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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출현 속에서조차 극과 극의 차이가 있었다"



책/학술

    "태양의 출현 속에서조차 극과 극의 차이가 있었다"

    계간 '아시아', 카자흐스탄 단편 소설 '태양을 미워하다 등 13개국 작품과 문학지도

     

    카자흐스탄 작가 뜨늠바이 누르마간베토프의 '태양을 미워하다'는 주인공인 베크바이가 자살을 결심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베크바이는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래서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결심은 확고했다. 그는 삶에 환멸을 느낀 데다가 그를 둘러싼 현실이 혐오스러워 덧없는 이 세상을 영원히 하직하고 싶었다. 만족스럽게 살며 행복한 듯 보이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정신없이 칭송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태양을 미워하다 (뜨늠바이 누르마간베토프)

    베크바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 일련의 과정으로 작가는 부채(負債)로 인해 태양을 등지고 어둠을 사랑하게 된 한 인간의 모순된 삶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했으며 카자흐스탄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사실 지난 오륙일 동안 빽빽하게 깔린 먹구름을 뚫고 오늘 처음으로 태양이 얼굴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온통 아름다운 빛으로 쌓인 태양의 출현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까지 놀랄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다. 하얀 옷을 입은 산 정상들. 눈과 비의 하중으로 굽어 있는 나무들, 거대한 건물들의 벽들이 태양의 선명한 빛에 목욕을 하니 늘씬하고 화사하게 보였다.
    오로지 베크바이 한 사람만 모욕감과 뒤틀린 심정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는 어떤 거부감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그렇게 서 있었다.……. 이와 같은 태양의 출현 속에서조차 극과 극의 차이가 있었다. 말하자면, 저 태양의 출현은 행복한 사람들에게는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온갖 축복을 더욱 더 내려주는 반면 불행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큰 불행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태양을 미워하다

    창간 10주년을 맞은 계간 '아시아' 2016년 여름호는 중국,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13개국 작품과 현대문학 해설을 한 데 모았다.

    먼저 아시아 문학이 낯선 독자들을 위해 각국 문학에 정통한 필자들이 해당 국가의 현대문학을 간단히 소개했다. 일본의 평론가 이치카와 마코토는 사회와 매체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21세기 일본 문학의 현장을 생동감 있게 전달했다.

    최근 10년 동안 일본에서 대중이 읽는 대다수의 소설은 드라마 같은 미디어믹스를 지향하는 ‘콘텐츠’였다. 순수한 ‘문학적’ 작품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일본 문학지도 (이치카와 마코토)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의미의 문학은 일본에서도 입지가 좁아지고 있지만 젊은 작가들은 이 험난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치카와 마코토는 소설가 무라타 사야카, 가와카미 미에코, 나카무라 후미노리 등을 예로 들며 일본적 모티브보다 외국어로도 수용하기 쉽고, 문학성과 오락성의 균형을 취하려고 하는 작풍을 지적했다.

    터키의 괵셀 튀르쾨쥬 교수(에르지예스 국립대)는 1980년대부터 다양한 갈등이 들끓었던 터키의 정치사가 각 세대와 문학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서술하며 터키 현대문학의 지형을 그려나갔다. 특히 21세기 터키 문학을 주도하는 신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정치에 거리를 두고 주로 ‘개인의 삶’에 중점을 두고 창작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에 다양한 장르가 출현하게 되었다.

    2000년 이후에 나온 작가들의 공통점은 ‘정치적 소설’과 거리를 둔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제 여성 문제라든가, 젊은 세대들의 개인적인 문제라든가, 비교적 개인의 삶에 중점을 두었다. 이 시기부터 터키에서 추리 소설, 공상 과학 소설, 스릴러 소설, 환상적인 소설, 지하 소설 등 여러 장르의 소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전에 비해 더욱 도전적인 신세대 작가들은 새로운 내용, 새로운 장르들을 계속 시도하여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터키 문학지도 (괵셀 튀르쾨쥬)

    이번 41호에 수록된 13개 국가의 작품들은 각국이 가진 매력만큼이나 각양각색이었다. 한 가지 여러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무거운 내용과 분위기 보다는 독특한 개성으로 소재를 풀어냈다.

    이란 작가 일리레저 마흐무디 이런메흐르의 「분홍빛 구름」은 이란-이라크전에서 사망한 젊은 소년을 화자로 내세워 전쟁의 비극과 인간의 존엄성을 유머러스하지만 진지하게 설파하고 있다. 시체가 나뒹구는 끔찍한 상황에서도 상황을 담담하게 그리는 문체가 그 비극성을 묘한 느낌으로 전달한다.

    인도 작가 판카지 두베이의 「그리고 반쪽의 사랑 이야기」는 힌두 사원 사제의 아들이 무슬림 처녀에게 반한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종교적 갈등과 죽음으로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지만 ‘희망’을 강조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삶과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이 씨처럼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형 베스트셀러 작가 중국의 한샤오궁과 베트남의 응웬 옥 뜨 작가도 지면을 채워주었다. 후난 문학을 대표하는 한샤오궁의 「서강월(西江月)」에는 중국 소설다운 힘 있는 서사가 등장한다. ‘세계문학에 가장 근접한 문학세계를 구현하고 있다’는 평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곧 국내 단편선 출간을 앞두고 있는 응웬 옥 뜨의 「까이야」에서는 가난 속에서도 인간적 순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베트남인들의 아름답도록 슬픈 서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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