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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김일성 친인척 서훈 논란, 엉뚱한 방향으로"



문화 일반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김일성 친인척 서훈 논란, 엉뚱한 방향으로"

    "보훈처 '은폐와 변명, 뒤집기' 태도…이념 대결 강화시키지 않을까 우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사학자인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최근 불거진 '김일성 주석의 친인척 서훈 논란'을 두고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돼 있다"고 꼬집었다.

    이 명예교수는 8일 다산연구소에 기고한 '사회주의계 독립유공자를 서훈하는 까닭은'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김일성 주석의 친인척 서훈보다는, 이를 뒤늦게 안 보훈처가 조직적으로 은폐를 시도하고 강변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이를 뒤집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일성 주석의 친인척인) 김형권과 강진석도 사회주의자이긴 하지만 해방 전에 타계했고 북한정권에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훈대상이 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이렇게 사회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을 서훈대상으로 했다는 것은 남북관계에서 그만큼 자신감을 보인 것"이라며 "이렇게 포용력을 발휘하는 것은 민족사적 정통성을 확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고 전했다.

    특히 "문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재의 독립유공자 상훈법을 고치겠다는 보훈처의 태도다. 우려되는 것은 '은폐와 변명'의 자세를 보였던 보훈처의 태도로 봐서 이념적 대결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점"이라며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에게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서훈하는 것은 학계의 고민과 거기에 부응한 정부의 결단에 의해 이뤄진 만큼 그것이 진보정권이나 '좌파지식인'의 합작품이 아니다. 이는 남북 대결의 상황에서도 독립운동의 역사를 바로 세워 민족적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사회전체의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이하 이만열 명예교수의 글 전문.

    사회주의계 독립유공자를 서훈하는 까닭은 -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며칠 전부터 '김일성 주석 친인척 서훈'의 문제로 찬반 여론이 비등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국가보훈처의 처사에 문제 제기한 후 국회 정무위는 물론 언론도 많은 관심을 표명하게 되었다. 개중에는 이념적 대결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김일성 주석 친인척 서훈 독해법-문제의 본질은 연좌제가 아닌 보훈처의 대국민 기만행위'라는 글이 자세히 밝히고 있어 재론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사회주의계 독립유공자 서훈과 관련하여 좀 더 언급할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되어 몇 자 적는다.

    왜 은폐하고 강변하다 뒤집는가

    이번에 제기된 문제는 김일성의 친인척인 김형권(1905~1936)과 강진석(1890~1942)이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것과 관련된 것이다. 김형권은 김일성의 삼촌이요, 강진석은 외삼촌이다.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도 3.1운동 전 숭실학교 시절부터 조선국민회 운동을 통해 독립운동에 나섰고, 그의 외조부 강돈욱도 교육자로서 평판이 좋은 분이었다.

    문제를 제기한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도 김형권과 강진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한 것은 아니다. 민문연도 강진석의 서훈을 두고 그의 독립운동 사실은 분명하며 연좌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서훈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 또 그가 김일성의 외삼촌이라는 것을 알고도 보훈처가 건국훈장을 수여했다면, 이는 남북 화해와 평화 정착을 위한 전향적인 결단으로 보고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민문연은 또 "사회주의자에 대한 서훈 또한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도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 삼을 이유도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강진석의 서훈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자 보훈처는 강진석이 광복 전에 사망하여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독립운동의 공적내용이 '포상기준에 합당'하기 때문에 서훈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단다. 이러한 결정은 정부 당국에 신뢰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민문연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극우 이념 편향적인 박승춘이 보훈처장으로 취임한 뒤 강진석이 김일성의 지친이라는 기초 정보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서훈을 했다가 이를 뒤늦게 알고 서훈 자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은폐방식도 보훈처가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내부에서 은밀하게 수습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미 출간 배포된 '공훈록'은 어쩔 수 없어 그대로 두고, 나머지는 "가능한 한 기록을 말살하려 치밀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보훈처는 "홈페이지의 '공훈록'과 공훈전자사료관의 '독립유공자 포상년도, 훈격별 현황(전체)', 훈장 미전수자 명부에서 김형권과 강진석을 삭제"했는데, 그래 놓고도 "오는 광복절에 복구하려 했다"는 "치졸한 변명"을 시도했다.

    그 뒤 6월 28일 국회 정무위의 추궁에서 보훈처는 거듭 이들의 서훈에 문제가 없음을 강변하다가, 하루 사이에 이를 뒤집어 상훈법 개정을 통해 북한 고위층 관련 인물에 대한 서훈 취소를 빠른 시일내에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단다. 민문연의 비판이 김일성의 친인척인 김형권·강진석이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하는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다는 것을 비판한 것이 아닌데도, 일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남북관계에 자신감이 있다면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유공자 서훈은 학계와 관계당국에서 치열한 논쟁과 고민을 거쳐 2005년경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단서를 붙였다. 독립운동으로 서훈의 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해방 후 북한정권에 협조한 이는 제외시켰다. 남북 현실로 봐서 이해되지 않는 바가 아니다. 또 같은 독립운동이라 하더라도 한 등급을 낮추어 서훈하는 단서도 달았다. 한 등급을 낮춰 서훈하는 것은 문화계 교육계 종교계 인사가 자기 분야와 관련해 독립운동을 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 점에서는 사회주의자와 다른 문화계의 인사가 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리하여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라도 해방 전에 타계한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서 건국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 김형권과 강진석도 사회주의자이긴 하지만 해방 전에 타계했고 북한정권에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훈대상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이렇게 사회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을 서훈대상으로 했다는 것은 남북관계에서 그만큼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이렇게 포용력을 발휘하는 것은 민족사적 정통성을 확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재의 독립유공자 상훈법을 고치겠다는 보훈처의 태도다. 우려되는 것은 '은폐와 변명'의 자세를 보였던 보훈처의 태도로 봐서 이념적 대결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에게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서훈하는 것은 학계의 고민과 거기에 부응한 정부의 결단에 의해 이뤄진 만큼 그것이 진보정권이나 '좌파지식인'의 합작품이 아니다. 이는 남북 대결의 상황에서도 독립운동의 역사를 바로 세워 민족적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사회전체의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다. 해방 직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만 하더라도 좌우합작 정부를 운용했고, 국내세력은 물론 '연안파'와 '만주·연해주의 무장세력'과도 기맥을 통하려 했다. 일제하 독립운동의 지향이 좌우통합·민족협동전선이었던 만큼, 겨우 숨통을 틔운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 서훈에 대해서는 국민정서에 부담스럽지 않게 더 합리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념을 넘어 정통성을 확보해야

    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그동안 분단 상황에서 남북 어디에서도 자리 잡지 못한 독립운동가가 있다는 것이다. 해외독립운동에서 누구 못지않게 활동한 김원봉(1898~1958) 같은 이가 그 뚜렷한 예다. 그는 해방 후 남쪽으로 귀향했다가 친일파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한 끝에 월북하여 북한 정권에 참여했다. 그 뒤 1950년대 말경 북한의 정권갈등의 와중에서 사라졌다. 남북 어디에서도 그의 독립운동은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아직도 정처를 찾지 못한 채 외로이 떠도는 독립운동가의 고혼(孤魂)을 언제까지 민족사에 입적시키지 않고 내버려 두어야 하는지,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또 이번 문제에서 드러났듯이, 해방 전에 사망하여 북한 정권에 협조하지도 않았는데, 북한 지도층의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독립운동 서훈에서 제외시키려 한다면 그 역시 합리적이지도 않고 우리의 원칙에도 맞지 않다. 독립운동가들은 사상과 이념을 초월하여 제대로 예우받아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남북대결 상황에서 포용성을 가지고 독립운동 계승의 폭을 넓히면, 넓히는 그만큼 정통성의 근거도 더 확대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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