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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국가대표만 '이중 족쇄'에 묶여야 할까요?



스포츠일반

    왜 우리 국가대표만 '이중 족쇄'에 묶여야 할까요?

    [임종률의 스포츠레터]

    '왜 우리나라만 있나요?' 수영 간판 박태환은 금지약물 복용으로 국제수영연맹이 부과한 18개월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지만 이후에도 대한체육회 규정에 걸려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사진은 지난해 3월 징계 확정 뒤 기자회견 때 눈물을 흘리는 모습.(자료사진=박종민 기자)

     

    한국 수영의 간판 박태환(27)의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 여부에 대한 운명의 시간이 바야흐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난 3월 금지약물 복용에 대한 국제수영연맹(FINA)의 징계가 풀린 뒤부터 줄곧 한국 체육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박태환의 국가대표 복귀 여부가 결정되는 겁니다.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을 가로막는 대한체육회의 규정에 대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판결이 오늘(7일) 중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체육회 조영호 사무총장은 지난 5일 "CAS 입장이 오늘까지 오기로 했는데 이틀 정도 늦어진다고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CAS 판결이 오면 체육회는 8일 오전 이사회를 열어 박태환의 국가대표 자격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릴 예정입니다. 8일은 FINA에 올림픽 출전 선수 명단을 제출해야 하는 기한의 마지막 날입니다.

    국내 법원과 CAS까지 법정 공방을 주고받은 4개월여의 지리한 싸움. 박태환 측과 체육회가 벌여온 길고 긴 대결과 갈등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 순간이 오는 가운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왜 전 세계 스포츠 선수 중에 우리 국가대표만 기량이 아닌 도덕성에서도 세계 제일이 되어야 할까"라는 의문입니다.

    이제 이틀이면 박태환의 운명이 결정될 텐데 왜 수개월 동안 이런 싸움이 있어야 했나 어떻게 보면 허탈한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도대체 우리 국가대표들은 올림픽에서 기량을 겨루는 게 아니라 도덕성을 겨뤄야 하는 걸까요?

    ▲법원 판결에도 결정 미루는 체육회

    그동안 워낙 많이 썼고, 또 다른 기사를 봤던 부분이기에 박태환 사태의 경과는 술술 읊을 수 있습니다. 박태환은 지난 2014년 9월 금지약물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FINA로부터 1년6개월 선수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습니다. 박태환은 그해 7월 모 병원에서 맞은 주사제에서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정한 최상위 금지약물인 테스토스테론이 검출됐습니다.

    이후 박태환은 올해 3월 FINA의 18개월 징계가 풀렸고,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자유형 400m와 200m 등 4개 종목에서 올림픽 기준 기록을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체육회는 '금지약물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규정(5조6항)을 들어 박태환에게 국가대표 자격을 주지 않았습니다.

    체육회가 요지부동의 자세를 보이자 박태환은 국내 법원의 문을 두드렸고, 지난 1일 법원은 박태환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서울동부지법 민사21부(염기창 수석부장판사)는 "박태환이 지난달 신청한 국가대표 선발 규정 결격 사유 부존재 확인 가처분 신청을 전부 인용했다"면서 "박태환은 국가대표 선발 규정에 의한 결격 사유가 없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지위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한체육회 김정행(왼쪽부터), 강영중 회장과 조영호 사무총장이 지난 5일 리우올림픽 D-30 기자회견에서 박태환과 관련해 취재진의 질문을 듣는 모습.(자료사진=박종민 기자)

     

    체육회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CAS의 결정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물론 그동안 CAS는 2011년과 2012년 박태환과 비슷한 이중처벌 논란에 대한 판례처럼 이번에도 선수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CAS가 다른 판결을 낸다면 체육회는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을 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체육회가 CAS에 박태환에 대한 판결을 유보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기사도 나왔습니다. 이에 체육회는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의혹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특혜? 체육회 규정이 '특별한 징계'는 아닐까

    체육회 규정의 핵심은 국가대표가 갖는 무게를 고려해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자는 겁니다. 물론 맞는 얘기입니다. 스포츠의 공정성을 깨는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에게 충분한 뉘우침의 시간 없이 다시 태극마크를 주자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하지만 이미 합당한 벌을 받은 뒤라면 문제는 다릅니다. 특히 국제적 기준에 맞는 징계를 받았는데도 다시 처벌을 내린다면 말입니다. 박태환은 이미 FINA로부터 18개월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박태환은 국내 징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림픽은 전 세계 선수들이 겨루는 최고의 무대입니다. 선수들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또는 각 종목 협회나 연맹이 정한 룰에 맞춰 자신이 갈고 닦은 기량을 경쟁합니다. 같은 출발선상에서, 같은 시간과 세트 안에서 동일한 기회를 부여받습니다. 누군가 앞에서 출발하거나 기회를 더 받는다면 이는 스포츠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신체적 능력을 부당하게 높여주는 금지약물도 여기에 해당할 겁니다.

    그렇다면 체육회가 강조하는 도덕성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전 세계 모든 종목 선수들에게 비정상적인 경기력 향상을 이끌어주는 약물이 공히 금지됐다면 이에 대한 징계 역시 같은 기준으로 적용돼야 한다는 겁니다.

    어느 나라 선수는 더 큰 징계를 받고, 다른 나라 선수는 덜 받는다면 이건 공정한 스포츠의 룰일까요? 왜 우리나라 국가대표만 다른 나라 선수가 받지 않는 징계를 또 받아야 하는 걸까요? 만약 '도덕성 올림픽'이 있다면 한국 국가대표는 챔피언이 될지 모르지만 이를 알아주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체육회는 박태환에게만 특혜를 주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박태환 개인만을 위해서 규정을 바꾸는 것은 문제라는 겁니다. 하지만 체육회 규정 자체가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다른 나라에는 없는 국가대표 제한 규정을 두는 게 오히려 특별한 징계가 아닐까요? 박태환 개인이 아니라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 전체가 세계적 기준에 없는 규제를 받는 건 아닐까요?

    ▲IOC도, CAS도 하지 말라는데 왜?

    물론 금지약물은 스포츠계에서 뿌리 뽑아야 할 악입니다. IOC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이를 위해 강력한 징계안을 마련해 시행하려 했습니다.

    IOC는 2007년 일본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금지약물 복용으로 6개월 이상 징계를 받은 선수는 다음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는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오사카 룰'은 4년 만에 폐지됐습니다. 도핑으로 21개월 자격 정지 징계를 받은 미국 육상의 라숀 메리트가 CAS에 제소해 무효 판정을 이끌어냈습니다.

    만약 '오사카 룰'이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면 박태환은 올림픽에 나서지 못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IOC도 금지약물 복용에 대해서는 각 종목 협회, 연맹에서 내리는 징계로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린 상황입니다. 징계 이후 올림픽 출전은 허락하고 있는 겁니다. IOC는 각국 올림픽위원회(NOC)에도 이 규정을 적용하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각 나라 NOC의 추가 징계가 부당하는 것도 이미 판례가 나와 있습니다. CAS는 2012년 '금지약물 복용 징계 선수는 영구 제명되고 평생 올림픽에 나설 수 없다'는 영국올림픽위원회의 규정에 대해 삭제 권고 판결했고, 이뤄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만 유독 이중처벌 논란이 있는 징계가 남아 있습니다. 체육회의 국가대표 제한 규정은 IOC의 권고 이후인 2014년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스포츠계의 비정상적 관행을 철폐하라는 서슬푸른 지시에 따라 체육회가 IOC의 권고에도 신설한 규정입니다. (물론 이 규정은 스포츠계 구악으로 꼽히던 한 인사를 축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지난 4월 제88회 동아수영대회 및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한 박태환의 모습.(자료사진=박종민 기자)

     

    박태환의 금지약물 복용은 물론 잘못된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선수들이 적용받는 국제적 기준에 맞게 참회와 반성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런 박태환은 또 징계에 묶여 전 세계 수영 선수들이 참가하는 올림픽에 나서지 못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같은 출발선상에서 경쟁할 쑨양(중국) 등 다른 선수들에게는 없는 족쇄가 박태환의 발에는 달려 있는 셈입니다.

    IOC나 세계반도핑기구(WADA)에서는 금지약물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그게 국제적 기준에서의 징계입니다. 어떤 선수건 그 공통적 기준의 처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만 징계를 더 준다면 우리 국가대표들은 성인군자가 돼야 할 겁니다.

    왜 우리 국가대표만 다른 나라 대표들보다 엄격한 징계를 받아야 하는 걸까요? 이게 과연 스포츠의 공정성을 지키는 것일까요? 왜 우리 선수만 더 힘든 족쇄를 차고 경쟁을 해야 하는 걸까요? 세계와 경쟁에 걸림돌이 된다며 박근혜 정부가 주창하는 규제 철폐는 스포츠계에서는 왜 공염불인 걸까요?

    p.s-'개인적으로 저는 박태환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문장을 원래는 이번 레터의 가장 앞에 쓰려고 했습니다. 기사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하나의 장치로 쓰려고 했던 겁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번 레터의 순수성을 해칠 것 같아서 다른 방향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 첨언한 것은 혹시라도 공정성이 훼손될까 하는 유려에서입니다. 물론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3관왕부터 2012년 런던올림픽 눈물의 은메달 등 박태환의 역영을 쭉 지켜본 만큼 대한민국 스포츠계에 끼친 그의 공로와 국민들을 울린 감동을 인정하지 않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스타가 된 이후의 박태환과 스폰서가 떨어져 나가고, 수억대 고급 자동차를 몰면서도 유명 학원 강사의 많지 않은 후원까지 받은 사연들을 접하면서 받은 실망감도 큽니다. 특히 금지약물에까지 손을 댄 최근의 박태환은 적잖은 국민들의 등을 돌리게 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번 레터를 띄우는 것은 아무리 미워도 공정한 기회까지 뺏어야 하느냐는 생각에서입니다. 박태환은 이미 벌을 받았습니다. 그 징계가 충분하지 않다면 IOC나 FINA 등에 제소하면 될 일입니다. 전 세계 수영 선수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징계 기준을 넘어 다시 처벌을 한다면 이는 분명히 공정한 룰이 아니게 되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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