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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대한민국 청년이라는 게 싫다"



책/학술

    "나는 내가 대한민국 청년이라는 게 싫다"

    신간 '청춘리포트'

     

    신간 '청춘리포트'에는 중앙일보 '젊어진 수요일 : 청춘리포트’'라는 지면을 통해 게재된 기사가 모여 있다. 이 기사들 하나하나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2030세대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취재하고 검증하고 기록한, 민낯의 자화상이다.

    두 달 급여로 79만 원의 열정페이를 받고, 흙수저 빙고게임의 칸을 채우며 씁쓸해하고, 호주로, 캐나다로, 핀란드로 이민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가족과 하루 5분밖에 마주하지 못하는 타임푸어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임상실험에 무모하게 참여해 피를 파는 수많은 한국판 허삼관들, 인턴이라는 족쇄에 묶여 상사의 개인사에 재능을 소진하는 셔틀노예들.

    '청춘리포트'에 등장하는 이런 수많은 청춘의 사례들은 중앙일보 청춘리포트 팀의 기자들이 발로 뛰고 밤을 새워가며 만들어낸 날 것의 체험이다. 그들은 청춘리포트의 지면을 위해 특별하게 모인 중앙일보의 2030세대 젊은 기자들이다. 그들 역시 이 시대의 청춘이며, 그렇기에 그들이 고민하고 탄생시킨 기사들은 이 시대를 여과 없이 투영하는 생동감을 띠고 있다. 동시에 거기엔 현재진행형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청춘의 고민들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안타까운 생명이 또 졌다.
    대학을 포기하고 가족 생계에 도움이 되기 위해 공고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든 청년이었다.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월급을 쪼개 적금을 붓고 본인은 사발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동생에게 용돈을 건네던 알뜰하고 듬직한 청년이기도 했다. 지난 5월 28일, 서울 2호선 지하철역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비극적인 사고를 당한 이 청년은 스무 살 생일을 고작 하루 앞두고 있었다. 하루 종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며 청년은 묵묵히 홀로 일했고, 역에 진입하는 지하철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온몸이 부서진 청년의 시신을 붙잡고, 청년의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절규했다.
    “책임감 있게 키운 것을 후회합니다. 제발 제 아들을 살려주세요.”

    이 청년의 죽음처럼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젊은 청춘들의 비극은 더 이상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너무나 흔하고 빈번하기에 하루만 지나도 사건은 묻히고 또 다른 새로운 사건이 그 자리를 채운다. 공통점이라고는 잘못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책임질 사람도 없고,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 처벌할 수가 없고, 처벌할 수가 없으니 상황은 바뀌지 않고 비극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주기적으로, 그리고 똑같은 모습으로.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청년의 죽음은 오직 청년의 책임인가? 청년의 비극은 우연하게 벌어진 사건에 불과한 것인가? 정말 그런가?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국을 떠나 호주로 떠나는 주인공 계나의 대사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소설 속 장면이라고 무시할 수만은 없다. 여기, 흘려 웃어넘기기엔 씁쓸한 설문조사가 있다.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라는 설문조사에서 “그렇다”, “매우 그렇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70%가 넘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2030세대, 대학생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였다(중앙일보 청춘리포트, 2015년 6월 20일 기사에서 인용). 스트레스와 경쟁(37.6%), 미래에 대한 불안(16.6%), 한국정치가 싫어서(9.8%), 취업이 힘들어서(5.8%), 결혼이 어려워서(0.5%) 등이 이유를 차지했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은 미래의 주역인 젊은 청춘들에게 외면 받고, 도피하고 싶은 나라가 되었는가. 하지만 중요한 건 언제부턴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왜 이렇게 됐는가이다.
    세월호 사태에서 드러난 행정부의 무능함, 책임을 미루고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한 기득권 세대들의 비겁함, 가진 자가 더 많은 걸 갖기 위해 더욱 많은 을을 양산해내고자 하는 승자독식 경제체제의 편협함, 그러한 상황을 방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없는 놈은 짜져 있어’ 하며 오히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구조의 무책임함에, 지금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는 고통 받고 신음하며 절망한다.

    정직원도 아닌 인턴 자리에서조차 밀려나지 않기 위해 상사의 와이셔츠를 빨고, 팀장의 아침식사를 셔틀한다.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음에도. 한 대학생은 시간당 2만 원이라는 냉동창고 알바에 무턱대고 뛰어들었다 동상에 걸린 발가락을 잘라냈다. 청담, 반포, 목동, 이른바 핫플레이스가 아닌 서울 외곽에 사는 직장인들은 연애의 시작조차 무리다. 꿈을 잃고 노숙을 택한 1,200만 명의 2030 청년 노숙자들은 지금 전국을 떠돌고 있다.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곳은 대한민국이고 이 이야기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청춘들이 물집이 나도록 힘주어 꾹꾹 써내려가고 있는 슬픈 진술서다.

    이 책에는 사회, 취업, 대학·직장생활, 연애, 주거, 정치, 문화 등 8개의 테마로 구분된 총 43개의 에피소드가 들어 있다. 이 에피소드들은 2030 청춘이 가장 고민하고 있는 청년실업, 연애, 결혼, 내 집 마련에 관련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타투, 신조어 사용, 청춘들의 밥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신문 지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취재기자들의 생생한 후일담이 각 에피소드의 말미에 첨가되어 있다.

    지금 무엇보다도 절실한 건 직시(直視)다. 이 나라의 청춘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봐야 한다.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무엇에 좌절하고 있는지, 대한민국의 청춘 세대 옆에 마주서서 그들과 같은 눈높이로 이 시대를 바라봐야 한다. 나라가 변하고 미래가 변하는 건 그 다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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