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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중동을 들여다보는 창, 사우디아라비아'



책/학술

    신간 '중동을 들여다보는 창, 사우디아라비아'

     

    2010년 ‘아랍의 봄’은 대부분 경기 침체와 정부의 부패, 독재에 대한 반발, 청년층의 분노 등이 폭발하여 일어난 것이다. 비록 사우디는 혁명은 비껴갔지만 정확히 같은 문제를 공유한다. 단지 왕가가 돈으로 분노를 잠재웠을 뿐이다. 사우디는 종교, 세대, 여성, 경제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갈등과 분열이 가득한 나라다.

    신간 '중동을 들여다보는 창,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디 사회가 지금까지 체제를 유지하며 작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 석유와 미국, 종교라는 요소가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지금까지의 안정이 이제 한계에 다다랐음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이 책은 사우디아라비아를 5년간 깊게 파고든 결과물이다. 저자 캐런 엘리엇 하우스는 은퇴한 후 순전히 호기심에 의해 사우디 왕국을 구석구석 여행했다. 왕족에서부터 극빈자, 보수적인 종교 지도자부터 개혁가, 젊은이부터 노인, 심지어 테러리스트까지 만난다. 퓰리처상 수상을 비롯한 화려한 이력, 30년 넘는 풍부한 사우디 취재 경험과 인터뷰는 저자의 분석에 신뢰를 더한다. 폭넓은 인터뷰가 사우디 사회의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나아가 사우디가 내부적으로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지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 경제적·사회적 변화, 보기보다 복잡한 왕위 승계 문제 등을 통해 미래의 시나리오를 설득력 있게 예측한다.

    저자는 특히 서양의 여성 언론인이라는 특수한 지위 덕분에 보수적인 국가임에도 큰 제재 없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저자는 아바야를 입고 각계각층의 여성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을 관찰하고 생각을 담아냈다. 또한 일탈을 일삼는 청년들과 근본주의에 경도되었던 테러리스트들 통해 사우디 사회에 팽배한 분노와 불신, 그럼에도 왕가에 순응적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내기도 했다.

    저자는 오늘날 사우디가 ‘붕괴 직전의 소련을 연상시킨다’며 늙고 병든 지도자의 왕위 승계가 근본적인 문제임을 지적한다. 왕자만 7,000명이 넘는 사우디는 부패로 병들었고, 국민들은 왕가의 호혜를 누리며 좌절하고 순응한다. 분노는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 일탈로만 표출되며, 어떤 이들은 근본주의에 경도되어 지하드에 몸을 바치기도 한다.

    고갈되어가는 석유와 미국의 셰일 혁명은 미국과의 석유-안보 관계를 약화시키고 있다. 나아가 테러리스트를 양산하는 근본주의를 완전히 잠재우기도 어려운 사우디는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사우디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사우디 내에 가득찬 갈등과 분열, 왕위 계승의 문제 등과도 이어져 있다. 복잡하게 얽힌 사우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우디의 역사, 여성, 청년, 종교, 석유, 외교 등의 모든 문제를 다각도에서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이슬람의 가장 치열한 전선은 단연코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것이다. ‘아랍의 봄’을 이끈 계층이 분노한 청년층이라면, 사우디 사회의 개혁 요구는 여성이 주도해왔다. 하지만 이 거대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종교 규율을 적극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들 역시 존재한다. 서양 여성인 저자 캐런 엘리엇 하우스는 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를 심층 취재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인물이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다양한 여성들을 만나 생활하고 인터뷰하며 이 복잡하고 모순 가득한 상황을 매우 입체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저자는 사우디의 첫 여성 차관, 여성 축구팀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여성들을 만났다. 리야드의 킹사우드대학을 졸업하고 구직 활동을 장려 받은, ‘선택받은’ 여성들의 모임에 참가해 그녀들의 서구화된 모습을 관찰하는 한편, 하층민 여성의 집에 얼마간 머무르기도 했다. 특히 룰루는 종교적 헌신과 보수적인 평범한 가족의 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줬고, 사우디 전반에 흐르는 순응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여러 모습들을 바로 옆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줬다. 저자는 사우디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려는 움직임만큼이나 여성 스스로를 옥죄는 내재적인 규범이 여전히 존재함을 정확하게 포착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사우디 사회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우디 전체 인구의 3분의 2는 30세 이하다. 높은 인구 증가율에 비해 일자리는 전혀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우선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가 제공된다 해도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 바로 보수적 종교지도자들이 교육에 간섭해 청년들이 실질적인 교육은 받지 못하고 실무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대학을 졸업하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들은 육체노동이나 단순한 일을 하기 싫어하며 의욕이 없는 반면, 여성들은 취업이 제한되어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일자리가 외국인들의 차지가 되면서 청년들은 또다시 절망한다. 이들 중 일부는 테러리스트가 되는데, 이들을 전향시키기 위해 정부가 갖은 혜택을 베풀 수록 종교적 명분은 잃게 된다.

    사우디의 통치 방식은 초대 국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종교적 신념과 연결시켜 통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사우디는 오늘날 크고 작은 요구나 개혁에 대한 압박, 사회적 불만이 쌓이면 온건한 개혁안을 제안하거나 왕가 차원에서 보조금을 나눠주어 잠재운다. 그러다 종교 지도자들이 이에 반발하면 개혁을 미루거나 무력하게 만듦으로써 종교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하지만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게 되고 그 화살이 왕가 자신들을 겨누거나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게 되면 가차 없이 응징한다.

    사우디라는 국가에서는 오로지 한 가지 당위만이 존재하는데, 바로 사우드 왕가의 안위를 보장하는 것이다. 사우디의 국왕은 이슬람 전체의 지도자이기도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국왕이 종교를 그의 통치에 명분으로 활용했을 뿐인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런 시각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외부의 정보들로 인해 사우디인들에게 공공연하게 알려졌다는 것이다. 왕가가 종교를 활용하는 방식 때문에 국민들은 왕가의 종교적 정당성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었고, 더 이상 사우드 왕가의 통치술은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커다란 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단지 현실에 순응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지 그들의 통치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초대 국왕의 국민들이 국왕의 호혜에 감사를 느꼈다면, 오늘날의 사우디 국민들은 더 이상 왕가에 감사하지 않는다. 청년층은 양질의 교육과 의료 서비스, 기초 복지가 제대로 제공되지 못한 점, 왕가의 어마어마한 부에 박탈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으며 이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 저자는 왕위 승계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사우디는 내부의 갈등과 모순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압둘라 국왕의 뒤를 살만이 이으면서 그 예상은 맞아 떨어지고 있다.

    책 속으로

    식사 내내 어머니는 이슬람교도로서 적절한 삶의 방식에 대해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여자는 하녀를 둘이나 둬선 안 된다. 청소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건 괜찮지만 아이들을 돌봐주는 사람은 안 돼. 그럼 너희들은 뭘 하겠니? 밖으로 나가겠지. 이건 옳지 않아. 아이들한테 집중해야지.” 딸들은 미소를 짓지도, 서로 바라보며 낄낄대지도 않는다. 서양에서 딸들이 어머니의 충고를 들으면서 곧잘 그러듯이 말이다. 사우디의 딸들은 귀 기울여 듣고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 p.141

    교육 받은 사우디인들이 점차 현대화를 요구하지만, 대부분의 사우디인들은 서구화를 원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들은 현대화가 서구화를 뜻한다는 미국인들의 시각에 분개한다. 사우디인들은 민주주의를 갈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방적인 시민사회를 추구한다. 자유롭게 의견을 모으고 표출할 수 있으며, 분명한 규칙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사회를 말이다. 이들은 인터넷 사용과 함께 아이팟을 원한다. 그러나 이들 중에도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이나 서구사회에서 나온, 생경한 이교도의 영향력은 싫어한다. 이처럼 사우디인들은 독특하다. 그리고 계속 독특함을 추구한다. - p.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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