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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 '덕혜옹주' 말고 조선인 이덕혜



영화

    황녀 '덕혜옹주' 말고 조선인 이덕혜

    [노컷 리뷰] 격동의 시대 살아낸 한 여성의 비극 흘러가듯 그려내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덕혜옹주라는 인물은 어딘지 모르게 비극적이고 매력적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라는 배경만으로도 충분히 그렇다.

    영화 '덕혜옹주'는 동명의 소설 '덕혜옹주'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비록 완전히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덕혜옹주'의 전기 영화는 아니지만 격동하는 시대, 덕혜옹주라는 한 여성의 인간적인 모습을 흘러가듯 그려냈다.

    영화는 황녀로 태어났기에, 덕혜옹주가 감내해야만 했던 가혹한 고통들을 이야기한다. 기자가 된 독립운동가 김장한의 현재와 과거인 일제 시대를 오가며 끝내 덕혜옹주의 마음이 병들 수밖에 없었던 원인들을 켜켜이 쌓아 나간다.

    비참한 조선인 노동자보다는 물질적으로 나은 삶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덕혜옹주는 황녀인 자신의 무기력함에 항상 괴로워한다. 황녀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조선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을 고뇌한다. 그래서 얼핏 보면 아름답고 화려한 삶은 그에게 진창과도 같다.

    노예처럼 생활하는 조선인 노동자들 앞에서 친일 연설문을 읽다 말고 진정한 격려를 건네는 덕혜옹주의 모습은 비참함의 절정이다. 나라를 잃어버린 황녀는 식민지 백성이 된 이들 앞에서 그저 연설문을 읽고 잠시 손을 잡아주는 일밖에 하지 못한다. 죄책감과 비통함에 뒤범벅 된 덕혜옹주의 얼굴은 역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덕혜옹주'에는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친일파 한택수와 독립 운동에 투신하는 이우 왕자, 우유부단한 영친왕 그리고 충심 깊은 궁녀 복순이까지. 그들은 하루가 다르게 격동하는 세계 속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선택해서 살아간다. 여기에는 영화 속에서 나올 법한 어떤 징벌도, 통쾌한 복수도 없다. 선택에 따른 결과만 있을 뿐이다.

    오히려 덕혜옹주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들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주체적이다. 늘 잔인한 운명에 휘말리는 덕혜옹주는 그것을 제대로 거부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점점 메말라 간다. 영화는 광복 이후, 아무렇지도 않게 귀국하는 한택수와 이승만 정부의 정치적 판단으로 입국을 거부당한 덕혜옹주를 통해 불공평한 운명을 대비시킨다.

    '한글 학교를 세우고 싶다', '조선에 가고 싶다'. 덕혜옹주는 끝내 자신의 힘으로는 이 소박한 꿈마저 이루지 못한다. 일본인 소 다케유키와 정략 결혼을 해 딸까지 낳지만 그는 언제나 조선으로 돌아가기만을 꿈꾼다. 이것마저 실패로 돌아가자 정신이 점점 쇠약해져 정신병원에서 생을 살아간다.

    책임지지 않는 지도자의 부재는 또 다른 비극이다. 끝까지 일본에 의존해 살아가려는 대한제국 황족들과 결정적 순간에 일본 잔류를 선택한 영친왕의 모습은 나약하고 이기적인 기득권층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 가지 의문은 역사를 기반으로 한 허구적 인물인 김장한이다. 덕혜옹주를 향한 김장한의 끝없는 충심은 이성을 향한 애정과 덕혜옹주를 향한 존경심 사이에서 방황하며 갈피를 잡지 못한다. 20년이 훌쩍 지났어도 김장한은 덕혜옹주의 기사를 자처하며 정신이 불편한 그의 말년을 살뜰히 돌본다. 그러나 이 같은 감정의 발로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영화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마치 운명같은 인연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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