 그들이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다른 활동을 할 수 있게 사회에서 보장을 해줘야 하는데 그저 마구 자르기만 하는 거죠. 몇백억 씩 횡령한 양반들은 냅두면서 왜 애먼 노동자만 해고하느냐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다음에 준비할 작품은 지하 공간에서 일하는 지하철 노동자들을 다룬 이야기다. 그는 스스로를 '덕후'(마니아 이상의 열정을 가지고 특정 분야를 취미 생활로 즐기는 사람)라고 칭하면서 반짝이는 눈으로 지금까지의 구상을 떠올렸다.

    "제가 원래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다음 영화에서는 지하철을 분해했다가 조립하고 이런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요. 부산 지하철 노동자들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관사, 터널 수리 노동자부터 청소 노동자까지 다양한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엮어서 해보려고요. 어려운 작업이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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