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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때면 떠오르는 '그 사고'…노량진 수몰사고의 악몽



경제 일반

    장마때면 떠오르는 '그 사고'…노량진 수몰사고의 악몽

    [일터 사망, 이것만 없었어도..③] '오늘도 괜찮겠지만' 없어도…산재사망 美수준 줄어

    컵라면도 못 먹고 일에 쫓겨 혼자 일하다 사고를 당한 김 군, 그런가하면 김 군의 아버지뻘인 건설노동자들은 지하에 가득 찬 가스가 폭발해 목숨을 잃는다. 안전보건공단 통계에 따르면 오늘도 일터에서는 하루에 평균 대여섯명 꼴로 사망사고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산재사망사고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CBS는 기획시리즈를 통해 5차례에 걸쳐 과거의 산재사망사고를 되짚어보고 그 사고를 촉발한 원인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빨리빨리'만 없었어도…목숨걸고 달렸던 18살 배달알바
    ② "그게 메탄올이었다고?" 메탄올 실명, 안전교육만 받았어도
    ③ 장마때면 떠오르는 '그 사고'…노량진 수몰사고의 악몽
    (계속)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대표적인 대형 산업재해 사례로 손꼽힌다. (자료=안전보건공단 산재예방안전수칙 가이드북 발췌)

     


    ◇ 수 십 미터 아래 지하터널 속, 물이 계속 차오르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물이 발목 너머까지 차오르자 작업반장이 "안 되겠다 나가자"고 말했다. 50미터 쯤 갔을까. 갑자기 등 뒤에서 거센 바람이 확 불었다. 같이 작업하던 7명이 바람에 밀려 넘어졌다. 순식간에 불이 꺼졌다. 탈출요령은 없었다. 칠흑 같은 높이 2.2미터 터널 속. 1000미터 가량을 2분 남짓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레일에 부딪히고 까져도 무조건 달렸다. 바닥에 깔린 레일에 걸려 넘어지면 그대로 끝이었다. 쓰러진 동료를 돌아볼 겨를은 없었다.

    2013년 7월 15일 월요일. 노량진 수몰 사고의 생존자는 단 한명 뿐이었다. 뒤쪽 물막이 철문(차수판)이 터지면서 강한 바람이 밀려드나 했더니 이어 6만 톤의 강물이 순식간에 쏟아져 들어왔다. 바람에 쓰러졌던 7명은 이내 덮쳐온 물살에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지하터널에서 돌아온 유일한 생존자의 증언이다.

    ◇ "바닥에서 3m 정도 침수"…그래도 공사는 강행됐다

    사고 발생 하루 전인 14일 오전 09시 33분. 시공사의 A 부장이 책임감리원 B씨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다. "한강대교 8.5m 주의보 수위고 현재 2.63m입니다. 수직구 침수되려면 수위 6.0m 이상이면 위험합니다. 3.37m가 여유 있습니다."

    도달기지 수직구의 높이는 해발표고 기준(El.m)으로 6.79m. 6m가 넘으면 위험하고, 6.8m가 넘어가면 수직구로 물이 범람해 들어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공사 책임자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고 당일인 15일 오전 6시에 이미 한강 수위는 6.03m에 도달했다. '6m가 넘으면 위험하다' 했던 A 부장은 이날 오전 7시 8분, 책임감리원에게 문자를 전송했다. '도달기지 물 침수. 바닥에서 3m 정도 물이 참. 더 이상의 피해 없음'. 그리고 7시 30분, 하도급업체 현장소장 B씨는 직원 17명을 터널로 투입했다.

    사고가 발생한 노량진 배수지 공사 현장. (사진=자료사진)

     

    이날 정오부터 차오르기 시작한 한강대교의 수위는 오후 4시에는 결국 7m를 넘겼다. 수직구 안으로 범람이 본격 시작됐다. 급기야 오후 4시 13분 건설사 직원이 현장 사진을 찍어 책임감리원과 현장대리인에게 전송했다. A부장이 뒤늦게 현장사무소에 복귀했지만 작업자 철수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시공업체나 감리업체 어느 곳도 공사중단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결국 오후 5시 수위는 수직구보다 47cm나 더 높은 7.26m까지 올라갔다. 물이 수직구 안으로 세차게 쏟아졌고, 설계와 다르게 부실하게 제작된 차수판은 수압을 못 견디고 터져나갔다. 7명이 수몰되는 참사의 시작이었다.

    ◇ 괜찮겠지 하다가…사망재해 10건 중 6건 발생

    작업 전부터 한강이 수직구 바로 아래에서 출렁였고, 바닥에도 이미 3m 가량 물이 차 있었지만, '오늘도 괜찮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은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2013년 7월 17일 저녁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상수도관 이중화 부설공사 배수지 수몰 사고현장에서 실종자의 시신이 추가 수습 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현장의 관행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깐깐하게 안 해도 공사판은 다 잘 굴러가더라'는 잘못된 경험 때문에 일터에서는 수많은 사고들이 일어난다. 특히나 노량진 수몰사고에서 보듯 안전 책임자들의 안일한 태도는 모든 작업자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지난달 1일 발생한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도 가스호스와 토치는 지하 작업장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고, 작업 전에 가스농도 측정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안전을 책임진 하청업체의 현장소장은 거의 출근하지 않은 정황이 경찰에 포착됐다. 안전관련 일지조차 작성되지 않았던 공사현장에서는 결국 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치는 대형 사고가 났다.

    실제로 안전보건공단의 '2014년 산업재해현황분석' 자료에 따르면, 사망재해 사고의 43%가 '불안전한 상태를 방치'해서 발생했다. 또, 21%는 '감독 및 연락불충분' 때문에 생겨나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망재해 10건 중 6건 이상이 '오늘도 괜찮을 것'이라는 안전책임자의 인식에서 비롯되는 셈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사고 사망 만인율, 즉 노동자 1만명 당 발생하는 업무상 사고 사망자 수는 0.53명이다. 일본의 0.2명, 독일의 0.17명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오늘도 괜찮겠지'라는 인식만 없애도, 미국의 0.35명 수준까지는 사망자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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