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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변호사,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에 맞서다



책/학술

    일본인 변호사,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에 맞서다

    '신간 '노 헤이트 스피치'

     

    성별이나 출신 지역, 인종과 민족, 성적 지향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가해지는 혐오 발언이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여성, 장애인, 빈곤층,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들을 향한 적대나 증오 범죄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는 지경이다. 가히 '혐오의 시대'라 할 만하다.

    혐오 발언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건 한국사회뿐만이 아니다. 일본에선 2016년 5월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통과되었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글로벌 인터넷 업체들과 '헤이트 스피치 차단 협약'을 체결했다. 실생활과 온라인을 막론하고 특정 집단에 대해 증오와 폭력을 부추기는 선동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이런 헤이트 스피치가 과연 어떤 것이고, 원인이 무엇이며, 이를 사회로부터 박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간 '노 헤이트 스피치: 차별과 혐오를 향해 날리는 카운터펀치'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다룬다. 이 책에선 '헤이트 스피치'의 정의를 '인종과 민족, 성적 지향 등을 기준으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증오와 차별을 부추기는 언동'이라고 말한다. 인종이나 성별처럼 개인의 의지로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을 들어 사회로부터 '배제'하고자 하는 헤이트 스피치는 이 때문에 '부조리한 차별'일 수밖에 없다. 또 헤이트 스피치는 소수자 집단 혹은 개인을 대상으로 저질러진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사회적 소수자는 다수자로부터 공격을 받아도 반격이 쉽지 않다. 헤이트 스피치가 약자를 향한 '이지메'이며 용납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저자는 특히 헤이트 스피치가 "느닷없이 뺨을 때리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순간적으로 피해를 입는 탓에 미처 상황을 돌아보거나 대항의 뜻을 되돌려 줄 여유마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헤이트 스피치는 '언어에 의한 폭력'일 뿐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헤이트 스피치의 사례는 주로 재특회(재일 한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 등 우익 세력에 의한 혐한 시위와 선동, 연설이다. '조선인을 몰아내자'는 폭언으로 상징되는 재특의 헤이트 스피치는 단지 그 대상인 개인이나 집단을 모욕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 신체에 대한 위협을 내비치는 행위와도 다르다. 이러한 발언에는 특정한 속성을 가진 사람들을 협박하고 멸시함으로써 일본사회로부터 배제하려는 특색이 있다. 물론 '배제' 또한 차별의 일종이지만 더욱 심각한 사실은 이 점이 재특회 등 인종주의자들의 발언에서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배제'는 소수자가 일본사회에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며 생활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언론의 자유에는 자유롭고 활달한 '비판의 자유'가 포함되지만, 이의 전제는 관련한 논의를 계속 이어가며 사회적으로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지 상대를 사회로부터 배제할 권리가 포함된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헤이트 스피치가 용납될 수 없는 이유'의 하나는 이것이 전형적인 '배제'이며, 언론의 자유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다.

    저자인 간바라 하지메 변호사는 일본 내에서 혐한과 헤이트 스피치가 횡행한 원인에 대해 구체적으론 '정치권의 책임'을 든다. 본래 사회 불안, 특히 불황이나 고용 불안이 배외주의나 헤이트 스피치를 만연케 하는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으나 배외주의 운동 세력의 고학력, 고소득층 분포에 따라 이런 시각은 최근 거의 부정된다. 즉, '살기 힘들어서' 혐오가 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본격적으로 헤이트 스피치가 확산된 것이 2000년 도쿄 도지사의 발언으로부터 비롯됨을 알 수 있다. "불법 입국한 외국인의 흉악한 범죄", "대형 재해가 일어나면 벌어질 소요사건 가능성" 운운은 관동대지진 당시 유언비어를 떠올릴 정도로 큰 파급력을 낳았다. 이후부터 차별적인 발언이 정치인들의 입과 미디어를 통해 연쇄적으로 나왔고, 이것이 일본 아베 정부의 차별 정책과 맞물려 사회적인 혐오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헤이트 스피치 현상의 책임을 정치적인 맥락에서 찾고 있다.

    헤이트 스피치를 규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이 책은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다. "헤이트 스피치는 소수자가 사회에서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보유하면서 살아갈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에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며, 헌법 21조의 규정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이 그것이다.

    다만, 법적 규제의 효과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규제보다 교육과 계몽이 중요하며, 무엇보다 헤이트 스피치를 유발하는 정치가의 발언과 정부의 차별 정책을 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또한 이 책은 법적 규제의 범람으로 인한 '폐해'를 우려하는 사람들과 입장을 같이한다.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사상에 적의를 가진 아베 자민당 정권하에서는 그 '폐해'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헤이트 스피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으며", "헤이트 스피치 규제는 헌법 위반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표현의 자유란 타자의 인권과 모순, 충돌할 경우에만 제약할 수 있다는 '리버럴의 원칙'을 정립하는 한편, 이 원칙에 따르더라도 소수자를 사회로부터 배제하고 '자기의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 갈 권리'를 침해하는 중대한 헤이트 스피치라면 법률로 규제하더라도 헌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결론내린다. 이에 따라 차별금지기본법을 먼저 제정하여 조사 연구를 실시해야 하며, 형사 규제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계 또한 존재한다. 법률로 사람의 마음까지 바꾸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별적인 '표현'이야 규제할 수 있더라도 차별적인 '생각'까지 규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 헤이트 스피치의 박멸을 원한다면 규제보다는 교육과 계몽, 정치가의 발언과 정부의 차별 정책을 시정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저자는 또 헤이트 스피치를 효과적으로 제재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외국의 다양한 사례를 검토한다. 독일의 민중선동죄, 영국의 공공질서법과 인종 및 종교적 혐오 방지법, 프랑스 형법 내의 모욕 처벌 규정, 캐나다 형법의 제노사이드와 증오 선동 관련 조항, 미국의 헤이트 스피치 관련 판례 등을 살펴보고 장단점 및 시사점을 정리했는데 이는 혐오 발언에 대한 대처를 고민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참고가 될 만하다. 미국의 경우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탓에 유럽으로부터 헤이트 스피치를 방치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역사적 경험에 의해 헤이트 스피치를 사회악으로 여기는 인식이 정착되어 있다고 분석한 점도 설득력이 있다.

    재특회나 넷우익의 혐한 공격에 맞선 것은 양심 있는 일본 시민들이었다. 당연하지만 모든 일본인이 증오에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니며, 헤이트 스피치를 두고 볼 수 없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트위터로 조직된 '시바키 부대'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을 타격하기 위해 그들의 시위를 가로막았고, 우익의 헤이트 스피치 시위 현장에 잠복했다가 방해하는 등 게릴라 부대처럼 활약했으며, "친하게 지내요"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증오 선동에 저항했다. 이것이 헤이트 스피치에 반대하는 '카운터 운동'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시바키 부대의 멤버이며 카운터 운동에 앞장섰다.

    저자의 이력은 독특하다. 2004년 이라크에서 활동하던 일본인 구호활동가들이 피랍되자 일본 사회는 "자기들 책임"이고 "민폐"라며 떠들썩했다.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저자는 피랍자 가족의 법정 대리인을 맡아 "사회가 정상이 아니"라며 맞섰다. 일장기, 기미가요에 대한 기립 제창 의무에 반발하는 교사들의 소송을 맡거나 헤이트 스피치 서적을 발간한 출판사를 제소해 승소하는 등 줄곧 극우 세력의 걸림돌을 자처해 왔다.

    '노 헤이트 스피치' 는 진보 논객인 가토 나오키, 아케도 다카히로 등과 함께 'NO 헤이트! 출판의 제조 책임을 생각한다'를 펴내 화제가 되었던 간바라가 '카운터 활동을 뒷받침할 책을 만들자'는 의도에서 내놓은 최초의 단독 저서로, 출간되자마자 일본사회의 뜨거운 반향을 불렀다. 특히 넷우익들이 '아마존'에서 책의 별점을 의도적으로 낮추고, 서평란에 인신공격성 발언을 게재하는 등 방해 공작을 벌인 것이 역으로 노이즈 마케팅에 기여한 일은 유명하다.

    이처럼 종횡무진 활약하는 저자가 생각하는 최후의 해법은 '시민의 힘'이다. 저자는 "운동이란 결국 사람들의 '양심'에 근거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보았다.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해서, 그것을 각성시키고, 그렇게 각성된 사람들의 양심이 또다시 다른 이들의 양심을 각성시키게 되는 운동. 양심과 양심이 이어지고, 그것이 거대한 고리가 되어 증오와 편견, 악의와 차별을 통째로 포위, 압도하는 운동. 그렇게 전개되지 않는다면 운동은 결코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p.218)

    또한 점점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가 되어 가는 일본사회에 개탄하면서 "이러한 현실에 저항하는 우리는 결코 '피해자인 재일 코리안을 지키기 위해서'만 일어선 것이 아니며 단지 '인종차별'에만 맞서 싸우려는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해 이를 파괴하려 하는 모든 것들과 투쟁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지켜야 할 '우리 사회'가 일본인과 재일코리안, 그리고 모든 인종, 민족, 국적, 성적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점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고 마무리한다.

    책 속으로

    재특회 시위대가 오쿠보 공원을 출발했다. 아직 행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거리에는 옛 군가풍의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우익들이 거리 선전차에서 틀곤 하는 군함행진곡처럼 사람들을 선동하는 음악과 함께 이윽고 경찰의 인도에 따라 그들이 등장했다. 시위대는 쇼쿠안도리의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 모습을 돈키호테 신주쿠점 앞에서 바라보았는데, 그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시위대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들어 보인 플래카드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착한 한국인 나쁜 한국인 같은 건 없다, 다 죽여 버려!" p.24

    시바키 부대 대원들은 앞서 이야기했듯 트위터에서 노마 씨의 호소를 보고 모여든 사람들이다. '관저 앞 금요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도 있다. 진보적인 사람, 보수적인 사람 등 사상적 스펙트럼도 다양하지만 '인종주의자가 싫다'는 공감대로 모였다. (…) 노마 씨는 카운터 활동을 오랫동안 해 왔기 때문에 허가받은 집회를 중지시키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직접 시위에 항의하다 체포된 사람도 있었지만, 그러면 오히려 인종주의자들을 기쁘게 할 뿐이었다. 따라서 그는 인종주의자들이 벌이는 불법적인 분탕질, 이른바 ‘산보’를 주 타깃으로 설정해 공격한 것이다. 노마 씨의 판단은 옳았다. 하지만 그 후 사람들의 운동은 노마 씨의 판단을 뛰어넘어 버렸다. 역사는 한 사람의 천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분노와 행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후 신오쿠보에서 일어난 사건은 이를 증명해 주었다. p.29~31

    카운터 운동 또한 운동의 주체를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설정했던 까닭에 처음부터 문제를 명확하게 끌고 올 수 있었다. 카운터는 '재일(코리안)' 대 '재특회'라는 구도를 뛰어넘어 '일본사회' 대 '인종주의자'라는 구도를 형성시켰다. 여기서 말하는 '일본사회'란 '지리적으로 일본에 존재하는 사회'로서 일본인 외에도 재일코리안, 중국인, 필리핀인 및 기타 외국인이 공생하는 사회를 말한다. 재특회는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것은 '특아(特亞)의 인간들(중국, 한국인들)'뿐이라고 반론했지만, 이런 규정 자체가 깔끔히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들은 '올 재팬(All Japan)'의 반격을 받아 간단히 패배했다. (…) 일본인들은 사회적 부정의를 '몸으로 막아낸' 경험이 거의 없다. (…) 민주주의가 단지 '선거'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민주주의는 오직 사람들의 끊임없는 '운동'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 p.46~47

    헤이트 스피치로부터 제노사이드에 이르는 사상을 일본인들이 남의 일처럼 방치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우리 일본인에겐 이미 관동대지진(1923년) 때 조선인 수천 명을 학살한 역사가 있다. 당시에도 조선인들이 혼란을 틈타 폭동을 일으켰다는 미디어의 오보, 혹은 헛소문이 학살의 원인이었다. 이처럼 '부조리한 일'이자 '약자에 대한 이지메'이며, '언어에 의한 폭력'이고, 또한 그 대상을 '사회로부터 배제'시키는 '헤이트 스피치'는 소수자의 인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공정한 사회 그 자체를 부정하며 궁극적으로 제노사이드로 귀착될 위험을 내포한다. 헤이트 스피치는 '언론'이나 '표현'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p.63

    그럼 이런 헤이트 스피치 단체, 배외주의 단체가 횡행하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사회불안과 빈곤 문제만으로는 문제를 정확하게 포착해 낼 수 없다. 오히려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정부, 정치가, 매스컴 등에 의한 차별 선동이 이뤄지고, 여기 뒤따르는 민중들이 헤이트 크라임, 헤이트 스피치를 하게 되는 패턴이 발견된다. 결국 헤이트 스피치 만연의 책임은 정치가의 차별 발언과 정부의 차별 정책에 있다 하겠다. p.93

    이 책은 헤이트 스피치는 소수자가 사회에서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보유하면서 살아갈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에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며, 헌법 21조의 규정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에 서 있다. 다만, 법적 규제의 효과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규제보다 교육과 계몽이 중요하며, 무엇보다 헤이트 스피치를 유발하는 정치가의 발언과 정부의 차별 정책을 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 책은 법적 규제의 범람으로 인한 '폐해'를 우려하는 모든 사람들과 입장을 같이한다.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사상에 적의를 가진 아베 자민당 정권하에서는 그 '폐해'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p.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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